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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전5권 세트 ㅣ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심각하고 진지한 SF는 아니다. 유머가 넘치고 기묘한 생각들이 가득한 SF이다.
표지의 소개대로 하자면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심오하고 철학적인 거대한 농담' 이다.
사전 정보없이 무작정 읽기 시작한 이 작품은 1권부터 나를 빠져들게 했다. 왜냐하면, 시작하자마자 지구가 사라져버리는 엄청난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유는 은하계 변두리 지역 계발 계획에 따라 초공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그 길 가운데에 지구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우주인이라고는 듣도 보도 못한 지구인에게 갑자기 나타나 지구 철거 명령을 외치는 외계인..
- 깜짝 놀라는 체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 모든 계획 도면과 철거 명령은 켄타우리 행성에 있는 지역 개발과에 너희 지구시간으로 오십년 동안 공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는 공식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이제 와서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해봐야 이미 너무 늦은 일이다.
이런 상황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나?
사실 이 책은 SF를 빙자한 현실 꼬집기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작품 곳곳에 현실을 패러디하여 비웃는 글들이 숨어있다. 찾아보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만들기 위해 지구로 파견나와 있던 외계인 포드는 지구가 파괴되기 직전에 주인공 아서를 데리고 우주로 탈출한다. 당연히 우주선을 히치하이킹 해서..^^
그 이후에 벌어지는 아서의 모험담은 대부분 황당스럽고 기묘하기 짝이 없는 우주에서 이루어진다.
어찌나 기이한 생각들이 많은지 읽다보면 정신이 없다. 진공상태의 우주에서 삼십초만에 무한 불가능 확률 추진기로 운항하는 우주선에 구조되질 않나, 우주가 끝장나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지를 않나, 시간 여행으로 말미암아 원인과 결과가 제멋대로 뒤집히질 않나..
단 한시라도 평범하고 느긋한 마음을 먹을 수가 없다. 그러도록 놔두질 않는다.
- 하늘을 나는 기술, 아니 그보다는 요령이란게 있다.요령은 땅바닥을 향해 몸을 던지되 그 땅바닥이라는 목표물을 놓치는 것이다. 날씨 좋은 날을 골라서 한번 시도해 보라고 씌어있다.
첫 부분은 쉽다. 요구되는 자질은 그저 체중을 전부 실어 앞으로 몸을 던지되, 아무리 아파도 상관 않겠다는 마음 자세뿐이다.
정말로 코미디 같지 않은가..! ^^ 땅바닥을 놓치라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주인공 아서는 나중에 실제로 날기까지 한다.
내멋대로 분류해 보자면, 총 다섯권 중에서 3권까지를 1부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아서와 포드의 [우주 구하기 대작전]이 완성되어지는 부분이다. 2부라고 생각되어지는 4권과 5권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다른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평행우주 개념까지 도입한 부분이다. 사라졌던 지구는 다시 출현한다. 아서의 사랑이야기가 나오고, 딸이 등장하는 것도 2부다..
한달음에 읽어내기는 힘든 책이다. 아니, 힘들다기보다는 천천히 읽는 것이 더 재밌다. 문장마다 보여지는 유머와 비꼼과 우스꽝스러움을 제대로 즐겨내려면 쉬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읽다보면 알겠지만, 기발함과 독특함이 가득하여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되질 않는다.
-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 일어나면서 다른 일을 일어나게 만드는 일은, 그게 어떤 일이든지 간에 다른 어떤 일을 일어나게 만든다.
- 일어나면서 다시 반복되어 일어나는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또다시 반복되어 일어난다.
- 하지만 반드시 시간순서대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 심오한 5권의 첫 문장은 책의 결말을 암시하고 있었다. 물론,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느꼈던 약간의 허탈함은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 이라는 철학적 견지로 보자면 당연했던 것이었다.
읽는 동안 즐거웠다. 머릿속에는 우주의 방랑자가 된 아서가 둥둥 떠다니고,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우스꽝스런 문장들이 날라다녔다. 다섯권이라는 부담스런 권수의 압박을 헤치고 나올수만 있다면, 이 작품의 유머러스하면서도 풍자적인 글속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