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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이의 행복
방정환 지음, 민윤식 엮음 / 오늘의책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소파 방정환, 잔물결이란 뜻의 小波는 일본의 어린이운동 선구자였다는 이야길 들은 것 같다.
방정환을 모르는 이는 없다.
어린이날 제정, 색동회와 잡지 <어린이> 발간을 통한 어린이의 인권을 널리 알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어린이에 대한 수필이 실려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의 사상은 동학과 천도교에 잇닿아 있다.
세계 종교, 사상의 역사상 가장 혁신적으로 여성과 어린이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천도교와 동학,
여느 종교가 남성 중심의 구조였던 반면, 천도교는 조선에서 핍박받던 계급이었던 상민, 여성, 어린이에 대한 시각이 가히 혁명적이다.
어린이 인권 운동가로 알고 있던 잔물결 선생의 수필을 읽다 보니, 그같은 실학자도 드물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추장스런 옷고름대신 단추 달기,
자주 빨기 귀찮은 흰옷대신 염색옷 입기.
영양을 갖춘 음식 계도, 부엌 개량까지 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민족의 장래 위해 다가족제도의 폐해, 특히 인권을 침해하고 서로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고 역설한 글은, 현대에서도 <효>라는 이름아래 가려져 있는 가정의 억압적 구조, 며느리의 비인간적 갈등을 선각자적 시각으로 파헤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부모들처럼 아들딸 길러서 덕도 보고 재미도 보겠다고 욕심부리는 사람도 없으면서 그 덕을 보려는 그 당자를 조선 사람같이 함부로 길러먹는 사람도 없다." 는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를 꾸짖는 듯 하다.
어린이들이 건방져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쁘게 해 줘야 어린이들이 튼튼해지고, 현명하게 되고,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이야기를 이미 백년 전에 한 그는 조선의 암울한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 것일까?
신혼살림의 공동 식당을 상상한 그는 식사 준비 등의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 인간 해방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여성의 정성을 가정의 기본으로 가르쳤던 삐뚤어진 가사 교과서, 현모양처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했던 봉건적 사고의 틀을 깬 그는 얼마만한 선각자였던지...
인형의 집을 나서려는 노라에게,
"너는 무엇보다고 아내요, 어미가 아니냐?"고 하는 남편에게,
"아니오. 나는 이제 그런 말을 믿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사람입니다. 당신과 똑같은."
나도 인형의 집을 읽었지만, 조선의 억압된 여성 문제를 깊이있게 고민하지 못하고 읽었던 듯하다.
이런 구절이 가슴에 박혀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실용적 사고의 선각자였던 소파 선생이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남성을 적으로 여기고 강퍅하게만 구는 페미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잔물결 선생처럼 인내천을 가슴에 품은 이들의 지속적인 <유연한 사고의 확산>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
지나치게 촘촘한 관심이 재미를 덜하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왜 식민지 시대에 <어린이> 운동을 했을까?
그냥 좀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독립운동하기도 바쁜 터에 배부른 소리를 하는가... 하고 얕잡아보던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