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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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다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라고? 자연스럽게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나는 이 책 제목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일까? 지금 나는 ''에서 어떤 결핍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이지? 무의식이 먼저 반응한 듯하여 최근의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막다른 길에 몰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일과 마주했다. 하지만 초심은 쉽게 흔들렸고, 일상이 그저 일의 연속이었다. 매듭을 끓을 방법을 찾지 못했고, 지쳐가던 차였음에 분명했다. 그렇게 "하나를 위해 전부를 바치지 말라"(45)는 충고에 크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에게 ''은 그저 돈벌이수단일까? 분명 돈이 목적일 수는 없지만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지키면서 일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또다시 시행착오를 거듭하다보니 일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듯하다. 작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일(197)그리고 우리 모두가 대체불가하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야말로 나를 지키면서 일하는 법이라고... 각자의 위치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나 자신'에게 머물지 않게 된다. ''를 지키면서 '우리'를 지키는 ''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 그 역경의 시대 속에서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다양한 관점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인문학을 통한 그 지름길을 일러주고 있다. 저자는 탄력적인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는 꼼꼼하게 읽을 책, 그리고 어느 정도 집중력을 가지고 읽어야 할 일과 관련 있거나 그 주변 영역에 관한 책 마지막으로 짧은 시간 대략적으로 훑어볼 수 있는 신간 서적으로 분류하여 책을 읽으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깊이를 더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는, 책의 효용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한 번쯤 시도하여, 일에 대한 전문성을 더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일이다.

 

누구나 어떤 일이든 자신의 일을 선택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흔들릴 것이다. 그 흔들림 앞에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일러준 지혜를 되새길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읽어주면서 방향을 제시해지고 있다. 그가 읽어준 시대, 많은 이가 가려워하는 곳이 어디인지 뚜렷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지름길(?)을 일러주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원래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의 타자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다시 있는 그대로의 타자에게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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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집, 이슬람은 어떻게 유럽 문명을 바꾸었는가 - 9세기 바그다드의 지식혁명
조너선 라이언스 지음, 김한영 옮김 / 책과함께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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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여전히 기억나는 몇 가지의 이야기라면, 그것은 바로 중국과 유럽 중심의 역사이다. 중국의 통사를 비롯하여, 중세유럽과 르네상스, 그리고 산업혁명 등의 일련의 과정들은 흐릿해졌지만, 어느 정도 맥을 잡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만난 이슬람의 역사는 , 찬란하고 역동적으로 꽃피웠던 한 시대를 우리는 얼마나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것일까?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시각이 철저하게 서구지향적, 서구중심적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러한 시각을 인정한다고 해도, 편협되게, 왜곡된 다른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지혜의 집, 이슬람은 어떻게 유럽 문명을 바꾸었는가>를 읽으면서, 경쟁과 협력을 통해 문화, 정치, 경제, 사회에 하나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기존 역사인식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은 점은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들에 의해 이슬람 문화에 꽃피던 지적 탐구의 역동성이었다. 지적 호기심과 지식 추구의 과정, 즉 '9세기 바그다드의 지식혁명'이란 부제에서 느껴지듯, 의학, 철학, 수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망라하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식 혁명이 절로 온몸을 들썩거리게 하였다. 또한 그것은 마치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 정조와 규장각 검서관들의 모습으로 절로 그려지면서 온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삼국, 신라, 고려의 역사로까지 확대되었다. 방대한 지식이 충적되던 시기, 우리 땅을 밟았다던 아라비아 상인의 모습이 바로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듯했다. 나만의 상상력이 자극을 받느라 나의 뇌세포들은 아주 분주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쉽지많은 않은 이야기임엔 분명하였다. 사전 지식이 전무한 가운데, 하나의 흐름으로 일관되기 보다는 시간을 수시로 오가는 느낌이라 처음에 이야기의 맥을 잡기가 힘들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나의 태도는 '과연 이 책은 인문서일까?'하는 까닭 모를 의구심이 수시로 샘솟았다. '배스의 애덜라드'라는 영국인이 등장하는데 그가 지식, 지혜를 찾아 동방으로 떠났다는 사실에 국한하여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수시로 등장하는데, 어느 순간 마치 밑밥을 던져온 것처럼 자꾸만 호기심을 자극하여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그로 인해 이슬람이 어떻게 유럽 문명을 바꾸었을지, 핵심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많은 갈등들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기도 하였다. 지금의 우리의 현상황이 빗대지기도 하였다. 그만큼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갖고 있는 문제점,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그들처럼 기존에 알지 못했던 세계, 다른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갖고 있는가? 아직 마음을 열지 못하고 외면했던 문화와 역사를 만나고 나니, 절로 느껴지는 것, 생각할 것들이 많아지기도 하였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역동성, 기대 이상의 에너지는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설레고 흥미진진했다. 기존에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지식의 팽창' 과정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신나는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에 들뜨기도 했지만, 두발로 걷고 또 걸으며 온세계를 누볐던 많은 이들의 열정과 그 열린 마음이 무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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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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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도 친숙한 유홍준 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자꾸만 욕심이 나, 탐하게 되는 책이다. 그런데 제주를 담고 있다는 절로 설렘으로 들떠 있었다. 올레의 추억을 가슴에 새기고, 만덕을 만나면서 제주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지만, 여전히 나의 일상의 언저리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행동이 따르지 않는 수많은 생각들에 종종거리게 된다. 공상, 망상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고, 책의 내용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풍경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싶은 마음들이 들어찬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역시 그러했다. 지금은 떠나기 좋은 계절, 훌쩍 제주를 향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고, 왠지 모를 그리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책으로 확인하고자 했던 제주의 역사를 즐거운 이야기를 통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인류의 수많은 비극의 사건들 중에서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제주의 4․ 3사건이었다. 그리고 예상 밖으로 많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 그럼에도 제주의 이색적 풍경이 담아낸 신비 등이 어우러져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역사의 상흔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그 역사의 여러 갈래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쉽게 풀어 놓아 많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제주를 담은 많은 여행기, 틀에 박힌 유명 관광 명소보다 나의 고된 발품 팔이 없이 결코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제주의 삶이, 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돌담에 스며있는 제주의 정신, 그 속에서 꽃피는 제주의 문화는 흥미로운 만큼 더욱 제주가 내게 손짓하는 듯한 기분에 젖었다.

 

여행 아니, 관광을 다니면서 늘 품게 되는 많은 아쉬움에 대한 날선 비판과 그만의 해결책을 읽는 내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 시원함마저 들었다. 특히 기념비 ‘뿔대’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점이기도 하지만, 아니다. 내심 마음 깊숙이 불편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어디 어느 곳을 가나 특색 없이, 아니 하늘 높이 치솟는 특색을 자랑하는 그 수많은 뿔대들, 감흥 이전의 숙연함보다 고압적으로 주변을 무색하게 하는 그 뿔대들의 거북함, 그 비슷비슷한 뿔대들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모든 것이 더욱 제 모습을 찾아가며, 많은 유적지, 명소에서 느끼는 그 불편함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직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모두 만나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기대되는 다음8, 9편을 기다리면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펼치겠다는 마음이 저만치 앞서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소설을 즐겨 읽고 있었는데 이 책을 계기로 다른 책, 특히 제주에 관한 책들에 절로 눈이 돌아간다. 눈도장만 찍어두었던 제주 관련 책 <새로쓰는 제주사>,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들을 시작으로 제주를 들락거려야겠다. 제주를 다녀와서 냉큼 샀던, 그러나 책장이 고이 묵혀두었던 <한라산 편지>가 드디어 책상 위에 펼쳐져 손끝을 간질인다. 그리고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 제주도>가 출간된 것을 방금 확인하기도 하였다. 두 눈을 의심하면서도 눈이 반짝인다. 왜 이토록 반가울까? 아차차, 그리고 <순이 삼촌>도 도서관에서 확인했었다. 냉큼 읽을 테다!

실제로 쉽게 발걸음을 내딛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책으로나마 제주의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제주를 더 많이 공부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제주를 찾게 될 때, 그 풍경 속에서 더 많은 것은 가슴으로 느끼고 되새기면 추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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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
이재갑 글.사진 / 살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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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일련의 뉴스들은 지난 과거의 역사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몇 달 전 일본 지자체(구마노시)가 기슈 광산에 강제 동원되었던 조선인 희생자의 추모비 부지에 세금을 부과했다는 황당한 뉴스를 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접한 영국인 묘지(영국인 포로 16명)는 사적으로 인정해 관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안의 무엇인가가 불쑥 솟구쳐 올라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 인식이 어떤 자극에 의해 순간적 분노의 표출은 아닌지, 진정 스스로 지난 과거, 그 쓰라린 역사와 대면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회피하고 외면하고 방관하다가 불현 듯 요란만 떨었던 것은 아닌지,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은 걷다>를 펼쳐들며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우리는 그 100년의 역사를 돌아봐야했다. 지난 100년의 기억, 그 기억은 슬프고 아린 상처다. 그런데 ‘일본’이란 공간에서 그 역사의 흔적을 찾고 있다니, 시선이 절로 갔다.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 분명히 있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그 현장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지난 몇 해 전부터 일본의 여러 도시-후쿠오카, 나가사키,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를 돌며 조선인 강제징용과 그와 관련한 건축물들, 그 잔재들-군부대 진지, 탄광, 광업소, 댐, 해저탄광 비행장 등등-을 사진에 담고 있다고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러 작업들이라지만 이 한 권의 책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오롯이 다가왔다.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역사의 여러 편린들이 아로 새겨진 현장은 단지 우리만의 쓰라린 상처만은 아니었다. 전쟁의 야만성, 그 잔혹함, 무자비함과도 마주해야 했고,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됨을 지키려 노력했던 많은 이들의 이야기에 가슴속이 뜨거워졌다.

 

역사를 통해 ‘지금, 바로 여기’를 직시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강제 동원되어 핍박 받고 착취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분노한다. 지난 역사에. 하지만 우리는 비슷한 이유로 이 땅의 다른 이들을 멸시하고 차별하지는 않는지, 그들의 분노와 아우성을 외면하면서 우리가 어찌 당당할 수 있을지, 가슴 속이 왠지 모르게 씁쓸해지고 또한 숙연해졌다.

 

‘보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만 보일 뿐’(219)이라는 말이 깊숙이 파고들어 귓가에 맴돈다. 우리는 역사를 바로 바라봐야한다. 물론 그 시선 또한 바로 서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단지 그 역사를 통해 분노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 또한 그릇된 역사 인식일 것이다. 저자가 밝히듯, 대립과 갈등이 아닌 상호 공존을 위한 해법은 분명 일본 잔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우리 또한 올바로 알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바로 우리, 각 개인에게 있어 역사가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숙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진정한 반성과 용서, 화해’라는 화두를 제시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끝으로 바로 보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에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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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미술 - 르네상스에서 21세기 아시아까지 미술의 탄생과 역사
KBS [다큐멘터리 미술] 제작팀.이성휘 지음 / 예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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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그저 고고하고 도도한 것, 속칭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뿐이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미술>을 통해 너무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의 세계라는 편견이 와장창 깨져버리는 순간을 만났다. 특히, 책은 터놓고 말한다. ‘미술은 돈’이라고. 여기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소리지? 하나의 이미지만으로 함축적이고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높은 성 아니었던가? 그런데 ‘돈?’ 의문 다음엔 곧장 궁금증이 일었다.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미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하게 되었다.

 

처음엔 무척 낯선 구성에 놀랐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이야기하면서 최근 광고에서 많이 듣게 되는 ‘메디치가’의 예술 후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지 하나의 작품과 짤막한 그림 이야기에 국한하지 않고 있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와 그의 작품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술의 시기별 분류가 ‘도시’라는 공간의 이동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정치, 경제,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예술 수도(피렌체-파리-뉴욕-런던-베이징)’ 중심의 횡적 구성이 가미되어 미술사의 흐름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와 쉽게 이해되었다. 미술과 그 시대, 그 공간의 역사과 문화, 정치가 어우러져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다가와,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공간과 시간이 예술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돈’과 미술의 관계엔 물음표가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에 <도시의 승리>라는 책을 펼치게 되었는데, 첫 머리에 “왜 그토록 많은 예술 운동들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도시들에서만 그렇게 빨리 일어났을까?(15쪽)하고 묻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다큐멘터리 미술>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핵심이 정확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예술은 고고한 것이라는 편견에 갇혀, 스스로 그 본질, 가치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아직도 그 천문학적인 거래액엔 입이 ‘떡’ 벌어지고, 여전히 난해함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깊은 감흥은 멀기만 하다. 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우리가 예술에 대해 왜 떠들고, 그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는지 조금은 눈을 뜰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미술>은 시공간 속, 예술, 미술사를 좀 더 쉽게 들려주면서, 그를 통해 자본과 권력, 그리고 시대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 문제 제기와 담론의 확장, 갈등의 증폭과 반발 등등 다분히 인간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미술이라는 것이 우리는 비쳐 주는 거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제 우리는 미술이 솔직 담백하게 드러낸 이야기, 우리의 모습에 때론 격분하고 때론 위로받으면 되지 않을까? 미술이 불러일으키는 우리 안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우리의 삶이 훨씬 ‘괜찮게’ 다가오지 않을까? 맨 얼굴의 미술,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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