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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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道는 藝道의 長葉을 뻗는 深根인 것을...

藝道는 人道의 大河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최고의 예술작품은 결국 '훌륭한 인간', '훌륭한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76.7.5)

 

신영복 선생의 교도소내 편지들을 영인본으로 읽는다.

이 묵직한 책을 끌어안듯 부여안아 읽으면서

그이의 이십 년을 상상한다.

아, 어찌 살아왔을까.

 

무기징역이라는 길고도 어두운 좌절 속에는

괭잇날을 기다리는 무진장한 사색의 鑛床이 원시로 묻혀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제 사고의 서랍을 엎어 전부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까울 정도로 과감히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에

설픈 관념의 야적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늦게 깨달은 저의 치부였습니다.

사물이나 인식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습니다.

이 모든 질곡을 버려야 했습니다.

簦(섭교담등 - 짚신을 신고 우산을 멤, 먼 길 떠날 채비 함)

언제 어디로든 가뜬히 떠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지품만 남기기로 하였습니다.(1977. 6. 8)

 

징역살이 속에서

특히 계수님께 쓴 엽서들은

그의 감성이 두드러진다.

 

이 아픈 현대사를

엽서로 읽는 일은,

고통스러운 쾌락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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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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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2009.5.23일과 2018.7.23일... 두 '노'의 죽음은 오래 나를 힘들게 한다.

두 사람이 모두 조직을 지키기 위해 결행한 죽음이 아닌가 싶어 더 마음 아프다.

유시민은 두 죽음 앞에서

무참한 마음으로 조문을 했다.

마치 상주였다.

 

유시민이 이런 책을 쓴 이유는 복잡하고 단순하다.

그의 청년 시절과, 그의 정치가 시절, 그리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지식 소매상이자 유작가의 시절.

그렇지만 세상은 자꾸 그를 상주의 자리로 불러 낸다.

슬프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 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 증명이었으며,

할둔에게는 학문 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의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겐 민족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집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는 이유는,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213)

 

사람들이 유작가에 공명하는 이유도 같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동조하든 비판하든, 공명할 수 있으므로 그는 가치 있는 지식인이다.

 

역사가 쓰는 사람의 철학과 연구 방법에 따라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 절감하고,

절대적으로 옳은 역사,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202)

 

역사는 '사관'에 따라 달리 쓰인다.

객관주의를 표방하는 랑케 역시 시대의 산물이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군주제는 바람앞의 등불.

공화제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과

계급혁명의 기치를 든 사회주의자들 앞에서

군주제를 옹호하는 저명 역사학자 랑케를 반기지 않을 권력자가 있겠는가.(129)

 

 Wie es eigentlich gewesen.

그것은 원래 어떠했는가를 밝힐 수 있다는 듯 패기 충만하던 그의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카의 말을 빌려 그는 할둔을 변명하지만,

모든 역사가의 처지에도 같이 적용된다.

 

"역사책을 집어들 때 책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 일자나 집필 일자가 때로는 훨씬 많은 것을 누설한다."

저자가 어떤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서 살았는지 점검해 보라는 카의 말.(97)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유명하다.

그렇지만 유시민이 썰을 풀어주니 다이아몬드가 존경스러워진다.

 

"이 네 가지 환경 차이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다이아몬드는 15세기 이후 세계를 정복한 유럽인들이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던 인종적 우월감과

문화적 자아도취에 얼음물을 끼얹었다.

그는 도덕적 훈계나 연민의 감정 호소 대신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환경의 차이를 근거삼아 논증했다.(296)

 

이 책에 등장한 소재들은 역사서가 주가 되지만,

넓게 보면 인류사나 민족사 등 다양한 기록을 섭렵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유시민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각은 차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

그리고 환경에 따라 생각은 달라진다는 것.

고정 관념을 버리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지는 것,

이런 저런 것들이 그를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사건 요약 작가에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의 차이를 기록하는 작가로 변하게 한 것이다.

 

그것은 70~80년대의 짱돌과 화염병 투쟁에서,

2016년 촛불과 2018년 선거의 투쟁으로 이어지는 다종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당연히 다종다양할 수밖에 없는 국가적 현실앞에서

지식을 소매점 형식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의 최대한의 노력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생각이 여러 번 났고,

그 와중에 고 노회찬 의원의 부고를 들었다.

 

슬픈 역사를 껴안고 가는 민중의 눈물이

언젠가 작은 역사로 남으리라.

 

작은 아픔까지도

모두 기록되어야 할 것이 미래의 사관일 것이므로...

 

 

고칠 곳 몇 군데...

122쪽 본문의 독일어 표기에 und를 and로 썼다. 오타다. 같은 책의 323쪽 참고문헌에서는 und로 옳게 썼다.

136쪽의 각주에 오타가 보인다. 독일어 인간은 Mann이다.

289쪽. 내가 알기로 과학 잡지의 이름은 <디스커버>가 아니라 <Discover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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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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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체로 알고 있던 완당 김정희의 일대기이자,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십여 년 전에 완당 평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청나라 학자들과의 교류가 기억에 남는다.

이제 새로 펴낸 추사 김정희를 읽자니,

그 시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북학(맹자에 나오는 표현으로 이상보다는 현실, 관념보다 사실을 중시하는 일)의 시대,

공맹이 한물 간 시대의 지식인 노마드로서의 김정희를 만나게 된다.

 

정조 사후의 순조, 헌종 시절을 거치면서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용산(강상)으로 겨우 돌아오고,

노년에는 다시 함경도로 귀양을 갔더라는 사실은 시절의 혹독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씨는 '유재'의 두 글자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움으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하라.(340)

 

뭔가 예술과 삶이 하나의 도의 경지를 품은 인격을 느끼게 된다.

 

추사의 재능은 감상이 가장 뛰어났고,

글시가 그 다음이며, 시문이 또 그 다음.(495)

 

감상은 미술품 감식,

금강안 혹리수.

서화 감상하는 데는 금강역사 같은 눈과

혹독한 세리 같은 손끝이 있어야 그 진가를 다 가려낼 수...(496)

 

금강안 혹리수... 멋지고 날카로운 말이다.

 

즐거운 독서를 하면서, 못내 눈에 밟히는 해석이 몇 군데 있었는데,

소소한 작품이야 내가 다 번역할 능력이 안 되지만,

유명하고 굵직한 작품들이라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한시 번역은 전적으로 정민 교수의 도움으로...(580)

 

보통 부족한 점은 자기의 소치로 여기던데, 틀리거나 어색한 부분은 전적으로 정민 교수 탓인 걸까?

 

호고연경으로 불리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다.

 

옛것 좋아 때때로 깨진 빗돌 찾았고,

경전 연구 여러 날에 쉴 때는 시 읊었지(199)

 

이렇게 번역되어 있는데, 전혀 대구에 어울리지 않는다.

두번째 구절은 <경전 연구 여러 날에 시도 읊지 못하네>가 어울린다.

쉴 때 시를 읊는 것과 비석을 찾는 것은 대구가 되지 않는다.

비석 찾고 경전연구 한다고 시도 못 읊는다는 즐거운 비명인 셈이다.

 

이런 어색한 구절은 유명한 '다반향초'에서도 등장한다.

 

 

고요히 앉은 곳, 차를 마시다가 향을 처음 사르고

오묘한 작용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핀다.(394)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다.

부족한 해석을 넘어 틀린 풀이다.

 

다반향초는... 차를 절반 마셔도 향은 처음처럼 남는단 의미다.

술이름 <처음처럼>의 원조라 할 만하다.

 

고요히 앉은 곳, 차 반잔을 마셔도 향기는 그대로이고,

묘하게 음미하면, 입안에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이런 해석이 더 가깝겠다.

차를 마시는 일의 향기로움을 입 안에 꽃이 피는 것에 비유한 셈이다.

다반향초는 '오랫동안 변치 않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께 다반향초 하소서... 하는 덕담도 많았다.

 

 이 작품의 제목을 <장강 서세>라고 적었다.(520)

 

장강 일만 리가 화법 속에 다 들었고

글씨 기세 외론 솔의 한 가지와 꼭 같구나.

 

정민 선생의 번역 이야기에 글에 충실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화법은 장강만리가 있고

서세는 외론 솔한가지 같다... 순서를 바꾸는 일도 읽기에 불편하다.

 

 

맞춤법 고칠 곳... 513쪽.

 

논어에서 사야는 올곧은 군자의 모습을 일컬은 표현으로,

'세련됨과 거침'이라는 뜻이다.... '거칠다'의 명사형은 '거칢'으로 써야 옳다.

'거침'은 중간에 어디를 거쳐서 온다고 할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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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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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을 읽으면, 해박함과 종합력에 감탄한다.

언어에 해박하고, 다종다양한 지식을 섭렵한 대학자의 면모가 뛰어난데,

그것들을 종횡무진 그물 엮듯 엮어내고,

그 그물망들을 총괄하는 '벼리' 역할을 하는 주제를 솎아내는 데 큰 힘을 볼 수 있다.

 

일본어로 먼저 출간된 책.

 

어떤 기러기도 선두에 섰다고 우월감을 갖거나

맨 뒤에 있다고 열등감을 갖지 않는다.(50)

 

중국의 문명을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받아들인 것은 당연한 역사였고,

일본의 신문명이 대륙과 반도를 침략한 것도 근대의 귀결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문명은 삼자가 협업하는 것으로 장래를 삼자는 의도의 책인 듯.

 

시대의 축은 완만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도구에서 신체로, 소유에서 접속으로, 실체에세 관계로 옮아간다.

탁월한 문명 비판이다.(275, 다카시나 슈지의 해설)

 

중국 대륙은 보에 가깝다.

손바닥은 넓음과 동시에 관용과 덕을 만들어낸다.

일본은 주먹이다.

여유보다는 긴장, 확대보다는 축소 지향이다.

한국의 가위는

밸런서의 역할로서 통합의 역할이다.(231)

 

불교의 원, 융, 회, 통과도 상통한다고 푼다.

 

순환관계가 원이고,

열린 손바닥과 닫힌 주먹의 가운데

반은 열리고 반은 닫힌 가위가 있다. 융이다.

혼자서 할 수 없어, 동시에 내는 회,

승부를 받아들이는 통.(85)

 

상징의 최고봉은 주역이 아닌가 싶다.

플라톤의 2원론에서 출발한 2개의 문명론보다는 당연히 3원론이 다양하고,

주역의 4원, 8원론이 더 다양하지만, 자칫 복잡하다.

 

일본 대한화사전에서

눈목변 740, 발족변, 670, 귀이변 217개에 비해,

손수변 1307개, 입구변 1458개의 한자가 발견된다.(86)

 

인간의 행동에서 손과 입이 그만큼 큰 역할을 한다는 근거다.

 

일본 문화는 국화와 칼의 이중성보다

'배'와 '우'의 이중구조에 그 특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있다.

가위바위보는 '우'에 대한 '배'의 문화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125)

 

배우에서 '배'는 희극, 코믹, 비속한 것을, '우'는 우아, 비극을 담당한다 한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책이라는 '국화와 칼'의 양면성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나타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칼의 민족이라기에는 패전 후 너무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는 모습이 그렇다.

그들은 잘나갈 때는 '배'에 가깝고, 지면 바로 '우'가 되는 쪽의 해석도 일리가 있다.

 

가위바위보의 자르다, 감싸다, 치다의 역학관계는

승부 순환이다.

분별하여 자르는 지, 부드럽게 감싸는 덕, 적극적 공격의 체.(148)

 

문명은 변화한다.

순환하고 발전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것을 해설하기는 쉬워도 예측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중국의 '굴기'(우뚝 선다)를 예측하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외교는 대결보다는 조화와 화해를 통한 상생이 중요할 듯 싶다.

섬나라 일본이 반도와 연결을 간절히 바라는 것 역시 필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정희처럼 꼼수를 쓰는 독도 밀약의 독재자도,

쥐나 닭처럼 국익보다는 사익을 도모한 치사한 것들도 역사의 뒤켠으로 밀어버려야 한다.

김정은이 대화에 나선 것은 단순한 일도 우연한 일도 아니다.

필연적으로 세계의 중심으로 동아시아가 등장하게 되는 21세기를 예감하게 한다.

 

뒤편의 일본어 서적은 왜 붙여 두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괜히 책이 무겁고 값만 비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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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카를 마르크스 지음, 임지현.이종훈 옮김 / 소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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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때인가, 이 책을 사서 힘겹게 읽은 적이 있다.

마르크스가 프랑스 혁명사라는 역사적 팩트를 차용하여,

혁명이란 어떤 길을 걸어가는 것인지를 밝힌 책이라고 하는데,

당시 역사에 밝지 않은 나로서는 전체를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헤겔은 어느 부분에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 속에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른다.

현 세대가 자기 자신과 만물을 개조하고

이제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무엇인가를 창출해내는 데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도,

바로 그와 같은 혁명적 위기에 시기에도

그들은 자기의 일을 도와달라고 노심초사하면서

과거의 망령들을 주술로 불러내어 이 망령들로부터

이름과 전투구호와 의상을 빌려

유서깊은 분장과 차용한 언어로

세계사의 새로운 장면을 연출한다.(190)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는 감탄할 따름이다.

촛불이라는 국민의 힘을 감당하는 기구가 없다.

국회가 저지르는 패악들을 보면서 분노한 국민들은 선거에서 자유당에게 참패를 안겨 주었다.

문제는 찍을 당이 민주당 뿐이라는 데 있다.

대통령의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적다.

행정부의 수반일 뿐이지, 행정부라는 도구는 이미 관성이 붙어 있다.

모든 이전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있는 우리 머리를 짓누른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는

항상 외국어를 일단 모국어로 번역하지만,

새언어를 사용할 때 모국어를 떠올림이 없이 그 언어 속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찾고

자신의 모국어를 망각할 정도가 될 때에만

그는 새로운 언어의 정신에 동화되고,

그래서 그 언어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191)

 

민주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촛불 국민의회를 만들어 저 개새끼들의 국회를 해산하지 못한 이상,

민주당과 청와대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

2년이나 남은 총선에서도 당연히 자유당은 폭망할 것이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자유당과 정치적 입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삼성과 손잡고 최저시급 변칙 처리에 도장 찍는 개새끼들이다.

그런 자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병신같은 집단이다.

 

그들의 무릎 위로 열매가 떨어지긴 했으나

그 열매는 생명의 나무가 아니라

지혜의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었다.(207)

 

생명의 나무는 영생을 얻는 나무지만, 지혜의 나무는 선악과였다.

다시 인간을 파멸로 몰아 넣은 열매.

촛불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대중의 힘, 대중의 지능이,

새로운 언어의 정신을 얻을 때까지, 촛불을 드는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서 세습군주정에 대한 믿음을 떨쳐내고

민주공화정을 맹신하게 되었을 때

이미 아주 힘차게 과감한 일보를 앞으로 내딛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는 실제로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에 대한 탄압 기관에 불과하며

이는 군주정 못지않게 민주 공화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 여건 속에서 성장한 세대가

모든 국가적 폐물과 결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국가의 최악의 여러 측면을 코뮌처럼 가급적 신속히 베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348)

 

박근혜 세습정치를 몰아냈다고, 진보된 것은 아니다.

바뀐 것은 아직 없다.

대통령의 개헌안도 무산되었고, 그것을 통과시킬 힘도 촛불에겐 없었다.

 

코뮌의 조치들은

인민에 대한

인민 정부의 성향을 예시했다.

고용주가 잡다한 구실로 자기 고용인으로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관행의 금지 등을..

그러한 관행은 고용주가 한몸에 입법가, 재판관, 집행인의 역할을 결합시키고

돈을 좀도둑질하는  한 과정인 것.(418)

 

지금 이 땅의 민주 공화제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국민의 종복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최저임금 보장안을 삭감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고용주가

국회를 움직이고, 재판관의 판결문을 움직이고, 행정부와 결탁하는

좀도둑질하는 과정을 언론에서조차 알리지 않는 무서운 공화정...

결국 이것은 공화정이 아니라, 삼성의 군주정이다.

 

역사책을 읽는 일은 무섭다.

수백년 전의 일들에서도 지금과 유사한 상황들이 벌어졌고,

인민들은 늘 실패해왔다는 것을,

권력과 자본은 늘 웃는 낯으로 칼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고,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말하는 날을 맞는 것은

우리가 죽기 전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하다.

신념은 미약하다.

짧은 인생을 신념과 싸워나가기엔 역사 공부는 힘겹다.

그렇지만 공부가 필요한 것은,

유한하다고, 미약하다고 꺾이지는 않았던 인간들을 역사가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그 복잡한 사태들을 마르크스나 레닌처럼 꿰뚫어 맥락을 보여주는 혜안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공부를 접을 수는 없다.

 

자유당의 폭망에는 쓴웃음을 날리지만

민주당의 독식에는 좋은 기분이 아닌 복잡한 여러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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