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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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 가족... 제목만 보고는 유랑 극단을 떠올렸더랬다.
공선옥의 작품인 것을 보고 내용은 살펴보지도 않고 빌려왔다.

가족 해체의 시대.
21세기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
경제 파탄으로 엄마가 집을 나가고,
농촌 총각은 연변 아가씨(라고 착각한 아줌마)와 결혼도 하지만, 이 아줌마 출신 아가씨는 또 도망가고,
아이들은 할머니 손에서 눈물로 삐뚤어져 가고,
아이들 입에선 그저, 씨바, 욕밖에 안 나온다.

연작 소설의 형태여서, 여러 인물들이 바라본 시선이 다면적으로 조명되기도 하지만,
산만한 느낌은 감출 수 없다.

20세기 절대적인 폭력의 굴레에서 <민중 문학>, <노동자 문학>이 득세했던 반면,
동구권과 구소련의 붕괴로 지표를 잃은 소설은 주제 없는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격랑했는데,
공선옥은 아직도 <사람 냄새>를 맡아서 그 밑바닥을 끝없이 더듬거리는 촉수를 놓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휩쓸어 버리는 21세기.
그저 '돈' 하나만이 <신>이 되어버린 세기.
모든 가치관이 하나로 통일된 비극의 세기를 살아가는,
그것도 살맛나게 살지 못하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군상들의 더께앉은 눈물 속을,
이미 눈물도 말라버려 버짐핀 얼굴 아래 고통으로 얼룽이는 눈물 얼룩을
공선옥은 쓰다듬어 준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꼭 이런 건 말로 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끼린 가슴으로 안다.
공선옥은 이 아픔을 알기에, 형상화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많이 아프다.
갓난 아기부터, 꼬마, 어린이, 청소년(청-개구리라서 청-소년이란다.), 과부, 홀아비, 늙은이, 농부...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람은 득시글거리는데, 과연 꽃보다 아름다운지...

조선 시대엔 4궁이란 게 있었단다. 환, 과, 고, 독.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 노인... 이런 순으로 불쌍하단 것인데,
공동체가 붕괴된 21세기 한국엔 오로지 '경쟁, 경쟁, 경쟁', '돈, 돈, 돈' 같은 구호만 울릴 뿐,
사람은 상실되어 버린 지 오래다.
여기 사랑도 같이 상실되어 버리고 만 소설 하나 유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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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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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이란 제목은 어떤 시에서 온 거라는데, 솔직히 난 그 시와 이 소설의 상관관계에 대해 별로 삘이 와 꽂히지 않았다.

이 소설은 재미있다. 십 년 전에 일부분 읽었던 책인데,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전체를 읽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여느 아이들 화자가 <신빙성 없는 화자> 역할을 해서 역설적으로 어른들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는 반면, 열두 살 처녀 아이 진희는 어른 뺨치는 이성을 갖게 된다. 어떤 이들은 '에이, 열두 살에 이런 아이가 어딨어?'하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아니다.

나이는 햇수가 지나감에 따라 늙어가면서 먹는 것이 아니다.
나이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상처를 입다 보면 홀라당 먹어버리는 수도 있다.
특히나 주변의 어른들이 잠자리에서 나누는 많은 이야기들은, 아이들을 상당히 조숙하게 만든다.
나도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 오가던 그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알지도 못하던 친천과 시골 사람들의 관계를 도식화해서 머릿속에 넣고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순진한 이모의 연애 사건들과, 점포들의 군상들에게서 느끼는 삶의 비릿한 내음은 진희에게 역겹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다.

운명의 장난인가, 우연의 연속인가... 하는 삶의 명제는 사람과 소설이 있는 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소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성장 소설이다. 다만 진희는 다분히 전지적 시점의 화자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읽기엔 좀 버거운 대상일는지도 모른다. 글쎄, 진희처럼 세상의 꼭지에 올라앉은 듯한 아이라면 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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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2-2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겨울엔 소설 좀 읽어볼까 싶어요^^

글샘 2005-12-27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재밌습니다. 읽어 보세요. ^^
 
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유진과 유진.
요즘 정말 흔한 이름이다.
내가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던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영자, 영숙이... 이런 애들이 제법 있었는데,
요즘은 유진이 류의 이름이 많다.

오늘도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우리 아이들이 꾀죄죄하고 구질구질하고 패배감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살아도,
그 아이들이 이 나라의 미래라도.
그 아이들의 그 구질구질한 오늘이 그 아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라고...
좀 슬픈 이야기였다.

그래서 겨울 방학을 이용해 전문 상담 연수를 받아 보기로 했다.
이번엔 이론보다는 실제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귀찮지만 받으려고 신청을 했다.
전에도 원격 연수로 상담 연수를 두 번 받았고, 전교조에서 하는 상담원 교육도 3일 참가한 적이 있었다.
상담 공부는 하면 할수록 <내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상담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대하면 조금은 착해진 선생님이 된다.
전문 용어로 하면, 수용의 자세를 갖추고 상담하게 된다는 말이다.
취조하는 교사에서 벗어나서.

이 이야기는 이금이 선생님의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자기들 이야기를 적어 올리는데, 그런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이야기의 구성이 '헐리우드 키드'를 보는 듯 할 때가 많다. '도꾜짱'들이라고나 할까. 일본 만화에서 많은 장면들을 차입한다는 느낌을 털어낼 수 없다.

하늘말나리를 쓰신 이금이 선생님의 글이니,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에서 손을 번쩍 드는 녀석을 발견했다.

이 책의 주제는 표지 그림에 다 나와 있다.
왼편의 나무는 곧게 자란 키큰 나무다. 그 애가 큰유진이다.
오른편의 나무는 중간에 굴곡이 졌고, 나무도 작다. 작은유진이다.

한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나무가 한 그루씩 그려져 있다.
곧은 나무가 그려진 곳은 큰유진의 이야기고, 굽은 나무가 그려진 장은 작은유진의 이야기다.

삶이란 누구 때문에 사는 것. 그런 건 없다.
그래, 시작은 누구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을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다.
살면서 받는 상처나 고통 같은 것을
자기 삶의 훈장으로 만드는가 누덕누덕 기운 자국으로 만드는가는 자신의 선택인 것 같다.

청소년으로 접어드는 아이들을 기르는 어머니로서, 작가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유교적 가부장적 사회, 독재 정권 사회에서 형성된 여성 비하적 문화가 성폭력을 당하고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현실을 문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여느 청소년 성장 소설이, 가정의 불화 내지는 파괴에서 오는 청소년기의 갈등과 접합을 그리는 데 비해,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다른 색을 띠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 소설에서 부모는 문제의 핵심이자, 반성의 대상이기만 했던 여느 소설에 비한다면, 부모도 인간이고 부모도 나약한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진실을 드러낸 소설이다.

같은 반에 배정된 동명 이인, 그리고 기억의 공유... 지나치게 작위적인 측면도 있지만, 진실의 무게에 비한다면 이 소설은 과도한 해피엔딩인 것은 아닐까 싶다.

장애인들에 대한 지나친 차별이 오늘날의 황우석 신드롬을 일으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있는데, 한국 사회의 딱딱한 각질을 점차 벗겨내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은 소설이다.

공부만 잘 하면 다인줄 아는 아이들,
공부도 못하면서 공부밖에 없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 여중생 아이들의 섬세한 감정이
한 해 만큼 닳아서 반들거리는 교복 치마 엉덩이처럼, 조금은 해어질 듯한 동복 소맷단처럼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교실에서 맡을 수 있는 매캐한 먼지 냄새까지 그려낸 좋은 작품이다.

부모가 관심을 주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게 살거나, 이혼한 가정에서 살고,
그래서 성적이 못미치게 되어 실업계로 진학한 아이들.
새 교복을 입고 입학식을 하는데도 왠지 반짝이는 느낌이 없는 아이들과 한 해를 살고난 느낌은 그간 살아왔던 16년간의 교사 생활과는 판연하게 다르다.
그래서 상담 공부를 하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입에서 상스런 말들이 툭툭 튀어 나오고, 폭력 앞에서나 조금 비굴하고,
여선생님 앞에선 한없이 거만하고 불량스러워 보이는 열일곱 아이들.
그 아이들이 가진 열일곱의 나이가, 마흔의 나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것임을 깨우치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란 것을 이 소설로 말미암아 생각하게 한다.

매일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어떤 방식이든 나를 깨우치려는 일이니 말이다.
도서관에서 앞다투어 달려 나온 이 책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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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2-07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는 언제나 벅차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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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
이문구 지음 / 문이당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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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하면 떠오르는 것?
금오신화(누가 국어 선생 아니랄까봐...) - 이생규장전(수능에도 났던), 만복사저포기...
생육신의 한 사람.
김시습(金時習:1435~95)·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조려(趙旅:1420~89)·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1454~92)이 살았지만 '숙주나물 신숙주'처럼 관직에 나가지 않은 여섯 사람.
기인... 뭐, 그런 것.

그래서, 그의 기행(奇行)을 한번은 읽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이문구의 글로 쓰인 소설이 있었다니... 하고 낼름 주워오긴 했는데...

이 소설에서 이문구가 그리려 했던 것은, 김시습의 기행이 아니었다.
김시습의 마음 아픈 상황을 돌아보면서, 그가 남긴 숱한 시편들에 살아 남은 추회를 글로나마 엮어봄으로써, 김시습의 심회를 풀어 내려 했던 것 같다.

역사를 소재로 담은 많은 소설들이 적절한 허구와 함께 생생한 재미를 줄 수도 있음을 상상한 나로서는,
김시습의 시편들과 지루할 만큼 열거된 당시의 인물평은 글을 읽으면서도 이야기에 푹 빠져들기 어렵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무얼 읽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맛갈진 우리 말을 구성지게 엮어 내며, 관촌 수필과 우리 동네에서 그가 묘사해 낸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던 예측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소설.

그래도 나는 이문구가 좋다.
뭔가 쾨쾨한 흙집 내음새가 풍기는 고풍스런 취향이고,
다소 완고하고 꼬장꼬장한 옛날 사람 같은 맛이지만,
거기 담긴 한국적인 정취가 한국 문학을 가장 세계적이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능을 마친 아이들에게, 맥도날드와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를 제일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김치 버거를 물릴 것이 아니라, 이문구를 들이밀어 봄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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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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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밖에 살던 사람도
죽을 때가 되면
사람 속으로 돌아온다. 그 곳이 멀지 않다. 그 곳은 우리 사는 곳이고, 우리가 죽을 곳이다.

그곳이 멀지 않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어느 기자가 마더 테레사에게 “수녀님은 무어라고 기도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조용히 고개 숙이며 “저는 듣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면 수녀님이 들을 때, 하느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번에도 그녀는 “그분도 들으십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일을 중시하라고, 입은 하나고 귀는 둘인데,

입으로 쏟아내는 것은 홍수인데, 귀로 듣는 일엔 경솔하고 가볍지 않았던가.

돌이켜 볼 일이다. 입을 닫을 일이다.

나희덕의 시는 조용하다. 포도줏빛, 탱잣잎... 조용히 바라보고, 조용히 쓴다.

참 가만하다는 느낌이 드는 시집이다.

간혹 뜨거운 시대를 산 흔적도 남아 있지만, 대체로 투명하고 조용하다.

조용한 시 두 편, 조용히 적어 본다.


사랑


피 흘리지 않았는데

뒤돌아 보니

하얀 눈 위로

상처입은 짐승의

발자욱이

나를 따라온다.


저 발자국

내 속으로

절뚝거리며 들어와

한 마리 짐승을 키우리


눈 녹으면

그제야

몸 눕힐 양지를

찾아 떠나리



  부패의 힘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힌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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