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도현 지음 / 푸른숲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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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처럼 뜨거운 안도현 시인이 전교조 초창기 싸늘하던 시절에 적은 따스한 시들이다. 연탄재처럼 가치없게 여기는 존재보다도 나는 나은가?를 묻던 그의 언어들에서 묻어나는 결기는 다소간 관념적이지만 따뜻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가 눈발이라면>도 있었고, 슬픈 <마지막 편지>도 있었고, 내가 조국으로 열려 가는 <그대>도 있었고, 사랑의 의미를 곱씹은 <어둠이 되어>도 있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뿌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함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마지막 편지


... 내 마지막 편지가 쓸쓸하게

그대 손에 닿거든

사랑이여

부디 울지 말라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지 말고

그대가 길이 되어 가리라


그대


한 번은 만났고

그 언제 어느 길목에서 만날 듯한

내 사랑을

그대라고 부른다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홀연히 떠나는 강물을

들녘에도 앉지 못하고 떠다니는 눈송이를

고향 등진 잡놈을 용서하는 밤 불빛을

찬물 먹으며 바라보는 새벽 거리를

그대라고 부른다

지금은 반쪼가리 땅

나의 별 나의 조국을

그대라고 부른다

이 세상을 이루는

보잘것없어 소중한 모든 이름들을

입 맞추며 쓰러지고 싶은

나 자신까지를

그대라고 부른다


어둠이 되어


그대가 한밤내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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