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1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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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소설이 나오길 엄청 기다렸다. 15년 전의 태백산맥의 숨막히는 시절(그 시절엔 전국이 최루탄 구덩이였다)부터, 7,8년 전 아리랑의 무대까지...그리고 수 년 전부터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한강'이 단행본으로 나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좀 아쉬움이 남는다. 태백산맥의 하대치와 염상구, 아리랑의 수국이처럼 전형적인 인물,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 절절한 마음이 드는 구석이 적었다.

형상화는 사라지고, 다큐멘터리가 거기에 있었다. 조정래씨가 가졌던, 열정은 높이 사야겠지만, 문학적 완성도를 조금 더 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늘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극찬하고 다녔는데, 한강은 계속 아쉽다.그의 소설이 다시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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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지음 / 해냄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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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하고 생명을 얻을 것인가, 생명을 버리고 대의를 좇을 것인가. 사람들은 노동의 새벽에 새벽시린 가슴위로 찬 소주를 붓던 노동 해방의 시인, 노해를 변절했다고 한다.

그는 애써 스스로 빙산이고자 한다.

빙산은 거친 바람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곳을 향하여 묵묵히 진행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람의 방향을 따르지만 빙산만은 엄청난 힘을 지닌 태풍의 진로마저 거스르며 제 갈 길을 꿋꿋이 간다. 빙산은 자기 몸체의 대부분을 바다 속에 두고 있기에 바다 표면의 바람이 아니라 바다 깊은 곳을 르르는 해류의 흐름만을 따른다...고.

그러면서 실크로드에 가고싶다고 했다.

보이는 것의 전부는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 지평, 시선의 끝까지 이어진 저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에 종말의 저녁처럼 붉은 노을로 해가 지고, 태초의 아침인 양 시뻘건 태양이 떠오르고, 아, 산다는 건 이토록 단순하고 강렬한 것인가. 이토록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허무인가....

그의 열망의 생명 의식은 유치환의 '생명의 서'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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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을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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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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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을 들은 건,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쇼킹한 제목을 보고서이다. 그러나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사저널 편집국장이란 명함을 보고서 그를 속단했던 것일까. 그가 별로 읽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니, 신성한 척 하고 있으면서도 누구나 갖고 있는 속내를 드러내 버리는 걸 우리 문화는 싫어하지 않는가. 너무 도발적으로 들렸던 것이다.

책의 서두에,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하니,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하고 쓴 작가를 들어 본 적도 없다. 이거 시간 낭비 아닐까?라며 읽기 시작하고, 기인(奇人)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유홍준 다음으로 글을 맛지게 적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벼이 하룻거리로 들고 갔다가는 화장실에서 두고두고 야금야금 열흘 정도를 읽었다. 내가 그에 대해서 편견을, 선입견을 가진 이유를 지금 곰곰히 씹어보면, 그가 쓴 책들의 제목이 너무 도발적이어서가 아니었을까. 한다. 칼의 노래는 소설이니 그렇다 치고.

유홍준의 남도답사일번지를 읽을 때, 돌담사이로 얼굴을 내민 능소화를 들으면서 능소화가 어떤 꽃인지도 모르면서 너무도 반했던 기억이 새롭다.

유홍준이 역사의 틈바구니를 관광전세버스를 타고 옮겨 다니면서 낯선 것들을 재미난 입담으로 읽어준다면, 김훈은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달리면서 익숙한 것들을 낯설지 않게 풀어내는데, 그 눈이 신선하다. 특히 꽃피는 해안선...

향일암에서 본 동백꽃 -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매화 -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 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품어져 나오듯이 피어난다... 꽃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이 꽃구름은 그 경계선이 흔들리는 봄의 대기 속에서 풀어져있다. ...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산수유 -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목련 -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참혹하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이건 시다. 이런 시를 써 내려면, 적어도 꽃 하나를 품에 안고 몇 년간을 곱씹어 올린 고갱이가 아니면 안된다. 하기야 그가 자전거를 타면서 뭘 했겠는가. 언어와 함께 달리지 않았겠는가. 달리면서 그의 뇌리에선 매화가 동백이 산수유가 목련이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길 수천 수만번 거듭했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목련이 진 무거운 자리처럼 각인된 말들이리라. 마치 우리가 살아낸 무거운 삶의 단편처럼.

이젠 그의 글을 다 읽고픈 맘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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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2004-03-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자전거 여행, 제 책꽂이에 꽂혀 있습니다. 하지만, 다 읽지 못했습니다. 이 책이 다른 어떤책을 사면 끼워서 준다고 광고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만큼 팔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일까요?
글은 참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깊은 사색, 그 사색을 풀어내는 글솜씨
하지만, 사색이 깊은 만큼 글을 읽는 사람 또한 그러한 깊은 사색이 없고서야
결고 책장을 가벼이 넘길 수 없더군요.
그래서 여지껏 다 읽지 못했습니다.

2004-03-27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벽 속의 편지 창비시선 105
강은교 지음 / 창비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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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시절 강은교 시인을 좋아했던 이유는, 건조함과 사랑 사이의 절묘한 긴장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민중문학이 주도권을 잡던 그 시절, 리얼리즘의 승리를 부르짖던 그 때, 강은교의 시는 민중의 아픔을 에둘러 드러내어 주었고, 난 그런 수사를 통해 세상에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감는다고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90년대 넘어서면서 시인의 관심도 역시 세계로 돌아온다. 시가 더 좁아지고, 더 작아지고, 결국 한 사람만큼의 시가 된다. 그러면서 시는 더 넓어지고, 더 커지고, 결국 한 세계의 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가 양파들이 구멍 숭숭 포대 속에서 건강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은, 그의 시가 넓어진 증좌이자 그의 시가 깊어진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데, 자꾸 아쉬운 건 왤까. 그의 사랑법이, 그의 헤매는 발길들을 위한 노래가 맴도는 건,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자기 방어 기제가 살아나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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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4
고은 지음 / 민음사 / 197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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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년이 넘은 누렇게 찌든 책을 책장에서 뽑았다. 속표지에는 내 친구가 사준 책이라고 적혀 있다. 수정이는 참 시를 좋아하던 친구였다. 늘 시를 쓰고 읽고, 나중엔 자기 시를 내게 보여주기도 했지만, 한번도 시원스레 좋은 시라고 평해준 일이 없이 십년 너머 못만나고 있는 사실이 좀 아쉽다. 그 친구는 아직도 시를 쓰고 있을까? 가끔 아련하게 생각난다. 특히 고은을 보면. 그 친구가 고은을 짝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고은의 '부활'이란 시집을 보고 누구는 일기장이라고 했다. 그렇다. 부활에는 '동해창망하라'로 시작하는 서사시의 부활이 있고, 우리는 보지 못하는 대자연의 섭리를 그의 눈은 읽어내는 신기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고은을 읽는다는 건 내게는 치열했던 청년 시절을 반추한다는 것이고, 관념적 세계의 지적 유희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의 후대 시가 훨씬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의 초기 시가 갖는 상징성은 나를 그의 시에 몰입시킨다.

고은을 읽으면 그를 이해할 수 없어서 좋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정확히 형상화되어 있지 않아서, 내 마음껏 내 상상을 하며 '동상이몽'의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만인보'를 싫어한다. 단순한 이유는 '만인보'는 돌아보기 싫은 내 젊은 스무살의 비극적 현실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만인보를 읽노라면, '동상이몽'의 몽환적 즐거움을 놓치게 되는 까닭에...

만인보에서 박혜정을 읽고 나는 울었다. 내 갈갈이 찢어진 속내를 어쩜 고은은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며 흘겨보고 있었을까. 아아, 그이는 이미 이생에서 흘릴 눈물 전생에 다 흘리고 난 이일까.

오랜만에 고은을 읽으며 세상 만물의 자리매김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 강아지도 매일 킁킁거리며 확인하는 세상의 존재를, 무시하며 살고있는 내 어리석음을 통찰하는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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