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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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연수’의 이야기를 이제야 처음으로 만났다. 이미 익히 들어 낯익은 이름, 아니 인이 박힌 이름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조금은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아 망설였다. 왠지 그의 이야기가 나에게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 그런데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신간 소식을 꾸준히 전해 듣고서도 외면했지만 <원더보이>만큼은 손에 쥐고야 말았다.

암호처럼 뭔지 모를 이야기를 숨긴 듯, 또는 그 자체가 이야기인 것 같은 차례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나는 시간이 멈출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의 첫 구절을 읽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깜짝깜짝 놀라며, 자꾸만 호기심에 온몸이 들썩거렸다. ‘뭐지?’ 궁금증은 샘솟고 뒷이야기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미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에 압도당했다.

 

‘책을 읽을 때 바보는 자기가 아는 것만을 읽고, 모범생은 자기가 모르는 것까지 읽는다. 그리고 천재는....... 저자가 쓰지 않은 글까지 읽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말하지 않은 것들을 듣는다.’(233)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바보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것만 겨우 읽을 수 있었고 그에 대해서만 말해야겠다.

 

일단, 내게는 열다섯에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된 한 소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빠와 함께 타고 가던 차 안과 기적적으로 살아나 다른 이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는 원더보이, ‘정훈’의 이야기가 그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내겐 고아가 된 한 소년이 느끼는 절망과 좌절 그리고 그 2여 년의 시간 동안의 성장에 마음이 쏠렸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어른들의 세계에 휩쓸리는 않고,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한 소년의 성장을 지켜본다고 할까? 솔직히 나라면 무척 두려움에 떨며, 마냥 권 대령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았을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용기’는커녕. 그러나 우리의 정훈은 그렇지 않았다.

 

자꾸만 소중한 그 누군가의 죽음과 그로 인한 상실감과 헛헛한 마음들에 마음이 쓰였다 ‘그런 사소한 일들까지도 이렇게 아쉬움이 남을 줄 알았다면 말이다’(231)에 뭉클하게, 가슴이 저몄고,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가정의 달 5월, 나는 나의 뿌리인,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나와 세상과의 줄, 그 탯줄인 부모님의 존재가 가슴 깊이 와 닿았다. 그저 나는 그렇게 고아가 된 한 소년의 삶이 안타깝고, 애틋하고 절절했고,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그가 ‘그러므로 1천65억 개 중의 하나라는 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라, 아주 특별하다는 걸 뜻한다.‘(399)는 말하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홀로서기를 한 듯, 의젓해진 정훈에게서 희망을 엿볼 수 있어 절로 흐뭇해졌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내가 읽고 볼 수 있었던 이야기는 바로 갈 곳 없는 정훈이 찾아가는 곳인 ‘베드로의 집’과 주변의 철거 장면이다. ‘여기까지 지하철을 타고 와서 명동 거리로 나왔는데,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았어요. 행복은 이토록 훤히 드러나는데, 고통은 꼭꼭 감춰져 있어요. 때리고 부수고, 가두고 불태우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어둠 속에 밀어넣고 감추기만 하면 되니까. 지금 우리는 차갑게 식어가는 캄캄한 밤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없다고 생각하죠. 그러니 그들의 고통도 이 세상에 없는 거예요. 신부님, 과연 이 고통이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을까요?’(286) 갈 곳 없는 많은 이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니 정훈이 처한 현실이기에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숱한 강제 철거의 기억이, 그리고 그 고통이 오롯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마치 나의 고통처럼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러고 보면. 정훈은 진정 ‘원더보이’였다. 강토 형(희선씨)이 보았던 정훈의 그 초능력이 능히도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것보다 고통을 전하는 능력!

 

초반 한 소년의 이야기에 분명 크게 들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예상 밖의 상황들, 1980년대의 여러 상황들이 이야기 속에 섞이며, 주인공의 삶을 맴돈다. 그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상황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 밖으로 홀로 덩그러니 ‘툭’하고 내던져진 정훈을 어떻게든 이용하고 착취-분명 권대령은 그러했다-하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들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내가 읽을 수 있는 것,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정훈’의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작가의 의중을 헤아리려, 나름 씨름하고, 골머리를 썩였다. 작가의 숨은 뜻을 읽어 낼 수가 없었기에, 오히려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재진 아저씨의 말에 정곡을 찔렸다. 미처 읽지 못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정훈의 이야기 속에 숨겨둔 이야기, 그 의중이 궁금했다. 분명 고아가 된 한 소년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닌 듯했다. 정훈의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 내가 아직 읽지 못하고 있지만, 반드시 읽어내야만 하는 어떤 이야기가 숙제처럼 내 의식 속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정훈의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현대사의 일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많이 읽어내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만을 읽고 보았다. 바로 ‘정훈!’

 

그리고 역시 ‘김연수’라는 작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너무 깊었고, 가볍게 읽고 시시덕거리기엔 숨겨 둔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것! 하지만 또한, ‘김연수’의 이야기를 또 읽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자기가 몰랐던 부분만을 반복해서 읽는 거야.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234) 모범생의 책 읽는 방법, 그것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늘 하는 말이기에, 그 숙제를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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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에릭 오르세나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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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접하면서 ‘사랑하면 떠오르는 공간은?’이란 질문을 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붉을 노을빛이 쏟아지는 공원 벤치였다. 누군가와 함께 황혼을 맞을 수 있다면, 아니 이렇게 늙어가 다시금 저 노을빛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아니 그저 훌쩍 시간이 흘러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는데, 그 때의 이미지가 강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린 탓이다. 누군가는 너무도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런 꿈을 꾸었다. 그런 나의 열망이 알고 보니, <오래오래>란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나를 사로잡았다. 전설에 대한 욕구를 실현한 그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때론 금기의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고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끝내는 이루어낸 사랑, 미완이 아닌 사랑의 또 다른 완성을 조금은 색다르게 풀어내고 있었다.

 

자신의 피 속에 흐르는 유전적 방랑벽을 극복하고 식물처럼 한 곳에 뿌리내려 붙박인 채 살아가길 소망했던, 단 한 번의 결혼과 그 백년해로를 정상이라 생각했던 한 남자 주인공이 바로 ‘가브리엘’이다. 하지만 그 역시 아등바등해야 했고, 그의 신념은 새해 아침이 밝아오는 어느 날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휩쓸리듯, 한 여인에게 사로잡혔다. 그 여인이 바로 ‘섬 같은 여자, 법도를 품고 사는 여자’인 외교관 ‘엘리자베트’이다.

이들의 사랑을 속칭 불륜이다. 오래오래 관계를 꿈꾸기보다는 일상의 반복이 주는 단조로움에서 일탈을 꿈꾸듯, 순간의 사랑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 조건의 사랑인 것이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 책 속에서도 수시로 정의를 내리지만, 그 무엇만이 옳다 그르다고 시비를 가릴 수 있을까? 진정 모범답안이 존재할까? 사랑이 어떤 떨림에서 시작한다지만, 그 떨림의 순간이 또한 순식간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오래오래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이루어낸 사랑의 또 다른 일면은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느 정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란 소설이 연상되었고, 다소 비슷한 설정이라고 단정할 수 있지만 <오래오래>은 훨씬 적극적이고 얄궂은 사랑, 때론 이기적인 사랑을 그 긴 기다림의 시간, 결별과 재회의 시간 속 번민과 고통, 기쁨과 환희를 술회하면서 또 다른 사랑의 묘미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책을 받고 그 부피감에 깜짝 놀랐다. 예상을 뒤엎을 정도의 두께로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웠고, 책을 펼치기까진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주인공 가브리엘의 이야기에 조금씩 빠져들면서, 하루를 오롯이 반납해야만 했다. 파리, 세비야, 켄트, 헨트 그리고 베이징에 이르기까지 여러 도시의 정원을 오가면서 2천 번의 결별과 2천 1번의 재회의 시간을 600여 쪽에 담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3인칭 화자가 밝히듯, ‘이 책은 그러잖아도 너무 길‘어 부담스러웠지만 책 속에 응축되어 있는 사랑의 자잘한 이야기, 그 밀어들은 그들의 힘겨운 사랑이 선사하는 즐거움이었다.

 

한 가지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은 바로 화자가 바로 가브리엘 자신이면서 3인칭 화자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나와 그가 수시로 섞여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직접 듣다가도, 어느새 그가 돼버린 가브리엘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흐름을 쫓기 힘들 정도로 부산해 몰입을 방해했지만 어느새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인 가브리엘과 ‘그’인 가브리엘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3인칭 화자는 불시에 내게 말을 걸었고, 그로 인해 나 역시 소설 속에 수시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를 듣는 청자이면서, 그들의 전설에 지지를 표하고 열렬히 응원하고, 그들의 전설을 증명해야할 벗이자 펜이 되어버렸다.

 

호르몬의 분비 기간, 그 사랑의 유효 시간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불혹의 나이에 시작되어, 그 불혹의 시간을 견뎌낸 사랑 이야기는 낯설 수 있다. 그렇기에 주인공 ‘가브리엘’과 ‘엘리자베트’의 소원대로 전설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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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불패 - 명문대식 공부혁명
유재원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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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질문을 받지만, 딱히 뽀족한 답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 역시 학창시절,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수학, 영어가 내 삶에 과연 얼마만큼의 실용성을 갖는지 의문이 들었고, 공부에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공부를 해야 하는 지금, 더불어 나 역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이상, 공부에 대한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어, <공부불패>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공부비법은 없다. 다만 이기는 습관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광고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공부는 자기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공부, 자기관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저자는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23세에 사법고시를 합격, 여전히 서울대에서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서울대에서 10여 년이 넘게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단다. 특히,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공부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명문대식 공부혁명’이란 부제를 달고 있지만, 특별한 공부 비법을 솔직히 없다. 아니, 평범한 공부의 비법을 다시금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독서는 편식하지 말고, 텍스트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도 재미난 책이라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좋다고 한다. 공부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하는 것이니 앉아 있는데 익숙해 질 것, 오감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손을 놀리지 말 것, 충분히 잠을 잘 것, 등등 몇 가지는 이미 익숙한 공부비법이다.

특이하게 다가온 것은 오답노트에 대한 활용법, 오답노트를 강조하지만 솔직히 실천하기는 버겁다. 그에 대한 해법이 바로 정답률 80%이상일 경우에 오답만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리하게 공부계획을 짜라는 것이다. 무리한 계획이면 분명 100% 달성은 어렵지만 그만큼의 의지와 각오로 80%만큼의 성과를 거두는 것도 바람직하는 이야기였다. 특히, 자신이 시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절망하고 있을 때, 친구는 콩나물을 기를 때 물을 주면 물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콩나물은 쑥쑥 자란다.”(43)고 말했단다.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만들며, 머릿속이 일순간 환해졌다.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했다 해도, 마음속은 불안해지기 일쑤다. 공부한 것은 어디로 갔는지 정말 밑 빠진 독에 물을 붙는 허무감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런데 또 말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고, 반복과 인내를 통해서만이 공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얼마 전에, 고1이 된 아이에게서 자신은 꿈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왠지 막막하면서 어떻게 공부의 방향을 잡을지 모르겠다는 말인데, 그 당시 딱히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꿈, 목표를 잡아야 공부가 더 수월한텐데.....’라며 혼잣말을 하듯, 그저 뻔한 대답을 하게 되어 스스로 화가 났던 적이 있다. 그런데 <공부불패>의 저자는 “꿈은 움직이는 것이며, 꿈은 공부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서울대생의 65%가 학생 때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이 없었단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국사학을 전공한 자신도 변호사가 될 줄을 몰랐다고. 그리고 더불어 공부를 하다보면 절로 깨닫게 되고, 어떤 꿈을 꾸어야 할지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창 시절을 뒤돌아봐도, 대부분은 정말 그러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꿈을 꾸지 말라는 것은 분명 아니다. 공부를 통해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꿈이 없다는 핑계로 공부를 소홀히 하거나,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꿈을 꾸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공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부혁명, 그것은 철저한 자기 관리이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습관을 기르는 것, 그것이 공부불패였다. 최근에 다시금 공부를 시작했지만, 항상 시간에 쫓긴다고 불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착각이었다.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 변함없이 꾸준함만이 공부와의 한 판 승부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정도였다. 가끔씩 공부란 것이 나를 괴롭힐 때, 슬쩍 펼쳐보게 될 듯하다. 나 역시 적극 활용하겠지만 아이들과도 함께 나눠봐야 할 책이다.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수험생이 참고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이었다. 책으로나마 다년간의 노하우를 풀어놓은 선배가 생긴 듯, 책장 근처에서 항상 말벗이 되어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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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어떤 소설을 만나게 될지, 들뜬 마음으로 알라딘 신간 서평단 11기를 시작하련다.

다른 분야보다 선택이 폭이 넓은 관계로 어떤 책이 주목을 받고, 함께 읽게 될지

좀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책 나들이를 떠나볼까~ Go~

 

 

 

 

독특한 제목으로 가장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분명 낯선 나라의 이야기, 낯선 역사와 문화가 배경으로 깔려있기에 조금은 어려울 것 같은 책이지만

그만큼 강하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 소개를 보면, 민주적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뜰린 군사 독재와 그로인해 뿔뿔이 흩어진 혁명가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순간 우리의 현대사를 돌아보면, 그렇게 낯선 풍경만은 아닐 것 같아, 기대되는 작품이다.

이 봄, 낯선 세계로 성큼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인 듯~

 

 

 

 

 

 

 

 

 

위트넘치면서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되는 

작가, "성 석 제"의 이야기다. 

다른 말은 필요없을 듯, 꼭 반드시 직접 만나고픈 이야기이지 않을까?

욕심 나는 <위풍당당>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궁금! 궁금! 궁금하다.

 

 

 

 

 

 

 

조금은 60년대풍의 느낌이 들어 표지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자세히 보면, 가슴에 뱃지가 보인다.

북의 한 여인으로 연상이 되는데

그렇다.

'최초의 여성 탈북작가 김유경의 한국문단 데뷔작'이란다.

조금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 책이 아닐까?

그렇기에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듯하다.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과연 나는 어떤 시선으로 '청춘연가'를 만나게 될지,

그리고 과연 어떤 생각들을 품게 될지 궁금~

 

 

 

 

 

 

 

표지가 조금은 강렬해서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1989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모험소설 대상을 받은 나쓰키 시즈코의 장편 추리소설"이란다.

추리소설, 굳어버린 나의 머리속 세포들이 요란하게 들썩거린 듯하다.

<제 3의 여인> 어떤 이야기일까?

 

 

 

 

 

 

 

  최근에 "몽유도원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조금은 많다.

일본이 현재 국보로 지정해 소유하고 있는 "몽유도원도"

그 그림이 품고자 했던 생각, 담겨 있는 많은 사유의 장으로

성큼 다가가고 싶다.

과연 어떤 시각에서 안견과 안평대군을 이야기하고 있을지,

당시 조선의 풍경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지,

5월 이 한 권의 역사소설을 품고 싶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몽유도원도"의 내력과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단숨에 완성한 화가 '안견'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일 듯~

 

 

 

 

너무도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번엔 작정하고 소설에 빠져볼 요량이었는데

선택의 폭이 넓은 만큼

넘치는 욕심 사이에서 저울질이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였던 그림자>, <위풍당당>, <청춘연가> <제3의 여인>, <안견>을 뽑아보았다. 장르의 폭을 최대한 넓혀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과연 나의 손에 쥐어질 책은 과연 어떤 책일까?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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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4 - 1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4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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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읽노라니, 지금의 우리들의 삶과는 다른 100여 년 전으로 훌쩍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이야기에 홀딱 정신을 팔기도 한다. 땅에 붙박인 운명을 지고 태어난 평사리의 사람들, 그 삶의 살풍경들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역병이 휩쓸고 가뭄 뒤에도 살아남은 사람들, 그 메마른 땅에서도 한줄기 생의 불씨를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목덜미를 잡아끌며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그토록 바라던 양아들 한경을 얻은 김 훈장, 수동의 죽음으로 더욱 활개를 치는 조준구의 횡포, 그리고 서희에 대한 병수, 길상에 대한 봉순의 애틋한 마음들과 더불어 용이와 월선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호기심을 끌었다. 물론 2권에서 깔린 조준구의 한조에 대한 잔인한 보복의 결과도 확인하였고, 구천, 환의 이야기가 다시금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토지 1부 4권>의 이야기는 진정으로 평사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정들을 풀어놓으면서 팽팽한 긴장감과 호기심 속에서 혼란의 시대를 생생하게 펼쳐주었다.

 

서희와 조준구의 팽팽한 기 싸움, 솔직히 이미 한쪽으로 치우친 상황,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볼모처럼 별당에 갇힌 서희, 하지만 여전히 당찼다. ‘포악스럽고 음험하고 의심 많고 교만한 서희’라지만 자신의 야심과 집념, 그리고 명석함으로 한 수 위인 서희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될 수밖에 없다. 기회를 엿보면서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쥐락펴락하며 몸을 움츠리고 있는 서희!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번에 특히 주목한 것은 ‘임이네’다. 줄곧 그려진 임이네는 진정 ‘잡초 같은 질긴 생명력’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끈질긴 생명력, 그 잔인하도록 꿈틀거리는 생의 욕망은 절박함의 또 다른 외침으로 들리고, 그 몸부림이 조금은 애틋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 그녀가 팔자 운운하며 기구한 삶을 푸념하지만 그 와중에도, 오롯이 자신의 지금을 살아내는 모습이 자신의 운명에 확고하게 맞서게 될 서희의 또 다른 모습처럼 다가왔다. 조금은 모나게 도드라질 수 있는 ‘임이네’의 모습은 불안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력하게 허물어질 수 있는 내게 강한 어조로 말하는 듯하다. ‘보라, 내 주변의 그 어떤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 들고 떳떳하게 내 질긴 운명을 고스란히 맞이하겠다’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을 ‘임이네’의 본능을 끌어내고 싶어진다. 이 봄날, 생이 마구 마구 움트는 날것 그대로의 삶에 나 역시 충실하게 살아내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린다.

 

여전히 선과 악의 대립으로 책을 읽게 된다. 그런데 평사리 의거 속 삼수의 이야기를 통해 박경리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악의 생리에 대한 일침이라고 할까? 삼수의 죽음이 악의 궁극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리석은 삼수. 그가 아무리 악독하다 한들 악의 생리를 몰랐다면 어리석었다 할밖에 없다.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왜냐,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밖에 없고, 찢어발길 수 있는 허위의 의상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349)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한복의 이야기가 아직 덜 풀어졌다. 평사리 의거에도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아직 의문으로 남아있다. 왜 한복은 남았을까? 살인자의 아들이란 멍에에도 불구하고 올곧은 심성으로 평사리에 자리잡아가는 한복의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서희의 일행에 합류하지 않은 봉순이의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여전히 기대와 흥분을 드높아질 뿐이다. ‘가냘픈 희망’을 안고 고국산천을 떠나게 된 이들의 삶과 온갖 수모와 설움을 견디며 살아야할 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어서 만나고 싶다.

이제 1부의 평사리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간도, 용정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작, 출발선처럼 느껴진다. 그들처럼 나 역시 갈 길이 험하고도 멀게 느껴진다. 2부, 3부로 전개될수록,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얼키고 설키며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 내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다양한 사람들의 북적임을 살뜰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다른 책들의 눈길과 손길을 외면하며 나 역시 싸워야한다. 이젠 내가 평사리에 붙박인 두만네 처지가 된 듯, 그럼에도 마냥 들뜨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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