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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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정과 서사는 다르다. 서정은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독백으로 이루어지면, 서사는 이야기를 서술자가 전달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소설이면서도 진한 서정적 감동을 몰고 다닌다. 이문구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만한 관촌수필을 도막글로만 읽다가 이번에 유용주의 대담을 읽은 김에 여덟 편의 글들을 다 읽게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연말이 되어 숱한 망년회와 음주가무로 인하여 연속적 독서가 불가능하게 되기도 하고, 몽중취중에 읽은 부분도 없지 않으나, 그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땀내나는 이야기는 가히 현대문학의 절창 중 하나라 일컬을 만 하다.

이문구의 가계에서 양반의 후예인 할아버지와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 그리고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의 화자에 이르기까지, 양반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느 역사학자가 말했다. "우리 역사는 세계사에서 참으로 특이하게도 최근까지 노예제가 인정되던 독특한 노예제 계급사회였다."고. 양반과 쌍놈의 지위는 가히 인간과 노예의 거리를 느끼게 할 정도의 그것이다. 이 소설의 여덟 제목들은 모두 한학자의 글을 연상케 하는 섬찟함을 가지고 있고, 어찌 보면 그런 데 대한 향수를 아주 버리진 못한 느낌이 짙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들풀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지만,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지주와 소작인들의 관계처럼 계급투쟁의 관점에 입각해서 상극의 위치에 서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리숙하면 어리숙한 대로, 잘난 척하면 잘난 척하는 대로 그들 나름의 인간미를 풍기는 데서 이문구의 입담이 가치롭다 하겠다.

그의 문체는 정확하고도 풍부한 민속적 관찰력에서 오는 것이면서,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애정과 보답으로 적어가는 헌정 소설이라 할 만하다.

<공산토월>의 아버지가 석공네 마당에서 노래부르는 대목은 역시 이 소설의 백미인데, 수능에도 등장한 이 부분을 비롯하여 <여요주서>의 꿩팔이 소년, <월곡후야>의 범인을 잡는 청년들에서 세상의 정치적 구호가 헛된 것임을 보여준다.

다른 장편소설들을 숱하게 읽었으면서도, 이 책을 이제서야 접한 것은 무식한 소치라 할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러고서도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모든 문학을 다 읽어야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훌륭한 작품을 이제서야 읽어 낸 나도 참 무지한 교사라고 반성하게 된다. 이제 곧 오랜만의 겨울 방학이다. 올 겨울 방학엔 그 지긋지긋한 보충수업에서 해방되어 명작들을 섭렵하는 건강하고 보람찬 방학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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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01-0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뭐랄까 가슴이 잔잔해지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TV문학관 같은걸로 만들면 좋을듯한 소설 자체가 영상으로 떠오르는...

글샘 2005-01-04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TV문학관. 관촌수필은 그런 분위기였지요. 우리 동네는 <대추나무...>류의 이야기로 흘러갔지만요...

칸츄리 2005-03-07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대로 정말 수필같은 소설이었던것 같습니다. 이 책 읽고 이문구 선생님 왕팬(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은 아니고)이 됐지요!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인공이 석공(맞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때 그 마지막 구절이 가장 생각이 납니다.
"나는 울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유용주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나로서는, 간혹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초임 시절, 질문만 하면 "잘 모르겠는데요(영구 버전)"하고 앉아버리는 아이들을 만났고, 요즘엔 '하자하자', '느낌표' 같은 프로들을 안 보다가는 당황스런 때가 간혹 있다.

그러다 보니 느낌표 도서라고 광고가 된 책들은 어찌어찌 하다가 거개 읽게 되었다. 이 책도 그래서 읽어 보아야지 하고 있다가 우연히 내 손을 거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왜 이 책이 느낌표 선정도서인가?하는 화증이 우러나는 거였다.

느낌표는 청소년층부터 일반층까지 누구나 읽어볼 만한 작품들을 추천하려는 목적을 가진 프로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책들은 대부분 그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아직 유용주라는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의 표지에 보면, <가장 가벼운 집>, <크나큰 침묵>의 시집을 낸 사람이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요즘 비판해버린 책들 중, 안도현의 <사람>, 곽재구의 <낙타풀의 사랑>,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처럼 시인이 잡문을 적은 것을 깐 것이 많은데,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 김훈은 시인은 아니구나.)

이 책도 시작은 꽤 괜찮았다. 제법 묵직한 상념들로 페이지를 채웠다.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 부분은 유용주가 단편적으로 습작처럼 휘갈긴 글들인가 본데, 시골 사는 이의 걸음걸이가 잘 묻어난다. 두번째 장의 글들도 제법 괜찮았다. 작가가 살아온 가시밭길같은 삶을 한 번 울부짖어 보고 싶기도 했을 거고, 베니어(우리 동네에선 베니다라고 하는데)판에 얽힌 추억들과 아내와 딸 사랑 이야기는 진솔한 이야기를 채워두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문체는 쉽게 읽히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민의 독서인화'를 주장하는 느낌표 도서로는 너무 무거운 문체다. 그는 스스로 무식하다고 어려운 말 모른다고 하지만, 그의 말투는 결코 쉽지 않다. 그가 나중에 장산리 왕소나무에서 인터뷰한 명천 이문구 선생의 소설을 읽어 보면 쉽게 읽히는 말투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삼 년 전에 이문구의 소설이 수능에 난 적도 있지만, 이문구의 문체는 결코 어렵지 않고, 시골 영감님의 조곤조곤한 말투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유용주의 말투는 아직도 잰체하는 문학자연하는 시인들의 그것이지, 잘 알아듣기 어려운 새나오는 발음이지만 정감 넘치는 진득한 영감님의 그것에 미치자면 한참 멀었다. 그의 시를 읽지 않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조금 실례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책이 맘에 안 들어서 떠벌여 보는 소리다.

장산리 왕소나무를 읽으면서는 <이문구>를 파고싶단 생각이 울컥 들었다. 난 이문구를 참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명천선생의 글을 많이 읽지는 못한 것 같다. 며칠 유용주가 퍼마시는 막걸리처럼, 희석식 소주처럼, 캡틴큐와 맥주와 노가리처럼... 이문구 선생의 글들을 청탁불문하고 두주불사로 퍼마셔서 취해, 명정의 생활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나도 건강검진을 받기만 하면 가장 곤란한 항목이 감마지피티다. 늘 최대 허용치의 두 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해서 재검 요망~! 통보를 받지만, 철없던 십 년 전에 한 번 재검 받아보고, 그 후로는 간 적이 없다. 아마 내 간 세포는 좀 많이 죽어 나올 것이다. 자주 마시진 않지만 마시기 시작하면 몸이 이기지 못할 만큼 마셔버리고 마는 멍청한 내 머리를 몸이 용서해 주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몸을 만들어서 기회주의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더라도 내 간뎅이는 내 두뇌회전을 봐주지 않고, 재검 통보를 찍어댔을 거다. 그렇지만, 나도 고주망태처럼 술 마시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린다. 정말 활명수라도 하나 마시지 않고서는 안정이 안 되는 글이었다. 글쓰는 이들의 괴기한 이야기들은 숱하게 듣고 읽었지만, 난 그런 괴벽을 사랑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늘 술자리에서 2차를 빠지는 두뇌 회전이 작동하지 못하고, 마지막 차까지 대뇌가 작동되지 못하면서 소뇌만 움직이는 상황에 빠져버리는 나를 다음 날 혐오하게 되는 내 주벽도 용서하기 싫을 때가 많다.

그의 글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은, 거미가 짓는 집이란 글이다. 이면우라는 시인의 시집에 적어 준 발문인 모양인데, 난 이면우 풍의 시를 좋아한다. 유용주의 글을 한참 읽고, 욕하고, 이문구와 이면우를 칭찬하는 나도 참 모자란 인간이다. 글을 이 따위로밖에 읽지 못하는 삐뚤어진 눈을 가진 걸 보면... 이 책의 작가가 이 글을 읽을 확률은 극히 적지만, 작가에게 쪼꼼 미안하기도 하고...(전에 이런 확률을 무시한 작가가 있었으니... 조금 무섭기도 한 세상이다.)

잘 읽은 시 한 편 옮기며, 책을 읽은 경의를 표하자..............................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집어오니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 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면우,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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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0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입니다.한 번도 만난적은 없지만 제가 이 책을 읽은 느낌과 거의 유사하군요...첨엔 좋았다가 나중에 싫어진 이상한 책...아니 글을 읽는 제가 이상한 거였겠지요 뭐...^^

글샘 2004-12-06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서산 어디 산다고 하더군요. 십년 전에 해미읍성 간 적 있었는데, 참 좋았어요. 남 욕할 때, '너도 그렇지, 응?'하고 맞장구쳐 주면 욕할 맛이 납니다. 욕듣는 사람은 두 배로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요. ^^ 즐거운 한 주 되시길...
 
사람
안도현 지음 / 이레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안도현은 시인이다. 내 생각엔 시인이어야 한다. 동화나 잡문으로 성공할 작가는 아니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면, 시를 쓰면 좋겠다. 난 그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시가 품고 있는 넉넉한 품이 포근해 보이고, 때론 화끈하고 날카롭게 뜨겁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다른 글들은 그의 명성에 상처를 줄까 걱정이다. 이 책이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유사한 잡문이라 생각되는 건, 밥벌이를 위해 명성을 팔아먹는 현장을 들켰기 때문이리라.


이 책도 첫 장은 좋다. '하늘에 다리를 놓는 연날리기' 같은 글은 꽤 수필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이다. '내 시의 사부, 백석'이나 '일 포스티노'같은 글들도 꽤나 감상이 잘 묻어난 글이라 칠 수 있다. 그런데, 3,4장에 가서는 아무래도 밥벌이의 지겨움이 묻어나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글에서 하늘에 다리를 놓는 연날리기는 내 마음 속에 한없는 향수와 상념의 실타래를 풀어놓아 주었다. 어린 시절 실이 다할 때까지 저하늘 높이 오르던 연을 바라보던 아무생각 없던 동심의 나를 돌아보게도 하고, 곧 졸업식에서 이별의 말을 전해야 할 날이 올 때, 이런 글 한 편 적어주어야지 하는 생각도 한다.


한 점 연이 되어, 세상을 다 가져라. 연이 처음 바람을 맞아 둥싯 떠 오를 땐, 공중이 낯설고 때론 흔들리고, 까불까불하다 처박히기도 하지만, 그 연이 곧 바람을 안고 바람과 어울릴 줄 알게 되면 저 하늘 높이 한 점 연이 될 수 있다. 그 연은 바람과 팽팽히 맞서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연에는 바람이 스쳐지나갈 수 있도록 바람구멍도 넉넉하게 마련해 두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그의 면모를 잘 느낄 수 있는 글은 역시, 시다.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해직교사 출신인 그는 자연에, 사람에 낮게 다가가고, 바로 그 자신이 강물이 될 수 있는 섬세한 심성인 것이다. 그의 글이 비유를 많이 감싸안을수록, 깊은 은유의 늪으로 언어들을 감고 들어갈수록 그의 언어는 빛난다. 투박하게 연탄재에 '너'를 직유하더라도 그의 탁월한 시 구성력은 감동적일 수 있다. 이런 책 엮지 말고, 시를 썼으면... 그가 바라는 대로 부자는 못 되더라도, 좋은 시인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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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수필 범우문고 70
김용준 지음 / 범우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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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김용준의 수필이 나온다. 두꺼비 연적을 사게 된 이야기. 김용준의 글맛이 함뿍 묻어 나오는 글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작년 수능에 김용준의 "게"가 등장했다. 김용준의 수필을 별로 읽을 기회가 없던 나로서는 언젠가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그 책을 읽는다. 두꺼비 연적과 게에서 느꼈던 그의 깊이를 다른 글에서도 함빡 젖도록 느껴보고 싶었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책을 다 읽도록, 게와 두꺼비에서 읽히던 수묵화와 같은 글들은 찾기 어려웠다. 더우기, 그의 호가 근원(近園)이라, 혜원, 단원 들처럼 풍류와 멋이 깃든 이름일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원래 남의 흉내나 내는 재주 정도 부리는 원숭이에 가까운 近猿이었는데 좀 흉해서 바꿔본 거란다.


사실은 김용준의 수필이 가진 맛은 내가 기대했던 선비의 풍류와 아취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어렵던 식민지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겪어야 했던 글쟁이들의 비애, 비관, 좌절들이 그의 글에는 흠뻑 젖다 못해 땟국이 줄줄 흐를 지경이다. 김용준에 대해서 지나친 환상을 가졌다가 그를 읽고 나서 투덜거리는 것은, 마치 결혼하고 나서 부부싸움하고 나서 투덜거리는 것과 류가 비슷하다 하겠다.


매력적인 면이 있어서 그를 찾았다가, 그가 가진 개성은 사실 그 매력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역시 사람은 속속들이 알지 못할 때 훨씬 진한 매력이 풍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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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2-0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사놓고는 다 읽지 못했던 책입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가 봅니다.

 
낙타풀의 사랑 - 어른들을 위한 동화
곽재구 지음 / 현대문학북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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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풀은 아주 보잘것 없는 풀이다. 사막에서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들어 잎사귀도 가시로만 남아 버린 못난 풀인데, 낙타는 이것조차도 없어 입안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면서도 뜯어먹는다는 풀.

곽재구 시인은 낮은 것들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 책에 추천사를 적어 주신 분은 소설가 임철우이다. 내가 대학 시절 제일 좋아했던 임철우와 곽재구. 이 커플은 사평역에서 만난다. 서로 마음이 되고 몸뚱이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 따사로운 톱밥 난로와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

어른을 위한 동화가 한창 나오던 때가 있었다. 80년대 시와 소설의 시대가 지나고, 90년대 시가 잠자던 시기, 시인들은 너도나도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철학적인 듯, 몽환적이고, 감동적인 듯, 감상적이었던 책들이었다. 80년대에 울리던 마음의 거문고 줄을 여전히 기억하는 세대는 그 작가의 이름들에 현혹되어 동화들을 읽었다. 그러나, 동화도 아니고 풍자문학도 아니었으며, 더군다나 철학적이지는 못했던 많은 작품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슬픈 시대를 표상하는 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곽재구가 포구 기행을 너머, 세계로 발을 딛었다. 이 동화의 배경은 사막과 불모지... 이런 것들이 꽤 된다. 사평역이 아주 작은 간이역이듯, 사마르칸트, 티벳 같은 마을들도 또다른 사평역에 다름아니다. 그곳에는 낙타풀들이 살고, 여전히 사과 한 광주리 안고 귀향하는 초라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하고, 단풍처럼 스쳐 지나가는 차창을 달고, 보잘 것 없는 삶들이 피고 진다. 마치 낙타풀 같은 존재들이, 존재의 이유도 모른채...

동화로서 성공하려면, 우선 몇 가지 요소가 성공적으로 엉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것이 주제와 소재의 조응이다. 표현은 나중의 문제라고 본다. 이솝의 우화들이 수천 년을 넘어 생명력을 더하고 있는 것은 적절할 주제들이 적절한 소재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동화들은 끈적거리지 않는다. 주제의식은 소재들과 유리되어있기 쉽다. 어찌 보면 수피즘식 억지를 부리는 듯도 하다. 지나치게 교훈적이기도 하고... 시적인 표현들이 많이 녹아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수필도 아닌 동화라는 장르에선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화의 또 하나의 성공 요소는 이야기의 전파력이다. 동화를 읽고 다른 이에게 이 이야기를 안 해주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어야 성공하는 동화일 것이다.

난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적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만, 이 리뷰들은 나의 독서일기이기에 몇 자 적기로 한 거다. 곽재구가 기행이나 동화를 쓰지 말고, 다시 그 정신으로 처절한 시들을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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