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가족이 다 잠들고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정말 숙제하듯이 다 읽고(몰입도도 긴장감도 없었다--;;) 아이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 오늘을 걱정했다.
오늘은 고작 세 돌 넘은 아이(한국 나이로는 다섯 살이다)가 처음으로 유치원에 등원하는 날이었다. 기관을 안 다녀봤고 예민하고 소심한 스타일이라 어떤 반응이 올지 심히 걱정되었다.
운동장 대자보. 나의 손을 잡은 만삭의 엄마. 교실 안 육십삼 명의 아이들. 게다가 오전 오후 이부제 수업. 나의 기관 적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뒷자리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 달라고 뒤돌아 본 나에게 들입다 달려와 따귀를 때린 중년의 담임 선생님. 난 고작 만 여섯 살을 넘은 나이 그렇게 따귀를 맞으며 학교 생활을 열었다. 매일 혼자서 걸핏하면 울었던 것 같다. 너무나 커다란 운동장 뒤켠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오후 수업을 들어가며 나는 실내화 가방을 그만 벤치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또 혼자 울기 시작했다. 내가 우는 걸 알아 채고 걱정해 준 건 입성이 불결하다고 툭하면 맞고 다녔던 짝꿍 하나였다. 왜 우니? 나 벤치에 실내화 가방...엉엉. 그 남자애는 대열에서 갑자기 이탈하여 머나먼 운동장 뒤켠으로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고 나서야 그 남자애는 빨간 우주표 실내화 가방을 달랑거리며 나를 안심시켰다.
갈 때는 잘 간다고 따라나섰다. 어찌나 체구가 작은지 원복을 입히니 가련하다. 세탁소 아저씨에게 자켓 좀 줄여 달라며 들고 가서 아이 착용컷을 보여주니 슬퍼하며 웃으셨다. 이걸, 이걸, 대체... 아저씨는 안타까워서 죽으려고 하셨다. 그리고 일 주일을 연구하시더니 이 방법밖에 없겠다며 또 미안해하시며 어깨 봉이 산처럼 솟아 있어 입고 있으면 목 생략하고 바로 얼굴이 나오는 듯이 보이는 자켓을 내미셨다.
아아. 기대 이상이었다. 삼십 분을 설득하고 어르고 달래도 흐느끼며 엄마와 함께 있겠다는 아이. 엄마가 오래도록 남아 있으니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엄마, 보고싶다"하며 약한 모습을 보며 독한 마음을 먹고 대성통곡을 뒤로 하고 달려나왔다.
사 년 만에 영화도 보고 근 십 사 년 만의 대낮의 자유를 누려 보려고 했으나, 계속 초조하고 나를 찾는 전화가 올 것 같아 전화기를 부여잡고 근방을 배회했다. 솔직히 애 낳으러 병원 갈 때보다 더 떨렸다. <블랙 스완>을 보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지고 입맛도 없어 점심도 걸르고 싶어졌다. 왜 황금돼지해에 12월생을 낳았을까, 하며 또 자학하다 시계를 보다 <킹즈 스피치>를 보다 말다 또 떨다 말다 또 시계를 보다 그렇게 시간아, 제발 가다오, 하며 한시 사십분이 되자 뛰어 나갔다.
반전이 있다. 유치원 정문 틈으로 살며시 보니 까르르 웃으며 천방지축으로 뛰어 나오는 아이가 내 아이였다. 집에 안 온다는 걸 억지로 끌고 왔다. 어떤 할머니가 아이의 원복 입은 모습을 보니 또 의아해 하시며 "얜 아기네." 이러신다.--;; 하지만 하루가 즐거웠다고 내일 아침 등원이 쉬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떨린다. 안 울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을 했는지. 안 울면 주어지는 뇌물들을 얼마나 많이 땡겼는지. 시집은 대체 어떻게 보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