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너머 그대에게 - 세상 속 당신을 위한 이주향의 마음 갤러리
이주향 지음 / 예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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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치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여러 책들에 이미 익숙해졌다. 그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림 속 저마다의 사연과 숨은 이야기들, 그것을 저자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나를 매료시킨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그림 너머 그대에게>는 일단 ‘철학자의 시선’이란 것인 더욱 흥미로웠다. 기존 내가 만나왔던 책들은 대개 미술 전공자의 시선이었다. 물론 그들이 풀어낸 이야기 속에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위안을 얻고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철학자’의 시선은 굉장히 생경하게 다가왔다. 그림의 시선이 바로 ‘철학자’라지 않는가?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들을 그림 속에 풀어놓고 그저 무장 해제되고 싶었다. 최근, 일련의 여러 사건들이 엉키고 설키면서 마음은 침울해지고, 때론 지옥의 시간을 견뎌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내 곁에 <그림 너머 그대에게>게 있었다.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융의 말로 시작된 책은 그 문구만으로도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미처 생각지 못한 화두로, 마음 속 구름들이 일시에 흩어지는 기분이랄까? 그림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사유의 틀을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일 거란 기대를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기존 책 속에서 만났던 여러 미술 작품들 이외에도 직접 전시장에서 봤던 그림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작가 역시 직접 몇몇의 굵직했던 전시회를 거론하면서 이야기를 엮다보니, 지난 기억을 떠올리면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살갑게 이야기에 녹아들 수 있었다. 특히 내 기억 속에 없는 전시장의 풍경, 그 속의 작품이 또한 눈길을 끌며 머릿속에 각인되기도 하였다.

 

숨기고 싶었던 마음속 진심에 정곡을 찔리면서도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속도를 높이면 내달릴 수는 없었다. 천천히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그림 너머의 나의 마음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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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소설 분야치고는 5월 출간된 작품들이 비교적 적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신작코너에서 눈도장을 찍어 두었던 책을 5권 선정해보았다.

하나하나 읽고 싶은 이유들, 간절한 소망을 담아본다.

하지만 선택되는 것은 단 2 작품,

그렇다고 아래의 5권 중에서 선택될 가능성은?

 

두근두근~ 기대해본다.

 

 

 

<비화의 왕 사도세자>

 

 사도세자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은 몇 번 만나봤지만, 여전히 어떤 시각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개할 지 작가 나름의 상상력에 대한 호기심은 어쩔 수가 없다. <비화의 왕 사도세자> 사도세자를 다룬 역사소설이란 그저 읽고 싶을 뿐!

 

 

 

 

 

 

<영국 남자의 문제>

 

  일단 제목이 재밌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부커상 수상작'이라 하니, 일단 눈여겨보게 된다. 꽤나 주제의식도 묵직하고, 깊이도 있을 것 같아, 조금은 꺼려지는 마음도 있지만, 어떤 이야기일까 하는 호기심을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쏟아지는 찬사를 믿고, 한 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 <영국남자의 문제>다. 영국남자의 문제가 어떤 보편적 주제로 우리를 사로잡을지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지개 곶의 찻집>

 

음식, 음식점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일본 소설이 몇 개 스쳐지나간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오가와 이토 <달팽이 식당> 에 이어 또 다른 맛있는 소설일 것 같아 그저 기대된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우고, 신비할 정도로 맛있는 커피와 손님에게 꼭 맞는 음악을 선사하는 찻집의 풍경 속에 빠져들고 싶다. 지친 우리네 마음도 말랑말랑 해질 듯~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제목이 참으로 길다는 생각에 눈도장을  찍게 되는데, 살짝 엿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쿨, 울컥해진다. 암 말기를 선고 받은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며 쓰기 시작했던 일기에서 시작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50여일만에 세상에 나왔다는 자전소설이란다. 물론 지금까지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는 여러 만나봤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김정현'의 <고향사진관>을 떠오른다. 그리고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속, 아버지 이야기는 또 어떨지,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며 눈시울을 붉히게 될 것 같다. 제목만으로도 많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접하면 어떨까?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번외~

 

<태연한 인생>

 

5월 출간작에 한정했기에 아쉬움만 커진 작품이 하나다. 하루 빨리 만나고픈 마음에 혹시나 하고, 그저 목록에 올려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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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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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정래’의 작품들이 새롭게 출간되고 있다. 그가 이야기를 풀어냈을 당시의 상황은 그저 교과서처럼 고루하고, 때론 잘 포장되어 그 삶의 이면의 피폐했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조정래의 작품들이 새롭게 출간되면서 되도록 빠짐없이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날것 그대로의 지난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더욱 실감나게, 처절하게 당시의 상황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아니 각각의 이야기는 의식 속에 각인되고 기억되면서, 나의 기억으로 철저하게 되새김질 되는 힘, 마력이 조정래의 이야기 속에 있다.

 

근대화 속 정치적 혼란과 각박했던 사회상, 온갖 부조리와 모순들로 가득한 인간의 면면들이 그의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 생소한 시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라 치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자꾸만 나를 이끌고 있다. 그의 이야기에 마음을 졸이고 때론 격정에 휩싸이는 것, 그러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울분을 삼키게 되는 것은 그 이야기 속의 많은 삶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것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오르면 바로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인 것이다. 수시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숙연해진다. 그간의 삶의 흔적이 책을 통해 진솔하게 아로 새겨져, 그것을 손끝으로 듣는 기분이랄까? 지금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왔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니 뜨거워진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의 이기심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자족해도 되는 것인지, 그러면서 내 안의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거릴 때 한숨만 쉬는 나약한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외면하는 벽>은 1977년에서 1979년에 발표된 8개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가슴 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모든 이야기 하나하나가 가슴 저미게 고달픈 삶을 그려내고 있었고, 처참할수록 이야기는 더 강렬했다. 그럼에도 희망 한 자락 엿볼 수 없는 암흑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진진했고, 그 작은 희망의 불씨가 꺼질까봐 조마조마 애를 태우며 읽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바로 「진화론」과 「미운 오리 새끼」였다. 「진화론」은 가출한 엄마를 찾아 상경한 어린 소년 ‘동호’가 겪게 되는 온갖 고초를 풀어내고 있다. 무자비한 사회 속에서 어린 소년의 삶과 그 비극은 수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혼혈아들의 고민을 다룬「미운 오리 새끼」은 어렸을 때의 생경했던 경험에 비쳐지면서, 그들의 겪는 고통은 철저히 우리들의 냉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품는 희망이 「진화론」의 동호처럼 그저 비극으로, 암담함으로 끝날까봐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나는 결코 그들의 좌절이 이제는 끝났으며 하고 소원했다.

 

그런데 결코 이야기 속의 많은 고통과 절망의 수렁이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에 몸서리쳐진다. 8편의 작품들 속, 작가가 내비치는 이야기의 골자가 결코 70년대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 아니 오히려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연속이 이야기를 통해 더욱 피부로 느끼게 된다. 자본주의 속, 가치관과 전통의 붕괴, 소통의 부재 등이 슈퍼박테리아처럼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름이 돋는다. <외면하는 벽>은 삶의 일그러진 이면 속 우리가 놓치고 외면하는 현실과 인간다움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수없이 외면하고픈 마음, 그 벽 속에 스스로 갇히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또한 그로써 서로가 서로를 버리는 비극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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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6 - 2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6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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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2권 1부)을 읽으면서, 용정에서의 피폐한 타향살이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김두수의 등장으로 조마조마 살얼음을 걷는 듯 불안에 휩쓸리기도 하였다. 또한 오매불망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궁금증에 들뜬 채로 6권을 펼쳤다.

 

6권은 2편(꿈 속의 귀마동)과 3편(지리산사나이들)의 이야기가 반반씩 섞여있다. 그러나 크게는 3개의 공간으로 나뉠 수 있다. 서희와 길상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용정(또는 회령)’, 상현이 머무는 ‘서울’ 그리고 기생 기화가 된 ‘봉순’이 있는 진주다. 물론 구례를 중심으로 한 지리산 사나이들의 이야기엔 환이 중심에 있었다. 그렇게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을 훑듯, 공간적 배경이 바뀌면서 다른 많은 인물들이 쏙쏙 등장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환과 봉순의 이야기를 접하며 6여 년간의 지난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는 여지없이 반가웠다. 그리고 새롭게, 또는 낯선 인물들의 관계 속에 흐름을 놓치게 될까봐 조금은 긴장하기도 하였다.

 

서희를 중심으로 상현과 길상의 대치로 인한 팽팽한 긴장감 뒤로 상현은 떠난 뒤였다. 사실과 진실의 왜곡된 소문이 무성할 때, 서희는 그녀의 성격대로 가감한 선택을 하게 된다. 다른 그 어떤 이야기보다 서희와 길상의 나들이, 회령에서의 사건들에는 눈을 뗄 수없이 숨 가프게 달려야했다. 그 어떤 조건들을 뒤로하고 사랑의 선택에 있어, 서희와 길상의 마음, 그 마음들이 서로 부딪힐 때, 그 어떤 연애소설보다 애간장을 녹이면서 살벌하게 달콤했다. 그들의 마음 속 멍울이 깊어진다고 해도,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긴장감 넘치는 사랑의 줄다리기, 그 팽팽한 ‘밀당’의 현장이 무척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절망과 희망의 교차하는 어색한 분위기에 정신이 팔리고 아쉬워하다가, ‘그러나 이들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왔다.’(123)란 문구에 정신이 번쩍했다. 이야기에 푹 빠져 완전히 휘둘리고 있었다.

 

거친 사내들의 이야기가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 중 단연 으뜸은 ‘석’이었다. 그 많은 인물들 속에서 한조의 아들, 석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한조의 안타까운 죽음은 뇌리에 강하게 박혔고, 주변인물에 지나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마음을 끌었었다. 하지만 죽음으로 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새롭게 부각되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아버지, 그 아비를 향해 울부짖는 석이의 모습, 그리고 불행의 거듭되는 피폐한 삶 속 물지게의 무게감만큼이나 삶의 무게가 나의 어깨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토지>의 이야기에서 결코 단역일리 없다는 생각에 내 마음 속 빛나는 주연, ‘석이’의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봉순이의 이야기는 스쳐 지났을 뿐이다. 그저 궁금했던 소식이지만 6권에서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더라’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만주로 떠날 때 함께하지 않고 홀로 남은 봉순이의 지난 행보가 여전히 궁금할 뿐인데, 그녀의 이야기는 뜬소문처럼 여러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정도랄까? 그런데 그녀가 진주를 떠나려고 한다. 어떤 사연과 우여곡절이 있는 것인지, 그녀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질 뿐이다.

 

늘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서희와 길상 이외의 많은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 각 권마다 호기심이 뭉글뭉글 올라와 기대감에 들뜨게 된다. 그 많은 인물들에게 생생한 생명을 불어넣은 작가의 위대한 상상력, 그 창작의 열의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 누구의 삶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명의 경외와 소중함을 절로 느끼게 된다고 할까? 그 누구도 단역도 조연도 아니다. 이야기 속의 다양한 인물들은 주연으로써 충실하게 뇌리에 깊이 박히는 것 같다. 그래서 점점 기대에 기대가 더해져 간다.

 

끊임없이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마냥,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마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야기에 그저 동화된다고 할까? 다양한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이야기 속에 머물지 않았다. 내 주위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맴돌고 있다. 반갑고도 애달픈 마음들 속에서 애잔함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런가하면, 그들의 삶이 진짜 내 주변 사람들 속에 투영된다. 저마다의 굴곡진 삶의 사연들, 그 속에서 애잔함이 스미며, 왠지 모르게 든든해진다. 서로 어깨를 맞잡고 기대며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야 할 듯, 그게 삶인 듯하다. 

 

 

 

 

이민족 속의 우리, 이민족 속의 나, 그 의식이 그들만의 것은 아니다. 흘러온 수만 이곳 조선인들의 사무친 슬픔이다. ....... 십 년을 보내고 나면 독립이 될까? 기약이 없다. 영영, 어쩌면 영원히 그 꿈을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자기 자신은 한낱 어릿광대인지도 모른다. ....... 사방팔방이 절망의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길림으로 간다지만 아홉 마리 소 중의 터럭 하나만큼이나 도움이 될는지, 제 집에 불이 났는데 남의 집 불을 꺼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선생, 그물 한 코 엮어보는 셈 칩시다. 한 코라도 부지런히 엮어나가면 고기 잡는 그물이 될 겝니다. 안 그렇소?‘(72)

 

“내가 무속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 한 것은 그 속에 검은 왜놈들이 저희들 미신은 뒤로 감추고서 야만이다, 미개다 하는 수작을 빤히 알기 때문이라구. 그것이 다 이 나라 문화를 깡그리 없이 하자는 수작이거든. 그러니 내가 보존하자는 것은 미신을 보존하자 그것은 아니라고, 무속도 우리 백성들이 살아온 자취요 풍속이라면, 그걸 아주 싹 지워버릴 수는 없어. 아암 없구말구, 내 말이 어디가 글러? ...... 민속이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라는 게지. 때문에 그것은 그 민족의 전통이다, 이거야.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손 치더라도, 경제사정이 윤택해진다손 치더라도 전통이란 물건이 아니다. 그거야, 그러니 기계로써도 그거를 맨들 수 없고 돈으로 그것을 살 수도 없다는 게야. 그래 그 일본사람이 말하기를 이렇게 기계만 돌아가는 세상이니 소중한 민족의 오랜 유산들이 날로날로 소멸해가는 판국이라 슬프다! ...... 그게 조선 근대화 작업인 줄 알어? 도포가 어딨어? 갓끝이 어딨어? 깡그리 조선 것은 없이해보고 싶은 ...... 음, 흑,“ (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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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5 - 2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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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의 떠난 사람들, 그들의 용정에서의 힘겨운 삶, 생생한 사투의 현장이 2부 1권의 시작이었다. 그것도 큰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시점, 평사리를 떠난 뒤 2~3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서희는 이미 용정에서 대상으로 성장한 후였고, 용이의 삶은 기대와 달리 삶의 무게, 그가 짊어진 운명의 굴레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못난 사내라 한탄하면서도, 오히려 갈 곳을 몰라 허둥거리고 있었다. 이동진의 아들, 상현과 서희의 애증, 그리고 길상과의 애매한 삼각관계(?) 속 그들의 격정이 흥미진진하였다.

 

평사리를 떠난 서희의 일행의 이야기에 새로운 인물들-김 훈장이 하숙하게 된 농가, 정호네 가족, 학교를 운영하는 송장환, 장인걸-의 삶이 스며있었다. 평사리가 아닌 용정으로의 공간적 변화에 쉽게 예상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평사리 사람들의 삶에 더욱 마음이 쏠렸기에, 용정에서의 새로운 인물들에 조금은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금녀’라는 인물이 온신경의 세포를 들썩거리게 하였다. 임이네, 월선의 삶처럼 김두수와 얼키고설킨 ‘금녀’라는 인물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기대로 가득 찼다. 홀로 떨어진 봉순이 소식만큼이나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김평산의 아들 거복은 김두수란 인물로 등장했다. 거복이 이름이 아닌 김두수의 존재가 조금은 의아했던 차였다. 기억에도 분명, 거복이어야 했을 인물임이 분명하였기에 나름 나에겐 기막힌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평산의 둘째 아들, 한복이 평사리에 뿌리내리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면서도, 그의 이야기가 마음에 쓰이기에, 그의 형의 존재가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악행을 일삼았던 거복, 평산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의 등장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분명 그의 존재만으로도 용정의 피폐한 삶이 더욱 뚜렷해지는 듯,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의 존재, 그 등장만으로도 이야기는 더욱 탄력을 받고, 팽팽한 긴장감에 손끝이 떨리도록 아찔했다.

 

그에 반면, 길상과 새끼 새 나리의 교감은 마음을 더없이 훈훈하게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어린 생명이 전해주는 생의 짜릿한 희망, 그 뜨거운 욕망이 또한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어린 생명, 그 삶을 살리기 위해 길상이 빼앗은 생명들, 그리고 그 생의 전율을 또한 어린 아이, 옥이에게서 느끼며, 그가 풀어낸 상념들 속에서 ‘생명’이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제부터 꾀꼬리새끼의 죽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윤보의 죽음을 생각한 것도 죽음이 가지는 동일한 뜻에서인지 모른다. 한 생명에 대한 자비와 다른 생명에 대한 잔혹, 꾀꼬리새끼를 위해 여치의 목을 비틀어 죽인 일, 이 이율배반의 근원은 어디 있으며 뭐라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도 약육강식의 원칙이냐? 아니다. 사랑의 이기심이냐? 아니다. 애정의 의무냐?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선택이냐?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이 이율배반의 자비와 잔혹은 영원한 우주의 비밀이냐? (205-206)

 

애틋할수록 마음이 자꾸만 조마조마하니, 못쓸 불안감에 휘감기는 것처럼, 5권-2부 1권-의 전체적인 느낌은 초조하고 애달팠다. 예전 평사리의 삶과 달리, 타향살이의 설움이 짙게 베어나는 탓인지 용정의 삶은 내내, 답답함과 애잔함이 전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손끝으로 파고들어 가슴 속 깊이 스며든 삶의 비애와 한이 온몸으로 느껴져, 그저 몸서리치며 뿌리치고 외면하고픈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생생한 이야기, 살아 숨 쉬는 인물들 면면에서 바로 오늘, 지금의 우리가 비쳐지고, 내 주변의 삶이 엿보였다. 삶 속의 희로애락, 그 이면의 온갖 모순과 갈등, 그 이율배반적 늪에서 그저 발버둥거리기만 하는 나 자신과 오롯이 대면해야 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임이네에 대한 용이의 마음처럼?

 

앞으로의 전개를 어떻게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직 김두수의 이야기는 살짝 드러났을 뿐이며, 그 악행의 끝이 어디일지, 고단한 삶이 더욱 처절해질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봉순은 언제쯤 등장할 것인지, 그녀의 소식과 함께 구천(환)의 소식도 하루 빨리 날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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