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덮어놓고 인정해 버리고 싶은 작가인데 단편과 중편에서는 매번 어그러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존경하는 할아버지의 봉인된 불륜을 목격한 기분.  네 편의 소설이 하나 같이 성적인 욕망과 분투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서머싯 몸의 말마따나 톨스토이는 스스로가 말한 메시지에 갇힌 것 같다. 젊은 시절 한때 방탕한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지만 궁극적으로 마치 욕망을 비우고 이성과 고결함만으로 그득찬 모습을 연기해야 했던 그 고단함을 예고하고 고백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조금쯤 저열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인받는 것인데 톨스토이에게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기준을 들이댔던 것 같다. 욕망을 악과 혼동하는 지경에까지 가는 모습은 안타깝기조차하다.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에서의 일면이 집중적으로 조명되다 만 것 같은 분량의 이야기들이 아쉬움을 남긴다. 전체를 알기 위해 그 사람과 내도록 함께 할 필요는 없지만 톨스토이는 조금 길게 함께 할 시간을 가져야만 더 좋아하게 될 유형의 사람인 것 같다. 완전함을 지향하며 가진 것들을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겸손함을 단 몇 시간만의 자기비하적인 소개로 뭉개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다.

일본에 가야 할 가족이 있어 일본 원전사태에 촉각이 곤두선다. 현지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의 언론이 너무 과격하고 선정적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뉴스에 미국에서 일본측 얘기를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다며 후쿠시마 원전에 무인 정찰기를 띄웠다는 얘기를 들으니 심히 걱정이 된다. 위험등급도 체르노빌 사태 정도로 보는 외부시각이 있다 하니 경악스럽다. 여러가지 추측과 최악의 사태에 대한 얘기들도 나오는 모양인데 인체에 해가 갈 정도는 아니라는 보도만 믿고 평범한 일상 속 여러가지 일들에 어제처럼 오늘처럼 끄달려도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그냥 신경 끄고 살자니 아이들 눈만 보면 가슴 한켠이 욱신거린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난지 25년이 지났지만 그 지역에서는 여전히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고 방사성 폐기물들이 방치된 채 버려져 있다고 한다. 원전에 대한 논란이 일면 항상 듣는 얘기가 있다. 대안이 있느냐, 너는 전기 쓰지 마라.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대체 에너지 개발에 드는 그 노력과 이미 틀어버린 수돗물을 잠그는 수고가 싫고 그 수돗물로 은근히 할 수 있는 다른 일에 대한 유혹과 관련된 얘기는 아닐까.  

 체르노빌 관련된 이야기들을 검색하다 이 책을 발견했다. <제1권력>의 저자인 히로세 다카시의 소설이다. 논픽션을 주로 다룬 저자가 어떤 식으로 체르노빌의 무고한 희생양이 된 아이들 얘기를 풀어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읽고 나서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원전을 반대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사성 폐기물들을 후손들에게 떠넘기는 그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행태에 대한 분노와  방사능 누출에 있어 가장 큰 피해를 즉각적으로 보게 되는 어린 몸들에 대한 미안함과 닿아 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미약하나마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믿고 동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온라인에서 벌어진 원전 관련 논란에서 그렇게 원전에 거부감이 들면 지금 컴퓨터부터 끄라는 얘기를 들으니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래, 내가 누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온 그 진원지를 부정해 가며 핏대를 세우는 것도 모순이구나. 방방 불을 미친듯이 끄고 다닌다. 전기세부터 일단 줄일 수 있는 데까지 한번 줄여볼까 생각중이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중적이다. 누릴 것 다 누리면서 내가 마시는 공기, 물, 먹는 음식까지 신선하고 오염되지 않기를 바랐던 나도 톨스토이만큼 이중적이다. 최대한 그 간극을 줄여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죽기 전까지는 조금이나마 닿아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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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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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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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21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trotzdem)'를 온전히 배제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사고는 멈추지 않을까요. 늘 우리는,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건너편을 봐야겠다, 고 말하는 혹은 말해야 하는 존재이니까요....
좋은 글을 읽어서 저로서는 만족스러운데, 가족 중에 일본에 가야 할 분이 계시다니 블랑카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군요...

blanca 2011-03-21 21:13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이 말 너무 좋은데요. 그렇죠. 죽을 때까지 인간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계속 싸워 나가고 욕하기도 하고 하면서 불편하게 살아야 사는 거겠죠. 예. 마음 한 켠이 참 무겁네요.

cyrus 2011-03-2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일본 대참사 때문에 발생한 방사능 때문에 언론들이 설레발치고 있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어제는 요즘 우리나라도 들어오고 있는 황사 바람에 방사능 물질이 들어온다는 소식도 우연히 본 적도 있었는데,,
정부가 확실히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되는데 말이죠,, 구제역처럼 늑장 대응하는 식이 없기를 바랄 뿐이네요.

그리고 지진 발생하고나서 처음에는 일본 시민들은 안정된 질서 의식을 지켰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되니 조금씩 이기적인 모습이 드러나더군요. 블랑카님 말씀대로 인간은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에
따라서 이중적으로 쉽게 변하는거 같아요.

blanca 2011-03-21 21:15   좋아요 0 | URL
cyrus님 생존의지가 참 이기적이기도 하고 때로 이타적으로 발현되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언론도 저는 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건지 영 판단이 안 서네요. 어쨌든 지도자층의 그 심오한 심중이야 알 수 없고 항상 그들의 입으로 말해진 가공된 사실을 진실인 양 받아들이고 살다 죽는 게 저를 포함한 다수의 대중이라는 게 참 서글픕니다.

2011-03-21 1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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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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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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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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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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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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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3-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나의 반성을 부르는 페이퍼에요.
구드룬 파우제방의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에는 핵 폭발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고 남겨진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묘사되었어요. '천벌 받을 어른들'이라고 휘갈겨 쓴 아이의 글이 모든 걸 말해주기도 하고요.ㅠ

blanca 2011-03-21 21:1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안그래도 이런 책 추천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장 장바구니에 담을게요. 감사합니다. 오늘부로 읽을 책이 똑 떨어져서 고민 중이었답니다.

2011-03-23 1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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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3 2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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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2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오락가락하는 일본의 원전소식을 들을 때마다 현재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쉬쉬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지요.

그나저나 정말로 일본에 가셔야 할 가족이 있으시다니 좀 안타깝습니다. 언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이죠..

blanca 2011-03-29 14:00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정말 빨리 해결되어야 제 맘이 좀 편해지지 않을런지. 하늘의 흐림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고 말이예요. 바람결님은 잘 지내고 계시죠?

2011-03-29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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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0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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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1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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