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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속에 피가 흐른다 - 김남주 시선집
김남주 지음, 염무웅 엮음 / 창비 / 2004년 5월
평점 :
APEC이란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의 머릿글자로 묶인 말이다.
우리가 자주 듣게 된 이런 용어들, 우루과이 라운드, 블루 라운드, 그린 라운드는
폭력적인 독재 정권을 적극 지원하여 민중을 압살하던 냉전시대의 <고 강도 정책>을 펼치던 강대국들이
냉전 체제의 붕괴와 독재 국가들의 개량적 민주화로 인한 <저 강도 정책>으로의 전환에 불과하다.
자유롭게 농산물을 거래한다는 미명하에 우리 농촌은 타들어가고 있다. 그게 우루과이 라운드의 본질이다.
환경의 문제, 특히 대기 오염의 심각성을 줄여 보자던 교토 의정서를 탈퇴한 것이 미국의 본질이다.
내게 이익이 되면 , 아니면 <결투>다. OK 목장의 결투는 늘 정의의 사도, 평화의 사도 <米國>의 승리로 끝나고 만다.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은 결코 OK 목장으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교원 평가와 APEC까지 묶어서 전교조를 매도하는 요즘 뉴스를 보면,
언론의 개혁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완전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교원 평가는 당연한 일이고, 국민들이 모두 찬성한다.(전교조는 현행 근무 평정과 학교의 비민주적 운영이 학교를 저질화하므로, 그 개선이 우선이라고, 그래서 교원 평가를 실시한다고 나아질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런데 전교조 교사들은 이를 반대한다.(여기서 앞의 괄호를 빼고 듣는 사람은 전교조의 주장이 얼마나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것인지 분개하게 된다. 행간을 읽기 어렵기 때문에 전교조 옹호론자들도 분노한다.)
게다가 요즘 전교조 교사들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APEC 회담을 비하하고 있다.(당신들의 천국에서 열리는 저런 회의의 정당성은 어디서도 입증된 바 없는데, 무조건 손님이 오니 치장하잔다. 88올림픽 몇 년 전부터 서울 시내에서 대대적으로 실시된 빈민촌 철거 사태의 파장이 기억나는지... 그때 일소시킨 거지들로 인한 90년대 복지원 사태의 부정 비리는 전두환 일가의 배를 불리던 개판이었던 것을 기억하는지... 한국은 과거에 너무 관대하다.)
이렇게 학교는 교육에 힘쓰지 않고 분열되고 있고 전교조는 그 분열의 핵심이어서 제거해야 한다.(그럼 우리 교사들보고 권력의 시녀가 되어 일치단결하여 군국주의적 파시즘을 전파하란 말씀이신가? 그럼 속이 시원하시겠는가?)
이런 뉴스들을 쳐다보면 가슴에 천불이 난다.
일반 국민들로 지칭된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학교에서 교사들에게서 억압된 교육을 받아온 민중들이다.
그들이 교원 평가를 찬성하는 이유는 억압된 교육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러나, 현행 교원의 근무 평정 제도와 승진 제도, 교장의 횡포 아래서 벌어지는 <교원 평가>의 시범 실시의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진급을 위한 점수를 따기 위해 썩은 고기라도 물어뜯기 위해 이전투구가 벌어질 것임은...
교원 평가는 그렇다손 치고, 저놈의 부시를 큰형님으로 모신 똘마니들의 모임인 APEC을 부산에서 열든 말든 난 그닥 상관치 않는 사람이다. 그저 내가 사는 동네에서 2부제를 하는 것이 짜증날 따름이다.
그런데, 그런 것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고 해서 <죽일놈>으로 만드는 사회는 입이 막힌 사회다.
언론은 지들 맘대로 지껄일 수 있고, 민중은 말할 수 없는 사회는 <언론의 자유>가 없는 사회다.
농민들은 90년대 도시와 대비하여 97.4%이던 경제 여건이, 96년엔 90.2%, 2000년엔 80.6% 수준으로 떨어진 이즈음, 지금은 얼마나 더 극심하게 떨어졌을 것인가...
추곡 수매까지 폐지해 버린 이 정부는 과연 누가 참여하는 정부인지 나는 이제 알겠다.
내가 찍어 대통령 자리로 보냈던 개혁적 인사들이 어쩔 줄 모르는 이 정부가 왜 그토록 무능한 것인지 이제 나는 알겠다.
바로 내가 멍청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민중의 몫인 밥그릇을 가로채 간 그 세력들이 이 땅에선 떵떵거리고 살기 때문이란 것을 이제 명확하게 깨달았다.
머리를 썼더니 억대 연봉을 벌게 되었다는 프로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최근 발표된 정부의 대안 없는 추곡 수매 폐지는 급속한 농촌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 뻔한 일이다.
그나마 정부에서 가장 표나게 농민을 지원하던 추곡 수매 폐지는 올해처럼 온갖 농사가 엉망인 때에 농민들에게 그야말로 '막가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농민들의 삶의 의욕을 쏘옥 빼놓고 만다.
뉴스에서 농민들이 직접 지은 쌀에 불지르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자국 농민들을 죽이고, 무슨 경제 협력을 한단 말인가.
한국 영화에 조폭이 그다지도 많이 등장하는 것은, 국가 전체가 조폭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인 것이 아니겠는가. 더이상 폭력적인 국가의 웃음띤 가면에 속고 싶지 않다.
하는 일은 시 쓰는 일이면서 혁명가로 알려진 김남주의 10주기를 기려 염무웅 교수가 엮은 시선집인 이 책은, 김남주의 태생인 해남의 농촌에서 천하게 살아온 농민들의 땀방울이 오롯이 살아있다.
늘 그의 시는 피와 고함으로 우렁차게 울려 퍼진줄만 기억한 내 생각는 달리,
그의 시에는 농촌의 흙내음과 소박한 어머니의 웃음과 팍팍하지만 땀방울을 먹고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는 곡식들이 있었다.
1-4부에선 초기작들이 중심이 되는데, 그 민중 의식이 새삼 명징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옥중에서 쓴 결의에 찬 독기보다는 그의 초기 시에 드러나는 민중의 아들로서의 글쓰기가 지금의 세상을 김남주가 얼마나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늘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늘 수동적으로 보이고, 늘 정적으로 보이는 꽃.
이 꽃에서도 지금 성장과 생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도 수액이 흐르고 세포가 활동한다.
김수영이 읽었던 풀뿌리의 민중 의식은 동풍의 억압에 울고, 눕게 되지만, 일어서고 웃는 날을 기약한다.
이번 일요일은 11월 13일이다.
35년 전,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이란 청년이 온 몸에 불을 붙이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던 그 날이다. 매년 이 날이면 전국 노동자 대회, 농민 대회가 열린다.
올해는 농민들의 분노가 그 어느 해에 비해 클 것이고, 좌절도 클 것이다.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가?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가?
눈감을 수 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거꾸로 가는 세상을 보며 나의 자리를 돌아 본다.
교육부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찍소리하지 말고 수업이나 하고, 월급이나 타 먹을 것.
그리고 난 국가적 행사인 APEC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우리 농민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탈할 수 있도록, 부시와 똘마니들이 시시덕거릴 수 있도록, 죽은듯이 있어야 할 것이다.
70년대 이후의 한국 농촌 정책을 절름발이(파행)라고 비유해 왔는데(장애우들에게 편견을 갖게하는 한자어지만), 21세기의 한국 농촌 정책은 살농(농가를 죽이는)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 흐름을 읽고, 늘 분노하지만, 또 인간만이 사과 하나 둘로 나눠먹을 줄 안다는 희망을 가르쳐 준 김남주 선생께 감사.
한국의 운동사에 큰 획을 그어 주신 전태일 열사께 감사.
그리고 힘겨운 농촌을 지키고 있는 우리 농민들께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