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맛 기행 -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 바다맛 기행 1
김준 지음 / 자연과생태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원하지 않아도 여러 가지 배경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가진다. 제일 크게는 성별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고, 성씨에 따라서(전주 이씨나 경주 김씨 등)도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이 사회에서는 부모의 경제력과 학업성적 그리고 직업 등이 아마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고향과 현재 사는 지역에 따라 갖게 되는 정체성도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부산싸나이’였지만, 지금은 그저 평범한 서울남성이다. 말투도 바뀌었고,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가끔 고향 친구나 가족과 전화할 때는 예전의 그 억센 말투가 다시 나오곤 하지만, 평소에는 부산 사투리를 쓸 일이 없다. 빠르고 거친 말투가 차분하고 느려지니까 성격도 확실히 바뀌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가장 자주 들었던 얘기는 ‘해산물’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부산에서 왔으면 회 좋아하겠네. 다음에 회 먹으러 같이 가자고. 내가 한 잔 살 테니.” 한때 내 직속상관이었던 분은 본인의 부산출신 친구 얘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그 친구가 그렇게 해산물을 그리워했다고 과장해서 말하곤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일부러 데리고 가준 횟집이 나는 영 별로였다. 요즘은 새벽에 잡은 해산물이 곧바로 서울로 온다지만, 그래도 바닷가에서 먹는 거랑 서울 시내에서 먹는 거랑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건 아무리 말로 설명해줘도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확실히 맛은 그저 혀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이 바로 그런 점이다. 그냥 그저 먹는 것과 잘 알고 먹는 것은 다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단순히 술안주로 먹어왔던 수많은 해산물들이 다르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겨울에 즐겨 먹었던 굴이었건만, 실은 그때가 가장 맛있는 때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사람들이 ‘가을 전어’라고 말할 때에도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 왜 가을에 맛있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뿐인가 올겨울 과메기를 맛있게 많이 먹었건만, 왜 구룡포 과메기가 유명한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밴댕이가 사실은 반지라는 이름의 생선이라는 것. 오징어가 기후변화 때문에 동해를 떠나 남해안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잡초로 여겨지던 함초(퉁퉁마디)가 사실은 부작용이 없는 명약이었다는 것. 김 양식장에서 김값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 웬수로 여겨졌던 매생이가 요즘은 청정무공해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 등 처음 알게 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적 호기심을 마구 자극했다.

 

안타까운 사실들도 많았다. 드넓었던 갯벌을 게판으로 만들었던 칠게가 무분별한 개발과 어민들의 과욕 때문에 사라져버렸고, 그래서 철새들도 발길을 끊었다는 것. 과메기의 원조였던 청어가 더는 잡히지 않아 이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는 사실. 그 흔했던 명태를 더 이상 구경하기 어려워 현상금까지 걸렸다는 사실 등을 읽으며 언젠가 우리가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다시는 구경하기 어려운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책에 의하면 전어도 몇 해째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했다. 흑산도 홍어도 남획으로 어장이 사라졌다가 간신히 회복되는 중이라고 했다. 과메기는 다행히 비슷한 맛이 나는 꽁치로 대체되었지만, 이제 청어 과메기는 더는 맛보기 어렵다.

 

이 책에는 다양한 해산물들에 대한 지식도 들어있지만,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도 들어있다. 이게 또 무척 흥미롭다. 과연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이들을 먹었던 건지. 당시에는 어떻게 먹었던 건지 하는 것들 말이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 바로 정약전의 [자산어보]다. 정약용의 형으로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어부들에게서 듣고 배운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해산물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서울 사람들이 전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전복이나 밴댕이를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해 따로 관리를 파견하여 관청을 두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단순히 바다생물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점이 무척 반갑고 좋다.

 

바다맛 기행은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여행 책이 아니다. 생물에 대한 지식과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다 읽고 보니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라는 부제를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저자가 말한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해산물을 찾아 먹어봐야겠다. 여름에는 양반들만 먹었다는 민어복달임을 꼭 먹어보고 싶고 또 송도에서 된장빵으로 병어도 먹어보고 싶다. 칼로 썰지 않은 전복을 그대로 베어 먹으면 진짜 더 맛있는지도 궁금하다. 아! 생각만 해도 자꾸 입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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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2-1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감은빛님 리류를 읽으니 절로 침이 입에 괴네요.저도 이책 읽어봐야 될것 같아요^^

감은빛 2013-02-18 12: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생각만해도 자꾸만 침이 흘러요. ^^
한번 읽어보세요. 재밌어요.

2013-02-18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8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