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시선 239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도현의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죽비로 어깻죽지라도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안도현의 언어들이 간혹 눈송이로 어깨에 내려 앉기도 했지만, 안도현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너는... 이 시만 생각났다.

안도현이 어른을 위한 동화들을 쓸 때도 난 감동적이지 못했다. 그저, 연탄재만 생각했다.

이 시집에서 내 맘에 든 시가 하나 딱 있었다. 다른 시는 정말 그의 말마따나 <거시기>했다. 드러내놓고 말하기 <거시기>한 시들이 가득하다.

내 마음에 든 딱 하나의 시.

드디어 미쳤다.

제 여인의 허리를 껴안던 팔로
남의 여인의 허리를 쏘려고 조준을 한다.

제 딸아이의 볼을 쓰다듬던 손으로
남의 딸아이의 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제 아들의 발등 앞에 축구공을 차주던 발로
남의 아들의 발등을 짓뭉개는 탱크를 운전한다.

제 마을의 울타리가 부서지면 달려나가 수리하더니
남의 마을의 울타리는 박격포로 부숴버린다.

제 나라의 나무와 꽃이 목마르면 물도 잘 뿌려주더니
남의 마을의 나무와 꽃에는 수천 발 미사일을 퍼붓는다.

드디어 미쳤다......

제 집의 개는 사람보다 더 사랑하고
남의 집의 사람은 개보다 더 증오한다.

아니다. 드디어 미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원래 좀 미친 민족이다. 어느 나라도 보내려 하지 않던 베트남에 우린 몇만의 군인을 보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20%이상이 거부한 그 전쟁에... 그리고 우린 이라크에 우리 아이들을 파병한다. 남의 집의 가장을, 어머니를, 아이들을, 강아지들과 그 집과 그 가재도구들을 짓밟고 폭파하고 파괴하고 억압하라고 보냈단 말이다. 정말 미친 일이다. 미친 일을 보고 누구도 미쳤다고 하지 않으면... 그건 정말 미친 일이다. <거시기>한 이야기나 키득키득댈 것이 아니다. 정말 미칠 세상이다.

이병주란 소설가가 독일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의 모든 기록을 모았단다. 이 나라 독재 세력의 모든 비리를 빗댄 소설을 써 보려고... 이병주는 결국 변절했다. 그래서 한국 문학에는 그런 큰 소설들이 나오기 힘들었다. 조정래의 소설에서 상당히 진실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쪽팔리게도 시혜자인 서구의 노벨상이 떨어지기를 목 메이게 기다린다.

한국이 노벨 평화상을 돈주고 사지 않고, 노벨 문학상을 받을 그 날은,

친일파들의 만행을 낱낱이 공개할 수 있고, 그 재산을 지금이라도 일정 정도 국가가 환수하며, 부정하게 정권을 남용한 전직 대통령들을 당당하게 처벌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그런 날이 올 때라야 어떤 상이든 돌아올 것이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은아이 2005-10-1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안도현이 드디어 미쳤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 "연탄재"는, 판화 삽화(이철수 선생이 그렸던가?)와 함께 오랫동안 책상 유리 밑에 깔아두었던 시이지요.

글샘 2005-10-1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게 보이나요? 그러고 보니깐... 그렇네요. ㅋㅋㅋ
연탄재는 정말 멋진 시지요. ^^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김용택이 발표했던 시집들 중에서 48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이별시를 수록한 책이다.

표지도 핑크빛으로 물들어 예쁜데, 딱딱한 커버가 왠지 마음 한 구석을 쿡쿡 찌르는 느낌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달떠오른 마음으로 종일을 살아가는 모습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사람에게나,

아니면 지금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이런 시는 내 마음을 확--- 휘젓는다.

살기가 팍팍하고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휘청거릴 때, 연애시절을 떠올려 보게 하고, 그 구름 위의 날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에서


   오늘은 아무 생각 없고

   당신만 그냥 많이 보고 싶습니다 <푸른 하늘>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도현 지음 / 푸른숲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탄재처럼 뜨거운 안도현 시인이 전교조 초창기 싸늘하던 시절에 적은 따스한 시들이다. 연탄재처럼 가치없게 여기는 존재보다도 나는 나은가?를 묻던 그의 언어들에서 묻어나는 결기는 다소간 관념적이지만 따뜻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가 눈발이라면>도 있었고, 슬픈 <마지막 편지>도 있었고, 내가 조국으로 열려 가는 <그대>도 있었고, 사랑의 의미를 곱씹은 <어둠이 되어>도 있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뿌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함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마지막 편지


... 내 마지막 편지가 쓸쓸하게

그대 손에 닿거든

사랑이여

부디 울지 말라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지 말고

그대가 길이 되어 가리라


그대


한 번은 만났고

그 언제 어느 길목에서 만날 듯한

내 사랑을

그대라고 부른다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홀연히 떠나는 강물을

들녘에도 앉지 못하고 떠다니는 눈송이를

고향 등진 잡놈을 용서하는 밤 불빛을

찬물 먹으며 바라보는 새벽 거리를

그대라고 부른다

지금은 반쪼가리 땅

나의 별 나의 조국을

그대라고 부른다

이 세상을 이루는

보잘것없어 소중한 모든 이름들을

입 맞추며 쓰러지고 싶은

나 자신까지를

그대라고 부른다


어둠이 되어


그대가 한밤내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花(화) -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 봄
김용택 지음, 주명덕 사진 / 늘푸른소나무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왜 쓰는가?
얼마 전, 알라딘에서 전화를 받았다. 스포츠 신문에서 독서의 계절을 맞아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데 응할 거냐고... 난 못 한다고 했다. 할 말이 없기 때문에...

내가 글을 읽는 이유는, 우리네 세상사 이 좁다란 마당을 조금이라도 넓게 보려는 나름의 노력인데, 글을 쓰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누구에게 보여 주려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책으로 펼 것도 아니고... 그저 떠오르는 것들을 쓸 따름이다. 뭘 인터뷰할 것인지... 기사는 원래 인터뷰 내용과 달라지는 것임도 부담스러웠다.

나는 내가 왜 쓰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김용택의 이 글을 읽다 보니, 그분도 마찬가지였다.

티끌같고 벌레같은 삶에서, 왜 문학을 하는지... 왜 시를 쓰는지... 그분의 주변에 아이들과 강과 산과 계절이 지나가고, 거기 있어서 그는 시를 썼던 것이란다.

시도 아닌 이 책은 아주 가볍다. 일기면서 사진첩이다. 나는 요즘 '좋은 생각'에서 자작나무를 하나 키우고 있다. 100일동안 글을 쓰면 10,000원에 책을 만들어 준단다. 아들에게 주는 편지를 오늘로 6일째 적고 있다. 12월 29일이면 그 100일째 글이 완성되는데, 게으르지 않고 완성할 수 있을는지... 하루 하루 글을 기록하다 보니까, 새삼 관계가 새롭다. 매일 보는 아들이지만, 하루 5-10분 정도 글을 쓰면서부터 잔소리가 줄어든 것 같다. 잔소리를 몽땅 책에 적었으니...

그 여자네 집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시인의 아내가 시인이 되어버린 그 시가 감동적이다.

당신께,
당신이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게
오늘은 더 행복합니다.
나도 어제, 내리는 봄비를 보며
당신 생각 많이 했습니다.
늘 당신의 눈길이 머무는 강이며, 운동장
몇 안 되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따뜻한 숙직실에 초이, 소희, 창우, 다희 순서로 나란히
이불 속에 눕혀 한숨 재웠다는 당신,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당신의 노래보다고,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걸 나는 압니다.
오월이 오면 우리 만난 지 십육 년이 됩니다.
십육 년을 하루처럼 내게 다정한 당신이지만
오늘 당신이 내게 불러 준 사랑 노래는
이봄,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당신이 나를 너무도 소중히 여겨
나는 이 세상에 귀한 사람이 되었답니다.
여보 고맙습니다. 
                         당신의 아내

아내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좋은 남편이 못 된 것과, 자랑스런 선생이 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그래서 나는 날마다 읽고, 또 써 보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하는 오해를 가득 품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각심 2005-09-2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편에게 잔소리 많이 하는데 요즘은 시간이 남아 1-2시간씩 메일로 글을 쓰곤 합니다.수줍^^그런데 그 사람은 읽지 못해요. 왜냐면 제가 발송취소를 하는 버튼을 누르거든요. 저녁에 일기도 쓰곤하는데 뒤에서 욕좀 그만 쓰라구 하네요. 그렇게 하니까 선생님 말처럼 좀 더 잔소리가 줄어들고 마음이 고와지던데요. 이 책은 잘 모르지만 선생님의 마이리뷰 공감하며 읽구 갑니다^^ 휘리릭~


글샘 2005-09-27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공감하신다니 더불어 고맙습니다. ^^
 
삼포 가는 길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 8
황석영 원작, 이원희 그림 / 이가서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삼포 가는 길은 예전 TV문학관 첫 작품으로 아주 유명했던 소설이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많이 실려 있는데, 전편을 읽기는 어렵다.

요즘 아이들은 소설을 참 안 읽는다. 일반계 아이들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읽지 않고, 실업계 아이들은 책 자체에 관심이 별로 없다. 일주일에 4시간이나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한 시간씩 책을 빌려와서 읽게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워낙 책을 읽지 않다 보니 어떤 책부터 읽어야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그래서 우선은 만화부터 보고, 청소년 소설 같은 책을 읽으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은 환타지 소설 류에 빠져버려 문학 작품 감상의 기회는 쉽게 손에서 놓아 버린다.

이 책은 드라마에 비해서 훨씬 더 문학의 맛을 잘 살려내고 있다. 특히 눈 내린 들판이라든가, 백화의 과거 회상 등을 시각적으로 잘 살리고 있어서 소설의 상상력과 회화적 감각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 국민들이 책을 적게 본다고 하는데... 쉽게 책을 읽힐 방법은 없다. 다만, 복지 차원에서 이런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널리 퍼뜨리는 작업도 유익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중학교나 실업계, 일반계도 가능한... 아이들에게 도서관에 비치해 두고 많이 빌려 볼 수 있도록 하기 좋은 작품이다. 학급문고를 만들게 된다면, 이런 만화들이 꽂혀있어서 아이들의 손길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5-09-22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포가는길은 드라마도, 노래도 참 좋았는데요...아쉽네요...

글샘 2005-09-2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플래시가 너무 귀여워요. ^^ 맞아요. 삼포... 참 아련한 이야기죠.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 근데, 갑자기 <삼포 만두>가 왜 생각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