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 스릴러 소설 속 ‘진실과 정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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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ㅣ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꽤나 강렬한 표지만으로도 대략 어떤 분위기의 이야기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스펜스, 스릴러, 그런 이야기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반면 추리소설의 형식 자체는 무척이나 즐겨 읽는 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알렉스>가 무척이나 싫고 거북하지만, 또한 끊임없이 전개되는 사건의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놓지 않았다. 예상 밖의 반전이 무엇일지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면서 두뇌 싸움을 할 겨를은 없었다. 잔혹한 살해 현장을 바로 현장에도 목도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끌려 다닌 느낌이다. 이렇게 묵직한 책을 들고 한 주를 보냈다. 때로는 몸서리가 쳐지는 무자비한 살인의 현장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끔찍한 사건들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살인자’인 ‘알렉스’를 바로 알고 싶은 마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였다. 그저 나는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알렉스>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강렬한 호기심을 유발했던 것은 ‘1부’의 알렉스의 납치 사건이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납치를 당한다. 다만 목격자가 있어, 납치사건은 바로 신고가 되지만, 납치당한 그녀의 신상이 오리무중인 것이다. 바로 납치 피해자의 신상이 오리무중이란 점이 둔중한 무언가에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것과 같았다. “피해자의 직장엔 아무도 없나? 남편도 없고 약혼자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고, 아무도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가족도 없다는 건가? 요즘 같은 이런 도시에서는 이제 누가 없어지든 말든 아무도 상관 안 하는......” 이라고 사건 담당 형사 ‘카미유’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반장님은 부친과 매일 연락을 주고 받으셨나요?“(100)라고 부하 형사 ’아르망‘은 되묻는다. 순간 온몸의 세포들이 제각각 몸 둘 곳을 찾지 못해 서로 딴청을 피우는 듯했다. 무자비한 살인 사건의 이야기 속에 바로 ’가족‘과 ’인간 관계 속 유대‘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살인자 알렉스의 이야기와 145cm라는 최단신 형상반장 ’카미유‘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반장형사 ’카미유‘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고군분투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사건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그것은 바로 납치사건으로 인해 아내와 아이를 이를 그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속속히 드러난 카미유의 트라우마와 함께 베일에 감춰진 알렉스의 이야기가 2부로 이어진다. 솔직히 2부는 묻지마식 살인의 전형으로 비춰졌다. 몇 가지 의문 속에서 무차별적이고 순간적인 살인은 아무런 동기도 없이 그저 하나의 사건일지처럼 나열되는 듯하였다. 그리고 3부의 이야기는 <알렉스>를 읽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입이 근질근질함에도 침묵하겠다.

‘알렉스’ 그녀는 분명 살인자, 살인귀, 살인마이다.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녀의 살인 행각들은 무자비한 만큼 절로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거북하고 불편하였다. 하지만 섣부를 판단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방대한 한 권의 책 속에서 그저 살인의 현장만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을 거란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트라우마는 과연 무엇일지, 뻔한 이야기 속 유린당한 어린 시절의 진실은 무엇일지,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와 설명을 기대하며 마음을 달래며 마지막 장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이것을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반전은 반전이지만 기존의 스릴러에서는 보지 못한 반전일 것이다.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이 손에 꼽히지만, 분명 기존의 이야기와는 분명 다른 부류의 반전일 것이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어떤 짜릿한 결말만이 충격적 반전만은 아닐 것이다. 색다른 의미의 충격적인 반전임은 확실하다. 옮긴이의 말을 덧붙이면, ‘미자나빔(mise en abyme)’ 기법이란다. ‘중요한 장면을 감춰두고 끝끝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성방식!’, 분명 그렇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잠시 나는 작가와 씨름을 해야 했다. 과연 누가 피해자인가? 과연 누구를 처벌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알고자 했던 진실은 무엇인가? 이러한 나의 의문은 자명한 것이라는 듯 작가는 되묻는다. “진실이라, 진실이라…… 그런데 지금 우리한테 가장 절실한 미덕은 진실이 아니라 바로 정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 않은가요?”(528) 과연 진실과 정의 사이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혼란스럽고 내 안의 여러 목소리들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로 포장하고 있는 <알렉스>이지만, 여러 찬사의 말들이 실언은 아니었다. 두려움에 회피하고 외면하려 했던 이야기 속에 간과할 수만은 없는 여러 화두들이 눈에 들어왔다. 찌는 듯한 더위 속 섬뜩한 이야기로 온몸을 서늘하게 하면서, 우리 삶의 여러 단면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충격적 반전’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난다.

7월에 읽고 싶은 책 - 소설, 6월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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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다.

어제 뉴스에선 여름에 책판매가 조금 늘어난다고 하는데

나 역시 시원한 계곡물 아래

발 담그고

책이나 여유롭게 읽으면서 이 여름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

무더위 속, 마음만큼은 책 속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뜨겁게!

그렇게 나의 마음을 뜨겁고 촉촉하게 해 줄 책들은 바로

김정현의 <누이>,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 그리고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이다.

어찌 하다보니, 모두 국내 작가들의 소설인데

그저 반갑고, 무조건 읽고 싶은 생각만 들게 하는 책들이다.

  

 김정현의 가족소설이다.

그의 가족 이야기는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하는데

탁월하다.

가족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가슴으로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

너무도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소홀할 수 있는 가족에 대해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뜨겁게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이정명의 신간인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확인할 필요도 없는 듯하다.

과연 어떤 소재의 이야기일지, 직접 확인하고 싶은 뿐! 그런데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1년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 간절해진 뿐!

신나게 여름을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별을 스치는 바람>이다.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매혹과 상실, 고독과 고통"이란 소재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은희경 이란 작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예전에 읽었던 <소년을 위로해줘>에서 느꼈던 따스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불안한 마음 속, 현실 도피형 자유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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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ㅣ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빅토리아 시대, 여성 감옥과 강신술은 다룬 <끌림>이란 소설은 무척이나 낯선 이야기였다. 그만큼 조금씩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짐작할 수 없는 첫 도입부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강렬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무척이나 강하게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호기심은 반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상황이 급반전되면서 무척이나 음침하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전혀 다른 공간의 이야기로 변모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이야기의 무게감은 초반 솔직히 너무도 버거웠다. 하지만 조금씩 인물들 간의 관계와 상황 등을 파악하게 되면서 다시금 흥미진진해졌다.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척이나 무겁고 음울하다. 이는 한편으로 ‘빅토리에 시대’라는 배경에 주목하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는 19세기 후반(1837∼1901년), 빅토리아여왕 시대로 영국 역사에서 산업 혁명의 경제 발전으로 대영제국의 최고 절정의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세계사는 잘 모른다- <끌림>을 읽는 내내, 일본의 ‘에도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뭔가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면서, ‘영매’의 이야기가 하나의 전설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격변의 시대, 세기말의 또 다른 혼란과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산업 혁명이란 거센 흐름, 기존 가치관의 혼란 등, 그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인간이 느끼게 되는 심리적 불안, 내면 깊숙한 공포 등이 기묘한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하다. 나 역시 그 음울한 분위기 속에 묘한 매력에 조금씩 빨려들었다.

두 주인공 ‘마거릿’과 ‘셀리나’의 이야기가 일기 형식으로 교차하고 있다. 초반부의 강렬했던 이야기의 진실이 궁금했다. 그리고 섬세하게 전개되는 심리 묘사, 특히 마거릿의 감정에 크게 동요되어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듯, 팽팽한 긴장감이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가냘프게, 그러나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가 조금씩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고, 그것에 집착 아닌 몰입하는 과정을 가슴을 졸이며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처럼 순진하게 이야기에 끌렸던 나는 마지막 진실을 통해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뒤통수가 얼얼한 기분이었다. 사랑과 배신, 그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에도 역시 ‘마거릿’을 쫓아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마거릿처럼 어떤 시련 앞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면서 꿈꾸었던 환상이 무엇이었는지 똑똑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 여성에게 동화되어 내가 간과하고 있던 현실, 허구 속 이야기에 기대었던 마음들을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직시하게 하였다. 극심한 공포, 불안은 눈을 감게 하였다. 외부적 상황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는 불안, 두려움과 외로움에 굴복하다보면, 헛된 망상에 사로잡히듯, 어떤 헛된 욕망에 매달리게 된다. 또한 때론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주어진 상황들 속에 그저 메이며 우물쭈물하다보면, 자칫 현실 도피의 ‘자유’만을 꿈꾸게 된다. 그렇게 나는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일련의 괴로운 마음들을 달래고자. 지금껏 외면하고자 했던 현실, 그 안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움츠렸던 마음들, 하지만 이젠 두 눈을 크게 뜨고 마음도 활짝 열고, 일련의 우울들로부터 당당히 걸어 나와야겠다. <끌림>속 음울함을 견디었듯이.

'아기가 어머니 품에 안겨 죽어 있었다'의 마력에 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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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개의 힘? 제목부터 뭔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쾌함이 있었다. 분명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게 달갑지 않은 채로 엄청난 부피의 책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나는 ‘아기가 어머니 품에 안겨 죽어 있었다’로 시작하는 예상 밖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고, 온몸의 세포들이 들썩거리는 듯했다. 순간 무척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활자가 이끄는 대로 내달렸다. 그저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일지 이상하리만치 압도당했고 불쾌했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빨려 들었다. 굉장한 흡입력 그 자체였다.

<개의 힘> 이것은 기존에 내가 즐겨있던 달콤하고 유쾌한 이야기가 분명 아니다. 무척이나 싫어하는 이야기임에도 나는 궁금하고 또 궁금할 뿐이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려하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장면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피로 얼룩진 잔인한 배신과 음모 속, 살인귀나 다름없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 피의 역사 속 인간적 고뇌와 갈등 사이에서 허덕이는 인물들의 이야기, 우정과 배신, 음모와 사랑이 숨 가쁘게 전개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권의 중반부에서는 왠지 지극히 미국적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반감이 있었다. 마약 수사 전담반 아트의 동료 어니가 실종된 후, 그간의 불편한 무언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모호해진 느낌! 마약과의 전쟁,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무엇이 당연한 것인지, 그저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그 과정들 속 잔인함과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헛구역질이 날 듯, 그 핏빛 현장 속의 공포에 짓눌리는 듯했다. 돈과 권력이란 욕망의 늪, 아귀다툼의 지옥이 바로 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무엇이 궁금하고, 또 무엇 때문에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토록 숨 가쁘도록 신나게 내달린 나, 그런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개의 힘’이란 것의 상징,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것이 마지막까지 책을 펼친 이유였다.

책을 읽으면서, ‘멕시코’로부터 최근의 뉴스를 검색해봤다. 뉴스 속 지금의 멕시코는 여전히 <개의 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약과의 전쟁, 지진 등 굵직한 소설 속 이야기들이 현재 진행, 아니 ‘멕시코’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지난 30 여 년간의 북중미 마약 전쟁을 이야기로 풀어냈지만 바로 지금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만큼 1985년의 멕시코 지진을 비롯한 굵직한 실제 사건-정치인 암살 사건, 공산화의 위협, 멕시코와 바티칸의 외교 마찰 등등-과 인물들이 지난 시간의 이야기가 현장감을 넘치도록 생생하게 전해졌다. 아니 실제 벌어지고 오늘의 이야기 그대로, 순식간에 압도해 버리는 것이 바로 <개의 힘>이었다.

최근 어떤 사소한 언쟁으로 내심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내 안의 악의 기운을 잠재우지 못한 채, 들끓어 오르던 분노들! 하지만 이내 그 모든 것들은 책 속에 녹여버릴 수 있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무모한 여러 등장인물들에 손사래를 치며 나 자신은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의 불쾌함처럼 잔인한 복수, 피바다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치열함이 조금은 낯선 삶의 방식 속에 녹아 있을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과의 살가운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우정의 이름으로, 형제애로. 다양한 사랑의 힘이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그러니, 어미 품속 한 아이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이 책 속에 붙박이게 한 이유일 것이다.

‘개의 힘’이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고뇌에 빠뜨린다는 악의 상징’이자, ‘아무리 애를 써도 몰아낼 수 없는 악과 모두에게 내재된 악의 가능성’이란다. 개의 힘! 잔인한 피의 복수, 권력과 돈의 역학 관계 속, 악의 손아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유약한 인간의 본성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악의 수렁에 저당 잡힌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저 ‘악의 노예’가 되지 말자고, 개의 힘에 송두리째 짓눌리지 말자고, 수시로 뒤돌아보며 점검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더욱 치열한 자기반성 속에서 온간 갈등, 고뇌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본다.

토지 7권 (2부 3권)

토지 7 - 2부 3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7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토지 6권(2부 2권)의 이야기를 아주 신나게 읽었다. 그렇기에 7권(2부 3권)으로 이어지는 뒷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냉큼 펼쳐들었다. 7권은 ‘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봉순과 혜관스님의 용정으로의 여정, 그리고 드디어 서희, 길상과 봉순이 한 자리에서 해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간의 그리움을 토해낼 수 없는 처지에서 오는 애잔함에 온몸이 뭉클했다. 그리움을 삼킬 수밖에 없는 마음들 속에 그들의 얽히고설키는 애증이 담백하게 그려져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시금 진주에서 서울, 용정, 하얼빈 그리고 다시 서울로 이야기의 무대가 이동한다. 서희,길상, 그리고 봉순의 해후 이외에도, 용정을 중심으로 그간의 등장인물들이 한데로 모이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서로 무심히 스쳤을 인연의 고리가, 흩여졌던 인연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는 와중에 단연 으뜸은 강 포수와 아들(두메)의 등장이었다. 어미의 기질을 타고난 듯 묘사되었지만 총명하게 그려지는 두메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두메와 서희의 악연의 고리가 어떤 이야기로 풀어질지 호기심을 갖게 된다.

많은 등장인물들, 그들 나름의 고통을 토로하는 시간이었다. 저마다의 가슴 시린 사연들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서희와 길상은 고독한 부부를 자처하고, 길상에 대한 증오에서 시작된 송애는 더할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고생을 낙으로 삼고 살아야지’(246)라는 말로 정리가 되었다. ‘고생을 낙으로 삼는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하룬들 어떻게 부지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에 마음속 어떤 응어리들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후련함만큼이나 큰 위로가 되었다.

또한 윤이병의 무참한 최후를 통해 김두수의 악행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김두수, 거복과 서희의 끈질긴 악연은 어떤 이야기로 전개 될지 조바심을 치게 되지만, 길상과 거복의 만남에서 이야기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서희가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그저 바람결처럼 귓가를 스쳐 지났다. 그런데 드디어 웅크리고 있던 서희가 발돋움을 시작하였다. 공 노인을 위시하여 조준구를 향한 복수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의 숨고르기 시간, 그리곤 더 신나는 질주가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다.

7권은 여러 공간을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었고, 시간의 공백으로 많은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채웠다.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저 조금 실타래를 풀어놓은 정도, 박진감 넘치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압도했던 이야기는 다소 낮은 어조의 읆조림처럼 차분하게 다가온다. 많은 이야기가 그저 고개를 살짝 들었을 뿐. 아무래도 7권은 태풍의 눈인 듯하다. 바로 격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나마 고요할 수 있는 시간! 하지만 온갖 운명의 거센 회오리바람이 바로 기척에서 울리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짜릿함에 전율한다. 8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되지 기대와 호기심은 더욱 고조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