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서적 부도가 올해 출판 산업에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킬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1998년, IMF 외환 위기로 인해 나라 전체가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도 출판 산업이 크게 휘청거렸다. 서적도매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지자 출판사들이 큰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 결국 베스트셀러를 내놓으면서 승승장구하던 출판사들이 경제적 대위기의 여파를 이기지 못해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때나 지금과 상황이 유사하다. 98년 당시에 IMF라는 이름이 우리 삶에 너무나도 크고 버거웠던 이름이었기 때문에 서적도매업계의 부도 소식이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2017년 지금은 어떤가. 최순실이라는 이름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상황에 정유라, 심지어 그녀가 입었다던 패딩까지 대중의 관심거리가 되는 바람에 송인서적 부도 소식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98년에 총체적 위기를 맞은 출판 산업을 살리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5백억 원을 긴급 지원했다. 5백억 원 중에 문화관광부(현 문체부) 이름으로 마련된 문예진흥기금은 2백억 원이었다. 나머지 3백억 원은 재경부(현 기획재정부)와 관계은행 간 협의를 통해서 마련되었다. (관련 기사 : [정부지원 5백억 원 어떻게 운용될까] 연합뉴스, 1998년 3월 17일)
송인서적 부도 소식을 접한 문체부의 공식 입장이 어이없고, 황당하다. 문체부 측은 공적자금 투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98년에 김대중 정부가 출판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한 공적 자금은 국가적 차원의 긴급 지원이라고 말하면서 정부가 따로 자금 지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송인서적 부도에 “공적자금 투입하자” 목소리…정부 “전례없다” 난색] 동아일보, 2017년 1월 4일)
98년 공적 자금 지원 사례가 있었는데도 현 정부는 자금 지원을 한 적 없다고 뻔뻔하게 주장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논리인가. 문체부와 기획재정부는 ‘정부’라는 이름으로 소속된 통치 기구다. 문체부 스스로 자신들이 정부 소속의 관료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체부가 정유라와 그녀의 애마 뒤치다꺼리하고,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문화계 인사들을 미워하는 반 관료기관이라는 것을. 문체부의 변명은 심각한 문제에 한 발 내빼려는 태도다. 안 그래도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문체부가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른 마당에 벌써 레임덕(lame-duck) 조짐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출판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십 년 전에도 출판계 위기 운운했을 때 들은 것 같다. 이러한 대안은 현실성과 동떨어진 원론적 수준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책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도서정가제의 효용성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도서정가제 이후로 출판업계와 독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을 지켜보기만하고, 말로만 대책을 세우겠다고 반복하는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실망스럽다.
98년 정부의 출판계 공적 자금 지원이 결정되었을 때 서울출판인포럼 총무는 별도로 공공도서관 도서 구입예산 1억 원을 마련해주기를 원했다. 만약에 문체부가 출판계 공적 자금을 투입하게 되면, 공공도서관 도서 구입예산 지원에 대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공공도서관에 투입되는 예산이 지나치게 많이 편성되는 것에 부정적이다. 오히려 출판 산업 부흥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도서정가제 이후로 종이책 구매층 독자들이 줄어들었는데, 이들은 신간도서를 사는 대신에 도서관에 빌려 본다. 나는 이미 종이책 구매층에서 완전히 이탈되었다. 부끄럽게도 도서정가제가 정식 시행된 지 2년 동안 신간도서 구매 횟수가 중고매장에서 도서 구매 횟수보다 적다. 솔직히 말하자면 중고매장에서 책을 구매한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게 책을 소비하는 독자가 생각보다 많아지면, 이건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있어도 책을 사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작년부터 공공도서관 1곳에서 책을 10권 대출할 수 있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거주 지역에 있는 모든 공공도서관을 통합 대출회원카드 한 장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20권의 책을 대출할 수 있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이 날 도서관은 책 20권을 빌릴 수 있는 ‘두 배로 데이’를 정했다. 책을 많이 빌릴 수 있다는 건 애서가에게는 크나큰 축복이다. 그런데 이 달콤한 정책에 너무 맛 들여서 도서관만 찾게 되면, 서점을 방문한 일이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