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전의가 처음 이르렀는데, 흰 뼈가 땅을 덮었고 가시밭은 넓게 바라다 보였고, 살고 있는 백성도 100호를 넘지 못하였으며, 장전의의 휘하에는 겨우 100여 명뿐이었고 서로 함께 중주성(中州城)을 지켰지만 사방의 들판에도 모두 밭을 가는 사람은 없었다. 장전의는 이에 휘하에서 18명의 쓸모 있어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뽑아서 사람마다 1기(旗)와 1방(?, 공문서)을 주고서 그들을 둔장(屯將)이라고 하면서 18개 현(縣)의 옛 터전으로 가게 하여 깃발을 세우고 공문서를 펼쳐놓고 떠나고 흩어진 백성을 불러 위로하고 나무와 곡식을 심어 가꾸도록 권하게 하였다.

오직 살인자만 죽이고 나머지는 단지 곤장을 쳤을 뿐이고 엄격한 형벌은 없애고 조세도 없애니 백성 가운데 그곳으로 돌아온 사람은 저자와 같았다. 또 장정을 선발하여 그들에게 전투와 진(陣)치는 방법을 가르쳐서 노략질하는 도둑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몇 년 후에 도성에 있는 마을들은 점차로 옛날의 제도를 회복하였고, 여러 현(縣)의 호구(戶口)도 거의 모두 돌아와 회복되고 뽕과 삼베도 울창하여 들판에 노는 땅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서 이웃 마을 사이에 있고 없고 간에 서로 도와주니, 그러므로 모든 호구에는 저축한 것이 있어서 흉년에도 굶지 않고 드디어 부유함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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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왕조(王潮) 형제만이 그의 어머니인 동(董)씨를 부축하며 험한 길로 군사들을 좇아갔는데, 왕서가 왕조 등을 불러서 이를 나무랐다. "군대에선 모두 법이 있으며, 아직 법이 없는 군대는 없었다. 너희가 나의 명령을 위반하였으니 죽이지 않는다면 이는 법이 없는 것이다."

주매는 전령자가 천자의 좌우에 있어서 끝내 제거할 수 없자, 소구(蕭?)에게 말하였다. "주상께서 파천(播遷)한 지 6년이고, 중원에 있는 장사(將士)들은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백성들은 먹을 것을 제공하였는데, 싸우다 죽고 굶어 죽어서 열에 일고여덟이 줄고서 겨우 경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천하는 바야흐로 거가(車駕)가 궁궐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는데, 주상은 다시 근왕(勤王)한 공로를 바꾸어 칙사(?使)의 영광으로 삼아 대권(大權)을 위임하여 기강을 타락하게 하고 번진(藩鎭)을 시끄럽게 하여 화란(禍亂)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령자는 스스로 천하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추밀사 양복공을 천거하여 좌신책(左神策)중위·관군용사(觀軍容使)99로 삼고 스스로 서천(西川)감군사로 제수하여 가서 진경선에게 의지하였다.

태상박사 은영손(殷盈孫)이 논의하였다. "이온은 도적 같은 신하의 압박을 받았으니 바로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수 없었던 것이 죄가 되었을 뿐입니다. 《예(禮, 예기)》에는 ‘공족(公族)의 죄가 대벽(大?)에 해당하게 되면 군주는 그를 위하여 소복을 입고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온은 이미 주살되었으니 의당 폐위시켜 서인(庶人)으로 삼고, 있는 곳에서 그 머리를 장사 지내야 합니다. 그 괵(?)을 바치면서 축하하는 예라고 부르니, 청컨대 주매의 수급(首級)이 도착할 때를 기다려서 시행하십시오." 이를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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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은 천천히 그들에게 타일러서 말하였다.
"사람이 살면서 마땅히 먼저 반역과 순종을 깨달아야 하고, 다음으로는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 황소는 전날에 소금을 팔았던 야만인일 뿐인데, 공(公) 등이 여러 대를 걸친 천자를 버리고 그에게 신하 노릇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이롭겠는가? 지금 천하의 근왕(勤王)하는 군사들은 모두 경기(京畿)에 모였는데 치청(淄靑, 평로절도사부의 치소)만이 오직 이르지 않았으며, 어느 날 아침에 도적이 평정되고 천자는 올바르게 돌려놓을 것인데, 공(公) 등은 무슨 면목으로 천하 사람들을 보겠소? 일찍이 가서 공명(功名)을 나누고 부귀를 차지하지 않는다면 후회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오."

그러나 내가 너의 한 집안사람들을 살려 주었으니 너는 마땅히 나를 위하여 영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몰래 말하라. ‘복야는 너희들을 불쌍히 생각하여 모두 양인(良人)인데 도적에게 통제를 받아서 인정상 부득이 한 것이다. 상서는 너희들을 구원하여 깨끗이 씻어주고자 하니 상서가 오면 너희들은 각기 무기를 던져버리고 영접하며 항복하면 상서는 당연히 사람을 시켜서 너희들의 등에다가 귀순(歸順)이라는 글자를 쓰게 하여 너희들을 보내어 옛날 직업을 회복하게 할 것이다.

이극용은 당시에 스물여덟 살이었는데 제장 가운데 가장 어렸지만 황소를 격파하고 장안을 수복하는데 공로가 으뜸이었고, 군사세력도 가장 강하여 제장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이극용은 한쪽 눈이 조금 쑥 들어 간 애꾸눈이어서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독안룡(獨眼龍, 외눈박이 용)’이라고 하였다.

"경이 말하기를 유씨(劉氏)가 부흥한다고 하였는데, 누가 그 괴수인지를 모르겠다. 짐을 유현(劉玄)과 자영(子?)에게 비교하였으니 얼마나 대단히 무망(誣罔)한 것인가?" 또 말하였다. "하물며 하늘의 걸음걸이가 아직은 기울어지지 않고, 황실의 기강은 오히려 반듯하며, 삼령(三靈)이 어둡지 않고 백 가지의 법도가 모두 존재하며, 군신 간의 예의와 위아래의 명분은 의당 준수되어 아직은 무너져 능멸되지 않았다. 짐이 비록 충인(沖人)이지만 어찌 가벼이 하고 모욕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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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휴(盧?, 재상)가 말하였다. "도적은 만족할 줄 모르니 비록 그에게 절월을 주어도 그가 사납게 약탈하는 것을 중지시킬 수 없을 것이며, 급히 여러 도의 군사를 발동하여 사주(泗州, 강소성 우태현 회하의 북안)에서 눌러주고, 변주(?州)절도사를 도통으로 삼으면 도적이 이미 앞으로 간다 해도 관중(關中)으로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니 반드시 돌아가서 회(淮, 회수)·절(浙, 浙江)에서 노략질 하다가 바닷가에서 구차하게 살 뿐이오." 이를 좇았다.

신이 지키지 못한 것은 정확(鼎?)이 되어도 달게 받겠지만 조정의 꾀를 냈던 신하들은 부끄러운 얼굴을 어디에 기댈 것입니까? 혹은 듣건대 폐하께서 이미 서쪽으로 순행하는 것은 논의하였다고 하는데 진실로 난여(?輿)가 한 번 움직이면 위아래가 흙덩이처럼 무너집니다. 신이 감히 아직도 살아 있는 몸뚱이를 가지고 분발하여 죽기를 무릅쓰고 말씀을 드리건대, 바라건대, 가까이 하고 친밀한 사람과 재신(宰臣)들과 더불어 깊이 논의하시어서 급히 군사를 징집하여 관문의 방어를 구해 주신다면 고조(高祖)와 태종(太宗)의 업적은 거의 오히려 부지할 수 있을 것이며, 황소는 안록산이 망한 것을 잇게 하고, 보잘것없는 신은 가서한의 죽음을 넘어서겠습니다."

경오일(24일)에 좌습유 맹소도(孟昭圖)가 소문(疏文)을 올렸다. "잘 다스려지고 안정된 시대에도 멀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시대에는 더욱 안팎이 마땅히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무릇 천하라는 것은 고조(高祖)와 태종(太宗)
의 천하이지 북사(北司)의 천하가 아니고, 천자라는 것은 사해(四海) 구주(九州)의 천자이지 북사의 천자가 아닙니다. 북사는 아직은 반드시 다 믿을 수 없으며 남사는 아직 반드시 다 소용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어찌 천자가 재상과 더불어 아무런 관계와 연관이 없어서 조신이 모두 길 가는 사람과 같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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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辛?)은 이미 풍병(風病)에 들어 마비상태여서 섭순관(攝巡官) 서운건(徐雲虔)을 불러서 그 손을 잡고 말하였다. "나 신당은 이미 조정에 주문(奏文)을 올려서 사자를 출발시켜서 남조(南詔)에 들어가게 하였는데, 사자들이 이어서 죽어버리니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나의 그대는 이미 벼슬을 하여 나라를 위하여 죽을 생각을 하였으니 능히 이번 여행을 할 수 있겠는가? 나 신당은 풍병으로 마비가 되어 절을 할 수 없는 것을 한스러워 할 뿐이다." 이어서 오열하며 눈물을 흘렸다.

서운건이 말하였다. "선비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것이오. 밝으신 공에게 벽소(?召)를 받았는데, 은덕에 보답할 길이 없을까 한스러워하였으니, 감히 명령을 이어받지 않겠습니까?"

신당이 기뻐하며 물자와 장비를 후하게 갖추어주고 그를 파견하였다.

좌습유(左拾遺) 후창업(侯昌業)은 도적들이 관동(關東)에 꽉 찼으나 황상은 친히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서 오로지 노는 것에만 힘쓰고, 상으로 내려 주는 것이 한도가 없었으며, 전령자(田令孜)는 권력을 오로지하여 그 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으며, 천문(天文)이 이상하게 변화하니 사직이 장차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소문(疏文)을 올려서 극단적으로 간언하였다. 황상은 크게 화를 내고 후창업을 소환하여 내시성(內侍省)에 오게 하고서 죽음을 내렸다.

최안잠이 군사를 내어 앞뒤로 승리한 것이 한 번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강한 군사를 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훌륭한 장수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니, 만약에 강한 적군이 홀연히 이르게 되면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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