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랑을 모른다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너는 어찌되든지 나만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지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내 마음대로 네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다가 죽어야하는데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죽어야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나를 살리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한다

너를 살리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 하다가 죽어버려라

 

---------------------


정호승 시인의 시집 제목으로 유명한 시다.

원 시는 하정완이란 분의 시라고 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저귀지만,

가시나무 새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만 많은' 사람들이 많다.

 

뜨거운 시여서 옮겨 둔다.

뜨거운 시에는 데일지도 모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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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1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목에 끌려 정호승님의 시집을 읽은적 있어요.
원 시가 따로 있었군요.음~

전 이 시도 괜찮았는데,'추억이 없다'라는 제목의 시도 맘에 들어 따로 종이에 적어 둔 적이 있어요.
페이퍼에 올려야지~ 했는데...어찌 오늘!ㅋ
다시 읽어도 좋은 시네요.^^


글샘 2012-06-19 07:39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시집을 읽으면서 표제시가 왜 없지?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추억이 없다, 는 도종환 님 시던가요? ^^

시가 치열해 보이긴 하는데,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는 느낌???

복숭아 2012-12-2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없이 읽다가 울다 갑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나봅니다.
 

가을비가 분위기를 돋우며 내리는구나.

시간 참 빠르다.
벌써 올해가 다 가고 마는데,
내일모레면 이제 수능 날이다.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고생이 많았는데,
이왕이면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사람이 자기 할 노릇을 다 하고 나면, 하늘의 운명을 기다려도 좋다는 말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 도우니 말이다.  

오늘은 수능 전 마지막 시를 한번 읽어 보자.
뭘 뽑을까 하다가 김영랑의 시를 두 편 읽어 보기로 했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자진머리 휘몰아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마저사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는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長短)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伴奏)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닥타--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 (김영랑, 북)

이 시에 등장하는 용어들은 주로 '판소리' 용어임을 알겠지?
판소리는 1고수2명창으로 이뤄지는데,
첫째가 고수(북치는 사람)이고 둘째가 명창이란 이야기야.
고수가 주로 스승님이었나봐.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 

이 말이 처음과 끝에서 딱, 마주보고 있어서 시를 짝 들어맞게 하고 있단다. 

판소리는 그날 공연장의 모임의 분위기에 따라서 창자가 '판'을 짜서 부른다고 해서 판소리란다.
젊은 남정네들이라면 '흥부가에서 박타는 대목'이나 '춘향가에서 사랑가 대목'을 부를 게고,
할머니들 상대라면 '심청가에서 심청 팔려가기 전날 밤 대목'이나 '춘향의 옥중가'처럼 눈물 철철 나는 대목을 부르기도 할 게다. 

혼자서 진행을 해야 하기때문에
노래하는 부분(창)과 말하듯이 사설을 엮는 부분(아니리)로 이뤄지지.
몸동작도 하곤 하는데 그걸 '발림'이란 용어로 부른대. 

창은 슬프고 처량한 대목에선 '진양조'를,
보통 빠르기는 '중모리(중머리, 중몰이 : 표준어가 없단다. 판소리는 전라도에서만 불렀기 때문이야.)'
조금 빠르게 부를 땐 '중중모리'인데, 주로 누가 등장하는 대목이나 제비몰러 나가는 대목처럼 흥미를 돋우는 부분이지.
아주 빠르게 부르는 건 '자진모리'나 '휘모리'라고 하는데, 전쟁터처럼 박진감이 넘치는 장면에서 부르지. 

김영랑은 고향이 전남 강진으로,
원래 전라도가 "예향"으로 불릴 정도로 예술에 조예가 깊은 동네지. 

판소리에선 고수와 명창의 <숨결이 꼭 맞아야만 이뤄지는 일>인데,
그런 일은 인생에 흔치 않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그 어려운 일이 딱맞게 되면 시원한 일이 되고 말이야. 

소리와 어울리지 않았을 때의 북은 그저 가죽에 불과하대.
그만큼 북과 '고수'는 판소리와 어울려야만 존재 의미가 증폭된다는 강조지. 

장단이 틀리면
만갑이(당대 최고의 판소리 대가. 동편제의 대가)도 숨을 고쳐 쉴 수밖에 없대.
즉, 아무리 이름난 고수라 할지라도 소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지. 

그래서 판소리에선 장단을 친다는 말로는 부족하대.
판소리의 <고수>는 장단을 맞춰주는 부차적 존재가 아니야.
판소리 연행과 가창을 살려주는 반주를 지나서
북은 오히려 컨닥타(지휘자)이 경지라고 일컫는 것이 옳을 거다.

<1 고수, 2 명창>이란 말을 이 시만큼 잘 표현한 시도 드물어.
훌륭한 명 고수는 잔가락 따윈 온통 잊고서,
떡, 꿍!
북의 울림 소리가 울려나는 가운데 고요가 깃들어 있는 동중정이요.
우렁찬 명창의 소리 속에 감겨드는 고요가 있어
판소리를 듣는 일은
마치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 

이런 느낌이라는구나. 
가을같이 익어가는 인생이라...
북과 소리의 조화로움이 무르익어가는 가을처럼 온갖 붉고 노란 단풍으로 가득한 산수화처럼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이 시는 표현상으로도 묻고 답하는 형식, 수미상관의 구성
시행이 단정하게 가지런히 놓인 모습이 두드러진데,
특히나 시인의 삶에 짙게 묻어든 판소리란 장르의 구성지고도 기름진 맛이 가득 묻어나는 내용이 압권이야. 

판소리에 대하여 친밀하기 그지없으면서
고수와 명창의 찰떡 궁합에 대하여 말하는 듯 궁글리고 있어서
인생과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진 경지를 잘 표현하고 있지.

일반적으로 판소리에서 <창>이 주인공이고 <북>은 종속적이라는 통념이 있는데,
실제로 판소리는 북에 의해 창이 예술로 완성되는 경지의 음악임을 강조하고 있는 시란다.  

이런 예술의 세계를 그린 김영랑의 시, 거문고를 한 편 더 읽어 보자.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老人)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 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김영랑, 거문고)

이 시는 당연히 일제 강점기의 울분을 노래한 것이란다.
해가 스무 번 바뀌었단 것은 나라를 잃은 지 20년이 되었단 말이겠지.
검은 벽도 왠지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구나.  

 

(그림을 찾다 보니 이 그림이 이뻐서 넣었는데, 줄 수를 보니 가야금이구나. 거문고는 6현이야. 가야금은 12현이고.
아래 그림이 거문고란다.) 

기린은 전설 속 상상의 동물이야.
성인(聖人)이 이 세상에 나올 징조로 나타난다는 상상 속의 동물이지.
화자의 '기린'은 바로 거문고란다. 

거문고를 퉁~ 흔들고 간 노인.
이 구절의 '퉁' 한 글자는 <북>의 '떡 궁'과 마찬가지야.
거문고의 예술혼이 가득 담긴 소리지. 

거문고를 황홀하게 연주하던 노인의 손은
이제 어느 연주석에 높이 읹았는지,
땅의 외로운 기린 따위야 하마 잊고 만 것인지... 

이십 년이 넘도록 울려 퍼지지 못하는 예술의 한이 가득 담겨있는 시다.
거친 들에는 이리 떼가 가득 몰려다니고,
사람처럼 보이는 잔나비(원숭이)들이 끽끽거릴 뿐,
북소리 떡 궁, 울리며 소리를 하고,
점잖게 앉아 거문고 연주하던 아름답던 예술혼이 울려퍼지던 평화로운 날들은 기약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조선의 문화가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을 몹시 질투했어.
그래서 민요와 모든 풍악을 금지하고,
오로지 기생들만 노래할 수 있게 했단다.
그래서 지금도 국악이라면 술집 여자들이 계승한 것처럼 보일 뿐이지. 

해가 한 해 더 가는데도,
희망은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시를 닫고 있어.
억압된 시대, 절망의 시대를 전통 악기 거문고를 들어서 이야기하고 있지. 

화자가 희구하는 세상은 거문고 소리 퉁~ 울려나는 높고 아름다운 곳인데,
세상에서 끽끽대는 소리는 이리떼와 잔나비떼의 상스런 문화 뿐이란 상실의 비애가 가득하다.  

오늘은 김영랑의 시 두 편을 읽었어. 
두 편 모두 전통 음악을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그 상실감을 짙은 애수와 함께 풀어내고 있지.
전라도 사투리(맘놓고 울들 못한다)도 화자의 비애를 더 짙게 만들고 있지. 

시험이야 늘 치는 것이라도,
또 시험마다 긴장감이 따른단다. 

시험장에서 마음 속에 느린 거문고 소리라도 퉁 울리듯 이런 시를 읽어보는 일도 좋겠다.
판소리 명창의 마음에 꼭 맞는 떡 꿍, 북소리라도 들리듯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이 필요하니 말이야. 

시험 마치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지?
그건 시험 마치는 시간까지는 잠시만 더 미뤄두렴.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해서 그런 생각으로도 금세 흔들거리는 거란다.
오로지 시험 시간엔 시험에만 집중하고,
또 너무 걱정같은 건 하지 말기 바란다. 

네가 한 몫만큼 얻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머지는 하느님이 도와주시는 것이고.
착하게 살았으니 행운도 함께 따라줄 거다. 

날씨도 푸근하니 크게 떨릴 일은 없을 듯해서 다행이다.
아무튼, 고생한 만큼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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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바람 2011-11-27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여기 참 좋네요.
저도 문학을 좋아하긴 하는데... 생활에 쪼달려 책읽을 시간이...
종종 놀러올게요.

글샘 2011-11-28 01:28   좋아요 0 | URL
책읽을 시간은 만들기 나름 아닐까요? ^^
종종 오세요~
 

금목서 향기가 세상에 가득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모과향 비슷한 꽃향기로 대기를 가득채우는 꽃나무가 금목서인데,
금목서 향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걸 보면,
사람의 향기도 저렇게 넓게넓게 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은 금목서 향기가 흩날리는 풍경을 틈타,
치자꽃 향기를 음미해 보자. 

박규리의 '치자꽃 설화'를 우선 읽어 보렴.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 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박규리, 치자꽃 설화) 

설화는 구비전승되는 이야기야.
치자꽃에는 왠지 이런 서러운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다는 시를 쓰고 있지.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서 보내고는
돌계단을 올라가는 스님이 울고 있는 걸, 화자는 보고 말았어. 

캬, 요것만 가지고도 짠한 순애보(순수한 사랑의 기록)가 한편 떠오르는구나. 

 

스님은 고요한 법당 안에 들어가시고,
문 한 쪽만 열어 두고는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
빗물에 우는 소리처럼... 

사랑하던 사람과의 인연을 끊어야 하는데,
그 밀어내던 자신이 스스로 <못>이 되어
스스로의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처럼 여겨진대.
그렇게 목탁소리만 은은하게 이어짐으로써 스님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주지. 

화자는 스님의 슬픈 순애보에 가슴이 짠해서 계속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데,
여자는 돌아가지 않고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더래.
그러다 일어나더니
산길을 휘청이며
마치 물살에 떠내려가듯 휘청거리며 내려갔대.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도 듣고(떨어지고)
그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소리만 산허리에 가득하구나.
하필이면, 짝을 잃은 그 순간에 짝을 찾는 소리라니... 

화자는 내려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생각해.
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구나.
한 번도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구나. 

그러고 있는데,
방 안의 스님은
잿빛 승복만 입은 채
날이 저물도록 경을 읽는 소리로만 남았어. 

떠난 사람보다
더 서럽게 보이는 스님의 잿빛 등과 독경소리. 

아, 화자는 그만, 독경소리가 너무 싫어 졌나봐.
마치 자신이 버림받은 여자가 된 듯,
스님의 버리려는 독경소리가,
오히려 더 깊어가는 사랑인 것처럼 들려서
화자 역시 하염없이 산길에 앉아 있대. 

독경소리는 이렇게 중의적으로 쓰였지.
스님은 여인을 보내고 잊으려고 독경을 시작했지만,
그 독경소리 <저물도록 그치지 않는> 걸 보면, 마음 속에서 잊히지 않는 거야. 

그게 마지막 부분의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이란 표현과 딱 맞아 떨어지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을 돌려보내며 겪는 이별의 정한을
마치 멜로 드라마 한 편 보는 듯,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시란다. 

치자꽃이 나온 김에, 이해인 님의 시도 한 편 읽어 보렴.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 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 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이해인,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수녀님은 치자꽃을 보면서,
사람을 만날 때 설레는 마음을 계속 유지하였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기를 맡는다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그런다면 삶이 곧 꽃밭이 될 것을... 

이렇게 생각한단다. 

치자꽃 향기를 맡으면서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고
향기로운 날들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아,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만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 거란다. 

오늘은 작년 모의고사에 난 시조 중에 아이들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던 시조를 한 편 읽어 보자.

우뚝이 곧게 서니 본받음 직하다마는
구름 깊은 골에 알 이 있어 찾아오랴
이제나 광야에 옮겨 모두 보게 하여라<제5수>

세상이 하 수상하니 나를 본들 반길런가
왕기순인(枉己順人)*하여 내 어데 옮아 가료
산 좋고 물 좋은 골에 삼긴 대로 늙으리라<제6수>

천황씨(天皇氏) 처음부터 이 심산에 혼자 있어
너 보고 반기기를 몇 사람 지냈던고
만고의 허다 영웅을 들어 보려 하노라<제7수>

소허(巢許)* 지낸 후에 엄 처사*를 만났다가
아쉽게 여의고 알 이 없이 버려 있더니
오늘사 또 너를 만나니 시운인가 하노라<제8수> - 박인로,「입암이십구곡(立巖二十九曲)」- 
*왕기순인 : 자기 몸을 굽혀 남을 좇음. 
**소허 :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상고 시대의 대표적인 은자(隱者).
***엄 처사 : 엄자릉(嚴子陵). 한나라 광무제 때의 은자(隱者).

이 시조는 박인로가 '입암(선바위)'을 대상으로 쓴 시조 29수의 5~8수가 되겠다. 

제5수, 7수는 화자의 말이고,
제6수, 8수는 바위의 말이라고 한다.
한 수씩 뜻을 살펴 보자꾸나.

제5수 [화자의 말]
우뚝이 곧게 서니 본받음 직하다마는
구름 깊은 골에 알 이 있어 찾아오랴
이제나 광야에 옮겨 모두 보게 하여라<제5수>

화자가 입암(우뚝 선 바위)을 보고 "너는 우뚝 곧게 서서 본받을 게 많다."고 했어.
그런데 도회지에 있지 않고 구름 깊은 골짜기에 있어 아는 이가 찾아오겠느냐고 한다.
이제라도 넓은 광야로 옮겨 모두들 보게 하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냈어.

<영월의 입암> 

화자가 바위를 보고 캬, 너 멋지군.
근데 이렇게 촌구석에 있음 누가 알아나 주겠냐?
야, 너 슈스케 한번 나가 볼래? 이런 거지. 

그랬더니 바위가 제6수에서 이렇게 대답했어.

[바위의 대답]

세상이 하 수상하니 나[바위]를 본들 반길런가
왕기순인(枉己順人)*하여 내[바위] 어데 옮아 가료
산 좋고 물 좋은 골에 삼긴 대로 늙으리라<제6수>

세상이 하도 수상하다 보니(어지럽다 보니) 나를 봐도 별로 반기지도 않을 거 같아.
내 몸을 굽히고 남을 쫓아서 어디로 가란 말이야?
그러니 산좋고 물좋은 골짜기에 생긴대로 늙고 싶다. 

그러니깐, 야, 슈스케 같은 데 나가봤자, 별거 있겠어?
세상은 노래 잘한다고 가수 만들어 주는 거 아니란말야.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 지 잘 알면서?
사람들이 나 본다고 좋아할지 어떨지도 모르잖아.
피디한테 수구리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야 하고... 하이고...
차라리 산좋고 물좋은 여기서 숨어 사는 게 내 팔자에 딱 맞아.  

그러니깐, 다시 화자가 한 마디 거들지.

[화자의 말]

천황씨(天皇氏) 처음부터 이 심산에 혼자 있어
너[바위] 보고 반기기를 몇 사람 지냈던고
만고의 허다 영웅을 들어 보려 하노라<제7수>

아냐, 넌 정말 훌륭해.
네가 처음부터 이 산속에 혼자 있어서 그래.
너보고 멋지다고, 네 숨은 재주를 알아주고 반기던 사람이 몇이나 만났겠어?
하고 많은 영웅들의 이름을 들어서 너랑 비교해 보고 싶다.
화자는 정말 바위가 멋진 존재임을,
그래서 세상 누구라도 바위한테 홀딱 반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지. 

다시 바위가 대답하고 있어.

[바위의 대답]

소허(巢許)* 지낸 후에 엄 처사*를 만났다가
아쉽게 여의고 알 이 없이 버려 있더니
오늘사 또 너[화자]를 만나니 시운인가 하노라<제8수> 

소부와 허유, 소허는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은자들이지.
소부, 허유랑 지내다가 다시 엄처사를 만났대.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서 지냈단 거지. 

이제 소허와 엄처사를 아쉽게 이별하고
알아주는 이 없이 버려져 있은 지 오래였는데,
오늘에서야 또 나를 알아주는 너(화자)를 만나니,
시절 인연이 운이 맞는 것 같다.
우리 한 번 잘해보자. 

이런 거지.  

박인로가 '입암'더러 '은자'라고 추켜세우면서
너, 세상에 나가면 인기 좋을 거야.
왜 세상 사람들이 너를 몰라보는지 몰라...하고 아쉬워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투정인지도 모르겠다.
난 박인로가 투정부리는 것처럼 보이거든. ^^ 

왜 세상은 재주 많은 나를 알아보지 않은 거삼? 이러고 말이지. 

사람이 일단 뭐든 무기가 있어야 해.
나들보다 이것은 잘할 자신 있다... 이런 것.
그걸 갖고 있으면, 박인로처럼, 시절 인연을 기다리면 되겠지. 

만리 밖까지 향기가 퍼진다는 만리향, 금목서를 다른 이름으로 그렇게도 부르더구나.
향기가 듬뿍 담긴 사람이라면,
어디 숨어 있더라도,
누군가 알아볼 때가 있겠지?  

우리 아들이 금목서처럼,
만리향처럼
은은한 향기로 가득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아빠가 몇 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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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엔 여름같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환절기다.
요즘 계절과 계절 사이 '간절기'란 말도 있을 정도로
일교차가 크니 건강에 유의해야겠다.
(환절기라면 계절이 쉽게 바뀐다는 느낌인데, 간절기라 하니 제법 사이가 긴 느낌이지?) 

오늘은 정현종 시인의 시를 한 수 읽어 보자.
제목은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이야.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 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제목에서 주제가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지.
'공'이란 소재의 특징은 여러 거지야.
둥글고, 놀이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시인은 공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하고 있다. 

떨어지는 일은 좌절스러운 일이지.
살다 보면,
성적이 떨어지기도 하고,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기분이 떨어지기도(다운된다고 하지) 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럴 때, 둥근 공은
위 아래가 없으므로
쓰러진다는 개념도 없이
다시 회복하는 속성에 의미를 부여한 거야. 

첫 행,
<그래 살아 봐야지>가 화자의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시 제목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과 첫 행 '그래 살아 봐야지'만 가지고도 주제가 확 살아나지?

공을 '쓰러지는 법이 없는 탄력의 나라의 왕자'라고 표현했구나.
왕자는 고귀한 존재잖아.
살면서 지쳐 쓰러지려할 때,
쓰러지는 법이 없는 탄력 100% 왕자가 되자는 멋진 표현을 오늘 만난다. 

둥근 공의 꼴은
언제나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마찰력이 가장 작은 모습이지.
그리고 탄성이 강해서 가볍게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야. 

삶은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을 무엇에 비유하면 가장 적합할지를 생각해 보니,
떨어져도 쓰러지는 법 없이 튀어오르는 공,
딱, 그것 같더라는 발견이 신선한 시란다.

그래 살아봐야지...하는 말에서
살기 힘겹다는 심상이 숨어 있어.
그렇지만, "떨어져도 튀는", "쓰러지는 법이 없는",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공의 속성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는 생에 대한 의지와 자세를 가다듬어 보자는 의도의 시겠다. 

실존주의 작가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어.
시지프스는 신의 미움을 사서 산 정상에 바위를 올려 놓으라는 형벌을 받아.
정상에 올려 놓으면 다시 밑으로 굴러가는 바위 때문에
시지프스는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그러나 시지프는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대로 바위를 굴려 정상에 올리려는 행위를 반복하게 돼. 

삶이란 이렇게 형벌과도 같이,
무의미한 삶을 날마다 반복하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야. 

그럴 때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본 '의지의 시'를 읽어볼 만 한 일 아닐까?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시를 한 편 더 볼까?
서정주의 시를 한 수 읽어 보자.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서정주, 꽃밭의 독백-사소 단장-) 

[원주(原註)] 사소(娑蘇) : 사소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처녀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수행을 간 일이 있는데, 이 글은 떠나기 전 그의 집 꽃밭에서의 독백.

이 시는 간혹 시험에 나오면 왕창 틀려 주시는 어려운 시 중의 하나 되시겠다. 

제목이 사소 단장이야. 사소 부인의 짧은 노래.
사소 부인이 산으로 신선수행 가기 전에 집 꽃밭에서 독백을 한 거래.

경주 선도산에 신모가 있는데 그 이름을 사소라 했다.
일찍이 신선술을 터득하여 멀리 바다 건너 서쪽 나라로부터 해동으로 들어왔다.
솔개가 날아가 내리는 곳에 집을 지으라는 계시를 받고서 선도산에 정착하여 신선이 되었다.
사소가 처음 삼한 땅에 이르러 자식을 낳으니, 그가 동국의 첫 왕이 되엇다.
무릇 혁거세와 알영의 유래를 말하는 것이리라.

서정주는 왜 이런 전설 속 이야기를 끄집어 냈을까?
도대체 설화 속의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주제를 연결해 보려 했던 걸까? 

이 시를 읽을 때, '꽃아'를 어떻게 소리내어 읽을까도 문제야. ^^
[꼬차] [꼬사] [꼬다] 등 다양하게 읽기도 하지만,
'-아'는 무엇을 부르는 '호격 조사'로 실질적 의미가 없으니 이어지는 대로 소리내는 게 맞아.
첫번째 [꼬차] 이렇게 읽는 거지.  

화자가 추구하는 바는 첫 행에 바로 등장한다.
<노래>가 그 중 가장 낫대.
무엇 중에서 가장 나을까? 비교 대상은? 뒤에서 생각해 보자. 

구름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바닷가까지 네 발굽을 치며 달려간 말 이야기를 보면,
화자는 말타기를 즐기는 신선 같다. 
말타기를 해도,
바닷가에 가서 '멎어버리고 말'았대.
이제 <노래>와 비교된 게 하나 나왔지. <말타기>
그 중에 노래가 가장 좋단다. 

계속 볼까? 

산돼지를 사냥하고, 매사냥도 했어.
그런 들짐승 고기에도 이미 입맛을 잃어버린 것.
또 하나의 취미가 나왔지? <사냥>
노래, 말타기, 사냥, 이런 것 중에 노래가 가장 낫대.
왜냐면... 화자는 사소 부인이지만, 시인인 서정주의 분신이니깐. 

그리곤, 뜬금없이 '꽃'을 찾는다.
아침마다 피어나는 꽃.
좋기는 꽃이 제일 좋대.
꽃이 피는 일은 한 세상이 열리는 <개벽>과도 같은 창조의 힘이 느껴지겠지. 

그런데, 화자는 꽃이 제일 좋은데,
헤엄을 자유로이 칠 줄 모르고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출 뿐인 어린애처럼,
꽃의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래. 

꽃이 피는 섭리를,
그 아름다운 향기와 그 찬란한 빛깔의 아름다운 창조를 꿈꾸는 화자에게
꽃은 문을 열고 그를 받아주지 않는 모양이야. 

그래서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이렇게 불러 보지만,
당근, 꽃은 열릴 리가 없지. 

아마도, 꽃을 여는 길은
자연의 섭리, 위대한 벼락이나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화자는 애처롭게 불러본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하면서... 

서정주가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정말 최고의 경지란다.
그렇지만, 그도 추천사에서 그네에 매달린 존재처럼 한계 의식을 느꼈던 거야.
이 시에서도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뻔히 한계 의식에 직면하는 시인을 발견하게 된다.

주제는 우주의 비밀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 또는 그렇게 시를 잘 쓰고자 하는 열망.
가장 멋진 '노래'를 짓고 싶으나 좌절하게 되는 한계 의식, 같은 거라고 보면 될 거야. 

시를 잘 쓰고 싶은 화자.
노래가 가장 나은데,
그 노래는 마치 문 열리지 않는 꽃처럼, 화자에게는 막막한 대상이라는 좌절감. 

그래도 화자는 <벼락과 해일>만이 길이라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한계의식을 느끼지만,
제우스 신처럼 벼락을 쳐서 완전한 세계에 도달할 수는 없는 존재임을 명백히 알지만,
그래도 간절히 빌어 보는 마음이 애절하게 느껴지지. 

아빠도 무슨 일이든 이렇게 간절히 바라면 이뤄지는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해.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가 '생생하게 꿈꾸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시크릿>이란 유명한 책에서도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고 말이야.
막연한 소망만으로는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간절히 바라고, 절절히 노력하면, 나머지 부분은 운명이 채워줄 수도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게 하는 시야. 

되튀는 공처럼 탄력성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힘을 내서 사는 자세.
오늘 한번 생각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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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9-2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오랜만에 문학수업을 들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전 쓰러지는 적이 없는 탄력의 나라의 공주가 될래요! ㅎ

글샘 2011-09-28 09:29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공주님 ^^
 

하늘을 보면 어디론가 훨훨 날아갈 것 같은 가을날이다.

오늘은 김명인의 <그 나무>란 시를 읽어 보자.
삶이란 게 꼭 남들보다 '일찍' 뭘 많이 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난 늘 한다마는,
너는 어떤 생각인지 시를 읽으면서 느껴 보렴.  

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 그 나무
시멘트 개울 한 구석으로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봄은 그 나무에게만 더디고 더뎌서
꽃철 이미 지난 줄도 모르는지,
그래도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 어딘가 안쓰러웠지요.
늦된 나무가 비로소 밝혀드는 꽃불 성화.
환하게 타오를 것이므로 나도 이미 길이 끝난 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 있었지요.
산에서 내려 두 달거리나 제자릴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던 저 난만한 봄길 어디,
늦깎이 깨달음 함께 얻으려고 한나절
나도 병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렸지요.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무거운 청록으로 여름도 지치고 말면
불타는 소신공양* 틈새 가난한 소지(燒紙)**,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김명인, 그 나무)


*소신공양 : 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침.
**소지 :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태워서 공중에 올리는 종이

화자는 '벚꽃 가로' 를 따라 걷고 있었대.
벚꽃은 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우는 것이 특징이지.
그런데, 어떤 나무 한 그루는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듯,
늦되게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단 거지. 

그걸 보고 화자는 깨달음을 얻게 돼. 

"아, 우리는 너무 기다릴 줄 모르는 거 아닐까?
남들이 꽃필 때 꼭 따라서 꽃피는 것만이 최선일까?
나무에 따라서 늦된 것도 있듯,
사람도 조금 이를 수도 조금 늦될 수도 있는 것을,
사람들은 제 기준에 따라 늦된 것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구나." 뭐, 이런 느낌. 

그 나무는 왠지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진 것처럼,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대. 

그렇지만, 그 나무 역시,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멍울들을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것이었어. 

늦된 나무도
조금만 기다려 주면
비로소 환하게 꽃불 성화를 밝혀 들고
환하게 타오를 것임을 생각하고
화자는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서 반성해 보았단다. 

봄이 된 지 두 달 넘도록 헤매고 다녔던 것처럼 보이는 늦된 나무.
그 나무도 꽃이 지면, 푸릇한 잎새 매달겠지?
청록으로 여름이 지나는 시절이 되면,
불타듯 몸사르며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의 계절이 되듯,
그 나무 역시 몸바쳐 낙엽을 떨구일 수 있겠지? 
그렇게 되길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나도 아들이 남들보다 훨씬 앞서 나가길 바라지 않는단다.
다만 부모의 마음은 남들보다 아들이 활짝 꽃피울 날이 언젠가 오길
늦되지만 자신의 속에 담긴 꽃망울이 화사하게 피어난 모습을 자랑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일 거야. 

나무가 꽃망울을 맺히게 하고, 꽃을 피우고,
녹색 잎사귀로 치열하게 광합성을 하듯,
이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런 치열한 삶이 담겨있다면,
늦된 나무라 하더라도 완성된 나무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엔 '작은 것들을 노래하는 시인' 이건청의 '하류'란 시를 읽어 보자.

거기 나무가 있었네
노을 속엔
언제나 기러기가 살았네
붉은 노을이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면
거기 나무를 세워두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네
쏟아져 내리는 은하수 하늘 아래
창문을 열고 바라보았네
발뒤축을 들고 바라보았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희미한 하류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들었네
나무가 아이의 잠자리를 찾아와
가슴을 다독여 주고 돌아가곤 했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일만 마리 매미 소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네
모든 대답이 거기 있었네
그늘은 백사장이고 시냇물이었으며
삘기풀이고 뜸부기 알이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이제는 무너져 흩어져 버렸지만
둥치마저 타 버려 재가 돼 버렸지만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던 노을
스쳐가는 늦 기러기 몇 마리 있으리
귀 기울이고 다가서 보네
까마득한 하류에 나무가 있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이건청, 하류) 

이 시는 '거기 나무가 있었네'를 반복하는 사이사이에 생각을 밀어넣고 있어.
그래서 한 연으로 된 시인데도,
마치 연 구분이 된 것처럼 느껴지지. 

'거기 나무가 있었네'의 반복으로 아쉬운 마음이 반복되어 강조되기도 해.  

기러기 날아가던 노을. 
금빛 붉은 노을이 찬란하게 퍼지던 저녁
집으로 돌아와 은하수를 바라보던 시절.
유년 시절의 추억 속에 가장 인상적인 소재는 '나무'지. 

그 나무는
희미한 강물 소리 자장가 삼아 잠들던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가슴을 다독여 주는 어머니나 할머니처럼
위안을 받던 존재였지. 

여름이면 수만 마리 매미 울음과 함께 그늘을 지어 주고,
그 고향, 그 나무 아래서 '모든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해.
결국, 지금은 어디서도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아쉬움을,
그 시절과 대비하여 나타내고 있어 보인단다. 

그런데, 이제는 그 나무가 무너져 흩어지고 말았대.
나무 둥치마저 타 버려 재가 되어버렸대. 

사라져버린 유년 시절의 추억을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던 노을>이라고 해서 공감각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시각적 노을을 청각적으로 울림처럼 표현한 거지.
예전에 있었던 기러기 역시 그리움의 대상이야. 

귀 기울이고 다가서서
까마득한 옛날,
그 하류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 화자가 상상되니? 

너는 어린 시절이라면 어떤 추억이 남아있을까?
이 시의 주제는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거란다.
사람은 누구나 유년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여기기 쉽지.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면 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야.  

이제 '하류'처럼 고요하게 물소리 들리지 않던 시절을 지나서,
콸콸거리는 상류 지역을 통과해야 할 삶의 고비를 맞게 될지도 몰라.
직업을 선택해야 하고,
배우자도 선택해야 하는 '청춘'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시기란다.
식물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듯,
인간에게도 청춘은 잔인한 계절이야. 

부지런히 양분을 흡수하여 꽃을 피우고 생명력을 쭉쭉 퍼뜨리는 식물의 봄처럼,
인간의 청춘 역시 삶의 생명력으로 가득차 넘쳐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엘리엇은 <황무지>란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쓰기도 했단다.
세계대전 이후의 세상을 황무지에 비유한 시였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엘리엇, 황무지)

겨울이 오히려 안정적이었고,
봄에는 뿌리가 활동적이어야 하듯 봄은 힘든 시기이기도 한 거야. 

무엇이든 꽃피우고 열매맺는 일은 편안하지만은 않은 거란다.
고단한 삽질에서
수고로운 땀방울에서
인생이든 꽃나무든 꽃도 피우고 열매도 열리는 게 삶의 섭리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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