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 - 1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2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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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걸음이라고 하던가! 궁금증과 호기심은 사건의 실체를 모르고 흩어진 단서를 찾아 변두리만 헤매는 서툰 탐정마냥 몸을 달뜨게 하였다. 좀처럼 이야기가 궁금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큰일이다. ‘이제 시작했을 뿐인데...’ 하면서 자꾸만 이야기에 빨려든다.

 

1권에서 눈길을 끌었던 용이와 월선, 남겨진 용이의 처절함과 그를 바라보는 강청댁의 악다구니가 여전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임이네, 두만네, 막딸네, 함안댁, 임이네 등 마을 아낙네들의 이야기에 눈길이 쏠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아닌가! 그저 그렇게 하루 품을 팔 듯, 아등바등 살아간다. 서로 물고 뜯고 치받으면서도 그렇게 서로를 위할 수 없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살갑게 다가왔다.

 

물론 <토지 1부 2권>의 이야기는 크게 치수의 사냥과 강 포수 그리고 귀녀와 평산의 음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귀녀의 집념이라고 표현되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혼불>(최명희)의 또 다른 이를 기억하였다. 귀녀의 욕망과 집념은 작은 아씨를 탐했던 한 사내의 이야기와 닮아 있었다. 양반가와 그 주변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혼란의 시대를 헤치며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듯 닮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 혼란 속을 어떻게 헤치며 살아냈는지, 그 숨 가픈 이야기, 그 애절한 한 세월이 하나의 이야기로 어우러졌다.

 

읽는 내내 가슴은 두근거리고 불안했다. 어떤 알 수 없는 불안의 실체가 온몸을 옭아매듯,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끊임없이 이야기에 압도당해 끌려갔다. 귀녀와 평산의 음모, 그리고 치수의 사냥이 온몸의 세포들을 날 서게 하였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원한을 품고 돌아간 강 포수와 떠돌이 목수 윤보가 물고 온 월선의 이야기가 또한 호기심을 키운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은 풀리지 않은 의문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자꾸만 푸짐한 이야기보따리가 가득가득 쌓여만 가는데, 마냥 즐겁기만 한다.

 

‘한조에 대한 이때의 분한 마음이 후일 잔인한 보복을 낳게 되리라는 것은 조준구 자신도 예측치 못하였다.’(47)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조준구의 무자비한 만행이 어떤 것일지 짐작하기에 이미 깔린 복선이 더욱 날카롭게 눈에 박혔다. 잔인한 보복? 그 보복의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 풀어지게 될지, <토지>에 대한 기대감이 솟구치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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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 1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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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던 지난 겨울, 평사리를 다녀왔었다. 소설 <토지>를 읽지 않은 채, 대략적인 내용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지만, 소설 속 배경이 되는 평사리의 푸르름은 온데간데 없이 겨울의 스산함만 가득하고  최 참판댁의 모습은 그저 드라마 세트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 감흥없이, 그렇게 찬바람 속 적막함을 느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적막함 속 무엇이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던 것인지 <토지>를 펼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나는 토지에 빠져들어 헤어날 길이 잃었다. 

 

드라마 속 몇 장면이 어떤 중요한 역사적 사건처럼 잊히지 않고 불시에 이미지는 되살아난다. 그 드라마 속 이미지와 따사로운 햇볕 속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던 겨울, 평사리, 최참판댁으로의 짧은 여행이 내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나 보다. 기존의 이미지와 소설 속 이야기가 하나로 어우러졌다. 눈에 익혀둔 최참판댁의 풍경이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금세 홀딱 빠져버렸다. 왜 사람들이 <토지>하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토지>의 마력에 휩쓸려버렸다. 허구 속 이야기는 이젠 더 이상 허구가 아니었다. 우리 안에 진실로, 사실로써 실재가 돼버린 듯하다.

 

기나긴 <토지>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었다. 겨우 이야기의 서막을 열었을 뿐임에도 그 기대감에 들떴다. 앞으로의 여정이 꽤나 벅차지만, 그 기대와 흥분을 어쩔 수가 없다. 구천와 별당아씨의 이야기, 윤씨부인과 최치수, 그리고 서희, 봉순이와 길상이를 비롯한 많은 마을 사람들, 최참판댁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꾸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구구절절 어떤 이야기를 토해낼지, 앞으로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 온몸이 들썩거렸다.

 

<토지 1부 1권>에서는 특히 용이와 월선이, 그리고 강청댁의 이야기가 별스럽게 가장 흥미로웠다. 이들의 애끓는 사랑이 어떤 전개를 보일지 궁금해진다. 이제 2권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어떤 궁금증과 호기심을 키울지, ‘살인 교사’, ‘분노의 추적’, ‘사람 사냥’ 등의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알기에 가슴은 더욱 두근거리고, 그저 두려움 속에서도 결코 눈을 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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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세기말의보헤미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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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보기 전에도, 책을 펼쳐서도 어떤 이야기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살짝 책을 훑으면서 책 속 그림들이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뭔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신비롭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여전히 또한 ‘정말 모르겠다!’는 것이 책이 남긴 첫인상이었다. 그러한 나의 무지는 책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설렘으로 바뀌었다. ‘무하’가 무엇인지, 책 속의 그림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 어떤 책보다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끌려들었다.

솔직히 ‘무하’는 하나의 동유럽 특유의 예술양식이라 생각했다. 책 속 그림들이 준 인상은 어떤 하나의 양식으로 틀이 정해진 듯 보였고, 사전 정보 없이 책을 펼친 나는 그저 그렇게 ‘무하’라는 화가, 인물을 인식하지 못했다.

 

무하? 그는 누구인가? 19세기말, 파리를 주름잡았던 체코출신의 화가란다. 하지만 여전히 생소한 이름일 뿐이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들이 또한 얼마나 정형화된 것일까? 그리고 서유럽과 미국을 중심의 예술, 그 외의 세기말의 문화, 예술인 얼마나 천편일률적으로 도식화되었던 것일까? 명화라고 손꼽히는 그림들, 화가들 속에 다양한 예술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세기말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화가 ‘무하’가 우리에게 얼마나 낯선 화가인지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예술의 다양성을 얼마나 도외시하고 있나 하는 것이었다. ‘무하’를 우리에게 소개한 저자 ‘장우진’을 그 짧은 이름 ‘알폰스 무하’가 기억되길 바란다고 글을 맺고 있었다. 그의 바람대로 이제 나는 영원히 ‘알폰스 무하’를 기억할 것이다. 책갈피, 엽서, 달력에서 그의 그림과 그 비슷한 것을 보게 될 때면 반가울 것이고, ‘무하’가 추구했던 예술 그 언저리에서 작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영광을 얻게 된 듯하다.

 

<세기말의 보헤미안, 무하>는 무하의 생애를 정리한 책으로 우리에게 ‘무하’라는 화가를 그의 예술혼을 소개하고 있다. 한 화가의 삶을 통해 고스란히 한 시대가 파라로마처럼 한 눈에 펼쳐졌다. ‘무하’라는 생소한 인물을 소개하기에 앞서 세기말의 예술, 문화의 흐름도 흥미진진했고, ‘무하’라는 낯선 화가를 통해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체코의 한 시골 소년이 파리를 주름 잡았던 예술가가 되는 과정,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예술과 세기말의 풍경이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 풍경 속 꽃피었던 예술, 문화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기말의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리고 아르누보의 대표작인 ‘무하’라는 인물의 생애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또한 조국을 사랑했던 한 화가의 모습이 지난 우리의 역사과 대비되고 반추되면서 그의 남달랐던 뜨거운 조국애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젠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무하’의 삶과 그의 열정을 기억하며, 그의 예술을 사랑하면 될 듯하다. ‘무하’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예술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탐닉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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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읽기를 권함 - 우리시대 어느 간서치가 들려주는 책을 읽는 이유
김무곤 지음 / 더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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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읽기를 권함>이란 제목이 나의 귀를 간질였다. 내 귓가에 ‘책 같이 읽자’라고 담담하게 속삭이는 듯했다.

실은 최근 몇 달 동안 책과 소원해졌다. 책을 읽는 소소한 재미, 그리고 책을 읽고자 했던 탐욕, 허영 그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지고 책을 펼치는 것조차 너무 버거운 짐처럼 여겨졌다. 그저 늘어졌다. 그 늘어짐이 반등을 찍은 것인지, 슬슬 책들이 나를 부르는 듯하다. 책은 뒷전이고 다른 일들에 허덕이다보니, 알 수 없는 허기와 갈증, 불안 등이 다시금 나를 휩쓸고, 다시금 책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서먹하다. 그런데 그 모든 고민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왜 나는 책을 읽는가?”란 질문에 아직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여전히 답답하고, 책 속의 길을 여전히 안개 속이지만, 그 속의 즐거움, 쾌락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명쾌했다.

 

종이책이 주는 즐거움, 손끝을 스치는 책의 촉감 등을 공유하다보니, 어느새 ‘책’의 길이 훤히 열리는 듯하다. 책을 읽을 때, 정신의 팽팽한 탄력을 늦출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 깊이 와 닿는다. 오롯이 나와의 시간, 나만의 유희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모든 감각들이 깨어났다. 책을 통해 지난한 삶의 고통을 잊고자 책을 펼치는데, 책이 주는 고통의 깊은 맛이 또한 책 읽는 즐거움이란다. 근데 왜 심장은 거세게 팔딱거리는 것일까? 늘어난 고무줄처럼 축 쳐져 있던 뇌세포들도 활력을 되찾고 아우성친다. 책읽는 쾌락, 책에 대한 탐닉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듯하다.

존재 이유, 그 삶의 의미들은 책을 읽는 소일거리로도 나름 충분한 듯하다.

 

책 읽기에 따라오는 이런 고통이야말로 사실은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다. 모든 쾌락은 고통의 시간 뒤에 온다. 책 읽기 또한 그러하다. 소설을 읽든, 만화로 읽든, 물리학 전문서를 읽든, 그 모든 책 읽기의 최종 목적은 쾌락이다. 깊은 쾌락일수록 깊은 고통을 요구한다. 오랜 괴로움 끝에 결실을 맺은 짝사랑처럼, 긴 낮밤과 많은 피를 흘리고 얻은 성처럼, 반나절 사투를 벌인 다랑어를 잡아 올린 늙은 어부처럼, 기쁨은 고통에 비례하여 커진다. (92쪽)

 

 

**

<종이책 읽기를 권함>을 주석이 무척이나 이색적이다. 주석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하나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석을 쓰는 데 본문 못지 않은 공을 들인 노고가 여실히 들어난다. 책이 책을 소개하는 역할에 충실한 듯, 책의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소설처럼>(다이엘 페나크, 문학과지성사, 2004)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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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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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이 두 글자가 머릿속을 스미는 순간, 뇌세포들은 몇 개의 단어들을 다시금 토해낸다. ‘흑산’에 대한 기억은 전무하다. 그곳이 이 땅의 어디쯤인지, 그리고 나와의 심미적 거리를 차치하고, 얼마나 먼 곳 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흑산’은 흑산도, 정약전, 자산어보, 그리고 정약용 등이 꼬리말처럼 뒤따랐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활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그렇게 ‘김훈’의 ‘흑산’에 대한 일차원적 기대는 그저 흔한 역사소설처럼 정약전의 자산어보의 이야기를 담았을 거란 추측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당혹함은 궁금증으로 변해, 더 커다란 호기심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였다.

 

흑산으로의 유배되는 이야기의 첫 부분, 정약종과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 부분을 몇 번이고 되짚었다. 그리고 흑산, 정약전 이외의 예상 밖의 이야기에 눈을 돌렸고 황사영과 수많은 민초들의 이야기는 생생하게 살아나 내 주변을 맴돌았다. 정약전과 황사영의 역사적 사실, 그 단편적 지식에 감춰져 있었던 역사적 진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신유박해, 황사영의 백서사건 등은 부정적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었는데, 그 속에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들어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흔하고 흔한, 그 정형화된 역사소설이었다면 그것은 김훈의 이야기가 아닐 테고, 너무도 심심해 그저 한 번 읽고 더 이상 들출 일을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채, 아니 아직 제대로 씹지 않았고, 그저 목구녕으로 삼킬 수도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입안에 맴돌고, 자꾸만 씹고 또 곱씹게 된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숱한 생각들을 흩뿌려놓았다. 그 중에 변하지 않는 것은 2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오늘과 하등 변하지 않은 여러 모순, 갈등의 근원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민초들의 척박함과 기득권 세력의 수탈과 아집,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또다시 희망의 끝자락이라도 부둥켜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삶의 애달픔, 절박함이 오롯이 가슴 속에 박혀들었다.

 

각자 나름의 절박함, 절절함이 뒤엉켜 부딪히고, 때론 서로 할퀴고 물어뜯었다. 그런데 그 뒤엉킴이 삶 그 자체로 다가왔고, <흑산>을 읽는 내내, 온몸을 사로잡은 것은 ‘분명하다’는 말이었다. 이야기 속에 반복되는 분명함, 확실함, 그리고 그 분명함에 놀라는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안에 내재된 본성, 인간됨 아니 세상의 근본인 ‘자유’를 떠올렸다. 그래서 황사영, 정약전의 이야기보다는 다른 인물들에 매료되었다. 이 땅에 이름 없이 살다간 수많은 민초들의 삶에서 ‘마노리’는 특히 더 두드러졌다. 미천하기에 인간임에도 인간이 아니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깊이 와 닿았다.

 

책을 읽으면, 특히 ‘김훈’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늘 심연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기분에 젖게 한다. 마음을 끝없이 차분하게 내려앉음에도 머릿속을 들끓고, 심장은 더욱 거세게 팔딱거린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함이 자꾸만 곱씹고 되새기게 하였다. 그리고 안개 속처럼 까마득함에도 ‘분명하게’ 와 닿아, 확실해지는 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흑산>이 풀어내는 이야기들 속에서 나름의 삶의 이유들, 희망들이 분명하게 나를 일으켜주었다. 또다시 <흑산>이 이끌어주는 길을 따라 묵묵히 전진해야 할 듯하다. 또다시 그 분명함이 사그라질 때, <흑산>을 다시금 펼치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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