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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21 - 5부 5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2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올해 처음으로 <토지>를 펼친 후, 때론 ‘과연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하는 의혹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등장인물들이 생생하게 다가와 나의 일상 속으로 불시에 찾아와 말을 걸었고, 결코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과연 나라면?’이란 물음이 또한 마음을 뒤흔들었다. 돈, 권력의 유무를 차치하고, 면면의 인물들의 삶은 그자체로 아름답고도 애달픔 그 자체였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한 고비 넘어 숨을 돌리면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다가도, 끝도 없는 펼쳐진 그 막연한 길에 대해, 그 불안과 두려움이 고개를 들 때, 불쑥 다가와 조곤조곤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 불안과 두려움, 가슴 속 깊이 차오르는 그리움마저도 온몸으로 끌어안으라고. 그렇게 견디는 삶의 환희를 오롯이 일깨워주었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마지막을 향해 치달릴수록 명쾌해졌다. 생명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소중한 가치, <토지>를 읽다보니, 나 스스로 참으로 유해졌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해졌다. 앙칼지고 모난 마음의 언저리를 자꾸만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그 느낌은 그 누군가의 품처럼 온몸이 짜릿하도록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 결코 잊을 수 있는 따스함이었다. <토지>의 힘은 숱한 시간이 다져낸 생명에 대한 긍정의 힘이 아닐까?

 

이제껏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나와 비슷하게 읽던 누군가와 경쟁을 하기도 하면서. 때론 쫓기듯이 읽기도 하였다. 하지만 만족스럽지가 않다. 자꾸만 곁에 두고픈 마음이 커져, 최근 개정판 <토지>를 꼭 소유하겠다는 마음이 한 가득이다. 2012년, 21권의 <토지>를 꼭 읽겠다는 다짐을 이미 달성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선물해도 좋지 않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손끝이 간질간질하다. 그만큼 또 읽고 싶다. 아니, 어떤 아쉬움과 시원섭섭함보다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리움들로 가득 차오른다. 월선, 봉선(기화), 김환, 이용 그리고 기억에 가물가물한 수많은 인물들이 그리워지고 또 그리워진다.

<토지 21(5부 5권)>의 마지막을 향하면서 왠지 모를 외로움과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던 것도 사실이다. 만주로 떠난 이들(석이, 상현)이 직접 등장하였고, 영광이 만주로 떠났고 그 어미는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양현을 데리고 평사리로 돌아온 서희, 잠시 내려온 환국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갈등들이 풀리기보다는 그 다음의 이야기가 또한 궁금해진다. 과연 어떤 책을 펼쳤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을지 기대되기도 한다.

 

광복을 앞둔 상황 속, 그 암담함과 처절함, 결코 속속들이 들어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 고통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박 겉핥기식의 역사를 통해 분개했던 것은 어쩌면 학습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야 비로소 그 숨 막히도록 살벌했던 시대, 그 핍박 받고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결코 나와 별개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결코 머나먼 나라의 타자일 수가 없고, 그것은 과거의 문제도 아니다. 어쩌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해, 아니 외면하고 오늘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면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그 잔인함과 잔혹함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마음과 몸이 얼마나 모순으로 가득 찰 수 있는지도 더욱 뚜렷해지고 명쾌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신음하며 좌절하고 움츠리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도 가득 찼다. 그래서 스스로를 수시로 돌아보게 된다. 아니, 끊임없이 그들과 호흡하면서 나를 다지고 싶다. 흔들리는 마음들, 갈등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방황하는 그 마음들이 단단하게 묶고, 사람냄새 진하게 풍기고 싶다. 살뜰하게 나의 마음 밭을 다져줄 <토지>의 존재만으로도 풍요로워진다.

 

“불구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나비같이 살았을 것입니다. 화려한 날개를 뽐내고 꿀의 단맛에 취했을 것이며 세속적인 거짓과 허무를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내 이 불구의 몸은 나를 겸손하게 했고 겉보다 속을 그리워하게 했지요.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물과 더불어 살게 되었고 그리움 슬픔 기쁨까지 그 나뭇결에 위탁한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내 시간이 그리 허술했다 할 수 없고 허허헛헛... 내 자랑이 지나쳤습니까?”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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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20 - 5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20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로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아쉬움 때문인지 발걸음이 오히려 더딘 듯하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으면서 <토지>라는 이야기의 한복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착각에 휩싸인다. 각각의 인물들이 이야기가 수시로 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최근이 이야기 중에서는 양현과 영광, 그리고 오가다와 인실의 이야기가 일제 40년대의 암울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잠시 잊게 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 자체가 다시금 그 시대 상황을 떠올리게 하며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잠시 자취를 감추었던 ‘양현’의 이야기로 <토지 20(5부 4권)>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윤국’과 결혼을 할 수 없었던 양현은 평사리를 찾은 이후, ‘연학’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잠시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양현을 찾은 영광,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에 감정이입을 하며 이야기에 흠뻑 취했다. 아슬아슬 마음을 졸이면서도 가슴이 촉촉해져, 40년대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잠시 나마 그들의 애잔한 사랑에 두근거렸다. 매서운 바닷가, 칼바람 속에서도 함께 걷는 그들의 모습이 황량한 풍경 속에서 환한 빛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그네들의 사랑의 희열과는 정반대의 안타까운 현실이 더욱 도드라졌다.

그리고 영광의 이야기를 이은 것은 바로 오가다의 이야기였다. 잠시 귀국해, 누이 집에 들러 매형과의 이야기는 그 당시의 일본의 상황과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찬하와 쇼짱의 만남 그리고 갑작스런 만주로의 여행, 어린 쇼짱의 주변을 둘러싼 어른들의 아픔과 쇼짱에게 닥칠 혼란이 시대의 혼란 그 자체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없이 밝고 순순하 쇼짱의 모습이 마음 속의 어둠을 일시에 몰아내주는 듯, 글에 활기를 더해주었다.

 

지난 조준구의 죽음 이후, <토지 20(5부 4권)>에서도 그간의 악행을 자행했던 우개동의 판면과 배설자의 죽음이었다. 일본인에 의한 멸시와 악행보다 서로를 짓밟진 않고서는 설 수 없는 듯, 조선인 내에서의 악행이 가슴을 더욱 분노케하고 좌절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파국에서 강선혜가 겪는 정신적 피폐함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손자의 학병 소식에 모든 희망을 저버린 듯, 눈먼 성환 할매(석이네)의 이야기며, 그간의 잘못을 뉘우친 귀남네의 이야기, 또한 홍이의 딸 상의의 이야기, 학병에 자원한 윤국의 이야기, 만주로 떠나겠다는 영광의 이야기 등등, 마지막 권을 남긴 지금, 그 마지막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맺음을 하게 될지, 조금은 두려움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토지를 읽는 내내, 저마다 삶의 애환을 가슴에 꽁꽁 짓누르며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인생이 희로애락의 굽이굽이를 넘으며 견디고 견디는 삶이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또한 세대에 세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소중히 생각해야 할 생명의 소중함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가슴 깊이 파고든다. 마지막 권을 펼친다는 것이 손끝을 떨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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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9 - 5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9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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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제강점기, 40년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토지의 5부를 읽는 것은 조금은 버거운 일인 듯하다.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토지의 결말보다도,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40년대의 풍경이 아찔하고 적막하게 가슴을 죄어온다. 역사시간에 배운 단편적인 일제강점기의 그 약탈과 수탈의 역사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듯하다. 최고조에 이른 그 절망과 불안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마주하며 나 역시도 몸을 움츠리게 된다. 적막한 고요 속 숨죽인 울부짖음이 피부에 와 닿는 것처럼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다.

 

서울의 명희를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 (친구 여옥과 최상길)를 시작으로 지리산 소지감이 머물고 있는 절로 정양을 위한 떠나는 임명빈 일행의 이야기가 <토지 19권>의 서두였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모화’라는 인물에 어리둥절하다가, 몽치의 등장과 예상 밖의 전개가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토지의 악의 축이었던 ‘조준구’의 죽음으로 그 무언가가 일단락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었다. 혼란의 시기, 개개의 이야기들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양현’과 ‘영광’ 그리고 ‘윤국’의 어긋난 인연이었다.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떠난 양현의 이야기가 오리무중 속으로 사라진 느낌이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홍이의 딸 ‘상의’를 통해 막바지에 이른 일제강점기 학교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또한 조준구를 뒤를 잇던 ‘김두만’의 이야기, 그 반전이 또한 흥미로웠다. 반대로 석이의 딸 ‘남희’의 갑작스런 등장과 그 내막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 혼란과 절망의 시간이 오히려 아득하게 끝없는 것처럼 다가왔다.

 

이야기의 끝을 향해가면서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다가올 해방의 막연한 기우 속의 사람들의 삶, 그 이야기가 낯설고 자꾸만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다가올 그날이 안개 속인 듯한 그들의 이야기는 소제목처럼 ‘통곡하는 산하’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그 삶 자체만으로도 ‘생명’이 여전히 꿈틀되고 있는 듯하여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붙잡을 수가 있었다.

 

 

... 병신자식 하나를 돌보면서 가난하게 지내던 할머니, 함께 풀을 매면서 일이 보배라 하던 그 할머니에게 새들은 겨울에 뭘 먹고 살지요? 조그마한, 저기 날아가는 철새는 어떻게 강남까지 가는 걸까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천지조화가 살게 허는 것이여. 가게 허고 오게 허는 것도 천지조화지 뭣이겄어? 사람을 몰러, 모른단 말씨.”

“할머니가 이 고생을 해오신 것도 아드님이 불편한 몸이 된 것도 그러면 천지조화의 탓인가요?

“그것이 아니지라. 사램이 천지조화를 어긴 때문이여.”

...

“천지조화는 공평하들 않는감?”

“아드님 불편한 몸도 사람이 불공평해서 그런가요?”

공평하다믄 병신이라도 다 살아가는 길이 어찌 없을 것인여? 손발 없는 배암도 묵고 살고 물 속의 개기도 묵고 사는디, 일찍이 가고 더디게 가는 거사 천지조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께로.” (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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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8 - 5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8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제강점기, 40년대의 상황이란 것이 얼마나 암울하고 비통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 속, 많은 등장인물들의 두려움과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두 손을 불끈 쥐게 된다. 18권의 이야기, 그 모든 것이 침체된 분위기에도 홍이를 둘러싼 석이네(성환 할매), 천일네, 야무네의 일사분란한 점심 상 차리는 풍경이 있어, 모든 이야기를 상쇄하고 신바람난 그들처럼 신나고, 흥미진진하게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삶을 옥죄는 고통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만으로도 펄펄 나는 듯, 생기를 찾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짧지만 강렬했다. 시간이 지나도 <토지>의 여러 이야기, 풍경 중에서 으뜸으로 각인될 듯하다. 정지에서 폴폴 나는 밥, 닭찜, 참기름 냄새를 마치 나의 기억, 추억처럼 잊지 못할 것 같다.

 

환국과 순철의 만남, 서희를 찾은 홍성숙과 배설자의 이야기로 시작된 <토지 18권(5부 2권)>은 홍이의 이야기와 오가다와 인실의 이야기였다. 홍이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조선으로 돌아온 뒤,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내내 가슴을 졸이게 하였다. 신경에서 통영으로 배경이 바뀌면서 다시금 휘와 영선, 영광의 이야기 그리고 양현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애를 태우게 되었다. 이미 영광과 양현의 슬픈 사랑이 예고되어 있는 탓에 그 전개에 절로 관심이 쏠리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또한 또 다른 비극적 사랑의 당사자인 오가다와 인실의 해후와 여전히 비극적인 상황들이 시대 상황에 맞물려 더욱 비통하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배설자란 인물이 어떤 만행을 저지르면 악의 축에 설지, 우개동의 악행보다 관심이 쏠린다. 또한 만주로 떠난 상현의 이야기가 여전히 베일 속이었다. 그런데 명희를 통해 전해진 상현의 소식에 벌써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와 함께 양현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다시금 19권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진다.

 

<토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줄곧 롤러코스트를 탄 듯 심장이 벌렁벌렁, 두근두근 뛰었다. 아직 남은 시간을 저울질하면 잠시 느긋하게 읽으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느긋함은 뒤로하고, 시대가 갖고 있는 아픔과 비통함에 절로 느린 걸음을 하게 된다. <토지>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아쉬움이 앞서다가도, 책을 펼쳐들면, 해방을 앞둔 시점에서 더욱 치열해진 삶의 단면들, 그 속의 절망과 애끓은 고통들에 마음이 절여온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고, 그간 <토지>로 인해 변화된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토지>를 통해 그 자체로의 삶과 생명의 소중함이 내 안에 새롭게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외눈으로 바라보면 편견에 사로잡혔던 숱한 생각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훨씬 느긋해지고 평온해 졌다는 생각에 일상의 많은 것들이 감사하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토지>가 있어, 삶의 굽이굽이, 힘겨움 속에 많은 위안이 될 듯하다. 매 권마다 느꼈던, 고통 속에 심어진 희망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일어설 용기와 지혜를 품게 될 듯하다.

 

“이 서방, 파도가 눈에 뵈지 않는다고 바다가 조용한 건 아닐세. 상어떼가 무리를 지어 날뛰고 피라미 한 마리 숨을 곳이 없다면 조용한 그 자체는 더 무서운 것 아니겠나? 그러나 절망하지 말게.” (320) 범석이 홍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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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7 - 5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7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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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의 막바지에 이른 느낌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을 알지만...) 1940년경부터 1945년 해방되기까지의 시간을 그리고 있는 토지 ‘5부’의 첫 시작인 <토지 17권>은 다섯 장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0여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간의 이야기, 각각의 인물들의 속사정을 토해놓는 듯, 여러 인물들의 지난 시간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시간이었다. 영광과 혜숙의 관계, 서울로 돌아온 명희, 4부의 많은 이야기 중 ‘산사람들의 결혼’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강쇠의 아들 ‘휘’와 관수의 딸 ‘영선’, 그리고 조준구의 아들, 곱새 소목장이 병수와 해도사, 소지감의 인연들, 그리고 한복의 아들 영호과 숙이, 그리고 숙이의 동생 몽치, 그리고 숙이와 영선의 인연 등, 각각의 인물들의 애잔한 삶, 그들의 팍팍한 삶, 그 속의 애증, 갈등 등의 이야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만주, 서울, 진주, 통영 등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다시금 ‘평사리’를 구심점으로 한데 모이며, 그간의 한을 풀어놓는 시간인 듯하다.

 

그 중에서도 송관수와 그의 아들, 영광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간간히 등장했던 관수, 백정의 사위가 되어 그 역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그보다는 억세고 강한 인물처럼 느껴져 아슬아슬하면서도 든든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만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의 삶, 부자간의 골이 깊어지면서 많이 어긋난 삶, 그리고 불현 듯 찾아든 그의 죽음은 월선의 죽음만큼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그동안 숱한 죽음을 봤지만, 역시 남의 일처럼 요원하게 느껴졌는데, <토지>을 읽는 동안 만났던 죽음들은 그 어떤 이의 죽음보다 피부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월선과 관수의 죽음은 조금은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면서, 이번에는 아비의 죽음을 통해 어떤 애잔한 설움을 밀려든 것인지, 내내 애달프고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죽음을 풀어낸 방법이 그저 슬픈 것만은 아니었고, 무척 인상적이다. 죽음을 앞두고 남긴 관수의 유서, 길상이 되새기듯, 나 역시 되새기게 된다.

“(...) 자손한테 물리줄 전답 한때기 없는 처지에 무신 놈의 유서인가 할지 모르겠다마는 이대로 내가 가믄 남은 사람들 가심에 한을 심을 것 같애서... 와 이렇게 맴이 담담한지 참 내가 생각해도 이상타.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가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는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고 생각하고. (...) 새삼시럽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이 정말 괜찮기 살았구나 싶다. (...) 고향 산천이 보고 싶고 작별하고 싶은 얼굴도 많다마는 어차리 사람은 혼자 가는 거 아니겄나.” (194쪽)

 

또한 영광과 양현의 슬픈 사랑이 이미 예견되어 있는데, 그들의 짧은 만남이 잠시 스쳐 지났다. 과연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그들의 인연이 어떻게 전개되지 더욱 기대된다. 신분의 한계를 온몸으로 자각하며 방황하는 영광, 서희의 품에서 나름 평안한 삶을 살아낸 듯하지만, 가슴 깊이 슬픔이 자리하고 있을 양현, 그 둘의 관계에 마음을 졸이게 될 듯하다. 벌써부터 왠지 모를 아련하고 절절한 사랑의 기운이 가득하다.

 

많은 이들 중에서, 또한 ‘서희’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그녀는 자신을 사모했던 박 의사(박효영)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흘린다. 별당에 앉아서도. 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비로소 어미와 구천(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서희를 통해 마음이 절로 뜨거워지고 애틋해졌다. 그리고 길상과 함께 한 자리에서 맥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과 대화 속에서 왠지 모르게 마음을 든든하게 하였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인사(人事)는 음산하고 각박했으나 가을은 찬란하고 자연은 풍요로웠다. 다만 인간만은, 조선땅에 태어난 사람들만은 날로 찌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조선땅뿐이랴, 조선사람뿐이랴. (308)

<토지>를 읽는 지금, 이곳도 가을빛으로 완연하다. 하지만 1940년대가 아니다. 그런데 드높은 가을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연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기엔 내 마음은 그지없이 팍팍한 것 같다. 과연 나만의 감상일까? 일제의 폭압이 최절정에 이른 시기를 배경으로 개인의 고달픈 삶이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견뎌야지. 모든 것을 다 견뎌야 해. (...) 물밑에 가라앉은 것처럼, 자칫 잘못하면 영광이 저 다리꼴이 된다. 얻은 것은 없고 잃었을 뿐이지.” (219)라고. 우개동의 횡포를 보면서 환국과 윤국의 대화, 그리고 환국의 대답이다. 단편적으로 한 개인의 삶을 통해서도 온몸이 들끓는 분노와 울분이 자리하기 마련인데 많은 인물들을 통해 긴 시간동안 풀어낸 이야기를 접하다보니,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그 팍팍했던 삶이 가까이 다가온다. 지금의 불평, 불만이 무색해질 정도다. 그렇다면 ‘어떻게 견뎌내는가?’란 의문에 앞서 그저 견뎌내는 것의 진실함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어떻게? 그것은 <토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갈등과 번뇌 속에서도 묵묵히, 때론 치열하게 살아낸 삶에서 여지없이 생이 기운이 꿈틀되고, 생이 꽃피고 있었다.

 

많은 인물들의 못 다한 이야기, 그 후일담이 5부, 5권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진다고 한다. 시간을 훌쩍 건너 과연 그간의 일들을 어떻게 풀어내지 호기심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리고 우개동의 행패를 통해 어떻게 그 암담한 암흑의 시대가 그려질지, 이미 17권을 통해 만났지만, 삼수, 조준구, 그리고 김두수를 잇는 우개동의 악행에 벌써부터 몸서리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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