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알프레트 쿠빈 지음, 홍진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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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쿠빈(‘알프레드 쿠빈’으로도 표기할 수 있다, Alfred Kubin)은 국내에서는 생소한 화가다. 쿠빈은 칸딘스키와 함께 첫 번째 ‘청기사’ 그룹전에 참여했고, E. A. 포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등을 위한 삽화를 제작했다. 쿠빈은 괴생물체, 지옥, 인간의 욕망과 타락 등 상상과 무의식의 세계를 기괴한 그림체로 표현했다. 그래서 쿠빈의 그림은 어느 하나 불쾌하지 않은 게 없다.

 

쿠빈은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고, 친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여동생과 재혼했는데, 두 번째로 맞이한 아내 역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섬약한 감수성을 타고난 데다 병약한 쿠빈에게는 학교생활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견디기 힘들었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쿠빈은 어머니의 무덤에 찾아가 그곳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900년대 초반부터 쿠빈은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창 잘 나가던 중에 쿠빈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족의 죽음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진 쿠빈은 또다시 우울증에 빠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친구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쿠빈은 우울증에 억눌려 잠잠했던 창작 욕구를 마음껏 발산했고, 그는 4주 만에 자신의 유일한 장편소설 《다른 한편》을 완성했다. 이 소설은 1909년에 발표되었다.

 

기괴하고 환상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소설답게 환상적인 세계와 초자연 현상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소설의 주인공은 무명이며 직업은 화가다. 어느 날 주인공의 친구 클라우스 파테라는 자신이 세운 ‘꿈의 왕국 페를레’에 주인공을 초대한다. 주인공과 그의 아내는 아시아 대륙에 위치한 꿈의 왕국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정착하여 생활한다. 꿈의 왕국은 외부 세계의 침입을 차단하는 벽으로 둘러싸인 폐쇄된 지역이다. 꿈의 왕국을 드나들 수 있는 문도 하나뿐이다. 꿈의 왕국에 사는 ‘꿈의 주민들’은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옛 것을 좋아하며 나날이 진보하는 현대 문화를 거부한다. 파테라는 꿈의 왕국 지배자다. 그러나 그를 만나기가 좀처럼 힘들다. 주인공의 아내는 파테라를 직접 마주친 이후로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꿈의 왕국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은 아내와 함께 이곳을 떠나기로 하지만, 실패한다. 주인공과 이곳 주민들은 알 수 없는 마력을 뿜어내는 파테라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 출신의 억만장자 허큘레스 벨은 꿈의 왕국에 들어온 ‘외부인’이다. 그는 이곳에서 사업을 펼쳐보려고 했으나 파테라는 미국인을 무시한다. 자신의 사업 계획이 틀어지는 상황에 못마땅한 미국인은 꿈의 왕국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그는 ‘루시퍼’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 꿈의 주민들에게 ‘이성’과 ‘진보’의 가치를 전파한다. 또 주민들의 삶을 통제하는 파테라를 비난하는 선전을 펼친다. 미국인은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통해 선동을 일으켜 주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한다. 꿈의 왕국에 내부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상식을 뛰어넘는 기이한 일들이 발생한다.

 

소설 1부, 2부는 주인공이 꿈의 왕국에서 생활하면서 겪게 된 일련의 경험들을 비교적 평이하게 묘사하면서 전개된다. 3부 3장부터 이야기는 ‘범상치 않은 전개’로 흘러가고, 독자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3부 3장 제목은 ‘지옥’이다. 3부 3장은 평화로운 꿈의 왕국이 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민들은 알 수 없는 마력에 이끌리듯 이상 증세를 보인다. 사람을 죽이는 난폭한 행동도 이어진다. 꿈의 왕국 전역에 ‘잠 중독’이 전염병처럼 퍼진다. 이 병에 걸린 주민들은 잠들어 버린다. 그들이 잠든 사이에 동물과 곤충들이 왕국을 점령한다. 꿈의 왕국은 ‘동물의 세계’로 변하고, 퇴폐적 욕망에 사로잡힌 주민들은 무질서한 삶을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주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무의미하다. 번역본의 ‘해설’ 편에 《다른 한편》을 둘러싼 여러 가지 해석들이 소개되어 있다. 나는 이 소설에 대한 기존 해석을 거부하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싶다. 나는 이 소설이 초현실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한 창작 방식인 자동기술법(Automatisme)으로 쓰였을 거로 생각해본다. 주인공의 꿈을 묘사한 2부 5장 마지막 장면(부제는 ‘꿈의 혼란’, 211~214쪽)과 3부 3장 ‘지옥’ 편을 읽어 보면 초현실주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마치 꿈을 꾸듯 작업을 했다. 그들은 논리와 합리, 이성이 무의식을 구속한다고 봤다. 그들이 선호한 자동기술법은 미리 계획하고 다양한 조건을 철저히 계산하는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 무의식 상태에 자신을 내려놓고 표현하는 방식이다. 꿈의 왕국이 몰락하는 과정은 예기치 않은 변모의 연속이다.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 앞에 무너지는 왕국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이 파괴되어 ‘무(無)’로 귀결되는 허무적인 패배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은 이미 낡고 닳아서 힘없는 파테라의 권력을 파괴하는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환기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무시무시한 악몽에서나 볼 법하다. 그런데 주인공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이 무시무시한 사건들을 관찰하면서 담담하게 묘사한다. 기괴한 상황과 아무 상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의 모습은 거대한 세계 하나를 파괴하는 인간 내면의 잔혹성과 대비돼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다른 한편》에 관통하는 그로테스크한 매력은 섬뜩하거나 혐오스러운 것을 순수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쿠빈의 예술적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소설이 보여준 그로테스크는 하나의 고정된 개념으로 간단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그로테스크는 우스꽝스러운 것과 괴기스러운 것 둘 모두를 포괄하는 넓은 범주다. 따라서 《다른 한편》이 발산하는 그로테스크한 매력은 이중의 의미로 구조화되어 있다. 하늘에서 추락한 기구의 파편을 ‘거대한 고래’라고 착각하는 주민들의 반응(294~296쪽), 꿈의 왕국 주민이자 은행가인 알프레트 블루멘슈티히의 죽음(310쪽)은 이 소설의 그로테스크를 보여주는 적절한 장면이다. 쿠빈은 자신의 소설 속에서 죽고 죽이는 게 우스운 일이 된 부조리함을 연출한다. 《다른 한편》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알프레트 쿠빈’이 누군지 모르는 독자라도 상관없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당신도 소설의 ‘마력’에 이끌려 끝까지 다 읽게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소설의 백미는 단연 3부 3장이다. 이 장의 제목은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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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초에 시작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 독서가 이제 막바지에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인 4월 2일에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4월에 읽을 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

 

 

 

4장(『가정주부화의 국제화 : 여성과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은 ‘여성의 가정주부화’ 문제제3세계 여성의 삶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합니다. 18세기 자본주의 진전으로 일터와 주거가 분리된 근대 가족이 형성되면서 남자는 나가서 일하고 여자는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분업’이 이뤄졌습니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여러 가지 경제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을 정점으로 수직적 국제 분업체제를 가속하여 제3세계를 주변부로 편입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자본주의 분업 체제에서 노동이 소외되는 것은 추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동화의 진전과 글로벌 아웃소싱의 확산은 노동비용을 낮춰 자본의 효율성을 높여왔습니다. 마리아 미즈제3세계 국가를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 통합시키는 ‘신국제노동분업’ 전략이 제3세계 여성의 존재를 ‘가정주부’로 규정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제3세계 여성 노동 문제는 세계 자본주의의 노동분업 구조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가정주부라고 하는 이런 신비화는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의 우연한 부산물이 아니다. 이는 이 노동분업을 순조롭게 기능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이는 세계시장을 위해 착취 혹은 극도의 착취를 당하고 있는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가정주부화는 저임금을 정당화한다. 여성이 조직화되지 못하도록 한다. 여성을 개별화한다. 이는 관심을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이미지로, 말하자면 남성의 부양을 받는 ‘진짜’ 가정주부로 쏠리게 만든다. 가정주부화는 대다수 여성에게 실현될 수 없는 일일 뿐 아니라,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파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4장 261~262쪽)

 

 

‘가정주부’가 된 여성은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여성의 노동력은 남편의 소득을 보조하는 활동으로 규정되고, ‘저비용 고 비율’로 취급합니다. 세계 시장은 ‘가정주부화’된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합니다. 기업들은 최대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상품 대부분을 제3세계 여성으로 생산합니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여성은 ‘높은 생산성을 가진 노동력’을 가지고 있지만, 적정한 생활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합니다.

 

 

 

 

 

 

 

 

 

 

 

 

 

 

 

 

 

* [품절] 로버트 H. 프랭크, 필립 쿡 《승자독식사회》(웅진지식하우스, 2008)

 

 

 

국제노동분업은 생산성을 향상할 뿐만 아니라 승자독식 시장(Winner-Take-All)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매우 단순한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는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은 ‘패자’가 되고, 그녀들의 노동을 관리 감독하는 남성들은 ‘승자’가 됩니다. 승자독식 시장 속에서 여성은 거대 자본의 이윤추구에 동원되어 노예 노동을 감수하며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생활하는 제3세계 여성들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미즈는 제3세계 여성 문제를 미온적으로 바라보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또 그녀는 ‘순종적인 아시아 여성’이 성매매에 동원되는 섹스관광산업제3세계 여성의 성적 착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문제라고 말합니다.

 

5장(『여성에 대한 폭력과 계속되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은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자행되는 강압적인 폭력 및 성폭력의 원인을 분석합니다. 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은 ‘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부와 자본을 가진 남성의 가부장적 통제에 받게 됩니다. 임금노동조차 할 수 없는 인도 여성은 결혼 계약에 불리한 상황에 놓입니다. 결혼 예정인 인도 여성은 남편 집에 ‘결혼 지참금’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결혼 지참금을 내지 못하면 신부는 남편과 남편 가족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합니다. 현재 인도에서는 신부에게 받는 결혼 지참금은 엄격히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결혼 지참금에 만족하지 못한 남편과 남편 가족들이 아내를 해코지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아내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갈 정도로 해악이 심한데도 인도인들은 신부 측의 결혼지참금 지불을 인도 고유의 결혼 풍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거나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인도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결혼지참금 살해 반대 캠페인을 진행했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간’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렸습니다.

 

 

 

 

 

 

 

 

 

 

 

 

 

 

 

 

 

 

 

* 로버트 라이트 《도덕적 동물》(사이언스북스, 2003)

* 데이비드 버스 《욕망의 진화》(사이언스북스, 2007)

 

 

 

진화생물학자 또는 일부 진화론자들은 강간이 ‘남성의 생물학적 본능’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남성은 본능적으로 성적 탐닉을 원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분출하기 위해 여성을 학대합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의 유전자 번식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여성의 성 심리, 행동이 자연 선택을 통해 미리 프로그램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죠. 데이비드 버스는 매력적인 여성을 선호하는 남성이 번식에 성공하는 것을 개체 진화에 중요한 요소로 봤습니다. 그리고 강간이 남성에게 하나의 적응 전략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미즈는 강간 문제를 생물학적 근거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인간 사회에서 모든 성폭행 등의 범죄는 ‘남성의 타고난 가학성’과 ‘성적 본능’이 아니라 불평등한 남녀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을 갈취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인 셈이다. 폭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 발명해내야 했다. 세계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 임금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면, 이윤을 착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3세계에서부터 제1세계까지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창녀 등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이다. (5장 363쪽)

 

 

‘불평등한 남녀관계’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에 향한 남성의 폭력과 노동 착취는 ‘자본주의적 축적’을 위한 수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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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3-2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거의 완독하게 되는군요 더구나 대화와 토론을 병행한 알찬 독서여서 부럽네요! 저도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흥미롭군요.^^

cyrus 2018-03-27 11:51   좋아요 0 | URL
사실은 지난 주말에 다 읽었어요. 독서모임 아니었으면 이런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

sprenown 2018-03-27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축하합니다. 좋은 경험이었을거 같아요.이런 사회학 관련서는 개념의 혼란과 이해부족으로 혼자읽기 어려운거 같아요. 제대로 완독하고 이해한다면 독서범위와 지식과 사고의 폭이 확장되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테지만.^^ 저도 기왕 손댔으니 끝까지 읽어 볼랍니다. 제대로 이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ㅎㅎ

cyrus 2018-03-29 13:55   좋아요 1 | URL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해요. 전 읽는 순서가 뒤바뀌었는데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다가 마르크스 사상을 공부하게 됐어요. 공부하면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도 덤으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

sprenown 2018-03-2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직한 독서방법이네요 저도 그러면 좋겠지만 당장은 힘드네요 ㅎㅎ 이제 겨우 2장 읽고 있는데 ..앞으로 자근차근 독서범위를 넓히고 특히 사회과학서에 더 관심을 가져봐야겠어요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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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라면 누구나 과학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연의 힘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대중이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 대중에게 과학의 가치를 이해시켜야 한다. ‘과학을 들려주는(보여주는) 과학자’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대중의 공감을 얻고 소통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야 한다.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해보자는 시도는 오래됐다. 그러나 과학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학 초심자를 위한 기본적인 책이 많은데도 대부분 사람은 과학을 어렵다고 여기고 기피한다. 사람들이 과학책을 안 읽는 것일까, 아니면 과학 초심자를 위한 책이 어려운 것일까?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은 칼 세이건의 말을 빌리면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너무 쉬운 과학’은 단순 암기 지식으로 변질된다. 과학을 공부해서 ‘생각’한다면 급변하는 시대 속에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생긴다. ‘너무 쉬운 과학’은 재미가 없다. ‘너무 쉬운 과학’은 누군가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지식이다.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받은 지식은 머릿속에 남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상대에게 실마리를 주고 스스로 지식을 찾아내도록 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크라테스식 공부법으로 지식을 습득하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이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이 글귀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의 수준을 똑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수준을 알았을 때, 비로소 겸손함을 배우고 진리를 사랑하게 되며 이러한 진리를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이정모 관장이 강조하는 과학 공부는 소크라테스식 공부법과 통한다. 이정모 관장은 과학이 ‘실패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과학자인 본인도 과학은 잘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과학을 공부하면서 겪는 실패와 좌절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겸손한 태도를 갖춘 사람은 진리를 사랑한다. 기꺼이 배울 마음을 가지면 지식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 겸손해진다. 그래야 지식을 배울 마음을 갖게 된다. 과학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소크라테스와 이정모 관장 이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수염’이다. 수염 없는 소크라테스와 이정모 관장의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이정모 관장의 신작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바틀비, 2018)은 살면서 알아두면 좋은 과학 상식만 들려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그냥 암기하고 지나치기 쉬운 과학 상식을 우리 일상과 세상과 엮어가면서 생각 거리를 준다. 우리는 왜 감자와 가지를 먹어야 하는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감자와 가지를 먹는 이유를 모른다.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 감자와 가지를 먹는 건 아닐 거다. 모든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한다. 식물은 태양이 주는 빛을 흡수해 광합성을 하고 열매를 맺는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지구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인간과 동물은 식물을 먹어서 그 에너지의 일부를 사용하는 생명체이다. 광합성 원리를 이해한다면 감자와 가지를 먹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정모 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감자와 가지를 먹고 있는 게 아니라 ‘햇빛을 먹고 있는 것’이다. 편식하는 아이들을 달래는 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아이들은 특히 ‘채소’ 먹기를 아예 거부해 부모의 애가 타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부모는 자신이 먼저 채소를 즐겨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채소도 맛이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해주면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채소를 먹일 때 ‘몸에 좋고 맛도 좋은 햇빛’을 먹고 있다고 알려주면 어떨까.

 

이 세상에 지적인 과학자들이 많은데 간혹 합리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어떤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 실험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학술논문을 표절하는 일을 저지른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은 ‘실패하는 학문’이며 과학자나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과학이 주는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이정모 관장은 과학관이 ‘과학을 보는 곳’이 아니라 ‘과학을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에 당연히 ‘실패’도 포함된다. 손으로 과학을 만져보는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직접 과학 실험을 하면서 실패한 결과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패에 익숙해져야 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고,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실패를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과학관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달라질 것이다. 과학은 무모하다. 그런 ‘무모한 도전’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과학이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이 생소한 분야의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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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26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은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표현이 가장
와 닿네요.

예전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씨
사건의 폐해 그리고 오로지 성공지상주의
에 매몰된 사회에서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cyrus 2018-03-26 16:46   좋아요 0 | URL
정부가 적극적으로 과학 연구에 투자를 하더라도 ‘실패하는 과학‘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지 않은 이상 도전의식이 넘치고 정직한 과학자들을 육성할 수 없어요.

2018-03-26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26 16:48   좋아요 1 | URL
‘비뚤어진 생각을 한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보다 해악이 많고, 위험한 것 같습니다.
 
소생하는 영혼
호즈미준 지음, 함정연 옮김 / 현민시스템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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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미투(#MeToo) 운동’으로 떠들썩하다. 그런데 일본은 미투 운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잠잠한 편이다. 프리랜서 기자 이토 시오리가 유명 방송 기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지만, 그녀의 고백은 미풍에 그쳤다. 다행히 이토를 중심으로 시민들, 지식인 등이 모여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위투재팬(#WeTooJapan)’이라는 단체가 설립되었다. ‘위투재팬’의 영향력이 얼마나 오래 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사실 이토 시오리가 일본 미투 운동의 시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전에 일본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한 사례가 있었다. 1991년 11월 <침묵을 깨고-어린 시절에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증언>이라는 책을 통해 고백한 ‘익명의 성폭력 생존자들’이다. 어린 시절 친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호즈미 준이라는 여성은 ‘익명의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해 자신도 고통의 경험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호즈미 준이 쓴 《소생하는 영혼》은 1994년 일본에 출간되었고, 1996년에 국내 번역본이 나왔다. 호즈미 준은 끔찍한 날 이후로 절망적인 시련이 몸과 마음을 관통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고, 본인 스스로 구멍 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친족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밝혀 어린 시절 불행한 기억의 그림자를 스스로 걷어내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사회도 가부장제 사회이고, 여성 차별 및 성폭력 문제에 침묵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90년대 일본에서는 ‘친족 성폭력’을 뜻하는 정식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 살던 호즈미 준은 자신의 책에 ‘친족 성폭력’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용어를 찾지 못해 부득이하게 ‘근친 강간’을 뜻하는 영어 ‘Incest(인세스트)’를 썼다. 1994년에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우리나라도 성폭력이란 용어가 생경했던 시절이 있었다.

 

친족 성폭력 범죄는 매년 꾸준하게 증가세를 보인다. 아동 성폭력의 80% 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이뤄졌고, 특히 이 가운데 가해자는 ‘친족’이다. 친족 성폭력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친족 성폭력이 일부 가정의 정신 병리적 문제가 낳은 범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친족 성폭력은 가해자가 친족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또 피해 아동은 친족인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거주하며 학대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아 장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친족 성폭력은 쉽게 지울 수 없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20대나 30대가 되어서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적 혼란과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호즈미 준은 두 번이나 이혼했고, 임신과 출산에 거부감을 느끼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렇듯 친족 성폭력은 다른 폭력에 비해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긍정적인 성 정체성 형성, 성인이 되어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 등에 크나큰 손상을 입게 된다.

 

친족 성폭력 피해 아동들 상당수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신고나 상담조차 꺼려한다. 성폭력 사건이 가족의 명예를 떨어뜨린다는 편견 때문에 피해 아동들은 성폭력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못하고, 상담조차도 받지 못한다. 호즈미 준의 어머니는 딸의 고통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들의 죄를 끝까지 방관했다. 어머니는 딸이 아닌 아들의 편에 섰다. 어머니가 딸에 2차 가해를 한 셈이다. 호즈미 준은 이 책에서 어머니에 향한 분노와 원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어머니가 미웠다.

  그토록 궁지에 몰아넣고서도 미안하다는 말도 고사하고, 오히려 소리를 지르며 야단친 여자. 어머니라는 것만으로 나를 누구보다도 상처 낸 사람.

  어머니,

  당신은 한 손에 사랑을 들고, 다른 손엔 예리한 칼을 쥐고 있다. 자식으로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싶지만, 그러나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늘 상처를 입는다. 내 어머니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상처를 주고서도 걸핏하면 부모라고 나를 위협하는 당신이 밉다. 그리곤 부모를 미워하는 스스로를 미워한다. 이 지경이 되도록, 그 자가 부모를 미워하게 만들고, 그래서 죄를 짓도록 만든 당신이 밉다.

  [중략] 어머니는 어째서 내 기대와 희망을 때려 부수는 것일까? (89쪽)

 

 

호즈미 준은 깊게 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에서 출간된 <회복에의 용기>라는 책을 읽는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살면서 견뎌야 했던 고통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회복에의 용기>는 현재까지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최고의 지침서’로 평가받는 책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특별한 용기》(동녘, 2012)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성폭력은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이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의사에 반한 성적 언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라면 이런 문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폭력을 ‘피해자가 수치심을 갖고, 가해자가 되레 억울하게 보이는 범죄’로 여긴다. 피해자가 말하면 말할수록 도리어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편견과 의혹의 시선이 증폭된다. 성폭력 경험을 말하고 크게 외치는 순간이 바로 회복의 시작이다. 성폭력 생존자들은 가해자와 그의 편에 서는 부당한 사회에 향해 욕도 하고, 화를 내고, 소리 지를 수 있다.

 

 

  사람에게 ‘조언’은 필요 없다. 사람은 본래 자기 안에 회복에 필요한 모든 것, 답도, 힘도, 지니고 있다.

  정말 고통스러웠을 때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울게 놔두었던 사람이 있었다. 설교, 조언, 위로, 일체 없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울게 놔두었던, 넉넉한 가슴의 소유자가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닦아준 사람이.

  사람에게 재출발할 용기를 주는 것은 이런 부드러움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부드러움이 생각날 때마다 용기와 격려를 다시 얻게 된다. (252쪽)

 

 

호즈미 준은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조언’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성폭력 생존자는 적극적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자가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면 성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오랫동안 가슴 한편에 묵혀왔던 고통스러운 말들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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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3-2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합니다 멋지네요!
서양도 그렇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가부장제가 고통의 뿌리인거 같아요.
지금의 이자본주의도 마찬가지고요.

cyrus 2018-03-26 11:39   좋아요 0 | URL
sprenown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요즘 제가 읽고 있는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추천합니다. ^^

sprenown 2018-03-2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그렇잖아도 읽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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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뮤리얼 스파크(Muriel Spark)의 대표작이 나오게 돼서 무척 반갑다. 1961년에 발표된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The Prime of Miss Jean Brodie)는 이미 오래전에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번역본 제목은 《느릅나무 밑에서의 수업》(마루, 1993)이다. 이 제목을 보면 왜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희곡 《느릅나무 밑의 욕망》이 생각나는 걸까? 아무튼, 1993년에 나온 번역본은 절판됐다가 이번에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했다.

 

진 브로디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녀는 마샤 블레인 여학교 교사로 일한다. 브로디는 교정에 있는 느릅나무 밑에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한다. ‘느릅나무 밑에서의 수업’을 받는 다섯 명의 학생들(샌디 스트레인저, 로즈 스탠리, 유니스 가드너, 제니 그레이, 메리 맥그레거)은 학교 내에서 ‘브로디 무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브로디는 학생들에게 진취적으로 살아가라고 강조한다. 그럴 때마다 브로디는 제자들을 ‘크림 중의 크림(crème de la crème: ‘최고’를 뜻하는 프랑스어)’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감이 가득한 브로디는 아직 자신의 전성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학교 측은 보통 교사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브로디를 사직시키려는 방안을 생각해보지만, 브로디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브로디가 생각하는 ‘전성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교정 느릅나무 밑에서 브로디 무리를 가르치는 일을 의미한다. 브로디는 자신의 뚜렷한 교육관에 신념을 가지고 브로디 무리를 가르친다. 그녀는 주입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여학교의 교육 방식을 비판하고 거부하는데, 자신의 교육 방식은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머리에 많은 정보를 쑤셔넣는 것이 교장의 방식이야. 내 방법은 지식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내 방식이 어원적 의미에서 더 진정한 교육이라 할 수 있지. 교장은 내가 소녀들의 머리에 어떤 생각을 집어넣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그건 실은 교장의 방식이야. 내 방식은 그 반대라고. 내가 너희의 머리에 어떤 생각을 집어넣었다는 소리를 하도록 그냥 두어선 절대 안 돼. 샌디, 교육의 의미가 뭐라고?”

  “밖으로 이끄는 거요.”

 

(49쪽)

 

 

브로디 무리는 다른 교사들의 수업에서 느낄 수 없는 브로디식 교육법에 매료된다. 브로디를 따르는 다섯 명의 학생들은 학교가 자신들을 ‘브로디 무리’라고 부르는 것에 희열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들이 ‘브로디 무리’에 속한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심리학자 매슬로(Maslow)는 인간은 욕구 충족을 위해 행동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기 안에 내재한 안전과 소속감, 자아존중,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이 소설에 적용해볼 수 있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에 비추어서 소설에서 드러난 브로디 무리의 정서적 반응 및 변화를 유추할 수 있다. 욕구 단계설에 따르면 브로디 무리는 3단계4단계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 3단계는 집단에 소속되려는 욕구이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외로움으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4단계는 타인의 인정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이다. 자신감을 느끼고, 자신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느끼려는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이 욕구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인간은 열등감을 느낀다. 브로디는 4단계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자신만의 교육 방식으로 브로디 무리를 가르치는 위치에 오른 ‘전성기’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브로디 무리는 ‘크림 중의 크림’으로 성장해서 전성기를 누리고 싶어 한다. 브로디 무리는 4단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브로디의 가르침을 따른다.

 

인간이 행동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함이다. 브로디는 자기 인정 욕구가 강한 편이다. 그녀는 자신을 지지하는 음악 교사 고든 로더, 미술 교사 테디 로이드와 연애를 한다. 브로디도 ‘인간’이고, 연인을 사귀고 싶어 하는 사랑 욕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연애는 실패로 끝나게 되고, 좌절한 브로디는 자신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한탄한다. 사랑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탓인지 브로디는 실연의 상처를 애써 숨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연애 경험이 사직 근거가 될 수 없다면서 자신의 사랑은 육체적 관계가 없는 플라토닉 러브라고 강조한다. 브로디는 자신의 진취적인 이미지가 훼손될까 봐 연애 사실을 브로디 무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하는 유일한 제자인 샌디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브로디는 외강내유형 인물이다.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나, 속은 연약하고 불완전하다. 어쩌면 브로디는 연약한 속마음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서 자신을 따르는 브로디 무리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브로디는 자신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는 ‘연약한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강인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학생들 앞에서 파시스트를 옹호하는 발언과 행동을 한다.

 

  “파시스트예요.” 브로디 선생은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물었다. “누구라고, 로즈?”

  “파시스트입니다, 선생님.”

  그들은 새까만 제복을 입고 똑같은 각도로 손을 올린 채 한 치도 어긋남 없이 나란지 줄지어 행진하고 있었으며, 무솔리니는 체육 선생, 혹은 걸가이드 단장처럼 단상에 선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샌디는 문득 자신들 역시 행군중인 브로디 선생의 파시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봐서는 모르겠지만, 사실 브로디 선생의 필요에 맞춰 무솔리니 무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줄지어 걷고 있는 파시스트들. 그거야 그렇다 치고, 걸가이드를 향한 브로디 선생의 경멸에는 질투와 모순과 오류가 있었다. 어쩌면 걸가이드가 너무 강력한 파시스트 라이벌이라서, 그리고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무리에서 제외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다시 한번 샌디를 사로잡았고, 샌디는 브로디 선생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42~43쪽)

 

 

샌디는 브로디의 불완전하고도 모순된 모습을 간파한다. 그러나 샌디는 브로디와 브로디 무리를 지키기 위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브로디의 자아도취는 점점 심해지고, 자신이 ‘크림 중의 크림’으로 살고 있으며 ‘강인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 소설은 브로디와 브로디 무리의 행동과 심리적 반응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독자는 겹겹이 쌓아 올린 서사를 잘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브로디와 브로디 무리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뮤리얼 스파크는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 불완전한 인간의 모순을 표면화한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변화를 통해 진정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은 불완전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개인적 고통과 실패가 보편적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생각해보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전성기’는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드는 편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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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2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어떤 책일까 궁금하긴 했어.

근데 너는 책을 아주 빨리 읽나 봐.
너도 완독 스타일이지?^^

cyrus 2018-03-22 17:44   좋아요 0 | URL
도서관 반납일이 얼마 남지 않은 책, 독서모임 선정도서는 되도록 빨리 읽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완독이 독서의 최고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읽을거리가 점점 많아지게 되면서 완독에 집착하지 않게 됐어요. 제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끝까지 다 읽지 않은 책이 완독한 책보다 더 많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