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덮어놓고 인정해 버리고 싶은 작가인데 단편과 중편에서는 매번 어그러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존경하는 할아버지의 봉인된 불륜을 목격한 기분.  네 편의 소설이 하나 같이 성적인 욕망과 분투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서머싯 몸의 말마따나 톨스토이는 스스로가 말한 메시지에 갇힌 것 같다. 젊은 시절 한때 방탕한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지만 궁극적으로 마치 욕망을 비우고 이성과 고결함만으로 그득찬 모습을 연기해야 했던 그 고단함을 예고하고 고백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조금쯤 저열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인받는 것인데 톨스토이에게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기준을 들이댔던 것 같다. 욕망을 악과 혼동하는 지경에까지 가는 모습은 안타깝기조차하다.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에서의 일면이 집중적으로 조명되다 만 것 같은 분량의 이야기들이 아쉬움을 남긴다. 전체를 알기 위해 그 사람과 내도록 함께 할 필요는 없지만 톨스토이는 조금 길게 함께 할 시간을 가져야만 더 좋아하게 될 유형의 사람인 것 같다. 완전함을 지향하며 가진 것들을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겸손함을 단 몇 시간만의 자기비하적인 소개로 뭉개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다.

일본에 가야 할 가족이 있어 일본 원전사태에 촉각이 곤두선다. 현지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의 언론이 너무 과격하고 선정적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뉴스에 미국에서 일본측 얘기를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다며 후쿠시마 원전에 무인 정찰기를 띄웠다는 얘기를 들으니 심히 걱정이 된다. 위험등급도 체르노빌 사태 정도로 보는 외부시각이 있다 하니 경악스럽다. 여러가지 추측과 최악의 사태에 대한 얘기들도 나오는 모양인데 인체에 해가 갈 정도는 아니라는 보도만 믿고 평범한 일상 속 여러가지 일들에 어제처럼 오늘처럼 끄달려도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그냥 신경 끄고 살자니 아이들 눈만 보면 가슴 한켠이 욱신거린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난지 25년이 지났지만 그 지역에서는 여전히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고 방사성 폐기물들이 방치된 채 버려져 있다고 한다. 원전에 대한 논란이 일면 항상 듣는 얘기가 있다. 대안이 있느냐, 너는 전기 쓰지 마라.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대체 에너지 개발에 드는 그 노력과 이미 틀어버린 수돗물을 잠그는 수고가 싫고 그 수돗물로 은근히 할 수 있는 다른 일에 대한 유혹과 관련된 얘기는 아닐까.  

 체르노빌 관련된 이야기들을 검색하다 이 책을 발견했다. <제1권력>의 저자인 히로세 다카시의 소설이다. 논픽션을 주로 다룬 저자가 어떤 식으로 체르노빌의 무고한 희생양이 된 아이들 얘기를 풀어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읽고 나서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원전을 반대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사성 폐기물들을 후손들에게 떠넘기는 그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행태에 대한 분노와  방사능 누출에 있어 가장 큰 피해를 즉각적으로 보게 되는 어린 몸들에 대한 미안함과 닿아 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미약하나마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믿고 동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온라인에서 벌어진 원전 관련 논란에서 그렇게 원전에 거부감이 들면 지금 컴퓨터부터 끄라는 얘기를 들으니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래, 내가 누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온 그 진원지를 부정해 가며 핏대를 세우는 것도 모순이구나. 방방 불을 미친듯이 끄고 다닌다. 전기세부터 일단 줄일 수 있는 데까지 한번 줄여볼까 생각중이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중적이다. 누릴 것 다 누리면서 내가 마시는 공기, 물, 먹는 음식까지 신선하고 오염되지 않기를 바랐던 나도 톨스토이만큼 이중적이다. 최대한 그 간극을 줄여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죽기 전까지는 조금이나마 닿아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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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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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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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21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trotzdem)'를 온전히 배제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사고는 멈추지 않을까요. 늘 우리는,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건너편을 봐야겠다, 고 말하는 혹은 말해야 하는 존재이니까요....
좋은 글을 읽어서 저로서는 만족스러운데, 가족 중에 일본에 가야 할 분이 계시다니 블랑카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군요...

blanca 2011-03-21 21:13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이 말 너무 좋은데요. 그렇죠. 죽을 때까지 인간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계속 싸워 나가고 욕하기도 하고 하면서 불편하게 살아야 사는 거겠죠. 예. 마음 한 켠이 참 무겁네요.

cyrus 2011-03-2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일본 대참사 때문에 발생한 방사능 때문에 언론들이 설레발치고 있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어제는 요즘 우리나라도 들어오고 있는 황사 바람에 방사능 물질이 들어온다는 소식도 우연히 본 적도 있었는데,,
정부가 확실히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되는데 말이죠,, 구제역처럼 늑장 대응하는 식이 없기를 바랄 뿐이네요.

그리고 지진 발생하고나서 처음에는 일본 시민들은 안정된 질서 의식을 지켰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되니 조금씩 이기적인 모습이 드러나더군요. 블랑카님 말씀대로 인간은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에
따라서 이중적으로 쉽게 변하는거 같아요.

blanca 2011-03-21 21:15   좋아요 0 | URL
cyrus님 생존의지가 참 이기적이기도 하고 때로 이타적으로 발현되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언론도 저는 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건지 영 판단이 안 서네요. 어쨌든 지도자층의 그 심오한 심중이야 알 수 없고 항상 그들의 입으로 말해진 가공된 사실을 진실인 양 받아들이고 살다 죽는 게 저를 포함한 다수의 대중이라는 게 참 서글픕니다.

2011-03-21 1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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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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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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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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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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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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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3-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나의 반성을 부르는 페이퍼에요.
구드룬 파우제방의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에는 핵 폭발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고 남겨진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묘사되었어요. '천벌 받을 어른들'이라고 휘갈겨 쓴 아이의 글이 모든 걸 말해주기도 하고요.ㅠ

blanca 2011-03-21 21:1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안그래도 이런 책 추천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장 장바구니에 담을게요. 감사합니다. 오늘부로 읽을 책이 똑 떨어져서 고민 중이었답니다.

2011-03-23 1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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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3 2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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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2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오락가락하는 일본의 원전소식을 들을 때마다 현재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쉬쉬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지요.

그나저나 정말로 일본에 가셔야 할 가족이 있으시다니 좀 안타깝습니다. 언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이죠..

blanca 2011-03-29 14:00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정말 빨리 해결되어야 제 맘이 좀 편해지지 않을런지. 하늘의 흐림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고 말이예요. 바람결님은 잘 지내고 계시죠?

2011-03-29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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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0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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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1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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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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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저녁 무렵 노랗게 물든 서점을 그려봐야겠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어둠속 영롱한 빛 같은 풍경을.
-빈센트 반 고흐 

 

그래서 고흐는 결국 그렸을까? 노랗게 물든 서점을? 

시험이 끝나면 시내 대형서점에 가서 이만 원 정도의 예산에 맞춰 책을 네 권 정도 골라 품에 안고 한창 머리가 빠지고 있는 아빠와 소박한 외식을 하고 귀가하곤 했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을 모조리 다 살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언젠가 우연히 재회한 고등학교 동창의 꿈이 ㄱ문고 사장 아들과 결혼하는 거였다는 고백과 맞물려 다시 떠올랐다.  

사실 행복하지 않아서 책에 흠뻑 빠졌고 그랬기에 후의 삶은 조금 더 평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유년시절 정말 행복했다면, 충만했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여기에 와서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울고 싶을 때마다 엄마 젖대신 책을 찾았다. 그러니 서점은 수유의 공간과도 같을 수밖에. 

이 책의 저자는 물론 당연히 탐서가이고 지극히 평범하고 그럼에도 자기 이름으로 낸 책이 몇 권 있고 서점에서도, 출판사 외판원으로도 일한 경력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책사랑에 대한 얘기가 책과 서점의 역사와 아름답게 교차하는 구성이 참 싱그럽다. 지나치게 개인적이거나 은밀하지도 않고 '척'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얘기와 대상의 얘기를 풀어내는 입담에 절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서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여직원과 아직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통화하며 "당신, 그 책 읽었어?"라고 호들갑 어린 목소리를 듣는다는 고백과 파리 센 강 좌안 고색창연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의 역사를 함께 듣는 일은 드물고 근사한 경험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이 서점의 젊은 여주인 실비아 비치 덕분에 외설 시비에 휘말린 <율리시즈>를 출판 배본할 수 있었다는 얘기와 22년 넘게 수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되어 주었던 그곳이 독일군들의 파리 점령으로 폐점하게 되는 사연. 저자가 열다섯 살에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를 만나 6개월 안에 전작주의를 실현하게 된 열정적인 독서 편력 들을 듣다 보면 어느새 노란 불빛의 서점 안에 들어서 맘씨 좋은 서점 주인의 배려하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노곤해진다. 행복한 나른함. 참 오랜만이다.

집에서 가져온 재즈 음반들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책 주문서를 작성하고 서점 문을 닫고는 닐 영, 스탄 게츠의 음반을 틀어놓고 악을 쓰며 청소를 하고 30년 후에도 변함없이 감동을 줄 책들을 권해받는 풍경은 눈물나도롭 부럽고 행복해 보인다. 과거로 정지해 버린 기억의 영상들을 다시 이어 재생하며 사람들이 서점과 종이 책을 지금보다 조금더 존중했던, 하지만 그래도 역시 어느 정도는 초라한 책을 둘러싼 풍경은 한없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책을 돌려 읽었고 저마다 가슴에 품은 대목들을 서로 교환했다. 초록색 교복에 검정색 스타킹을 신고 근처 남고생들한테 똥파리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던 우리는 이제 다시 만나 책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우리였던 나이의 지금 아이들은 책상 위에 돌려 읽는 책대신 스마트 폰을 올려 놓고 끊임없이 짦은 단문으로 얘기할 수 있는 거리들을 터치한다. 무언가 얘기하고 싶은데 얘기할 거리가 없어도 단문 메시지는 부끄러움을 숨기고 '나'와 '너'와 '그것'이 만났다는 환각의 지점에 도착한다.  

노란 불빛의 서점이 셔터를 내리는 날. 종이책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날. 그건 삶의 종언보다 더 가혹한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언어로 그려지는 '너'의 얘기들을 이제 더이상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사랑'을 포기하는 일과도 같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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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1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이 책 봤는데, 망설이다가 안 샀는데, 살걸....... 흑.

울고 싶을 때마다 책을 찾았다고 하니 생각나는데,
제가 요즘 <브레인맨 천국을 찾다> 라고 자폐증이 있는 사람의 글을 읽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좀 그런가봐요. ㅠㅠ. 블랑카님두? 큭큭.

blanca 2011-03-18 21:45   좋아요 0 | URL
마고님 저는 반값세일에서^^;; 그런데 지금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책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그럴 지도 몰라요 ㅋㅋㅋ

비로그인 2011-03-1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예전에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던 때가 떠오르네요. 찾는 책이 없으면 서점 주인에게 따로 구입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었죠.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이삼일 뒤 산책한다는 핑계로 저녁 밥 먹고 터덜터덜 걸어나오면 주인이 따로 챙겨놓은 책을 무슨 비결서인 양 꺼내주곤 했었는데요 ㅋㅋ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아마 그렇게 샀죠^^

blanca 2011-03-18 21:47   좋아요 0 | URL
후와님, 제임스 미치너 <소설> 제가 기억하고 있는(읽어야 겠다고) 책인데 이 댓글로 다시 장바구니로 넣어 둡니다.^^ 말씀 들으니 레코드점도 그렇고 서점도 그렇고 그렇게 주인들이랑 친분을 쌓아 두었던 과거가 참 그리워지네요.

cyrus 2011-03-1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동네 서점이나 ㄱ문고에 안 가본지 꽤 오래 됐네요. 알라딘을 자주 애용하다보니
정작 오프라인 서점을 자주 갈 일이 없는거 같아요.

blanca 2011-03-18 21:49   좋아요 0 | URL
cyrus님 여기는 대학가인데도 대부분의 작은 서점이 폐업했어요. 이젠 대형서점들만 살아남는 추세인데 그마저도 가보면 사람들이 많지 않음을 느낍니다. 지하철을 타도 다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책을 좋아했던 친구들도 요새는 책을 읽지 않더라구요. 괜시리 참 서글퍼져요. 저도 알라딘에서 살게 된 이후로 오프에서는 구경만 자꾸 하게 되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1-03-19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ㅠ.ㅠ
그러고보니 저도 시내 대형서점 안 나간지가 꽤 됐네요.
동네 서점은 아직도 가끔 들리지만요.
예전엔 동네서점에 가면 철지난 잡지부록도 챙겨놨나 주시고 그랬었는데 말이죠.
새로운 음반이 나오면 전화해 주던 음반 가게도 이젠 온라인쇼핑몰로 돌려버렸더라구요.

책과 스마트폰이 혼재하는 시대, 아이들은 혼란을 겪고 있겠죠.
그 아이들을 종이책으로 인도하는 것, 그 아이들이 종이책을 선택하는 것...우리의 전철을 따르겠죠~^^

blanca 2011-03-19 20:39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저는 요새 아이들이 너무 어렸을 때부터 영상물와 각종 전자기기에 노출되어 활자 텍스트를 거부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제대로 뇌발달은 이루어지나, 이런 의문이 들어요. 실제 걸음마도 못하는 아가들이 핸드폰을 손에 쥐고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 보는 풍경이 일상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종이책이 다시 각광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비로그인 2011-03-2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이가 여섯 개나 빠졌다는, 스스로 주어와 동사만으로 문장을 채워 글을 만들어 보라는 혹독한 주문의 어떤 작가의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가끔 서점에 가면 요즘 시대와 점점 닮아 번쩍이고, 화사하기만 한 책들이 점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저런 노력과 주문이 담긴 책들은 점점 구석으로 몰려 가는 것 같아 아쉬운 밤입니다.

blanca 2011-03-20 23:03   좋아요 0 | URL
우아, 바람결님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요새 왜이리 뜸하신 거예요? 저는 서점을 너무 좋아해서 그냥 대형서점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스르르 다 풀려 버려요. 아아. 그 이가 빠졌다는 작가는 아마 김훈이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요즘은 참 이래저래 슬픈 시대인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1-03-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초록빛 나는 똥파리 말이군요.음...귀여운 디자인이었을 것 같은데요...

blanca 2011-03-21 21:06   좋아요 0 | URL
노자님 초록색 치마에 검은색 타이즈 신고 다니니 남고생들이 계속 놀려댔었죠 ㅋㅋ 교복 이쁘다고 소문이 많이 난 학교였기는 했어요. 교복만 이뻤죠--;;

2011-03-22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1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1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3-22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너무 좋아해서, 도서관과 서점에 있는 것만으로 정말 행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동네서점에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시집을 뒤적거리거나,
몇 시간씩 서서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몇 편을 다 읽어버리기도 했죠.
이 글 읽으니, 꼭 그 작은 동네서점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요!
잘 읽었습니다! ^^

blanca 2011-03-22 21:33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정말 서점에서 책 읽는 재미도 참 쏠쏠했지요. 저는 너무 오랫동안 책을 골라 뒤통수가 좀 따가웠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 대형문고는 저한테는 정말 마법의 공간 같은 곳이었어요. 아무리 오랫동안 영양가 없이 서성거려도 뭐라 그러는 이도 없고. 감은빛님 댓글을 읽다 보니 갑자기 서점으로 막 뛰어가고 싶어지는 걸요.

2011-03-29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30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년중앙>이었나 보다. 체르노빌원전에서 일하는 아빠를 둔 아이는 그 날도 어제처럼 평온하게 잠들었다 번쩍이는 섬광과 폭발음을 듣고 잠을 깬다. 아이가 놀라서 창가에 서 있는 장면을 그린 만화를 읽고 몇날 며칠을 잠을 못 이루었다. 원자력발전소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땐 다 끝이라는 생각들로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두려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선병질적이었던 나는 제대로 건수를 잡은 셈이었다.  

   

정말 그 어린 시절의 괴로움과 막연한 추측, 그리고 강한 고통을 주었던 이상하게 원근감 없이 보이는 인생관을 회상할 수 있다면, 어린이들이 느끼는 슬픔을 비웃지 말아야 한다.
-p.112 

어른이 되어가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그 단조로운 일상성을 체득해 나갔고, 나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안전할 거라는 눈먼 믿음에 자꾸 중독되어 갔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외외성'과 '돌발적 비극'에서 언제나 비켜가는 행운은 없다는 것을 머리와 가슴으로 조금씩 알아 가게 되었다. 산다는 것은 때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라는 것을 가끔은 떠올릴 수 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단란한 가족, 유달리 친밀감 있는 남매, 영롱한 유년기.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 그리고 칭찬받지 못할 사랑, 남매의 불화, 마을을 덮친 자연재해, 죽음...  

심판은 누구의 입에서건 나올 수 있다. 모질고 잔인하고 지각없는 거리의 부랑아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움과 동정은 드문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올바른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미덕인 것이다.
-p.380

커다란 재난에 처해 우리 삶의 인위적 껍질이 벗겨지고 우리 모두가 근본적인 죽음의 위기 앞에서 하나가 된 그런 순간에 어떤 싸움인들, 어떤 모진 행동인들, 그리고 어떤 상호불신인들 존속할 수 있으랴?
-p.422 

덜컹거리는 지하철 옆에서 중년의 남자는 갤럭시탭으로 재난기사를 읽고 있었다. 중독처럼 스마트폰으로 일본지진기사를 읽는 것이 갑자기 참혹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쑥 내밀어 그의 화면을 훔쳐 봤다. 시선을 깨달아 버린 듯 고개를 들어버리는 행동에 머쓱해져 150년도 더 넘어 떨어진, 하지만 마치 작가가 지금의 상황을 알고라도 있는 듯 덧붙인 얘기들을 가슴 아프게 담았다. 어떤 행동을 해도 무슨 생각을 해도 계속 불편하고 가슴 한켠이 무지근했다. 나는 그다지 올바르지도 미덕이 많은 인간도 아니지만 그냥 같은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퍼졌다. 역사적 과오와 종교적 특수성이 마치 아주 객관적인 심판의 기준이라도 되는 듯 하필 이 시점에서 언급되는 것은 참으로 잔인하고 얄팍해 보인다. 죽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도 어머니들도 아버지들도. 인간의 입으로 심판 운운하는 작태가 역겹다.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의 1권을 읽는 동안 행복했었다. 작가 조지 엘리엇 특유의 위트와 재기는 물방앗간집 남매의 유년을 사실적이고 사랑스럽게 채색한다. 완벽하지 않은, 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가족의 과거는 언제나 유쾌하다. 아버지의 파산이후로 전개되는 2권은 바깥의 일들과 맞물려 허덕거리며 읽었다.  섬뜩한 오버랩. 책을 읽는 행위가 사는 일과 겹칠 때 삶은 더 가볍게도 무겁게도 들썩인다.

여주인공 매기가 아버지를 몰락에 이르게 한 사람의 곱사등이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구성은 의외로 신파적이지 않다. 그것은 수많은 나쁘고 추한 것들에서 좋은 것들을 항상 기대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그 진저리처지는 관성에 대한 통찰을 놓치지 않은 작가의 저력때문인 것 같다. 남다르게 지냈던 사촌의 연인과 위험한 사랑으로 미끄러지는 그 위험한 도발의 묘사의 결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예리하다.  그리고 마을을 덮친 홍수. 매기는 자신의 사랑 때문에 불화했던 오빠 톰과 함께 그 물에 쓸려간다. 매기는 끊임없이 자신을 심판하고 단죄하려 했던 세상을 향해 무기력한 저항과 기만적인 순응의 양단 사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자신을 그냥 놓아 버린다. 이런 허무하고 슬픈 결말.

에필로그에서 '자연의 상흔은 치유된다'는 구절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믿고 싶지만 큰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이백 년 가까운 세월을 질러 돌아온 재해는 인간이 무언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고 휘둘렀던 남용된 힘과 만나 엄청난 상흔을 남겼다. 이 상흔도 치유될 수 있을까? 아이가 되고 싶다. 걱정하는 것들이 다 기우라고 나만 믿으라고 어깨를 다독거려 줄 보호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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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간이라는 위대하고 보편적인 위안자_1759년에 쓴 어느 철학자의 상상
    from Value Investing 2011-03-16 09:51 
    중국이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251중국이란 대 제국이 그 무수한 주민과 함께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중국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았던 유럽의 어떤 인도주의자에게 이 가공할 만한 재앙의 보도가 전해졌을 때, 그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251∼252나의 상상으로는,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꿈꾸는섬 2011-03-1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의 상흔은 치유된다...라는 구절의 말을 믿어야할 것 같아요.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그저 놀라울뿐이에요.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눈물만 나더라구요.ㅜㅜ


blanca 2011-03-16 22:52   좋아요 0 | URL
상황이 수습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악화일로를 치닫는 것 같아 참 절망적이에요. 산다는 게 참 어려워요. 제발 더한 비극이 없기를 일본을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기원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3-1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심판하고 단죄하느라 얼마나 자기 자신을 후벼팠을까요?
자연의 상흔은 치유된다는 어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모든 있어야 할 게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랑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blanca 2011-03-16 22:53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 제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지 정말 여실히 깨달아요. 그냥 지루하고 평온한 일상, 이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왜 사람은 항상 까먹고 말까요?

비로그인 2011-03-16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런저런 망언들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치유될 것 같은데요^^

blanca 2011-03-16 22:54   좋아요 0 | URL
후와님, 댓글이 참 따뜻하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그러기를 바라요.

책가방 2011-03-1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향력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특히 더 말조심을 해야할 터인데... 안타깝더군요.


blanca 2011-03-16 22:56   좋아요 0 | URL
환멸이 드는 모습이지요. 오히려 더 모범 선례를 보여주어야 할 자리가 얼룩지는 것 같아 참 안타까워요.

oren 2011-03-1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의 글은 거의 언제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형언하기 어려운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같은 것들을 어루만지고 다독거리고 보듬어주는 따스한 손길 같은 것이 늘 느껴집니다.

저도 '일본 대지진'을 접하면서 떠올랐던 몇몇 생각들과 blanca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생각들 때문에 최근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 들었었는데, 그 책의 '일부 내용들'을 한 데 모아 '먼댓글'로 정리해 봤습니다. 아무튼 저한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1-03-16 22:57   좋아요 0 | URL
oren님 과찬을 진짜라고 착각해도 될까요?^^ 예, 먼 댓글 찬찬히 잘 읽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3-1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정말 아이가 되고 싶으세요? ^^
안전하다고 믿던 세상이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던,
진정으로 첫 충격이 오는 시기가 이르면 초등학생, 늦으면 중학생부터잖아요.
참 힘들었어요.........

저는 걸프전 발발 뉴스를 기억해요. 우리의 우방이라던, 선하다던 미국이 진짜 전쟁을 일으킬까 하면서
그럴 일 없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느날 속보로 뉴스에 나오더군요.
전쟁이란게 실존하는구나, 하고 굉장히 당황하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요. ㅠ

blanca 2011-03-16 22:58   좋아요 0 | URL
가끔은 엄마 뱃속으로도 들어가고 싶어져요^^;; 걸프전! 아, 저도 어렴풋하게 기억나요. 마고님, 오늘도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뉴스들이 계속 속보로 뜨네요. 현실이 더 악몽 같아요.

2011-03-16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6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11-03-1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조지 엘리엇보다 <소년중앙>이 더 반가울까요? ^^

blanca 2011-03-16 22:59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저 <소년중앙> 사달라고 어찌나 아부지를 많이 졸랐던지 몰라요. 매달 매달 사고 싶어 아주 가슴을 태웠던 기억이 나네요. 가끔 <보물섬>과 <어깨동무>도. 아, 다 그리워지네요.

반딧불이 2011-03-1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언을 일삼는 사람보다 블랑카님처럼 마음아파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에 위안은 가져봅니다.

blanca 2011-03-16 23:02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그냥 지금은 다 같이 마음 아파하고 함께 이겨나갔으면 좋겠는데 또 분란이 생기나 봐요. 방사능 문제, 과거사 문제들과 겹쳐져. 어떤 게 정답인지 자꾸 다투지 말고 지금은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다 기다려 주고 인정해 주고 지지해 줬으면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03-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엘리엇이 영국의 전원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은 참...잔잔하고 좋죠...

blanca 2011-03-16 23:03   좋아요 0 | URL
아! 노자님, 그래요. 저도 정말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노자님 혹시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읽으셨어요? 완역본이 없다면서요. 왜이리 관심 가는 작가들은 번역본이 없는 건지. 참 아쉬워요.

노이에자이트 2011-03-16 23:07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소설이죠.시중엔 없고 광주엔 도서관에 금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에 있어서 빌려봤습니다.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어요.금성 것이 완역본입니다.

blanca 2011-03-16 23:10   좋아요 0 | URL
아, 완역본이 있군요. 최근에 나온 것이 축약본이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도서관에 찾아 볼게요. 감사합니다., 꾸벅.
 

어제 저녁 가족이 다 잠들고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정말 숙제하듯이 다 읽고(몰입도도 긴장감도 없었다--;;) 아이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 오늘을 걱정했다. 

오늘은 고작 세 돌 넘은 아이(한국 나이로는 다섯 살이다)가 처음으로 유치원에 등원하는 날이었다. 기관을 안 다녀봤고 예민하고 소심한 스타일이라 어떤 반응이 올지 심히 걱정되었다.  

운동장 대자보. 나의 손을 잡은 만삭의 엄마. 교실 안 육십삼 명의 아이들. 게다가 오전 오후 이부제 수업. 나의 기관 적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뒷자리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 달라고 뒤돌아 본 나에게 들입다 달려와 따귀를 때린 중년의 담임 선생님. 난 고작 만 여섯 살을 넘은 나이 그렇게 따귀를 맞으며 학교 생활을 열었다. 매일 혼자서 걸핏하면 울었던 것 같다. 너무나 커다란 운동장 뒤켠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오후 수업을 들어가며 나는 실내화 가방을 그만 벤치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또 혼자 울기 시작했다. 내가 우는 걸 알아 채고 걱정해 준 건 입성이 불결하다고 툭하면 맞고 다녔던 짝꿍 하나였다. 왜 우니? 나 벤치에 실내화 가방...엉엉. 그 남자애는 대열에서 갑자기 이탈하여 머나먼 운동장 뒤켠으로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고 나서야 그 남자애는 빨간 우주표 실내화 가방을 달랑거리며 나를 안심시켰다.  

갈 때는 잘 간다고 따라나섰다. 어찌나 체구가 작은지 원복을 입히니 가련하다. 세탁소 아저씨에게 자켓 좀 줄여 달라며 들고 가서 아이 착용컷을 보여주니 슬퍼하며 웃으셨다. 이걸, 이걸, 대체... 아저씨는 안타까워서 죽으려고 하셨다. 그리고 일 주일을 연구하시더니 이 방법밖에 없겠다며 또 미안해하시며 어깨 봉이 산처럼 솟아 있어 입고 있으면 목 생략하고 바로 얼굴이 나오는 듯이 보이는 자켓을 내미셨다. 

아아. 기대 이상이었다. 삼십 분을 설득하고 어르고 달래도 흐느끼며 엄마와 함께 있겠다는 아이. 엄마가 오래도록 남아 있으니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엄마, 보고싶다"하며 약한 모습을 보며 독한 마음을 먹고 대성통곡을 뒤로 하고 달려나왔다.

사 년 만에 영화도 보고 근 십 사 년 만의 대낮의 자유를 누려 보려고 했으나, 계속 초조하고 나를 찾는 전화가 올 것 같아 전화기를 부여잡고 근방을 배회했다. 솔직히 애 낳으러 병원 갈 때보다 더 떨렸다. <블랙 스완>을 보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지고 입맛도 없어 점심도 걸르고 싶어졌다. 왜 황금돼지해에 12월생을 낳았을까, 하며 또 자학하다 시계를 보다 <킹즈 스피치>를 보다 말다 또 떨다 말다 또 시계를 보다 그렇게 시간아, 제발 가다오, 하며 한시 사십분이 되자 뛰어 나갔다.  

반전이 있다. 유치원 정문 틈으로 살며시 보니 까르르 웃으며 천방지축으로 뛰어 나오는 아이가 내 아이였다. 집에 안 온다는 걸 억지로 끌고 왔다. 어떤 할머니가 아이의 원복 입은 모습을 보니 또 의아해 하시며 "얜 아기네." 이러신다.--;;  하지만 하루가 즐거웠다고 내일 아침 등원이 쉬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떨린다. 안 울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을 했는지. 안 울면 주어지는 뇌물들을 얼마나 많이 땡겼는지.  시집은 대체 어떻게 보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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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3-07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모녀여전인가요?
하지만 울고불고 시작한 유치원 생활도 금세 좋아하게 될거에요.
유치원샘들은 아이 맘을 사로잡는데 선수거든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

시집은 어떻게 보내지?
보내지 말고 끼고 살까요? ^^

blanca 2011-03-08 20:1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오늘도 울었어요. 참--;; 유치원 원장님과 샘이 고생이네요. 삼월달이 어여 빨랑 가서 웃으며 등원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2011-03-07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가방 2011-03-0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아들 군대 보낼 때보다 딸 시집 보낼때가 더 아프더라고...
어울리지않는 짧은 머리에, 무리에 섞여 끌려가듯 사라지는 아들 뒷모습도 아팠지만
곱게 한복 차려입고 새신랑 곁에서 행복에 겨운 얼굴로 멀어지는 딸의 뒷모습은 쓰라리더라고..
군대 간 아들은 제대하면 다시 당신품으로 돌아오지만
시집 간 딸은 영영 남의 식구 되는 듯하여 정말 많이 아팠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신혼여행 후 친정에서 시댁갈 때.. 차가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눈물이 나서 정말 많이 울었답니다.
다시 못 올 길도 아닌데.. 그냥 기분이 그렇더라구요.

휴~~ 전 딸이 둘이나 되는데 어떻게 시집을 보내죠 정말...

blanca 2011-03-08 20:16   좋아요 0 | URL
책가방님이 공주님이 두 명이나 있군요. 저희 엄마가 왜 울었는지 이제 알겠더라구요. 고작 유치원 보내놓고 밥맛이 돌 같다니까요. 자식 낳으면 기쁠 일도 많지만 가슴 아플 일도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1-03-08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걱정스러워요.
님은 딸을 어떻게 시집 보내실거며, 전 아들을 어떻게 장가 보낼까요?
천년만년 끼고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blanca 2011-03-08 20:1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참 왕자님이 두 명이나 있죠! 나중에 제대로 잘 키워서 행복한 가정 이루는 것까지 보면 마음으로 잘 독립시켜야 할 텐데 그게 참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3-0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주일 정도 안절부절 못 하고 기다리면 이제 안심이 될거예요.
분홍공주님이 적응 잘하네요? 즐거웠나보다.. 아유, 그다지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우리 코알라보다 훨씬 낫네. ^^

그런데 블랑카님, 학교 가서 진짜 따귀 맞았어요? 진짜?
나 그 글귀 읽으면서 맘이 다 철렁하던데요..

오늘은 분홍공주님 잘 가셨나? 화이팅!

blanca 2011-03-08 20:18   좋아요 0 | URL
아녀요. 마고님, 오늘도 역시나--;; 게다가 지금 아프기까지 합니다. 지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나 봐요. 오늘 미용실 갔다가 시간이 촉박해 얼마나 전속력으로 뛰었던지 온몸이 쑤셔요.

2011-03-08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3-0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남자들 술자리에 끼어서 주워들은 이야기 하나.
지난 주에 큰 애 초등학교 입학식에 다녀온 와이프가 전하길, 하필 그 학교에서 제일 '나쁜' 선생님이 담임으로 걸렸는데 입학식에서, 학부형들 다 있는 그 자리에서, 아이들한테 시끄럽다고 소리치고 욕하고 화내서 급기야 반 애들이 다 울어버렸다, 라고 해서, "뚜껑이 확 열려뿐기라. 이사 갈 각오하고 교장선생님 찾아가서 따질거라예! 걸리기만 걸려라 하고 베르고있다 아입니꺼!"
이 대목에서 저는 '역시 남자들은 권력지향이군. 문제는 담임선생님인데 당사자는 냅두고 교장선생님부터 찾는거 봐.' 라는 생각(만, 말로는 안하고 생각만..)을 했는데 다른 네 명의 남자들은 각자 '해결 방법'을 제시하느라 여념이 없는 가운데 분위기는 무르익고 소주는 끊임없이 '한 병 더' 행진을 이어갔더랍니다. ^ ^

blanca 2011-03-08 20:22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ㅋㅋ 그래도 그런 얘기가 든든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네요. 저는 왜 엄마한테 따귀 맞은 걸 얘기 안했을까요?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앙금이 남나 봐요. 안그래도 요새 담임배정으로 초등학부모들이 신경들 많이 쓰시더라구요. 자녀분 초등입학 축하드려요^^

비로그인 2011-03-0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가 이제 어린이집으로 등원합니다. 입학식도 갔죠. 준비물들을 사서(또는 훔쳐서!) 네임펜으로 이름을 쓰고, 반명함판 사진을 뽑습니다. 너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구나. 나는 뒤에서 응원한다. 앞에서 나아가는 것은 네 몫이다. 하고, 엄마 치고는 차가운 편지를 써서 추억상자 안에 넣어둘 참이었습니다.

아차차 정작 쓰려고 했던 한 마디-블랑카 님의 눈길은 정말 엄마 같아요.(물론 내가 가짜 엄마는 아닙니다만), 역시 사람마다 감상과 대응과 느낌이 다른 법. 그래서 글이 참 좋습니다.

blanca 2011-03-08 20:23   좋아요 0 | URL
바다가 몇 개월이나 됐을까요? 삼십 개우러 정도인지. 네임펜! 안그래도 저도 이름 쓴다고 남편보고 가지고 오라고 했었는데. 저는 별로 좋은 엄마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더 찔려서 그러는가 봐요. 바다의 어린이집 등원기도 기대됩니다. 잘 하고 있죠?

2011-03-08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1-03-08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시집 보낼려면 아직도 먼것 같은데요^^

blanca 2011-03-08 20:2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ㅋㅋㅋ 제가 완전 오버한 거죠? 딸아이가 컸을 때 이 글 보여주면 완전 비웃을 것 같긴 해요^^;;

노이에자이트 2011-03-0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이 시집 안 가고 할머니로 늙는 것에 비하면 시집 보내는 서러움 쯤은 감수하셔야죠.

blanca 2011-03-09 22:45   좋아요 0 | URL
노자님 그런가요?^^;; 그래야 겠죠?

후애(厚愛) 2011-03-1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아직 어린데 벌써 시집 보낼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ㅎㅎ
잘 지내시죠? 즐거운 주말 되세요~ ^^

blanca 2011-03-13 22:32   좋아요 0 | URL
후애님,반가워요. 그러게요. 제가 괜히 혼자 오버하고 있어요^^;;

꿈꾸는섬 2011-03-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 보낼때의 마음이에요. 현수는 오빠 덕에 워낙 잘 적응해주어서 걱정 없네요.
힘내세요. 곧 괜찮아질거에요.^^

blanca 2011-03-15 22:09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이제 저희 딸도 신 나게 다니게 되었어요^^ 괜시리 이틀 아주 대성통곡을 해주셔서 맘이 참 안 좋았거든요. 형제들 같이 다니는 아이들은 너무나 즐겁게들 잘 다니더라구요. 보면서 또 부러워하고^^;; 그랬어요. 현수도 참 대견하네요.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별거 아닌 일도 밤에 혼자서 이것저것 주워섬기다 보면 절로 우울해진다. 어느 해. 그날 저녁 나는 또 기다리는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에 무척 실망하고 최악의 상황도 상상해 보고 그랬더랬다. 그리고 매일 다니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빈속에 믹스커피를 마시고 직원들을 기다렸다. 하나 둘, 출근하는 직원들과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일하는 척 괜히 오버해 가며 잉크토너도 갈고 서고에서 서류철도 하나씩 꺼내고 슬쩍슬쩍 인터넷 검색도 하며 전화에 대고는 최고로 아름다운 척, 친절한 척 하는 목소리 연기도 열심히 하며, 여느 날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똑같은 하루 속에 퐁당 빠졌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어제의 그 고민이 태양이 풀잎 위의 이슬을 삼키듯 저절로 스러져 버리는 것이다. 시간은 멈추고 눈앞의 기한이 더 크게 느껴지고 매일매일 똑같은 농담과 한탄을 나누는 직원들은 언제까지나 내 옆에서 그대로 그 나이로 정지해 줄 것만 같았다. 내가 내 삶에서 한번씩 거창한 것들을 추구하고 기다리는 일들이 마치 전생의 꿈만 같게 느껴졌다. 일이 있어 다행이다, 라는 아주 드문 안도감을 느꼈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가 이런저런 사건들과 난잡하게 뒤섞이도록 해주는 것에, 파리로 엔진오일을 팔러 가는 동안 우리 자신의 죽음과 우리의 사업의 몰락을 아름다울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에, 그것을 단순한 지적 명제로 여기게 해주는 것에 감사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근시안적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존재의 순수한 에너지가 들어 있다.

 
   

 

이거였구나! 싶은 통찰들. 현대에서 '일'은 마치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처럼 아주 대단한 의미와 가치를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떠받들여 진다. 소개팅에서 제일 먼저 거론되는 '그'나 '그녀'를 소개하는 문구는 직업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직업에 맞추어 보지도 않은 그들의 인상, 성격, 기호를 상상한다. 그 사람이 수행하는 '일'안에서의 작업과 보수는 그 사람 자체로 환원되어 버린다. 일에 매달려서 새털같은 날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먹고 일에 근거해서 상대방을 판단하는 일은 안 그러는 것보다 쉽고 덜 불안하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회의실에 저소득층 어머니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심리적 갈망을 새로운 제품의 조직원리로 통합하겠다고 덤비는 비스킷 공장의 디자인 책임자, 위성발사를 위해 일하는 우주센터 직원들, 5년 전 여자친구의 죽음 후 종일토록 떡갈나무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그리는 화가, 송전선을 따라 여행하는 송전엔지니어, 감사 업무에 불멸을 위한 기회는 없다는 사실을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회계사들, 상업화의 가능성은 요원한데도 자신들의 아이디어에 어마어마한 환상과 꿈을 둘러친 빈곤한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일'이 그 자체로 심원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존재를 유지해 나가는 동력과 삶의 기만들을 망각할 수 있다는 그 수단적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냉소 같기도 하고 비아냥거림 같기도 한 내용이 알랭 드 보통의 목소리를 빌려오면 섬세하고 진지한 고백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이대로도 좋다는 것. 무언가 더한 의미와 가치 추구를 위한 명분을 구태여 찾아 헤맬 필요가 있을까? 라고 진지하게 회의감을 드러내는 저자의 모습은 안도감을 준다. 코 앞의 일들에 코를 박고 있는 것은 삶에 있어 아주 유용한 일이다. 그런 것들을 다 비워내 버리고 진지하게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쏘아 대기 시작하면 자멸이다. 존재의 동력은 그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가끔씩 빵빵하게 채워져 있을 때 터지지 않게 바람을 빼주는 역할 정도가 삶에 대해 존재에 대하여 던지는 '왜'라는 질문일까. 이 책은 그러니까 다양한 직업의 초상화라기 보다는 (작가의 의도는 이것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시선을 멀리 떨구지 않고 바로 코 앞에 던질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의 그 편협한 구획 나누기의 미덕을 강조하면서 그 미덕의 한계를 지적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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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3-04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같은 글귀인데, 저랑 정반대로 읽으셨네요.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책들 중에 '불안'과도 좀 비슷해요.

blanca 2011-03-04 23:24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리뷰를 쓰면서도. '불안'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고 읽는 중간의 감상과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이 차이가 나서 저도 놀랐어요. 제가 사실 제대로 보통의 저의를 이해했는지는 확신이 없답니다.

하이드 2011-03-10 09:10   좋아요 0 | URL
보통의 저의도 있지만, 독자의 저의도 있는거니깐요. 그건 독서하는 각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독서하는 순간순간마다 달라지는 것. 정답이야 보통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 그래서 책 읽고, 같이 이야기하는게 재미나요.

마녀고양이 2011-03-0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처음 다섯줄을 읽으며 내가 쓴 줄 알았잖아요(물론 문체야 블랑카님이 훨 멋지지지만)...
나랑 왜 그리 똑같아! 자기랑 나랑 진짜 유사한 점들이 있어서 한번씩 깜짝 놀란다니까요. ^^

그러게요, 쓸데없는 일인 듯 싶어도 코 앞에 할 일들은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거 같아요.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은 실존적 고민 뿐이라 하면, 그걸 내내 생각하다가 어찌 살겠어요.
그래도 나 이번 학기에 <실존과 심리 치료> 듣는데.. 으아, 이거 흥미로와요.
대학원도 그래서 원래 목표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틀어뜸, 올 연말에 합격해야 갈 수나 있지만 말이죠. ㅎㅎ

blanca 2011-03-04 23:2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원래 목표와 다른 곳이라니 무척 궁금해지는데요. 상담 분야인 것은 맞는지도 궁금하구요. 대학원 가시기로 하셨군요. 합격이야 당근 따논 당상일 것 같은데요. 시간이 흘러서 자꾸 자꾸 앞으로 전진하시는 모습이 부럽기만 합니다.

2011-03-05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4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4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3-0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소모된다는 기분을 느낄 때 마다 자주 펼쳐드는 책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 `오전 **시 미팅' 이런 메모를 하면서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잊으니까요. 찰나의 가장 유한한 고민을 통해 무한성을 잠시 잊습니다. 이런 말이 괴이하게 들릴 정도로 내가 소모되는 일들을 통해서, 계속 살아있습니다.꼭 성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도, 굳이 자아실현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했더랬습니다.

blanca 2011-03-04 23:30   좋아요 0 | URL
쥬드님, 맞아요. 성찰하고 자아실현 찾다 보면 항상 현실은 모자라요. 그래서 자꾸 내일을 기약하다 보면 사정없이 늙어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코를 박는 것도 견디기 위해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