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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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비로소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줄여서 ‘앵무새’)를 끝까지 안 읽어본 사람도 이 유명한 구절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 때문이겠지만 그레고리 펙의 얼굴로 그려지는 애티커스 핀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의로움, 지혜, 자상함 등으로 점철되는 그의 아빠로서의 언행은 완벽한 아빠로서의 모범이다.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편견으로 비롯된 오독도 마찬가지다. 선입견을 배경으로 어떤 결론을 전제하는 독서는 작품의 진면목을 놓칠 수 있다.

 

금고 속에 잠들어있던 하퍼 리의 원고가 5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소식에 전 세계 독자들은 출간 전부터 큰 기대를 걸었다. 영원히 공개되지 못할 뻔 했던 원고는 《파수꾼》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출판사와 언론 들은 《파수꾼》을 ‘《앵무새》의 후속작’으로 소개했으나 예상했던 반응과 다르게 독자의 혹평이 꽤 많다. 인종차별에 반대했던 애티커스의 변절, 여주인공 진 루이즈의 히스테릭한 면에 불만을 쏟아냈다. 전작과는 다른 작품 속 캐릭터와 작품 분위기의 급격한 차이에 독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파수꾼》이 《앵무새》보다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독자의 반응도 많다. 《파수꾼》이 《앵무새》와 비교당해 따분하고 결함이 많은 작품으로 보는 독자평들이 많아서 무척 안타깝다.

 

《앵무새》의 애티커스를 중심으로 본 사람은 애티커스만 보인다. 《앵무새》가 지루한 내용임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돌연 절필을 선언한 작가의 유일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있지만, 애티커스를 제대로 연기한 펙이 아니었다면 애티커스가 ‘흑인 인권’을 변호하는 미국의 양심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파수꾼》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티커스만 기억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파수꾼》 속 애티커스의 모습에 실망한다. 하퍼 리의 작품들을 출간한 열린책들 출판사의 마케팅, 그리고 출판사 홍보를 그대로 받아 적은 언론들의 서평 또한 독자의 《파수꾼》 독서를 방해하게 만드는 편견이 된다. 《파수꾼》이 《앵무새》의 후속작으로 알려지면서 《파수꾼》의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한 독자들은 전작인 《앵무새》를 읽게 된다. 출판사는 판매 부수를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일부 독자들은 《파수꾼》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파수꾼》 읽기 전에 《앵무새 죽이기》를 잊으시오!

 

 

《파수꾼》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앵무새》의 줄거리를 모두 잊어버려라. 펙이 분한 애티커스, 《앵무새》의 어린 소녀 스카웃에 대한 기억도 싹 다 잊어버려도 좋다. 《파수꾼》을 독립적인 작품 자체로 읽어 보라. 《파수꾼》의 애티커스에 펙의 명연기를 슬쩍 편입시키는 순간, 독자는 《파수꾼》을 《앵무새》보다 못한 작품으로 본다. 《앵무새》를 감명 깊게 읽은 독자도 이 편견에서 비롯된 오독의 착각에 벗어나지 못한다.

 

진 루이즈는 아버지가 메이콤 주민 협의회 모임에 참석하여 흑인 차별 여론에 동조하는 사실에 큰 실망감을 느낀다. 어린 시절 흑인을 보호해주던 영웅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산산이 부서지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여기서 독자들도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양심적인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변할 수가 있는지. 그 이후로 진 루이즈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흑인 인권 문제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아버지와 삼촌 앞에서 날이 선 태도로 저항한다. 그녀의 저항 의식이 상당히 과격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외국 언론에서는 《파수꾼》의 진 루이즈를 쓸데없이 걱정이 많고,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미숙한 여주인공으로 본다. 정말 삼촌의 말대로 진 루이즈는 아버지라는 영웅의 결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적 불구자’일까?

 

진 루이즈는 정말 외로운 여자다. 메이콤 마을에 그녀와 같은 편에 서는 인물이 한 명도 없다. 그녀의 약혼녀 헨리? 그도 역시 메이콤 주민 협의회 소속 회원이다. 알렉산드라 고모는 흑인을 과격하고 버릇없는 인종으로 생각한다. 어린 시절 진 루이즈를 키운 보모 캘퍼니아는 애티커스가 예전처럼 흑인을 위해서 앞장서서 변호해줄 거라고 믿지 않는다.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 헤스터도 흑인 인권 운동이 공산주의자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손잡아 이끌어 주는 정의의 파수꾼은 없다. 진 루이즈는 ‘흑인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여성’이다. ‘백인 남성’이 사회를 주도하는 1950년대 미국의 보수적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녀의 진보적인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파수꾼》을 《앵무새》와 함께 인종 편견을 고발하는 소설로 본다면, 《앵무새》의 명성으로 드리워진 그늘에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불운의 작품이 된다. 진 루이즈는 백인 남성 중심 사회 한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파수꾼이다. 진 루이즈는 외로운 싸움을 통해서 지켜내야 할 정의란 바로 ‘흑인 인권’과 ‘여성 인권’이다. 그녀의 모습은 195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을 이끈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행보와 유사하다. 글로리아는 처음으로 흑인과 여성 문제 사이에 동질감을 발견했다. 애티커스와 헨리가 가입한 메이콤 주민 협의회가 백인 남성들에게 독점되어 온 정치권력을 상징한다면, 진 루이즈는 흑인 차별에 동조하는 정치권력에 도전한다. 애티커스와 삼촌은 그녀의 정치적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 그녀를 가르치려 든다. 맨스플레인(Mansplain, 남자들이 여자에게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 때문에 진 루이즈는 괴로워한다. 애티커스는 흑인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는 편견에 확신하면서 흑인 차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삼촌 또한 조카를 남북 전쟁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가르치듯이 장황하게 설명한다. 아버지와 삼촌은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 헤스터는 맨스플레인에 강요당한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 빌의 흑인 편견을 그대로 믿으면서 옳은 사실인 것처럼 진 루이즈 앞에서 떠들어댄다. 진 루이즈는 숨 막히는 남성들로 둘러싸인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해 주변을 맴도는 신세가 된다. 백인 중심, 남성 중심의 제도 아래서 힘을 못 쓰지만, 진 루이즈는 사회의 억압을 깨닫기 시작한다.

 

애티커스는 좋은 남자가 아니다. 잘못된 편견에 지나치게 확신하고 흑인, 여성의 존재를 침묵시키려는 나쁜 남자다. 아직도 그가 양심이 있는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는가.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가 TV에 나오는 완벽한 남주인공이라면, 《파수꾼》의 애티커스는 ‘백인 남성 신화’에 의존하여 사회를 지배하는 남자다. 이들은 여성은 복종하는 존재, 흑인은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 진 루이즈를 무시하지 마라. 그녀는 남부의 ‘글로리아 스타이넘’이다. 그녀가 파수꾼이 되어 우리에게 외친다. ‘백인 남성 신화’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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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9-2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독서동아리에서도 읽고 있는데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아요~~ 앵무새때의 애티커스가 넘 멋있었던거죠~ 균형잡힌 시각과 아이를 기르는데 꼭 필요할 수 있는 덕목. 반듯함과 공정정. 폭 넓은 수용력까지~ 아버지로서의 애티커스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했었거든요~
결국엔 그도 백인이고 남자에 사회의 기득권이라는걸 간과하고 있었던거죠~~

cyrus 2015-09-20 21:08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이지만, 평소에 올바른 성격을 유지한 사람들이 의외로 보수적인 입장을 드러낼 때가 있어요. 애티커스가 그런 유형의 사람으로 보여요. 자신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벗어난 타인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수용하기 어려워하죠.

보물선 2015-09-2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수꾼부터 읽고 있어요.
지난번 북콘 가서 들은 이야기들이 도움이 될듯해요^^

cyrus 2015-09-21 17:42   좋아요 1 | URL
방금 보물선님이 예전에 썼던 북콘 후기를 다시 봤어요. 제가 글에 쓴 내용은 이미 북콘에서 언급되었군요. 나름 참신한 내용이라고 열심히 썼는데... ㅎㅎㅎ

인디언밥 2015-09-2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앵무새와 다른, 독립된 작품으로 읽었어요~ 재료는 같지만 다른 맛, 다른 주제의 글처럼 느껴졌어요

cyrus 2015-09-21 17: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왠지 <파수꾼> 원고가 맨 처음 발표되었다면, 센세이션 일으킨 작품이 되었을 거예요.

만병통치약 2015-09-21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인물을 가지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그려 본다음 먹힐 만한 책을 출판한게 아닐가요? ^^ / 애티커스는 평범한 우리나라 40대 50대 같군요. 함께 할 수 있었을때는 사회를 위해 싸울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기득권을 지켜야할 나이가 되었으니 생존이라는 본능에 충실하는게 아닐까요? 두 모습 다 애티커사의 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진 루이즈도 나이 먹고 애 낳고 바둥바둥 살다보면......

cyrus 2015-09-21 17:48   좋아요 0 | URL
하퍼 리는 맨 처음에 <파수꾼> 내용으로 썼다가 출판사 편집자가 다시 새로 써보라고 해서 고쳤는데, 그 작품이 바로 <앵무새 죽이기>예요. 그래서 하퍼 리 입장에서는 나름 인물 설절에 고심했을 거예요. 통치약님의 해석에 공감합니다. 애티커스를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군요. ^^
 
ㅋㅋㅋ

 

 

 

 

 

 

 

 

 

 

 

 

 

 

 

 

 

 

 

 

 

어제 이웃께서 북플에 사진을 올렸다. 몇 쪽인지 잘 모르겠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열린책들, 2002) 속에 있는 한쪽 전체를 찍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바우돌리노는 자신이 보았던 사본의 제목 몇 개를 그에게 일러 준 뒤, 또 다른 제목들도 언급했다. 말하자면 비드 존자(尊者)의 『세 번 출산하는 최고의 사건에 대해』, 『부드럽게 방귀 뀌는 기술』, 『배변하는 방법에 대해』, 『머리 빗는 법에 대해』, 『악마들의 조국에 대해』 같이 그가 그럴듯하게 꾸며 낸 것이었다. 이런 작품들은 선량한 참사회원의 놀라움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라에빈은 서둘러서 알려지지 않은 이 지식의 보물을 복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우돌리노는 오토 주교의 양피지를 지워 버리고 나서 느꼈던 양심의 가책을 치유하기 위해 성실하게 라에빈의 청을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것을 필사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에 그 작품들이 거기, 생 빅토르 수도원에 있는데, 이단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참사회원들이 그 누구도 볼 수 없게 한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바우돌리노가 언급한 사본의 제목이 재미있으면서도 독특하다. 이런 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에코는 중세 가톨릭교를 풍자하려고 의도적으로 책 제목을 우스꽝스럽게 꾸몄다. 중세 시대의 가톨릭교는 종교에 대한 풍자성이 강한 출판물을 이단 서적으로 규정했다. 가톨릭이 금서로 지정한 책은 불에 태워지기 마련인데 화형에 간신히 살아남은 책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수도원 도서관 비밀 장서실에 보관되기도 한다. ‘위험한 책’을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다. 이 책을 보려면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 혹은 수도원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생 빅토르 수도원(St. Victor Abbey)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이다. 생 빅토르는 마르세유에 주둔했던 로마 군인이자 순교자다. 그래서 수도원 외관이 요새와 흡사하다. 이 수도원의 도서관은 수많은 장서를 보관한 곳으로 유명하다. 에코는 이곳 도서관에 이단 서적이 보관된 것으로 설정했다.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인간을 유혹하는 금기의 페로몬은 더욱 강렬해진다. 몇몇 수도승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금서를 읽으려고 했고, 금서를 필사한 사본들은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은밀하게 유통되기도 했다. 가톨릭은 하느님의 절대적 권위를 조금이라도 무시하고, 희롱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웃음을 유발하는 풍자를 신의 진리를 파괴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억압의 시대 속에서도 종교에 지배당한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풍자한 작가들이 등장했으나, 대부분 이단자로 낙인 찍혀 거대한 불길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물론, 그들이 남긴 서적도 함께. 그래서 무시무시한 시대 속에 끝까지 살아남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문학과지성사, 2004)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라블레는 생전에 이 소설을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음에도, 가톨릭에 비판적인 태도를 밝혔다는 이유로 창작 활동에 제한받았다. 에코의 풍자는 라블레의 풍자에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블레는 에코보다 더 노골적으로 가톨릭을 어리석은 종교로 풍자했다. 그의 소설 《팡타그뤼엘》의 제7장은 생 빅토르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된 서적에 관한 내용이다. 라블레는 중세 봉건주의와 가톨릭교회를 풍자하기 위해 식욕이 왕성하고 지식욕이 엄청난 거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창조한다. 팡타그뤼엘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파리에 오게 되는데, 생 빅토르 도서관에 있는 몇 권의 책들이 훌륭하다고 극찬한다.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제7장의 제목이 ‘팡타그뤼엘이 어떻게 파리로 갔는가, 그리고 생 빅토르 도서관의 훌륭한 장서에 관해서’다. 라블레는 특유의 장광설로 도서관에 보관된 책 제목을 줄줄이 나열한다. 이 목록에서 재미있는 제목 몇 개를 골라봤다.

 

 

용자(勇者)들의 코끼리 불알
오르투이누스 선생 저, 모임에서 정직하게 방귀 뀌는 법
타르타레 저, 대변 배설법
건전한 배를 가진 배불뚝이
추기경의 암노새들을 세척하고 염색하는 방법
과부들의 껍질 까진 엉덩이
남녀 악마 소환법
다섯 탁발 수도회의 뚱뚱한 배
신부들의 당나귀 자지

 

 

라블레는 보수적인 가톨릭교회 관계자, 신학자, 스콜라 철학자들의 이름을 우스꽝스러운 책의 저자명으로 거론한다. 심지어 책 제목의 일부는 외설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이런 책을 쓴 적이 없다. 라블레는 장서 목록을 허위로 꾸며냄으로써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여 가톨릭 교리의 권위성을 무너뜨린다. 오늘날 같으면 명예훼손죄에 가까운 표현이다. 실제로 도서 목록에 언급되는 사람들은 라블레와 함께 같은 시대에 살았던 신학자들이다. 자신을 조롱하는 라블레의 문장을 보는 신학자들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다.

 

에코가 라블레의 개방적인 태도를 모델로 자신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 윌리엄 수사를 창조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 수사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수도승인데 실제로 라블레도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에서 수도사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윌리엄 수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부 ‘희극론’의 진리를 인정한다. 그렇지만 장님 수사 호르헤는 신의 교리 앞에서 웃는 행위 자체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중세인들은 엄숙한 종교적 질서 속에서 생활했고 사제들의 역할은 바로 그러한 종교적 규율을 확립하고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웃음과 풍자는 삶의 원초적 생명력을 일깨우지만, 동시에 권위를 뒤흔든다. 수도사들은 하느님이 가르치는 절대적 진리 위에서 만들어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 동시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금서의 존재가 두려워서 금단의 장소인 수도원 도서관에 비밀리에 보관했다. 라블레가 근엄한 수도사 출신이면서도 웃음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건강한 사회를 원했다. 그는 수도사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진리를 엄숙한 가톨릭교회가 아닌 교회 밖에 들리는 민중들의 웃음에서 찾았다. 이미 라블레는 윌리엄 수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진리’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2》 중에서, 8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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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0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fledgling 2015-09-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찾으셨군요~^^ 정말 책 제목이 비슷하네요~ 저는 읽다가 너무 웃겨서 올렸을 뿐인데..ㅎㅎ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군요. 페이지는 상권 148페이지 입니다~ 장미의 이름 명대사! 잘 보고 갑니다!

cyrus 2015-09-20 19:22   좋아요 1 | URL
fledgling님 덕분에 저도 몰랐던 사실을 알았어요. 장서를 보관한 곳이 생 빅토르 수도원 도서관이라는 사실에 살짝 소름 돋았어요. ^^
 

 

 

 

 

 

 

 

 

 

 

 

 

 

 

 

 

 

 

 

 

조금은 지저분한 내용이 있는 글이다. 아니, 애초에 이 글을 안 보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개될 내용을 미리 알리겠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독자의 비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저분한 장면이 몇 개 나온다. 다음에 소개될 두 개의 장면은 비평가들을 당혹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율리시스》를 최악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비평가들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고도 엉뚱한 소설 속 장면이 이야기 전개와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의식의 흐름 기법을 따르는 소설의 구조를 생각한다면 조이스가 단순히 독자에게 웃음을 유발하려고 이런 장면을 삽입하지 않았으리라.

 

《율리시스》 4장 ‘칼립소’는 레오폴드 블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다. 오전 11시에 친구 디그넘의 장례식을 참석하기 전까지 레오폴드가 겪게 되는 일상적인 상황과 내면 의식을 보여준다. 레오폴드는 외로움 타는 중년 남성이다. 가수인 아내 몰리 블룸과 같이 살고 있지만, 아내는 동료 가수인 블레이제스 보일런을 좋아한다. 레오폴드는 시장에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한 재료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편지 두 통과 엽서 한 통을 발견한다. 편지 한 통과 엽서는 아내에게서 온 것인데 발신인이 보일런이다. 나머지 편지 한 통은 블룸의 딸이 보낸 것이다. 레오폴드는 편지를 읽다가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하필이면 그 날 오후에 보일런이 몰리를 만나려고 집으로 찾아올 예정이다. 레오폴드는 아내와 보일런이 밀회하는 상상을 한다. 아내와 보일런의 관계는 레오폴드의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레오폴드가 어디를 가든, 무슨 어떤 일을 하던 아내와 보일런에 대한 고민을 지우지 못한다. 레오폴드는 아내의 불륜을 알고 있어도 괜히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칼립소’는 레오폴드의 외로운 상황을 보여주는 심각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럽게 끝이 난다. 레오폴드는 식사를 마친 뒤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날짜가 지난 잡지를 읽으면서 볼일을 본다. 그러는 와중에 그의 머릿속은 아내 걱정이 아닌 엉뚱하게도 단편소설을 쓰는 모습을 상상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난 후에 목욕탕으로 향한다.

 

 

그는 화장실의 흠 있는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장례식을 위해 바지를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아. 그는 낮은 이마 서까래 아래로 머리를 숙이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조금 열어둔 채, 썩은 석회며 묵은 거미줄 냄새 속에서, 그는 허리띠를 풀었다. 앉기 전에 그는 벽의 빈틈을 통하여 이웃 창문을 엿보았다. 임금님은 그의 회계실(會計室)에 있었다. 아무도 없군.
변기에 웅크리고 앉아 그는 주간지를 펴서, 맨 무릎 위에 그의 페이지를 펼쳐 놓았다. (중략) 조용히 그는 읽어 나갔다. 스스로를 힘을 주면서, 첫째 단을, 그리고 굴복하면서 그러나 티면서, 둘째 단을 읽기 시작했다. 반쯤 와서, 그의 최후의 저항에 버티며, 어제 있었던 약간의 변비증이 완전히 가시도록 계속 끈기 있게 읽으면서, 그가 읽자, 그의 창자가 조용히 후련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커서 치질이 재발하지 않아야 할 텐데. 아니야, 됐어. 그래. 아하! 변비증. 카스카라 사그라다 한 알을. 인생도 이랬으면. 단편소설은 그를 감동하거나 자극하지는 않았으나 뭔가 민감하고 청초한 것이었다. 지금은 무엇이든지 인쇄를 하지. 별반 기사거리가 없는 계절. 그는 계속 읽었다. 자신이 풍겨 오르는 냄새 위에 조용히 앉은 채.

 

(김종건 역, 169~170쪽)

 

 

서양 문화에서 화장실은 뭔가 음침하고 불결한 장소이다. 이렇다 보니 비평가들은 주인공이 볼일을 보는 장면이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그를 후원해준 에즈라 파운드도 이 장면에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소설 속 화장실은 아주 특별한 장소다. 아내에 대한 레오폴드의 상념이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레오폴드는 소설을 집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내에 대한 걱정을 잊는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한다.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화장실의 의미를 이처럼 적절하게 표현한 말도 없다. 레오폴드의 입장에서는 화장실이 잠시나마 근심을 잊을 수 있는 안락한 장소다. 조이스는 화장실을 불결하고 폐쇄된 장소가 아닌 안락한 장소로 변환하면서 기존의 인식을 뒤엎는 발상을 선보였다.

 

11장 ‘세이렌’에서도 레오폴드는 아내 걱정에 불안감을 느낀다. 이 장은 특이하게도 노랫말이 많이 등장한다. 레오폴드가 만나는 인물들은 노래를 부르는데 음악이 레오폴드의 정서에 영향을 준다. 레오폴드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 위험한 유혹을 이겨내는 오디세우스와 동일하다. 어수선한 의식 상태인 와중에서도 조이스는 이야기 후반부에 재미있는 장면을 또 한 번 연출한다. 레오폴드는 뱃속에 가스가 차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조금 있으면 방귀가 나오려고 한다. 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때문에 방귀를 시원하게 뀌지 못한다. 안 그래도 주변에 흐르는 노랫소리에 거슬리는데 이제는 뱃속의 장이 레오폴드를 예민하게 만든다.

 

 

블룸(꽃)은 가스가 뱃속에서 빙글 뱅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놈의 사이다가 가스성(性)이었던 모양: 역시 변비를. 가만있자. 루벤 J가(家) 근처 우체국 1실링 8페니 너무. 배의 가스를 제거하자. 그리크가(家)로 몸을 살짝 피하자.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대기 속에 한층 자유롭게. 음악.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거다.

 

(김종건 역, 536쪽)

 

 

결국, 레오폴드는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틈을 타 시원하게 가스를 배출한다. 하나의 광대한 음악처럼 진행된 11장의 이야기는 레오폴드의 방귀 소리와 함께 장엄하게 끝이 난다.

 

 

프흐, 오오, 프르프르.
“지상(地上)의 만족들.” 뒤에는 아무도 없군. 그녀는 지나갔다. “그때에 그런데 그때 가서야.” 전차 크란 크란 크란. 좋은 기회. 들어오고 있다. 크란들크란크란. 확실히 버건디 때문이야. 그래. 하나, 둘. “나의 비명(碑名)을.” 카라아아아아아. “쓰여지게 하라. 나는”
프르프흐르프흐흐.
“끝났도다.”

 

(김종건 역, 541쪽, * 버건디 : 프랑스 브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적포도주)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지독하게 어려우면서도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소설이다. 여기에 소개된 장면들은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조이스 자신의 문학관을 반영한다. 그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서사 형식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레오폴드 블룸 또는 스티븐 디덜러스  내세워서 ‘자아’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을 자유롭게 말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개입하는 갖가지 외부 자극을 어떻게 수용하고 저항하며 또는 소화해 내는지가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심리적 불안은 신체적 긴장을 동반한다. 신체적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은 ‘배설’이다. 대소변을 배설한 직후 편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감정 패턴이다. 레오폴드에게 ‘배설’은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렸던 상처나 감정을 분출하는 카타르시스 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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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8-2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임스 조이스 할배는 생리학에도 도통했나 보다.
율리시즈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니...!
네 말마따나 지독히 어려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가 보다.ㅋ

cyrus 2015-08-29 20:50   좋아요 0 | URL
<율리시스>가 정말 재미없는 소설인데도 끝까지 참고 읽으면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씩 나와요. 그 장면을 해석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소설이 양파 같아요. ^^
 

 

 

 

 

 

 

 

 

 

 

 

 

 

 

 

 

 

 

 

 

독서문화시민연대가 올해 9월 첫째 주(91~97)금서 읽기 주간으로 선정했다. 독서의 달을 맞아 금서로 지정되어 나쁜 책으로 낙인찍힌 책들을 다시 읽어 보자는 취지로 진행된다. 금서 목록은 책읽는 사회 문화재단홈페이지(www.bookreader.or.kr)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목록에 있는 금서는 총 46권이며 계속 금서가 추가될 예정이다. 금서 목록을 확인해 보니까 의외의 이유로 금서로 오명을 받아야 했던 책이 몇 권 있었다.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이 초등학교 도서관 금서 목록에 올랐던 사실을 처음 알았다.

 

금서 목록을 꼼꼼하게 읽어보면서 이 책이 없는 사실에 의아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금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책은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외설 시비 때문에 금서로 지정되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인류는 늘 그랬듯이 금서를 읽는 방법을 찾는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위대함을 눈여겨본 헤밍웨이는 이 작품이 미국 독자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미국도 율리시스에 출판 금지령을 내렸다. 헤밍웨이는 금서를 미국으로 들어오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율리시스출간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서점 셰익스피언 앤 컴퍼니의 주인 실비아 비치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헤밍웨이의 친구에게 율리시스를 소포로 보냈다. 캐나다인은 매일 바지 속에 율리시스책 한 권씩 숨겨서 미국으로 밀반입했다. 캐나다는 율리시스출판 금지령이 내려지지 않은 국가였다.

 

이 정도 이력(?)이라면 율리시스는 금서 읽기 주간에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다. 아니, 금서의 역사를 논할 때 율리시스가 빠지면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해서 금서 목록에 포함될 수 없다면, 이 또한 독서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태가 된다. 책이 엄청나게 두꺼워서 국내 번역본이 무려 1,000쪽이 넘는다. 그래도 넉넉하게 일주일을 잡아서 율리시스를 읽기 시작하면 완독할 수 있다. , 독자의 눈을 괴롭히는 장황한 문장과 주석의 지루함을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다. 또한, 율리시스을 제대로 읽으려면 해설서도 같이 읽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은가. 율리시스가 음란물로 오해를 받았던 이유를. 율리시스에 다가서는 것이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을 인용하여 소개해 본다. 얼마나 야한지 한 번 확인해보시라. (글이 길기 때문에 인용한 문장만 확인해도 된다)

 

    

 

 

 4장 칼립소

 

버들 무늬의 접시 위에 핏방울이 흘러나온 한 토래 콩팥: 마지막 남은 것, 그는 카운터의 옆집 처녀 곁에 섰다. 그녀도 저 콩팥을 사려는가. 손이 종이 쪽지로부터 품목을 읽으면서? 손이 튼 채: 세탁용 소다. 그리고 데니 점의 소시지 1파운드 반, 그의 눈이 그녀의 활기 찬 엉덩이 위에 머물렀다. (중략) 돼지 푸줏간 주인은 쌓아 놓은 더미에서 두 장을 집어, 그녀의 상등품 소시지를 말아 싼 뒤, 붉은 얼굴을 찌푸려 보았다.

- , 아가씨. 그는 말했다.

그녀는 대담하게 미소지으며, 굵은 팔목을 내밀어, 한 닢 동전을 치렀다.

고마워요. 아가씨. 그리고 거스름돈이 1실링 3페니. , 댁은?

블룸씨는 재빨리 가리켰다. 그녀는 뒤쫓아 따라잡기 위해 만일 그녀가 천천히 걸으면 그녀의 움직이는 햄 엉덩이 뒤를 아침에 맨 먼저 그걸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야. 서둘러요. 젠장. (중략) 이클레스 골목길에서 그녀를 끌어안는 한 비번(非番) 순경. 사내들은 끌어안기에 꼭 알맞은 여자를 좋아하지. 상등품 소시지야. 오 제발, 순경나리, 나는 어쩜 좋아요.

 

(김종건 역, 154~156)

    

레오폴드 블룸은 가수인 아내 몰리의 아침 식사를 차리기 위해 혼자 시장에 나선다. 돼지 콩팥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려고 정육점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옆집에 사는 하녀를 만난다. 그런데 하녀의 엉덩이를 보는 순간, 블룸은 충동적으로 야한 자극을 받는다. 성적 매력이 있는 여자를 소시지로 비유하는 블룸의 생각은 야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여성을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상품으로 취급하는 남성 우월적 시선이 드러난다.

 

 

    

 

 8장 레스트리고니언즈

    

 유리창에 달라붙은 파리 두 마리가 윙윙거린다.

불타는 듯한 포도주가 그의 입에서 머물다가 목으로 넘어갔다. 포도주 압축기에서 으깨지는 버건디 포도송이. 그것은 태양열이다. 비밀의 감촉에 닿아 나의 희미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그것은 그의 축축해진 감각을 자극하여 생각나게 했다. (중략) 그녀의 머리는 내 코트를 베개 삼고, 히스나무 집게벌레가 그녀 목 아래에 낀 내 손을 긁었다. 나 두둥실 뜰 것 같아요. 어머, 멋져요! 향유 때문에 차가운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나에게 닿아 애무했다. 나에게로 향한 그녀의 눈은 딴 곳으로 비껴나지 않았다. 나는 황홀한 기분으로 그녀 위에서 입을 벌리고 그녀의 입에 키스했다. . 그녀는 살며시 나의 입 속으로 따뜻하게 씹은 시드케이크를 넣어 주었다. 그녀의 입으로 씹은 달고 시큼한 덩어리. 환희. 나는 그것을 먹었다. 환희. 젊은 생명, 입을 내밀고 나에게 준 그녀의 입술. 그녀의 눈은 꽃이었다. 나를 드릴게요 하는 적극적인 눈.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 그녀는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중략) 나는 거칠게 그녀를 덮쳐 키스했다. 눈을, 입술을, 뒤로 젖힌 목덜미를, 엷은 블라우스 속에서 고동치고 있는 유방을, 단단해진 둥근 젖꼭지. 나는 나를 잊은 채 혀를 그녀 입 안에 넣었다. 그녀도 나에게 키스했다. 나도 키스를 받았다. 몸을 내맡기고 그녀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키스했다. 그녀도 나에게 키스했다.

나를. 그리고 지금 이 나를.

달라붙은 파리들이 윙윙거렸다.

 

(김성숙 역, 300~301)

 

 

레오폴드 블룸은 바(bar)에서 혼자 포도주를 마시다가 유리창에 달라붙어 교미하는 파리 한 쌍을 관찰한다. 그는 파리가 교미하는 것을 보면서 옛 애인 조세핀 브린과의 키스를 회상한다. 파리의 교미를 통해서 성적 본능을 불연 듯 떠올린 블룸의 심리 상태를 조이스는 아주 농도 짙게 표현했다. 마들렌과 홍차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 프루스트의 문장과 한 번 비교해보시라. 조이스는 발칙하게도 교미하는 파리 한 쌍을 보면서 온몸으로 느꼈던 뜨거운 옛사랑의 흔적을 기억한다.

 

    

 

 

 10장 배회하는 바위

    

그는 책을 펼쳤다. 생각했던 대로야.

더러운 커튼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 잘 들어 봐! 그 남자.

아니야: 아내는 그런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걸 한번 빌려다 주었지.

그는 다른 책의 제목을 읽었다: <죄의 쾌락>. 아내의 취향에 더 맞겠군. 어디 좀 보자.

그는 손가락이 펼치는 곳을 읽었다.

남편이 그녀에게 준 모든 달러 화폐는 멋진 가운과 가장 값비싼 화려한 속옷을 사느라 옷가게에서 다 써버렸다. 그이를 위해! 라오울을 위해!”

그래. 이거다. 여기 읽어보자.

그녀의 입은 달콤하고 육감적인 키스로 그의 입과 풀칠되고 한편 그의 양손은 그녀의 실내복 속에 감싼 풍만한 곡선을 다듬었다.”

그래. 이걸 사자. 결말은.

당신은 이미 늦었어. 그는 의심스런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의 검은담비 털로 장식된 외투를 벗어 던지자. 여왕다운 어깨며 요동치는 풍만한 육체가 드러났다. 그녀가 그에게 조용히 얼굴을 돌리자, 한 가닥 알쏭달쏭한 미소가 그녀의 무르익은 입술 주변에 아롱거렸다.”

블룸씨는 다시 읽었다. “그 아름다운 여인...”

온기가 조용히 그의 온몸을 소나기처럼 감싸면서, 그의 살을 움츠리게 했다. 헝클어진 옷 사이로 풍만하게 드러난 육체. 눈의 흰자위가 점점 풀어지면서 그의 콧구멍이 노획물을 찾아 저절로 아치형을 이루었다. 녹아 내리는 가슴 연고(“그이를 위해! 라오울을 위해!”). 겨드랑이의 양파 같은 땀 냄새. 어교(魚膠)같은 끈적끈적한 점액(“그녀의 요동치는 비만의 육체!”). 느껴요! 눌러요! 억눌린 채! 사자의 유황 빛 똥!

 

(김종건 역, 458)

    

 

 

레오폴드 블룸은 서점에서 에로소설 <죄의 쾌락>을 읽는다. 소설에 나오는 야한 장면을 읽다가 의식적으로 자신과 아내 그리고 아내의 내연남 보일런의 삼각관계를 떠오른다. 블룸은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에 놓인 중년 남성이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에로소설을 읽으면서 충족시켜 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자꾸 아내의 내연남이 생각난다. 아내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는 블룸의 정신 상태가 안쓰럽기만 하다.

    

 

 

 13장 나우시카

    

레오폴드 블룸이 샌디마운트 해변을 걸으면서 명상에 빠져 있다가 우연히 거티 맥도웰이라는 소녀를 목격한다. 거티는 블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면서 그녀는 속옷을 드러낸다. 블룸은 속옷을 보여주는 그녀를 응시하면서 자위를 한다. 이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 워낙 길어서 분량을 생각해서 인용하지 않았다. 블룸의 자위 행위는 율리시스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중요한 장면이지만, 율리시스관련 학술 논문 주제로 많이 정해질 정도로 해석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 장면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적으로 접근하면 거티는 단순히 블룸의 성적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수동적 대상에 불과하다. 한편 또 다른 해석을 따르자면, 블룸의 관음증적 응시와 거티의 노출증적 행동이 상호적으로 대응하여 절정에 이른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의 욕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인용한 문장 때문에 글이 상당히 길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소개된 문장만 보더라도 율리시스가 음란물로 규정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율리시스가 처음 출간되었던 당시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기독교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음란한 장면만 놓고 금서로 지정되는 상황을 조이스는 상당히 억울했을 것이다. 율리시스시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왼쪽 눈을 희생하면서 조이스가 열심히 써내려간 작품이다. 율리시스출간 이후에 조이스는 왼쪽 눈을 열 번 이상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1933년에 존 M. 울지 판사가 율리시스를 새로운 문학 실험이 낳은 창작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출간된 지 11년 만에 금서 딱지를 떼어낼 수 있었다. 율리시스는 시대를 지배한 엄격한 도덕성에 갇힌 표현의 자유에 날개를 달아준 중요한 책이다. 세상을 바꾼 최고의 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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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도 있네요^^ 참 네....

cyrus 2015-08-27 16:00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금지시켰어요. ^^;;

인디언밥 2015-08-2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서 읽기 주간이라니 잼있네요! 인용하신 글 보니 야하긴 야한 것 같아요. 크크크... 가끔 금지된 것들이 그 시대를 보여주기도 하나봐요. 우리나라도 비교적 최근까지 그렇고.. 금서의 역사라던가.. 금지된 것들을 다룬 책이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용..

cyrus 2015-08-27 16:02   좋아요 1 | URL
베르너 폴트의 <금서의 역사>, 니컬러스 J. 캐롤리드스의 <100권의 금서>를 참고하면 됩니다. ^^

인디언밥 2015-08-27 17:12   좋아요 0 | URL
헉... 감사합니당 ㅜㅠㅠ

페크pek0501 2015-08-2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서, 라고 하니깐 끌리는 걸요. 도대체 왜 금서인가 싶어서 말이죠.
예전에도 금서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시대가 바뀌면 금서 목록도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금서가 양서가 되기도 하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할 것 같아요.
우리의 생각이란 게 시간을 타고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도 할 테니까요.
님 덕분에 좋은 공부를 하고 갑니다. ^^

cyrus 2015-08-27 16:04   좋아요 0 | URL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종북주의로 의심되는 책을 선정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
 
외제니 그랑데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조명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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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5] 외제니 그랑데

 

 

* 위대한 속물 발자크를 추모하며...

 

** Eugénie Grandet (1833년, <인간 희극> 제1부 풍속 연구 ‘지방생활 장면’)

 

 

 

“우리는 돈을 왜 벌어야 할까요?” 매우 새삼스러운 질문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마도 다양한 답변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집을 사기 위해서, 결혼하기 위해서, 여행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노후를 위해서. 대개들 이런 대답이 나온다. 그런데 자칫하면 평생 돈에 끌려다니며 사는 인생이 될 수 있다. 현재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배제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이 최고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노심초사하는 사이 그 밖의 가치는 뒷방 신세다. 돈에 상당한 집착을 보여 돈을 아끼는 정도가 심한 사람, 때로는 맹목적으로 돈을 수집하는 사람을 ‘수전노’라고 한다. 경제 사정이 어려울 때 절약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상식에서 이탈될 정도로 과도하게 아끼려고 한다면 바람 잘 날이 없다.

 

서양 문학에서 ‘돈의 노예’라고 하면 샤일록(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스크루지(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가 먼저 떠오른다. 온정이라는 단어와 아주 거리가 먼 수전노 한 사람을 더 소개하자면, 그랑데 영감이 있다.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에 나오는 이 영감은 황금, 금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에게는 외동딸이 있다. 외제니 그랑데는 파리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시골 아가씨다. 그녀는 사촌 샤를 그랑데를 사랑한다. 샤를은 부유한 아버지(그랑데 영감의 친동생) 덕택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파리지앵이다. 시골 여자와 도시 남자의 사랑은 갑작스러운 불행으로 인해 살짝 어긋나게 된다. 샤를의 아버지가 자신이 운영하는 은행의 파산 소식에 절망하여 자살하고 만다. 한순간에 무일푼이 된 샤를은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서 인도로 떠나서 돈을 벌기로 한다. 외제니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아버지가 준 금화 전부를 샤를에게 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영감은 자신의 피와 같은 금화가 너무 아까워서 분노한다. 외제니는 영감의 명령으로 방에 감금되어, 물과 빵으로 연명한다. 가족보다는 돈을 우선시하는 영감의 권위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랑데 영감은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 새로운 사회지배층으로 급부상한 신흥 부르주아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폴레옹 실각 이후, 왕정복고 체제로 들어서는 즈음에 신흥 부르주아지는 파리에 진출하여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했다. 그랑데 영감은 때를 잘 만나서 돈을 잘 벌 수 있었는데 그를 자수성가형 부자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내의 지참금을 사업 투기 자금으로 사용하여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감은 아내에게 고마워할 줄도 모르며 재산 소유하는 권리를 독단적으로 가지고 있다. 황금만능주의와 가부장제와의 환상적인 조합은 그랑데 영감의 권위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는 돈의 힘으로 가정을 군림한다. 외제니와 영감의 아내는 재산 소유에 간섭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영감은 딸에게 부인의 유산을 물려받는 권리를 포기하도록 종용한다. 돈을 통해 권력을 과시하려고 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논리가 저변에 깔렸다. 한편으로는 남성 위주의 경제권이 두꺼운 시대에 축소되었던 여성의 경제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정도면 그랑데 영감이 개과천선한 스크루지보다 더한 최악의 수전노다. 영감은 죽음의 신이 가까이 찾아와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질적 탐욕을 쫓은 삶에 대한 반성하는 마음도 전혀 없다. 영감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신부의 은빛 십자가를 금붙이로 착각하고 욕심내면서 손을 뻗치다가 숨을 거둔다. 중국 속담에 ‘관 속에서도 손을 뻗친다’라는 말이 있다. 돈이라면 죽어서도 관 속에 든 사람까지도 관 밖으로 손을 내민다는 뜻이다. 영감의 최후는 중국 속담의 의미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그랑데 영감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마몬(Mammon)에게 손을 뻗쳤다. 특히 영감이 죽으면서 딸에게 남긴 유언은 돈 욕심의 끝을 보여준다. 영감은 자신의 보물을 끝까지 잘 지켜서, 저승에서 만나면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당부한다. 발자크는 영감의 최후를 통해서 종교의 교화가 돈의 힘 앞에 무색하게 된 세태를 비꼰다.

 

“참말이지 돈은 살아 있는 것이야. 인간들처럼 우글우글 들끊기도 하지. 가는가 하면 오고, 땀 흘려 수고하고, 새끼를 치기도 하니까 말이야.”(《외제니 그랑데》 중에서, 116쪽)

 

 

그랑데 영감은 인간의 탐욕을 먹으면서 끊임없이 자라는 돈의 번식력을 알고 있었다. 탐욕 유전자는 감염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며 마몬의 자식들을 양산한다. 7년간 인도에서 일하면서 돈의 맛을 알게 된 샤를 그랑데 역시 마몬의 족보에 포함된다. 그는 외제니와의 사랑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백작의 딸과 결혼하려고 한다. 영감의 탐욕 유전자는 친딸이 아닌 조카가 물려받는다. 돈의 메커니즘을 알아차린 샤를의 모습은 제2의 그랑데 영감의 등장을 암시한다. 돈이 넉넉하게 있다면 우리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돈의 마력에 짓눌린 채 오직 돈만을 모으기 위해서 살아가는 돈(돼지, 豚)이 될 수 있다. 탐욕의 끝이 어디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늙어 죽을 때가 되면, 한평생 누리던 부귀는 물론 명예마저도 짐이 되어 버려야 한다.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은 지독한 독선이며 광적인 집착이다.

 

 

 

 

※ 《외제니 그랑데》는 발자크의 대표작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런데도 아직 완역본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번역본은 1977년 삼중당문고에서 나온 책을 참조했다고 한다. 삼중당문고 번역본이 완역인지 궁금하다. 사실 발췌 번역한 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면 지루하지 않다. 지만지의 《외제니 그랑데》는 이야기 진행에 상관없는 장광설 같은 긴 문체가 일부 삭제되었다. 책 앞에 있는 역자의 줄거리 소개만 읽어도 이야기의 주요 사건과 결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편소설을 중편 수준의 분량으로 축약해버린 탓에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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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15: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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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2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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