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독일처
정태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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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이 시인인가?
글고, 노독일처 老獨一處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서 집어본 시집.

안 그래도 날씨마저 뜨뜻해서 같잖은 겨울에 쌀시장 개방으로 전국 농촌이 쑥대밭인데,
정태춘의 시들을 읽으며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나고, 그의 시가 뜨겁게 다가왔다.

70년대 후반이던가, 촛불이란 노래로 조용히 다가온 음유 시인, 정태춘.
박은옥과 같이 낸, 사랑하는 이에게, 봉숭아 같은 노래는 나의 청춘기에 사랑에 대한 갈망을 일깨워준 노래이기도 하다.
대학생이던 시절, 매일 맞닥드리는 딱정벌레같던 전경들과 등돌리고 소줏집에서 깡소주를 들이키며 불렀던 '떠나가는 배'도 잊을 수 없다.

그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집회 장소에 나타나서 노랠 부르곤 했다는 소문은 들었더랬는데,

이 시집을 보니, 정말 민중 시인이 되어 있었다.

세상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노래부르던 음유 시인이, 그 세상에 동화 되어 가장 슬픈 자리에서 가장 슬픈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는 시집을 낸 것이다.

80년대 유행했던 민중시, 저항시들을 보는 듯하다.

그렇지만, 정태춘의 시는 시라기보다는 그대로의 <말>이고, <생각>이다.

가진 자들은 저희들끼리 통하는 메시지로 놀고들 앉았는 이 척박한 나라에서,
지방도로 작은 휴게소에 쉬고 있는 트럭 찬장에서 뽀뽀하고 있는 아빠와 딸의 사진을 바라보고,
미국이 전투기지로 쓰고 있는 남한땅에서,
가난한 농투산이의 목소리를, 그러나 결코 나약하지 않은 목소리를 그는 내고 있다.

뜻밖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뜻밖에 뜻맞는 사람을 만났다. 뜻밖에 속시원한 책을 만났다.
그러나, 속은 하나도 시원하지 않다. 답답할 따름. 그렇지만 답답한 속에 한 잔 소주와도 같은 시집.

국가는 국민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해주지 않았는데(쌀 개방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은 국익을 위해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난리들인 이 나라.
그는 <노독일처>란 뜻도 모를 쭝국집에 앉아서, 쭝국 지도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나도 그의 시를 읽으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데로 가 버리고 싶었다.)

거기서 내가
어느 나라 국기에도 경례하지 않고
어느 나라 국가를 따라 부르지도 않고
그래도 누구 하나 손가락질하지 않고

우린 여기서 너무 잘못 살고 있어
세상은 잘못 가고 있어
인간을 지배하는 인간의 힘이
이렇게 강력했던 적은 없어
물샐틈없는 사회조직과
획일적인 이데올로기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아

거기 어디쯤
국가란 것도 없고, 정부란 것도 없고, 자본이나 그 하수인,
인간의 대표란 것들도 없는
그런
사람 세상이 있을 수 있지 않겠어?
권력이 사람들을 '국민'이라 부르며
택도 없는 애국심과
개인들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더 이상의 폭력도 없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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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2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만나는 책입니다. 보관함에 넣었어요

달팽이 2005-11-2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정태춘의 시집이라...저도 보관함으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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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보다 낫다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보통 개를 욕에 많이 넣는다. 개같은, 개만도 못한, 개새끼, 개차반...

개가 들으면 억울한 노릇이다.

갖가지 비리를 저지르는 인간, 파렴치한 인간, 제 동료를 해하는 인간을 "개"에 비유하다니... 억울할 일이다.

간혹, 들개나 야생개와 가축이 되어버린 개를 구별하기도 한다.

'썬오브비치'라고 하지 '썬오브도그'라곤 안 한다. 그런 걸로 보면, 가축을 야생보다 조금 낫게 치기도 한다.

그런 것이 몽땅, 인간의 주관적 시각이다.

나의 삶이 발달된 삶이고, 나의 생활 방식이 교양있는 문화 생활이고,
너의 삶은 미개한 삶이고, 너의 생활 방식은 못배워먹은 나날이라고.

권력에 빌붙어 먹으면 똥개라도 우리 편이지만,
권력에 맞서려고 하는 순간 그 야생의 번득임은 <야만>으로 전락시켜 적으로 만든다.

개는 개를 알아볼 따름이다. 힘이 센 개, 암캐, 어린 개... 좋은 개도 나쁜 개도 없다.

그런데, 김훈은 악돌이를 만들었다. 그의 실수다. 흰순이는 악돌이나 나나 같이 보는 눈을 가졌다는 것도 읽으면서, 그 이름이 악돌이란 것은 맘에 들지 않는다.

김훈의 장점은 이렇게 객관적인 눈이다.
정말 끈질김을 가지고 사소한 것도 치열하게 관찰한다.
그런데 이놈의 개가 좀 인간적이다.

이놈의 개가 정말 개같았다면 별을 다섯 개 붙여 줬을 것 같다.
우화 소설 말고, 정말 있는 그대로의 개를 그려 줬더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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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속에 피가 흐른다 - 김남주 시선집
김남주 지음, 염무웅 엮음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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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이란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의 머릿글자로 묶인 말이다.

우리가 자주 듣게 된 이런 용어들, 우루과이 라운드, 블루 라운드, 그린 라운드는
폭력적인 독재 정권을 적극 지원하여 민중을 압살하던 냉전시대의 <고 강도 정책>을 펼치던 강대국들이
냉전 체제의 붕괴와 독재 국가들의 개량적 민주화로 인한 <저 강도 정책>으로의 전환에 불과하다.

자유롭게 농산물을 거래한다는 미명하에 우리 농촌은 타들어가고 있다. 그게 우루과이 라운드의 본질이다.
환경의 문제, 특히 대기 오염의 심각성을 줄여 보자던 교토 의정서를 탈퇴한 것이 미국의 본질이다.

내게 이익이 되면 , 아니면 <결투>다. OK 목장의 결투는 늘 정의의 사도, 평화의 사도 <米國>의 승리로 끝나고 만다.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은 결코 OK 목장으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교원 평가와 APEC까지 묶어서 전교조를 매도하는 요즘 뉴스를 보면,
언론의 개혁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완전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교원 평가는 당연한 일이고, 국민들이 모두 찬성한다.(전교조는 현행 근무 평정과 학교의 비민주적 운영이 학교를 저질화하므로, 그 개선이 우선이라고, 그래서 교원 평가를 실시한다고 나아질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런데 전교조 교사들은 이를 반대한다.(여기서 앞의 괄호를 빼고 듣는 사람은 전교조의 주장이 얼마나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것인지 분개하게 된다. 행간을 읽기 어렵기 때문에 전교조 옹호론자들도 분노한다.)
게다가 요즘 전교조 교사들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APEC 회담을 비하하고 있다.(당신들의 천국에서 열리는 저런 회의의 정당성은 어디서도 입증된 바 없는데, 무조건 손님이 오니 치장하잔다. 88올림픽 몇 년 전부터 서울 시내에서 대대적으로 실시된 빈민촌 철거 사태의 파장이 기억나는지... 그때 일소시킨 거지들로 인한 90년대 복지원 사태의 부정 비리는 전두환 일가의 배를 불리던 개판이었던 것을 기억하는지... 한국은 과거에 너무 관대하다.)
이렇게 학교는 교육에 힘쓰지 않고 분열되고 있고 전교조는 그 분열의 핵심이어서 제거해야 한다.(그럼 우리 교사들보고 권력의 시녀가 되어 일치단결하여 군국주의적 파시즘을 전파하란 말씀이신가? 그럼 속이 시원하시겠는가?)

이런 뉴스들을 쳐다보면 가슴에 천불이 난다.

일반 국민들로 지칭된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학교에서 교사들에게서 억압된 교육을 받아온 민중들이다.
그들이 교원 평가를 찬성하는 이유는 억압된 교육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러나, 현행 교원의 근무 평정 제도와 승진 제도, 교장의 횡포 아래서 벌어지는 <교원 평가>의 시범 실시의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진급을 위한 점수를 따기 위해 썩은 고기라도 물어뜯기 위해 이전투구가 벌어질 것임은...

교원 평가는 그렇다손 치고, 저놈의 부시를 큰형님으로 모신 똘마니들의 모임인 APEC을 부산에서 열든 말든 난 그닥 상관치 않는 사람이다. 그저 내가 사는 동네에서 2부제를 하는 것이 짜증날 따름이다.

그런데, 그런 것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고 해서 <죽일놈>으로 만드는 사회는 입이 막힌 사회다.

언론은 지들 맘대로 지껄일 수 있고, 민중은 말할 수 없는 사회는 <언론의 자유>가 없는 사회다.

농민들은 90년대 도시와 대비하여 97.4%이던 경제 여건이, 96년엔 90.2%, 2000년엔 80.6% 수준으로 떨어진 이즈음, 지금은 얼마나 더 극심하게 떨어졌을 것인가...
추곡 수매까지 폐지해 버린 이 정부는 과연 누가 참여하는 정부인지 나는 이제 알겠다.

내가 찍어 대통령 자리로 보냈던 개혁적 인사들이 어쩔 줄 모르는 이 정부가 왜 그토록 무능한 것인지 이제 나는 알겠다.

바로 내가 멍청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민중의 몫인 밥그릇을 가로채 간 그 세력들이 이 땅에선 떵떵거리고 살기 때문이란 것을 이제 명확하게 깨달았다.

머리를 썼더니 억대 연봉을 벌게 되었다는 프로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최근 발표된 정부의 대안 없는 추곡 수매 폐지는 급속한 농촌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 뻔한 일이다.

그나마 정부에서 가장 표나게 농민을 지원하던 추곡 수매 폐지는 올해처럼 온갖 농사가 엉망인 때에 농민들에게 그야말로 '막가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농민들의 삶의 의욕을 쏘옥 빼놓고 만다.

뉴스에서 농민들이 직접 지은 쌀에 불지르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자국 농민들을 죽이고, 무슨 경제 협력을 한단 말인가.

한국 영화에 조폭이 그다지도 많이 등장하는 것은, 국가 전체가 조폭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인 것이 아니겠는가. 더이상 폭력적인 국가의 웃음띤 가면에 속고 싶지 않다.

하는 일은 시 쓰는 일이면서 혁명가로 알려진 김남주의 10주기를 기려 염무웅 교수가 엮은 시선집인 이 책은, 김남주의 태생인 해남의 농촌에서 천하게 살아온 농민들의 땀방울이 오롯이 살아있다.

늘 그의 시는 피와 고함으로 우렁차게 울려 퍼진줄만 기억한 내 생각는 달리,
그의 시에는 농촌의 흙내음과 소박한 어머니의 웃음과 팍팍하지만 땀방울을 먹고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는 곡식들이 있었다.

1-4부에선 초기작들이 중심이 되는데, 그 민중 의식이 새삼 명징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옥중에서 쓴 결의에 찬 독기보다는 그의 초기 시에 드러나는 민중의 아들로서의 글쓰기가 지금의 세상을 김남주가 얼마나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늘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늘 수동적으로 보이고, 늘 정적으로 보이는 꽃.
이 꽃에서도 지금 성장과 생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도 수액이 흐르고 세포가 활동한다.

김수영이 읽었던 풀뿌리의 민중 의식은 동풍의 억압에 울고, 눕게 되지만, 일어서고 웃는 날을 기약한다.

이번 일요일은 11월 13일이다.

35년 전,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이란 청년이 온 몸에 불을 붙이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던 그 날이다. 매년 이 날이면 전국 노동자 대회, 농민 대회가 열린다.

올해는 농민들의 분노가 그 어느 해에 비해 클 것이고, 좌절도 클 것이다.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가?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가?
눈감을 수 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거꾸로 가는 세상을 보며 나의 자리를 돌아 본다.

교육부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찍소리하지 말고 수업이나 하고, 월급이나 타 먹을 것.

그리고 난 국가적 행사인 APEC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우리 농민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탈할 수 있도록, 부시와 똘마니들이 시시덕거릴 수 있도록, 죽은듯이 있어야 할 것이다.

70년대 이후의 한국 농촌 정책을 절름발이(파행)라고 비유해 왔는데(장애우들에게 편견을 갖게하는 한자어지만), 21세기의 한국 농촌 정책은 살농(농가를 죽이는)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 흐름을 읽고, 늘 분노하지만, 또 인간만이 사과 하나 둘로 나눠먹을 줄 안다는 희망을 가르쳐 준 김남주 선생께 감사.

한국의 운동사에 큰 획을 그어 주신 전태일 열사께 감사.

그리고 힘겨운 농촌을 지키고 있는 우리 농민들께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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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1-10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히 뭐라고 덧붙일 수 있을까요...글샘님의 분노와 안타까움 앞에서.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다.

2005-11-10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05-11-10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_()_

이누아 2005-11-1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_()_

드팀전 2005-11-1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자보구먼요.

달팽이 2005-11-1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추천..

글샘 2005-11-1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대자보를 쓰는 심정이었습니다.
농민들에 대한 무관심, 전교조에 대한 매도와 언론 플레이를 보면서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간 생각이 들어서요... 서글픈 날인데, 비도 줄줄 내리네요.
모두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5-11-1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보니 한 분이 자살하셨더군요. 정말 한국 농촌 큰일에요.
 
사상의 거처 창비시선 100
김남주 지음 / 창비 / 19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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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그를 처음 듣고, 김남조와 헷갈렸던 적이 있다. 그 전까지 김남조의 시는 많이 들었어도, 김남주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시인일까, 혁명가일까... 그의 시를 읽어 보면, 그의 삶을 되돌아 보면, 혁명가의 삶에 가깝다.

남민전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나와 갈 길을 잃은 90년대 초반을 살고 있던 그의 마음이 '사상의 거처'에 잘 살아 있다.

사상의 거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 갈 길 몰라 네 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80년대 넥타이 부대로, 386세대로 살아온 변혁의 주체라던 이들이 '자본가의 접시에 군침을 흘리면서 예술지상주의'를 하겠다고 하는 90년대에도, 그는 '승리 아니면 죽음을' 하고 어깨겯던 동지의 무덤 가에 잣나무 한 그루 심을 줄 알지만, 갈 길은 환하지 않다.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산에 들에 봄이 오고'에서 처럼, 감옥 생활 끝에 무덤으로 가버린 자신의 미래를 예언이라도 하듯 쓸쓸하기도 하다.

그의 풍자와 역설은 '조국은 하나'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퇴폐적인 자본의 삶의 현실을... 좌충우돌 부딪치며 휘달리지만, 그의 사상이 지향했던 '남조선 민족 해방 전선'의 고운 꿈을 휩싸고 돈다.

이 민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싸웠던 그는 영원한 아나키스트일 수밖에 없었다.
건전한 노동자들의 피땀흘린 세금으로, 밤이면 밤마다 네온사인 흥청거리는 이 나라에 하나쯤 있어도 좋았을 사금파리같은, 꼬챙이같은 시인이었건만...

체포, 감금, 투옥, 고문, 재판... 그 끝의 전향, 배신... 삶을 찾아 떠나버린 이들의 글에서는 힘이 없다.
미래를 볼 눈이 없다. 이미 자본가의 접시에 군침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는 바늘방석이다. 어느 한 편, 우리를 가만히 놓아두는 시 없다.
생각할수록 불편하게 한다. 그것이 깨어있는 혁명 시인의 역할인 것이다.
그가 우리 곁에 없음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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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홍희담 지음 / 창비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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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남자인 아들과 착한 며느리,
손녀들이 오면 마냥 웃는다. 딸내미는 또 얼마나 고운가.
적적해지면 편하게 앉아 눈을 감는다.
온갖 상념들이 들끓지만 문득 정적이 찾아올 때도 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는 가을날의 잠자리처럼 투명해지지 않을까.
늙어가는 것도 괜찮은 일인 것 같다.

내가 읽었던 작가 후기 중, 가장 깔끔하고 담백한 글인 듯 하다.

이렇게 담담한 심경을 가진 듯 하지만, 이 소설집은 지난 20년 한반도를 달구었던 그 5월을 이야기한다.

88년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상당히 도식적인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광주에서 지식인들의 모습은 용기없었고, 기층민중들의 살아 번득이는 눈동자는 아름다웠다고 그린 이 책에서, 그래도 잠수함타고 찾아온 강학에게 삼천 원의 돈을 나눠줄 줄 아는 사랑은 왠지 작가의 구도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십 년이 거의 지난 지금, 다시 읽은 이 글은 도식적이긴 하지만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글을 아는 자들'을 배에 태우면서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라고 한 말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결국 문제는 계급의 문제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개혁이 계급의 문제를 혁파하지 않고는, 계급을 불문한 인재 등용, 명분을 생각하지 않는 실리주의... 이런 것만이 올바른 미래의 방향이란 것이다.

아아... 아니다. 결국 사람은 계급 없이 생겨난 것이었고, 모든 사람이 인재이며, 서로 이익을 따지지 않는 존재여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계급에 따라 차별과 차이가 생겼고, 다시 나라를 갈라서 이익을 따지고 있다.

올바른 미래는 잘못이 잉태된 순간,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지는 싸움일텐데... 사태를 관망하며 각자 소신껏 행동한다."는 지도부의 결정은 얼마나 비겁하냐.

다시 광주를 생각하면 마음이 싸아--해 진다. 광주를 형상화 한 <박하 사탕>으로 장관이 된 사람도 있고, 무명에서 최고 스타가 된 두 배우도 있다. 그러나, 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최루탄 냄새 가득한 대학 시절로도 아니고, 가난해서 버스비 20원을 아껴 걸어오면서 과자를 사 먹던 어린 시절로도 아니다. 오천 년 전 인간이 문명이란 걸 만들기 그 이전,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 먹기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문민 정부 들어서도 부조리는 끊이지 않았다. 참여 정부에 들어서도 국민의 참여보다는 정부의 참여가 강하다. 찢어죽이자던 전모씨는 아직도 건재하며, 총맞아 죽은 박통의 딸은 아비의 기일을 맞아 전국 보선에서 4군데 모두 승리했다. 민주주의는 중우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실감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데, 그 나무는 너무 늦게 자란다.

우리가 잊고 사는 동안에, 날마다 옥바라지 해야하는 가족들이 있고, 광주민주화 항쟁의 <국가 유공자>라는 미명의 뒤안길에는 날마다 우울하고, 날마다 아직도 80년 5월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퀭한 눈으로 살아 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학살 치고는 너무도 잔인했다.

광주의 십자가는 아직도 망월동의 골고다에서 부활을 기다린다. 그 깃발은 이제 내릴 수 없는 깃발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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