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세트 - 전6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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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 아라비안나이트 / 천일야화

 

 

 

 

사람은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지식욕이 개별적인 것을 향할 때는 호기심”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과학이나 학문의 발달 역시 호기심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호기심은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의 상자’는 인간의 호기심에 대한 경고를 상징한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각종 재앙이 담긴 작은 상자와 함께 판도라를 땅으로 내려보낸다. 상자 속에 뭐가 들었는지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판도라는 ‘절대 열어 보아서는 안 된다’라는 경고를 어긴다. 그때부터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판도라의 상자 이래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법은 상술에서 가장 흔하게 쓰인다. 여기에 성(性)과 관련된 내용이 빠질 리가 없다. 메일 제목에 성적 농담, 음란 사진, 성인 사이트 등으로 위장하고 첨부 파일을 넣어 유혹한다. 실제로 이메일을 받은 사람들의 80% 이상이 바이러스 메일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열어 봤다고 한다.  

 

《천일야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이 가득하게 채워진 판도라의 상자다. 독자들은 이 어두컴컴한 상자 속에 있는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상자를 열면 셰에라자드가 ‘펑’ 하고 램프의 정령처럼 나타난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셰에라자드를 죽이기로 한 샤리아 왕은 매일 밤만 되면 이야기의 노예가 된다. 왕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이야기에 중독되었다. 이쯤에서 한 번쯤 의문이 생긴다. 셰에라자드와 샤리아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에 사람들은 이야기에 빠지고 열광하는 걸까.

 

호기심은 우리가 이야기에 몰입하게끔 하여주는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해준다.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올리려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고조시켜야 한다. 드라마에 몰입한 시청자들은 결말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방송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재미있는 드라마는 마지막 방송까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셰에라자드는 왕의 호기심을 높이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시간이 임박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이야기 중간에 딱 끊어버린다. 셰에라자드는 목숨을 연명하는 조건을 붙여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해질 거라고 암시한다. 셰에라자드는 남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이야기가 재미있는 거라고 말할 뿐이다. 셰에라자드는 의도적으로 예고를 들려주지 않는다. 사실 왕은 셰에라자드와 그녀의 동생 디나르자드의 치밀한 계획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실험은 가장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다. 이 실험의 내용은 개한테 밥을 줄 때마다 종소리를 울렸더니 결국 종소리만 듣고도 개가 침을 흘리더라는 것. 인간의 행동도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 배고플 때 음식 냄새를 맡으면 입안에 침이 저절로 고이는 것을 느낀다. 디나르자드는 언니가 알려준 대로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 항상 이런 말을 꼭 한다.

 

 

 

 

“언니! 만일 자고 있지 않으면,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조금 있으면 동이 틀 터인데, 그때까지 언니가 알고 있는 그 많은 재미난 이야기 중 하나를 들려주세요!”

 

 

왕은 마치 잘 길든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야기에 향한 호기심이 조건반사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왕은 어느새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재촉한다. (《천일야화》 1권 45쪽을 보시라) 왕은 매일 통이 트지 않은 새벽에 이야기를 들었더니 나중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구하는 디나르자드의 말만 들어도 반응을 보인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저자 조너선 갓셜은 인간은 위험, 죽음, 고난, 섹스 등 불쾌하고 문제 많은 소재가 있는 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한다고 했다. 이야기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하다. 우리는 여기서 짜릿한 쾌감을 얻는다. 《천일야화》속에는 모험과 신비, 화려함과 에로티즘이 결합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독자들은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떻게 끌이 날지 눈을 떼지 못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보편 문법, 즉 이야기가 전개될 때 항상 나오는 패턴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곤경에 처한다. 그리고 슬기로운 지혜로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주변 인물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일곱 번이나 여행을 한 신드바드 이야기(《천일야화》 2권)와 '알리바바와 여종에게 몰살된 마흔 명의 도적 이야기'(《천일야화》 5권)를 좋아할 수밖에 없고, 아라비안나이트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로 거론한다.

 

《천일야화》를 편집한 앙투안 갈랑은 외설적이면서 잔인한 장면을 과감하게 삭제했다. 반면에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은 외설적인 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면서 편집했다. 갈랑의 편집본이 알려지면서 오랫동안 정전으로 자리 잡았던 버턴의 《천일야화》의 위력이 많이 떨어졌다. 버턴의 편집본을 청소년이 보기에 민망한 불편한 고전으로 바라보는 평가가 많아졌다. 그렇지만 다소 건전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갈랑의 《천일야화》가 버턴의 《천일야화》보다 작품성이 좋다고 보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 선정적인 장면이 많으냐 적는냐 묻는 일이 우수한 문학작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 에로티시즘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버턴의 《천일야화》도 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야한 묘사가 많은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려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끌린다. 인간은 사랑과 섹스가 있는 이야기에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이것이 (조너선 갓셜이 말한) 이야기의 역설이다. 《천일야화》를 읽으려는 독자들 모두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샤리아 왕과 동일한 상황이다.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정말 궁금하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상자를 활짝 열면 된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라. 상자를 열었다고 해서 불행이 찾아오지 않으니까. 다만 제대로 마음먹고 1,001일 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를 확인하려면 꽤 적지 않은 양의 시간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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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7-0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기대하고 읽었다가 2권부터 진이빠지더니 4권까지 읽곤 다운됐습니다.....

5권계왕권말씀이 생각나네요.

cyrus 2016-07-02 13:57   좋아요 0 | URL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3, 4권이 좀 지루했습니다. 3, 4권에 왕자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이야기를 안 좋아합니다. 주인공이 모험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

yureka01 2016-07-0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의 포르노 집대성? 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맞는지요? 아 또 그 호기심은 자극하기에 충분한듯한....ㅋ

요즘 스파이웨어 대신에 랜셈웨어가 뜬다죠.메일이나 이상한 싸이트 열러보다가랜섬 걸려서 파일 뭍어 오면, 서류파일 ...사진 파일 동영상파일 모조리 암호 걸어서 ,,돈 안줌녀 암호 안준다고 협박한다죠....호기심의 조절력..이게 참 간단치가 않아서 낚시당한다는...

cyrus 2016-07-02 14:01   좋아요 1 | URL
제가 버턴의 <천일야화>를 1권만 읽었습니다. 이어서 남은 권도 읽어볼 예정입니다. 그런데 천일야화에 나오는 야한 장면들이 포르노 수준은 아닙니다. 1권에 왕비와 궁녀, 그리고 흑인 노예들이 모여서 난교하는 장면이 나오기 합니다만,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습니다. ㅎㅎㅎ

랜섬웨어 때문에 요즘 사진 이미지 저장을 할 때 출처가 분명한 사이트만 찾아 갑니다.
 

 

 

 

 

 

 

 

 

 

 

 

 

 

 

 

 

 

 

1616423.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침대 위에서 영원히 눈을 감았다. 그들이 눈 감은지 400년이나 지난 지금도 독자와 출판사들은 두 거장의 영혼을 소환한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1611. 프랑스 전선의 부몽 하멜(Beaumont-Hamel)에서 영국인 병사가 독일군 저격수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병사가 숨을 거두기 직전 마지막에 뱉은 말은 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준 유언이다. “그 담배를 넣어!(Put that bloody cigarette out!)” 이때 병사의 나이는 45. 사실 그는 40을 넘긴 나이 때문에 징집 대상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애국심이 투철했던 중년 영국인은 자원입대하여 젊은 병사들과 함께 전선에 뛰어들었다.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랑스의 티에발 추모지(Thiepval Memorial)에 중년 병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헥터 휴 먼로(Hector Hugh Munro). 추모지를 찾는 사람들은 전사자 명단에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헥터 휴 먼로의 필명은 사키(Saki)’. ‘사키12세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시집 루바이야트에서 따온 것이다. 원문은 The Eternal Saki’. 술을 따르는 소년 시종을 뜻한다. (민음사에서 나온 루바이야트에서는 ‘Saki’술잔을 돌리는 하인으로 옮겼다)

 

 

    

 

사키는 1870년 미얀마에서 태어났다. 사키의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어린 사키는 영국에 있는 할머니와 고모들의 손에서 자랐다. 사키는 엄격한 청교도 가풍에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자신을 엄격하게 가르치는 고모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를 행복하게 해준 것은 동물이었다. 외로운 사키는 동물에 특별한 애정을 느꼈다. 사키의 작품에는 암울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사키는 단편소설을 많이 썼다. 그의 단편소설은 대체로 비정한 인물이 등장하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사키는 착한 주인공이 행복한 결말을 맞는 전개를 거부한다. 특히 어린이를 향한 사키의 시선은 어린이=순수한 동심이라는 공식을 무너뜨린다. 소설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어른의 명령에 타협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을 싫어하는 어른을 위험에 빠뜨리는 장난까지 일삼는다. 그래서 사키의 소설은 독특하다. 한 번 읽고 나면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사키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동물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동물들은 인간을 관찰한다. 그리고 인간의 어리석은 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사키는 동물의 눈과 입을 통해 인간의 모순을 풍자하고 비꼰다.

 

 

 

 

 

 

 

 

 

 

 

 

 

 

 

 

 

사키의 대표작은 <열려진 창>(The Open Window), <토버모리>(Tobermory), <스레드니 바쉬타르>(Sredni Vashtar) 등이 있다. 특히 <열려진 창>은 공포소설 모음집에 많이 나온 작품이다. 사키의 작품이 있는 번역본 목록은 따로 작성했다.

 

 

 

 

 

 

 

 

 

 

 

 

 

 

 

 

사키는 문학사조에 넣기가 어려운 작가다. 그렇지만 통렬한 풍자로 가득한 단편소설을 남긴 미국 작가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Gwinnett Bierce, 1842~?)와 함께 묶을 수도 있다. 사키와 비어스는 공통적으로 저널리스트로 활약한 적이 있으며 역사에 길이 남을 전쟁에 참전했다. 비어스는 남북전쟁에 참전한 적이 있었다. 그는 혁명의 바람이 불어 닥친 멕시코에 가서 혁명군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는데, 1913년에 행방이 묘연해져 버렸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추앙하는 열띤 분위기 속에서 사키를 기억해주는 출판사가 한 곳이 있다.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장르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1인 전자책 출판사 페가나북스(Pegana eBooks). 그런데 이 전자책 출판사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흠이다. 작년에 사키 단편선집을 무려 3권이나 만들었으며 12월에는 야심차게 전자책 무크지 창간호를 만들었다. 사키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단편선집에 수록된 소설 세 편도 실려 있다. 무료로 구매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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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

오일우, 오수현 편역 / 모음사 / 1993

로라 (Laura)

 

 

 

 

 

* 공포특급 5

정태원 편역 / 한뜻 / 1996

열려진 창 (The Open Window)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6

이문열 편역 / 살림 / 2003

토버모리 (Tobermory)

 

 

 

 

 

 

 

 

 

 

 

 

 

 

 

 

* 세계 호러 걸작선

정진영 역 / 책세상 / 2004

스레드니 바쉬타르 (Sredni Vashtar)

 

 

 

 

 

 

 

 

 

 

 

 

 

 

 

*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2

유인경 역 / 자유문학사 / 2004

스레드니 바쉬탈 (Sredni Vashtar)

 

 

 

 

 

 

 

 

 

 

 

 

 

 

 

 

* 세계 호러 단편 100

정진영 역 / 책세상 / 2005

침입자 (The Interlopers)

 

 

 

 

 

 

 

 

 

 

 

 

 

 

 

 

* 번역자, 짧은 글의 긴 여운을 옮기다

엔북 / 2006(구판)

토버모리 (Tobermory)

 

 

 

 

 

 

 

 

 

 

 

 

 

 

 

 

* 이제 그만 울어요

해럴드 블룸 엮음 / 생각의나무 / 2007

찬가 (The Recessional)

 

 

 

 

 

 

 

 

 

 

 

 

 

 

 

 

* 벤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엔북 / 2009

고양이 토버모리 (Tobermory)

 

 

 

 

 

 

 

 

 

 

 

 

 

 

 

 

* 세계 호러 걸작 베스트

북타임 / 2010

열어 둔 창문 (The Open Window)

 

 

 

 

 

 

 

 

 

 

 

 

 

 

 

 

 

  

* 토버모리

바다출판사 / 2011

앤 부인의 침묵 (The Reticence of Lady Anne)

이야기꾼 (The Storyteller)

창고 (The Lumber Room)

가브리엘 어니스트 (Gabriel-Ernest)

토버모리 (Tobermory)

바탕 (The Frame)

불안 요법 (The Unrest-Cure)

모슬 바턴의 평화

(The Peace of Mowsle Barton)

메추라기 씨앗 (Quile Seed)

열린 유리문 (The Open Window)

스레드니 바슈타르 (Sredni Vashtar)

침입자들 (The Interlopers)

 

 

 

 

 

 

 

 

 

 

* 이야기 기차

알바 마리나 리베라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11

원제 : The Storyteller

 

 

 

 

 

 

 

 

 

 

 

 

 

 

 

 

* 역사의 원전

존 캐리 엮음 / 바다출판사 / 2014년

서부전선의 새들 (<The Square Egg and Other Sketches>에 수록된 글)

 

    

 

 

 

 

 

 

 

 

 

 

 

 

 

 

 

 

* 사키의 고양이 이야기

고양이출판사 (e-Book, 2015)

토버모리 (Tobermory)

자선가와 행복한 고양이 (The Philanthropist and the Happy Cat)

 

 

 

 

 

 

 

 

 

 

 

 

 

 

 

 

 

 

 

 

* 토버모리

페가나북스 (e-Book, 2015)

개브리얼 어니스트 (Gabriel-Ernest)

토버모리 (Tobermory)

생쥐

앤 부인의 침묵 (The Reticence of Lady Anne)

에즈미 (Esmé)

그로비 링턴의 변모 (The Remoulding of Groby Lington)

모피

박애주의자와 행복한 고양이 (The Philanthropist and the Happy Cat)

충격 작전

 

* 스레드니 바쉬타

페가나북스 (e-Book, 2015)

스레드니 바쉬타 (Sredni Vashtar)

부활절 달걀

운명이라는 이름의 사냥개

불안 요법 (The Unrest-Cure)

열린 격자문 (The Open Window)

휴일에 일어난 일

맹점 (The Blind Spot)

창고 방 (The Lumber Room)

참회 (The Penance)

크림 단지 일곱 개

 

* 체르노그라츠의 늑대

페가나북스 (e-Book, 2015)

모슬 바턴의 평화

(The Peace of Mowsle Barton)

훼방꾼들 (The Interlopers)

암늑대 (The She-Wolf)

체르노그라츠의 늑대

비잔틴풍 오믈렛 (The Byzantine Omelette)

샤르츠-메테르클루메식 교수법 (The Schartz-Metterklume Method)

이야기꾼 (The Storyteller)

크리스피나 엄벌리의 실종

평화의 장난감 (The Toys of Peace)

 

 

 

 

 

 

 

 

 

 

 

 

 

 

 

 

 

* 명작 단편 : 복수 이야기

판도라books (e-Book, 2015)

참회 (The Penance)

 

 

 

 

 

 

 

 

 

 

 

 

 

 

 

 

 

    

 

* 언제나 재미있는 사키

판도라books (e-Book, 2015)

토버모리 (Tobermory)

이야기꾼 (The Storyteller)

로라 (Laura)

네모난 달걀 (The Square Egg)

스레드니 바쉬타르 (Sredni Vashtar)

 

* 언제나 재미있는 사키 2

판도라books (e-Book, 2015)

침입자 (The Interlopers)

길 잃은 영혼의 석상

열려진 창문 (The Open Window)

헛간 (The Lumber Room)

성질 고약한 왕 허먼

루이스 (Louis)

필보이드 스터지

메추라기 씨 (Quile S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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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쯤에 《아라비안나이트》(동서문화사)를 읽기 시작했다가 말았다. 독서를 포기한 이유가 많다. 완독을 향한 집중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수록 재미없었다. 이야기 속의 또 다른 이야기로 채워진 《아라비안나이트》는 독자를 질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매력이 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정리한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의 주석 또한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도 각주가 아닌 미주인 점이 독자를 곤란하게 하는 책의 함정이다. 독자는 본문과 각주를 번갈아 보는 방법을 귀찮아한다. 그래서 버튼의 주석을 읽지 않는다. 무식하게 주석을 꼼꼼히 읽다가는 제풀에 지쳐 책을 덮어버린다.

 

버턴은 중동 지역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아랍 문화 및 풍습 그리고 언어와 관련된 지식을 주석으로 소개했다. 그렇지만 남성우월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합한 시대의 프리즘을 통과한 주석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모든 주석을 다 씹어 먹으면서 완독할 자신이 있으면 말이다.

 

샤리아르 왕은 동생의 아내가 시녀, 노예들과 함께 난교를 일삼는 장면을 목격한다. 버턴은 흑인 노예를 여성의 육체에 흥분하는 음란한 존재로 묘사했다.

 

 

숲 속 한 그루 나무 위에서 거대한 몸집의 검둥이 하나가 눈알을 뒤룩거리고 침을 흘리면서 사뿐히 내려왔다. 백인이 보기에는 참으로 흉측스러운 모습이었다. (39쪽)

 

 

버턴은 이 문장에 주석을 달았는데,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적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독자의 얼굴을 붉히게 할 정도로 민망하다. 인용문에 언급된 ‘필자’는 나다.

 

 

음탕한 여자들이 흑인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음경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소말릴란드(영국이 지배했던 소말리아 북부 지역-필자의 주)에서 어느 흑인의 것을 보았는데, 여느 때에도 거의 6인치였다. 이것은 흑인과 아프리카산 동물, 이를테면 말의 한 특징이다. 그에 비해 순수한 아랍족(사람도, 동물도)은 평균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이집트인은 아랍인이 아니고 살결이 약간 흰 흑인이라는 점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하고 있다. 이 거대한 음경은 발기된 동안 본디의 크기에 비례하여 굵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매우 긴 시간에 걸쳐 성행위가 이루어지며 여성의 쾌감이 매우 높아진다.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인도의 진지한 이슬람교도는 대부분 여자들을 데리고 잔지바르(탄자니아에 위치한 항구도시-필자의 주)로 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그곳에서 여자들이 큰 매력과 유혹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사정(射精) 지연과 ‘쾌락의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으리라.

 

 

자, 다시 39쪽에 있는 문장을 보자. 주석을 확인했으니 ‘참으로 흉측스러운 모습’이라는 구절이 무슨 뜻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페니스에 대한 버턴의 주석은 문제가 많다. 그의 주장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살펴보자.

 

흑인 남성의 평균 페니스 사이즈가 백인보다 크기는 하지만 페니스의 크기가 가지각색인 것은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일반화에 사로잡힌 유럽인들은 흑인의 페니스가 아주 크다고 믿었다. 버튼 이전에 나온 문헌들에서도 흑인의 거대한 페니스에 관한 기록이 있다. 유럽인들은 이를 근거로 흑인의 야만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백인의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영국 백인 버턴이 보기에는 소말릴란드 흑인의 페니스가 흉측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버턴도 그렇고, 오늘날 남자들이 많이 착각하는 성 상식 중 하나가 페니스가 클수록 성관계에 유리하다는 믿음이다. 크기의 열세를 극복하려고 페니스를 확대하는 시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크기에 집착하다가 자신의 소중한 그것을 돌팔이 의사에게 맡기는 순간 고자가 될 수 있다. 단순하게 페니스를 삽입한다고 해서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건 아니다. 아직도 페니스 삽입이 최고로 여기는 남자를 만나면 그가 성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거나 야동으로 성을 배웠다고 보면 된다. 야동은 남성의 성 의식을 왜곡하고, 잘못된 환상을 부추긴다. 여성의 성감대는 무궁무진하다. 남성이 애정의 손길로 여성의 몸을 어루만져주면 여성은 오르가슴을 누릴 수 있다.

 

《아라비안나이트》 완역본은 선정적인 묘사가 지나치게 많고, (남성우월주의에 비롯된) 성에 관한 잘못된 선입견이 반영된 내용이 더러 있다. 버턴의 아내는 남편이 편집한 《아라비안나이트》가 못마땅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라비안나이트》 저작권을 가진 아내는 야한 장면만 삭제한 《아라비안나이트》를 재출간했다. 아내가 손 된 판본이 바로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아동용 《아라비안나이트》의 시초다.

 

 

 

 

+ 한 가지 더, 오류가 있는 버턴의 주석

 

 

근친상간은 문명국 대도시의 인구 밀집 빈민지대를 제외하고는 어디서나 언어도단적인 행위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결합은 이집트의 아시스 신과 오시리스, 아시리아인, 고대 페르시아인 같은 고도의 고대문명을 가진 민족 사이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며 합법적이었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부모가 체질상의 결함을 갖고 있지 않은 한 해롭지 않다. 부모가 건강하기만 하면 하등동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 자식은 키울 수 있고 건강하기도 한다. (1권 280~281쪽)

 

 

1885년에 버턴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발표했을 당시 영국은 화려한 제국의 시절을 누렸다. 영국인들은 좋은 시절을 ‘빅토리아 시대’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정작 빅토리아 여왕은 불행한 사건을 맞이했다. 1882년에 ‘알바니 공작’으로 알려진 넷째 아들이 혈우병으로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혈우병은 옛날 왕실에서 많이 발병했다. 근친혼이 많았던 당시 왕실 간의 혼사를 통해 발병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왕가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혈우병 보인자였던 여왕의 딸들은 스페인, 독일, 러시아 왕족과 결혼함으로써 그들 자손 또한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 알렉세이가 혈우병으로 고생했다. 그 당시 생존 확률 0%인 불치병을 고쳐 준 사람이 바로 훗날 러시아의 국정을 쥐고 흔들었던 요승 라스푸틴이다.

 

라스푸틴이 나왔으니 그의 페니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병원은 표본 통에 있는 라스푸틴의 페니스를 보관하고 있다. 보통일 때 23cm라고 한다. 발기 상태가 되면 평소보다 길이가 더 나오겠지. 자신의 페니스를 믿은 라스푸틴이 수많은 러시아 귀족 부인들을 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병원에 보관된 페니스의 주인이 정말 라스푸틴이 맞는지 논란은 있지만, 라스푸틴의 딸은 1977년에 사망할 때까지 아버지의 페니스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라스푸틴은 죽어서도 이름뿐만 아니라 거대한 페니스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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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4-0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거 읽다 말았어요..ㅋㅋ 완전 지루해서 데지는 줄 알았다니까요..ㅋㅋ 아마 한 7년 전이었을 거라는..ㅎ

cyrus 2016-04-06 13:10   좋아요 0 | URL
이야기가 병맛스럽거나 재미없는 책을 끝까지 읽고 싶은 이상한 집착이 있어요.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재미없는 소설인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4-0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봐도 이런 성실 리뷰는 사이러스 님이 갑입니다. ㅎㅎㅎㅎㅎㅎ 페니스를 보관하기도 하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6-04-06 13:12   좋아요 0 | URL
라스푸틴의 페니스 사진도 봤습니다. 나무위키에 ‘라스푸틴’을 검색하면 링크된 사진을 볼 수 있어요. ㅋㅋㅋㅋ

yureka01 2016-04-06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야동보다 야설이 지루한가 봐요.
읽어 본적은 없지만.사이러스님 덕분에 이런것도 있엇구나 싶었습니다.ㅎㅎㅎ

cyrus 2016-04-06 13:13   좋아요 1 | URL
제가 B급 소재에 관심이 많아요. <아라비안나이트>를 소개하는 글에 페니스를 언급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저밖에 없을 겁니다. ㅎㅎㅎ
 
[세트]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 + 2부 세트 - 전6권 (본책 6권 + 가이드북) - 로마의 일인자 1~3 + 풀잎관 1~3 마스터스 오브 로마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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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선호하는 로마 남자가 더 있다. 시오노는 매력남의 조건을 ‘성공하는 남자의 조건’이라는 수필에 공개했다. 이 글은 《남자들에게》(한길사)라는 책에 있다. 시오노는 성공하는 남자의 몸 전체에 밝은 빛이 있다고 말한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용한 동작 하나에서 은은한 분위기를 띠는 밝음을 의미한다. 이런 분위기를 이탈리아어로 ‘세레노(sereno)’라고 한다. 이탈리아어 사전에 찾아보면 ‘밝은, 평온한, 깨끗한’이라고 씌어 있다. 시오노는 한니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장군을 그런 매력적인 성품을 들며 ‘담백하고 소탈한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남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남자 중에 ‘세레노’에 가까운 사람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시오노는 ‘세레노’에 고뇌와 상처가 없는 산뜻한 매력을 부여한다. 뭐지? 이건 뭐 에피큐리언(epicurean)이 되라는 건가. 살면서 마주치게 될 온갖 정념(情念)을 완벽하게 피할 수만 있다면 심란하지 않은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시오노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어서 로마 남자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앎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은 듯하다. 그녀가 고대 로마 남자들의 진짜 성격을 알고 있으면 밝고 평온한 세레노를 다른 인물에게서 찾아야 했다. 스키피오는 물론이고, 로마 남자들은 세레노와 거리가 먼 종족들이다.
 
나는 로마 남자를 한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로마초(Romacho). 로마(Roma)와 마초(macho)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로마 남자들은 마초였다. 로마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키비스 로마누스(civis Romanus), 즉 ‘로마 사람’으로 살아간다. 특히 로마 남자들은 ‘로마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마음껏 표출했다. 어디든 가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기세당당한 자세로 상대방을 대면했다. 자신감이 넘친 로마 남자들은 여자보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여자뿐만 아니라 같은 남자들에게도 우월성을 과시했다. 남들 앞에 순종적인 자세나 행동을 보이면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했다.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와 《풀잎관》의 주연 마리우스와 술라는 ‘로마초’ 기질을 가진 로마 사람이다. 혹자는 마리우스가 세레노에 적합한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설득력이 있는 인물평이다. 그는 자신의 신부가 된 율리아의 제안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마리우스는 율리아의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그녀와 함께 재산을 공동 소유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상대방 앞에서 굽히는 모양새를 싫어하는 전형적인 로마 남자다. 그의 남자다움은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집안의 절대 권력자인 가장은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을 복종하도록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이의 큼직한 회색 눈은 대담하게도 아버지를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마리우스가 보기엔 예절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이 장난꾸러기 녀석에게, 아버지란 아들이 함부로 지배하고 조종할 사람이 아니라 존경하고 우러러봐야 할 사람임을 알려줄 작정이다. (《로마의 일인자》 1권 310~311쪽)

 

 

마리우스는 시라아의 무녀 마르타의 예언에 집착한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곱 번째 집정관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결국, 자신이 로마를 이끄는 유일한 지휘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원로원에서 시커먼 오물 같은 권력욕의 온상을 여러 차례 목격했음에도 침착하지 못한 행동을 보인다. 마리우스는 자신이 포르투나(fortuna)의 도움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것은 운명적인 힘이다. 하지만 그의 심장 한가운데 세워진 포르투나는 자만심과 우월감이 빚어낸 어설픈 조각상에 불과하다. 마리우스는 한때 로마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조국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시절에 마리우스는 원로원 의원들에게 최하층민들도 키비스 로마누스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여기서도 마리우스는 로마인 특유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외국으로 여행할 때면 사람들은 우리의 의견에 따릅니다. 비록 최하층민일지언정, 자신을 로마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조차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보다 낫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단 한 명의 노예도 없을지라도, 그는 세상을 지배하는 무리 중 하나입니다. 노예 한 명 없어 직접 천한 일을 할지라도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로마인이다, 나는 그 외 다른 모든 인간들보다 낫다!’” (《풀잎관》 1권 373쪽, 글쓴이가 발췌 편집했음)

 

 

그의 정의로운 사자후는 늙은 오만한 여우로 변했다. 광기 어린 여우는 이성의 기운이 쇠약해진 늙은 마리우스의 심장을 물어뜯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늙은 지도자는 자신이 다른 모든 집정관을 능가하는 로마의 일인자라고 생각한다.

 

 

 

 

“등짝을 보자!”

로마 남자들은 동성애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술라는 마리우스보다 ‘로마초’ 기질이 심하다. 그는 젊은 시절에 남성성을 억눌린 채 살아왔다. 의붓어머니 클리툼나, 애인 니코폴리스와 함께 매일 방탕한 쾌락의 밤을 보낸다. 두 여자는 술라를 자신 곁에 두려고 적극적으로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두 여자의 기세에 지쳐버린 술라는 아름다운 소년 메트로비오스를 만난다. 술라의 동성애는 쾌락을 위한 남색 행위라기보다는 자신의 남자다움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로마 남자들의 남근은 남녀 불문하고 꼿꼿하게 솟았다. 침대 위에서도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복종해야 직성이 풀렸다. 술라는 메트로비오스를 만나 복종을 요구하는 남성성을 마음껏 표출한다. 술라는 한집에 사는 두 여자를 멀리해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는 동시에 권력의 사다리로 올라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매컬로는 술라를 ‘뼛속까지 배우’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렇지 않다. 마리우스를 포함한 원로원 의원들 모두 ‘완벽한 로마 남자’라는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살아왔다. 모두가 ‘로마 사람’들이다(All the People of Rome). 이들은 상황에 따라 맞춰 쓸 수 있는 가면이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 로마 남자들에게 허세를 빼면 시체다. 남들 앞에 우월한 척해야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로마 남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다. 정력이 사라지는 것. 그렇게 자신만만한 남자들도 노화의 섭리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어쩌면 자존심 많은 로마 남자들은 자신이 늙고 병들어가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우스의 장인 카이사르는 투병으로 고생하다가 인간 아니 로마 남성의 존엄성이 무너져버린 상황을 깨닫고 자결한다. 로마 남자들은 남들 앞에서 남성성의 가면을 벗는 걸 두려워했다. 아, 마리우스가 딱 한 번 가면을 벗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지나서야 로마에 귀국했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서 율리아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로마의 일인자》 1권 311쪽) 그가 슬피 울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권위적인 가장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로마 남자들은 눈물을 함부로 흘리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면 나약한 남자로 놀림 받는다. 로마 사회에 성공하려면 남성성이 철철 넘치는 남자가 되어야 했다.

 

로마 남자들이 이토록 권력에 집착하고 과시하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남성성을 공공연히 드러내야만 했던 특수한 사회 풍조 때문이었다. 시대가 영웅과 괴물을 키워내지 않았다. 로마 남자들은 그 시대 풍조에 적응하면서 살았을 뿐이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영웅 혹은 괴물이 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양쪽 길을 모두 포기하면 사회에서 낙오된다. 그들은 ‘두 얼굴을 가진 배우’로 살아가느라 고생했다. 24시간 내내 남성성의 가면을 쓰고 다녔다. 알고 보면 로마 여자들뿐만 아니라 로마 남자들도 괴롭게 살다가 진토가 되었다. 우린 정말 로마에 태어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 이 글은 해당도서 서평 대회 참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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