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나막신 우리문고 1
권정생 지음 / 우리교육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분명 일제시대였다. 그리고 일본 땅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분명 인권에 대한 침해 내지는 모욕도 있었다. 인종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있었던 시대였고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물론 요즘엔 아이들도 영악할대로 영악하기도 하고, 내것 네것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을 내다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인데, 머시매들은 축구 골대 하나에 축구공 대여섯개가 돌아 다녀도 누구도 자기네 운동장이라고 우기지 않는다. 어른들에 비하자면 아이들은 그만큼 네것 내것이 없는 심성을 갖고 있다.

권정생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동화로 만든 이야기 책이다.

전쟁통의 도쿄. 나가야라는 긴집에서 세들어사는 아이들의 살림이 가난하지만 풋풋하게 살아있는 글이다. 여느 글에서 보기 힘든 시간적, 공간적 배경때문에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역시 그래도 권정생 할아버지의 글은 따사롭다.

전쟁통에 나가는 아이들도 슬프거나 좌절하지만은 않는다. 힘차지만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것은 아니다. 그 의기 속에 사람의 온정이 투철하게 스며 있다. 가난해서 부끄럽지만, 가난해도 꿋꿋한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는 동화를 읽는 동안 마음이 따스하게 밝아졌다.

고아면서 부잣집에 입양되어 쓸쓸한 나날을 보내는 아이도, 어머니가 앓다가 돌아가신 아이도, 몸이 약해 얼굴이 파리하다가 눈내리는 날 죽어가는 아이도... 모두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서 번져나오는 동심의 아우라의 근원은 뭘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건... 네것 내것을 결정지우지 않는 무주상無住相의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머무르는 상 없는 마음. 그 평화로운 마음이 어린이들 마음 속엔 늘 가득하지 않은가 하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의 샘터에서 - 시와 그림과 에세이가 있는
최두석 편저, 윤금숙 그림 / 웅진북스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난 유명한 시인들이 일반인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펴내는 시 선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중고생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00가 읽어야할 시 선집' 같은 책들은 유명 대학 교수들이 이름을 걸고 그 제자들이 만드는데 이런 시 선집은 더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려서 무슨 기준인줄도 모르고 읽던 <한국의 위인>, <세계의 위인> 그리고 청소년 시절 문학 소년이 되어 읽던 <한국 단편선>, <세계 명작선> 같은 책들의 명작 기준이 무엇인지는 어디에도 밝혀진 바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위인 중에 군인들이 많았던 걸로 봐서 군사 정권의 시선이 끼친 듯도 싶고, 위인 중에 유럽과 미국의 인물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제국주의적 시각이 영향을 미친 듯도 하다. 지금 다시 보는 유명 한국 단편들은 대가 독재 정권과 친했던 순수파들의 작품들이고, 세계 명작은 마찬가지 유럽의 영향이 큰 듯.

요즘 편찬하는 일반인을 위한 시들은 어찌 보면 돈벌이를 위한 편집에 불과하다는 생각들을 하던 중에,

이 책은 조금 낯선 시도를 하는 듯 해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 실린 시들, 시인들에게서 맡을 수 있는 냄새는 바로 사람 내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도 있지만, 그간 우리가 읽어대던 시들에게서는 바로 이 <사람 냄새>가 거세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던지... 박두진의 <해>처럼 아무 재미 없는 시들이 교과서에 등장했었고, 김소월의 그 명작들을 제치고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엄마야 누나야는 <아리랑>과 그 음절 수가 같은 실험성 외엔 별 감상을 느낄 수 없던 것이다.

제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문학 교과서가 개편되었는데, 해방 후 이제까지의 교과서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면, 바로 삶과 유리되지 않은 작품들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수영의 풀, 신동엽의 껍데기~, 누가 하늘을~ 같은 작품들에서부터,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까지 실린 것은 이적지의 문학 교과서의 편향에 비추어 본다면 획기적인 진보로 보인다.

물론 그 시들을 가르치는 국어과 교사들의 사고는 수십 년 전과 그대로이기 쉬우나, 적어도 386 세대가 대세인 교단에서 이런 시들은 독자들의 사고를 <글의 향기>에서 <사람 냄새>로 돌리게 한다.

최두석이 엮은 이 시집은 그렇다고 운동권의 시들을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 참여시를 집대성한 것도 아니다. 삶을 조금 색다르게 보고, 사람의 삶이 아무리 무질러 지더라도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발견하려는, 발견해야 한다는 시들을 모은 것 같다.

다른 시인들이 같잖은 말들로 췌언(군더더기말)과 사족을 단 책들에 비해, 최두석의 곁글들은 새로운 창작에 빛나는 글들이다. 나름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또다른 창작과 비유를 통해 시의 주제 파악을 도와주는 시도는 신선하다.

다만, 그림이 좀 마음에 안든다. 좀이 아니라 아주 맘에 안 든다. 왼쪽 옆에 조그마하게 아이콘처럼 보이는 꽃사진들의 앙증맞은 사랑스러움에 비해, 무채색이 주류인 그림들은 시의 <인간 냄새>를 다시 <무취의 문화>로 이질감을 맞게 함은 내 그림보는 눈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리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9-1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냄새 나는 시집, 저도 이런 시집이 좋습니다.
유리벽 같은건 정이 안가죠.
 
선택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7년 3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에 이미 이 소설을 두고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에게서 반페미니즘 소설로 낙인찍혀 욕을 숱하게 얻어먹고 말았던 소설이다.

당시에는 욕먹는 작품 괜스레 읽어 봤댔자, 혈압만 오른다 싶어 그저 넘겼는데, 이제 무슨 이야긴지 궁금해서 빌려 보았는데...

한 마디로, 이건 소설이 아니다. 겉표지에 분명 장편소설이라고 적긴 했으나, 장편이긴 한데, 소설은 아니다.

차라리 복거일의 영어 공용어화론은 우리의 지나친 순수주의에 대한 경계라고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이문열의 <선택>은 호주제가 폐지되고 있는 마당에, 한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젊은 날의 초상, 사람의 아들로 우리 젊은 시절의 <감상주의>를 달래 주었고, 냉전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를 소모하던 내 젊은 시절에 그의 영웅시대는 <광장>과 같은 또하나의 푯대가 되어 주었으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우리 시대의 분노로 일그러진 자화상을 <상징주의>적 수법으로 형상화했던 그가, 어찌어찌 하다 보니 날개도 없이 추락만 하고 있는 것인지... 하긴 그의 소설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우길 때부터 날개가 없었던 듯 하다.

서정주가 쪽팔린 줄도 모르고 전두환이 편을 들던 시절처럼, 이문열도 쪽팔린 줄도 모르고 자기가 균형감각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거라고 떠드는 꼴은 이 시대의 논리가 얼마나 가진자의 횡포인지를 보여주는 듯 해 씁쓸하기만 하다.

이 글은 <형상화>에 실패하고 있으므로 소설은 아니다. 그저 수필, 그것도 가벼운 신변 잡기의 수필에 불과할 뿐이다. 장편 수필이라 하면 되겠다.

이문열이 착각하는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닌데,

우선, 자기네 가문이 양반 가문이었던데 대한 자부심은, 마치 상놈인 나더러 <양반처럼 고결한 삶을 선택>하면 될 것을... 하는 마리 앙트와네뜨의 '빵이 없으면 카스테라를 먹지'와 유사한 착각으로 보인다. 그는 양반이 득세하던 시절에 자신이 태어나지 못했음을 무지무지 원망할게다. ㅋㅋㅋ 쌤통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여성 문제는 그동안의 시대 탓이란다. 그래서 남성도 같이 자유롭지 못한데(이 말은 맞다) 페미니스트들은 그저 한 쪽으로만 몰아간다고 한다. <현모 양처를 선택>하는 것도 자유로운 한 삶인데 말이다.... 하면서... <현모 양처>가 정말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내의 선택이라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우리 아내들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의 소산이란 말인가... 이 책은, 출산 거부를 <선택>한 이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모독이다.

자신은 이조 시대의 귀족 후예로서 고상한 유교적 전통을 고수하며 잰체하고 싶은데, 세상은 불쌍놈들이 목청 돋우는 시대가 되어서 그는 몹시도 성이 났나 보다. 그래서 제사도 안 지낼 놈들, 제사지낼 후손도 안 낳는 놈들에 대해서 시퍼런 칼날을 간다... 그 어머니들의 <사랑과 정성>을 알지도 못한다면서...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닌 사람이다. ... 피할 수 없는 강요에도 선택의 여지는 있게 마련이다. 맹목적인 순응과 적극적인 수용은 다르다. 조선 시대 여성들에게 가문은 피할 수 없는 강요였다. 그러나 나는 맹목적으로 순응한 게 아니라 그런 나름의 논리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 이념을 껴안았고, 그런 뜻에서 감히 가문을 내가 결혼 뒤에 첫번째로 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겠지... 자기네는 양반 가문이었다고... 그래서 학문을 포기하고(조선 시대에 여성이 학문을 포기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하는 것일까?) 그 봉건적 유교의 가부장 이념을 수용했다는 어불성설인 잡문을 책으로 묶은 것은 참으로 희생한 나무에게 아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문열에게 권하고 싶다. 오늘부터 간절히 간절히 빌어서 조선시대 여성으로, 그와 가장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그렇게 논리적으로 이념을 실현하라고 말이다.

하긴, 호주제 폐지를 놓고 갓쓰고 수염기른 영감들이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위하는 거 보면, 아직도 이씨 조선 사람들이 호패를 차고 돌아다니는 세상이 우리와 차원이 다른 어느 공간엔가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성석제 지음 / 강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성석제의 수다가 잘 반영된 소설집이다.

그의 장점은 진지하고 무겁고 힘든 세상을, 한낱 수다의 대상으로, 수다를 떠는 재주가 없는 남자들이라면 술주정의 수준이고, 전화세에 얽매이지 않고 수다를 즐길 줄 아는 여성들이라면 본격적인 섬세함으로 수다를 떨 줄 안다.

그의 소설에는 주제 의식이랄 것이 별로 없다. 어떤 이미지, 또는 감상을 떠올리면 그걸로 바로 소설 한 편이 된다. 그것이 그의 수다의 힘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의 재미고...

성석제가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면 '스승들' 같은 소설이 탄생한다. 정말 보잘것 없는 추억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떠들어대는지, 마치 내가 그의 동창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4.5초다. 화자가 깡패라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 나라가 최근 군바리 독재의 나라였고 폭력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정치 깡패들의 힘이 컸다고는 해도, 영화도 깡패, 소설도 깡패, 코미디도 깡패인 이런 세상을 나는 혐오한다. 솔직히 깡패 영화를 보면 감동보다는 지긋지긋하다. 남들이 그 재밌다던 영화 '친구'를 보면서도 난 지겨웠고, '가족'은 아예 보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

그런데 그 깡패 녀석이 떨어져 죽는데, 약 100 높이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며,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까지 걸리는 그 4.5초의 시간에 성석제는 엄청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초 간격으로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1/70초 단위로 이야기를 한다. 역시 이야기꾼이라고 할 만하다.

바흐친이라는 비평가가 있었다. 소설은 <축제>의 장에서 들리는 <다중 음성>이라고 이야기했던가... 뭐,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성석제의 소설에 적합한 경우가 아닐까 한다. 성석제의 이야기는 항상 좀 시끌벅적하면서도, 그 시끌벅적하고 지지부진함에 지긋지긋해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고, 누구나이기도 하고, 누구도 아닐 수도 있다. 허구의 인물인 셈이니까...

성석제의 이야기는 가볍다. 가볍다는 것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일 수도 있다. 난 그 장점이 단점을 아우를 수 있으면 좋겠다. 황만근에서는 조금 나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볍고 친근한 수다쟁이 성석제가 조금 더 우리 삶에 가까운 수다를 떨어 줬으면 좋겠다. 도로의 난간을 들이 받고 떨어지는 깡패의 이야기는 재미있긴 하지만, 일어날 법한 허구라기 보다는 <남의 이야기>라고 읽기 쉬우니깐... 깡패 말고, 우리 이야기를 좀더 개그 수준으로 풀어 줄 수 있었으면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 2005-07-0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 소설에는 깡패가 참 많이 나오더라구요.잘 넘어가고 잘 읽혀서 좋은데 말이죠...

글샘 2005-07-0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 아니라도, 우리 나라 영화에 깡패 안 나오는 영화가 어디 있어야 말이지. 원래 깡패는 어디나 있었다지만, 21세기 우리 나라의 코드는 깡패인 거 같아서... 불만이지.
 
우렁이 속 같은 세상 - 김학철 산문집
김학철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북한이나 연변 동포들의 모습을 보면 순박해 보이기도 하고 촌스럽게도 보인다.

격정시대의 작가 김학철의 수필집을 만나 읽게 되었다.

우선 연변의 말은 우리 말과 거의 같지만 수십 년의 괴리감이 언어에서 드러난다. 장점을 우점으로 쓴다든지, 몇몇 동사들은 재미난 표현이라고까지 생각하며 읽었다.

일제 시대에 감옥에서 3년, 중국의 문화대혁명기에 10년을 중국 감옥에서 보낸 김학철.

그의 글을 읽는 일은 그래서 <장기수>의 편지를 읽는 듯한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아직도 체 게바라의 뜨거운 가슴을 논하는 이분이 보시기에 세상은 우렁이 속처럼 비비 꼬이기만 했고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아큐의 형상을 하고, 자기 머리가 대머리라면 싫어서 신경질을 내는 아큐와 같이, 자기 패거리에게는 팔이 안으로 굽고, 자기를 조금만 비판하면 짜증을 내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은 꼭 중국의 조선족들에게 해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리라.

중국도 죽의 장막을 걷고 퇴폐적 자본주의 물결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다는데, 이렇게 순수한 시각으로 글을 쓰고 세상을 사는 이도 있다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보담은 깨끗한 사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착각도 한다.

그이의 글은 참 깔끔하면서도 솔직하고, 멀끔하기보다는 오히려 꾀죄죄하여 못나보이기도 한다. 잘난 체는 원래 김학철 선생의 글에서 거리가 먼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기름기 싹 걷힌 담백한 글을 읽었다.

장마로 집안이 구석구석 꿉꿉해도 마치 에어컨을 켠 듯 상큼한 글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팀전 2005-06-2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보고난 후 몇달 있다가 김학철 선생이 돌아가셨습니다.대나무 같은 글들의 감흥 후에 부고를 들어서 더욱 안타까왔던 기억이 납니다.

글샘 2005-06-28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나무 같은 글들... 그렇네요. 신선하면서도 솔직 담백한 글이고 정신이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