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힘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이끌리오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허덕이며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 문득 그 고개를 넘어 이미 내리막길을 타박타박 걷고 있는 사람의 얘기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허세 섞인 과거담도, 지겹게 이어지는 신세타령도, 자만 섞인 충고도 아닌, 자기 마음에서 비늘을 벗겨낸 속살을 그대로 온전히 보여주기를 기대할 때가 있다.  그 속살에는 차곡차곡 나이테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 나이테의 어딘가에쯤 나의 좌표를 찍어 보고 좀더 담대해지기를 꿈꿀 때가 있다. 그럴 때 너무 다행하게도 섬님의 글에 이 책이 있었다.

나는 캠벨만큼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원시 사회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린 하늘이라고 하는 거대한 지붕 밑으로 펼쳐진 광막한 들판으로 나가거나, 수목에 묻혀 있는 숲속의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을 맛보고는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신들의 이야기가 왜 바람 속에서, 천둥 속에서 울려나올 수 있는지, 어째서 산자락의 시내는 다 하느님의 육성을 내는지, 어째서 온세상이 다 성소일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빌 모이어스의 서문 중  

이 책에서의 대담 2년 뒤 죽음을 맞게 되는 '그'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었다.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의 메타포에 불과했다. 그 사이 사이 슬며시 '그'는 삶, 사랑, 결혼, 죽음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깨달음의 전언을 차분하게 들고 나온다.  

 

여기에 있는 나는 여든을 헤아립니다.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와 이루어진 대담. 틀린 부분이 보이는 데로 지적해주시면 앞으로 몇 차례라도 바로잡겠다고, 겸허한 자세로 시작하는 번역자 이윤기의 손끝에서 나와 더욱 찬연하다.  

 

신화 

이 책의 곳곳에서 신화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육신의 노래에서 부추김을 받은 상상력의 노래',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 그러나 가장 절창은 이것이다.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p.272 

날빛 아래 드러난 세계는 구태의연하지 않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세계 앞에서 우리는 부조리한 눈앞의 세계를 비로소 이해하고 쓰다듬게 된다. 실재를, 본질을 확신하고 스쳐라도 지나간 사람은 그 주변부에 있어도 안정감 있게 마음의 추를 내릴 수 있다. 신화의 문맥을 생각하면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눈물과도 화해할 수 있다는 조셉 캠벨의 얘기는 밤하늘의 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오디세우스의 눈물의 여정. 그 어딘가에 누구나 슬며시 걸터앉아 있을 것이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는 하나의 지도가 되어 그의 삶을 완성하지 않았던가. 

 

삶 

본질적으로, 그리고 속성상, 인생은 죽이고 먹음을 통해야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의 덩어리입니다. 
p.132 

" 인생은 슬픈 것이다", 이것은 석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세속성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p.133 

여든을 헤아리는 사람은 삶 자체를 고결하다고 기만하지 않는다. 무서운 신비의 덩어리. 슬픈 것. 내가 행하는 일들이 어떤 이들에게 해악을 주고 상처를 만들 수도 있음을 가능성이 아닌 하나의 숙명으로 인정하는 모습. 그러나 절망, 체념과 타협하지 않는 태도. 이토록 슬프고 무책임하고 잔인한 삶이지만 그래도 그 삶 속 순간 순간을 온전하게 향유하고 절절하게 살아나가기를 조언하는 신화학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싶어졌다. 슬프디 슬픈 삶이 허무하지 않다고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정직하게 희망적으로 얘기해 주는 노인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막다른 지점에 가서 진실과 희망은 흔히 양립하기 힘들다고 여겼었다. 이 위대한 노인은 인생은 이대로도 굉장하다고 찬탄한다. 참혹함이 역설적으로 삶의 무서운 신비라고 덧붙이며. 그리고 뒤이어 죽음의 이야기. 죽음조차 그의 앞에서는 삶의 위대함을 손상시키지 못한다. 

 

죽음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죽음으로,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법입니다.
p.278 

 

사람들은 죽음의 문을 한사코 거부해요. 그러나 육체는 의식의 수레와 같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식과 동일시하게 되면, 우리는 그 의식의 수레인 육신이 낡은 자동차처럼 부서져가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범퍼가 내려앉고, 다음에는 타이어...... 그런 식으로 하나 하나씩 내려앉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예측이 가능해요. 이렇게 하나씩 무너져가다 보면 이윽고 의식이 의식과 다시 만나는 대목이 옵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면 더 이상은 살아 있는 상황이 아니지요.
-p.143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조셉 캠벨의 얘기에 가슴이 저릿했다. 너무 일찍 경험해 버린 죽음은 아직도 트라우마다. 나는 가족의 죽음을, 친구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것과 화해해야 하는 일이 결국은 오고 만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니, 언젠가는 내가 죽어간다는 사실도 납득해야만 하고 더 이상 '내'가 주어일 수 없는 세상사 앞에서 무력하게 호흡이 잦아들 것임을 생각하면 벌써 숨이 턱턱 막힌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죽음과 맞닥뜨리러 가는 일과도 같다.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삶. 그의 전언을 뼛속까지 실감하고 싶다.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삶의 의미와 존재의 축까지 뒤흔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연민 

서러운 삶을 공유하는 우리들. 이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일만 남았다. 

우리 삶의 모든 행동은 그 결과에서도 한 쌍의 대극을 낳는다는 겁니다. 가장 바람직한 삶은 빛을 향하여, 남을 이해함으로써 남이 고통에 동참하는 자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화합의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배가 의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중세의 로망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p.359 

그가 말하는 결혼을 기억하고 싶다. 날마다 사랑하고 날마다 용서하는, 사랑과 용서의 현재 진행형 성사가 결혼이라는 얘기. 성스러운 연결에 자신을 던져 넣는 행위. 전혀 낭만적이지 않는 결혼관임에도 더없이 이 얘기가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들려오는 것은 이 소중한 관계에서조차 영혼의 성장을 얘기하는 그의 진지함에 결국 승복하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서는 만물이 메타포다. 모든 것에서 배우고 모든 것에서 눈물겨운 연결과 메시지를 발견하는 그의 얘기들을 이제 곧 환갑을 맞이하게 되는 나의 친정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제는 책을 읽고 싶어도 노안 때문에 읽을 수 없다고 슬퍼하고 지난 삶에 부쩍 회한을 느끼고 남은 삶이 너무 미약하고 슬플까봐 두려워하는 나의 엄마.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린 것이다."
-.p.227 

참, 그는 어머니가 영웅이라고 했다. 당신은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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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9-05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는 어머니만 영웅인거죠? 그럼 난 영웅인거네? ^^

그냥 신화나 읽고 옛이야기나 읽고 판타지나 읽고, 그리고 현실과 연관시키지 않을까봐요.
요즘 현실을 바라보겠다고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읽어대니 머리가 아파요. 혼란스럽구요.
사람 심리, 관계에 대한 책들이나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저 요즘 생각 너무 많이 하는거 같아요, 음, 15년 동안 안 한거 몰아서 다 하나봐요. ㅠㅠ

blanca 2011-09-06 11:25   좋아요 0 | URL
마고님도 영웅이시죠. 언제 안 그랬겠냐마는 최근들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거의 소설 수준인 것 같아요. 서사가 어찌나 다이나믹한지. 내년은 더할 것 같아요. 그래도 자꾸 고민하고 생각하고 동참하고 그러는 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힘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 하늘 보셨어요? 정말 너무 이뻐요. 마고님도 하늘 보시고 기분이 좋아지셨으면 좋겠어요.

잘잘라 2011-09-0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읽고 싶은 책을 만났어요.
고맙습니다. blanca님^^

blanca 2011-09-06 11:26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저도 섬님 서재에서 이 책을 만났지요. 다 읽었는데도 책장에 꽂지 못하고 책상 위에 두었답니다. 정말 뭉클하고 감동적인 책이었답니다. 메리포핀스님에게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2011-09-05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6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데이지 2011-09-0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이 학교 개교 기념일이라서 모처럼 친구엄마들이랑 신나게 놀이공원가서 전세내고 놀았어요~~
평일 놀이공원...그 맛 짜릿하던데요~~ㅋㅋ
피곤하지만 blanca님 글 읽고,,,마지막에 당신은 영웅이다라는 문장까지 읽으니...뭔가모를 뭉클함이 생겨요~~
blanca님의 글은 언제나 삶의 활력소~

blanca 2011-09-06 11:28   좋아요 0 | URL
우아, 블루데이지님 너무 재미있으셨겠어요! 날씨도 넘 좋고. 놀이기구도 타셨어요? 고마워요. 평일 놀이공원ㅋㅋㅋ 최고일 것 같아요. 저 모노레일 아기랑 탄 적 있는데 정말 넘 좋더라고요. 제가 막 신이 나서 ㅋㅋ

cyrus 2011-09-0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는 이윤기 씨의 글은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캠벨의 글은 방대한 세계의 신화를 다루는데다 이윤기 씨의 글보다는 더 전문적이다보니
잘 안 읽혀지더라고요. 블랑카님이 읽으신 대담집 정도는 다른 책보다도 조금 쉽게
읽을 수 있을거 같아요. ^^

blanca 2011-09-06 11:32   좋아요 0 | URL
아, cyrus님 대담집이라 술술 읽힌답니다. 다른 책은 안 읽히는군요. ^^;;

2011-09-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하는 건 모두에게 권하지만, 의미있게 읽어주는 건 일부예요. 서재 생활 중 가장 보람있는 게 이런 거 아닐지.ㅎㅎ 블랑카님의 리뷰는 좀 있다 읽어 보겠어요. 천천히 읽어보려구요. (지금은 시간이 부족해서요.) 여튼 기쁩니다. 좋다고, 아주 좋다고 해 주시니, 보람 만빵! /리뷰에 대한 답글은 좀 있다 하렵니다~~~

blanca 2011-09-07 12:49   좋아요 0 | URL
섬님...음, 이 책을 만나게 해 주셔서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2011-09-09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제가 좋아했던 구절들을 블란카 님도 인용하셨군요. 헤헤~ 이 책의 너무 많은 구절들이 '마음에 깊이 새길만한' 명언들이지요. 일일이 다 얘기하기엔 너무 길어서 그저 저 혼자 읽고 또 읽을 구절들입니다!

그리고 '연민'으로 이 글이 맺어지는 것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자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소개한 친구가 저에게 그랬지요. 영웅은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켐벨은 결혼에 대해 '결혼한 상대와 만나는 일이 자기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지 않다면, 그는 결혼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결혼을 우습게 아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읽으면 정말 콧웃음치겠군, 아, 근데 나는 이 얘기가 참 맘에 들어!" 했어요. -결혼을 한다면, 그런 결혼이고 싶어요.^^

blanca 2011-09-10 22:24   좋아요 0 | URL
섬님, 정말 너무 좋은 구절들이 많아서 다 기억해 두고 싶어요. 일단 줄을 그어놓고 메모만 해 놓았지만 역시나 다 잊어버리고 다 자질구레한 일들에 치이고 연연하며 살게 될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아, 섬님 앞에 결혼을 정말 존귀하게 여기는 그런 분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럴 거예요^^
 

알라디너분의 홍릉수목원 관련 페이퍼를 보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일요일 아이와 길을 나섰다.
집 처에 바로 고가도로가 지나고 있어 공기가 여간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환기를 한번 시키면
방바닥에 새까만 먼지가 가라앉는다.  숨쉬는 게 때로 꺼림칙하다.   

 

 

녹음. 구태여 피톤치드라는 거창한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은 때로 흙을 밟고 녹음 속에서 호흡을 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더웠다. 정수리에 내려앉는 햇발이 아직은 날카로웠다.
아이는 화장실에 가자고 보챈다. 

화장실은 강렬한 햇빛을 맞으며 작은 둔덕 하나를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고
자연발효식 재래식 변기였다. 

아이는 기겁을 한다.
솔직히 나도 적나라한 구멍을 보고 멈칫하긴 했다.
희한하게 주장대로 냄새가 하나도 안 나긴 했다.
참아 보겠다,고 해서 데리고 내려와 보니 또 화장실에 올라가 보겠단다. 

시범을 보여주었는데도 ㅋㅋ
역시나 무섭다고 싫단다.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참지 못하고 구시렁구시렁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시작했다. 

엄마는 실망했다.
새로운 것들을 그런 식으로 두려워하면 세상 사는 거 재미었다,는 둥.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며. 그건 진짜 아이를 위한 훈계가 아니라
더운 날씨에 부려보는 치사한 신경질이었다. 새로운 것들을 두려워하며 재미없게 사는 건
정작 나면서. 조그만 꼬맹이는 입가를 실룩이며 울음을 참는다.
낯선 재래식 화장실에서 쉬 못했다고 야단치는 엄마 앞에서.

예쁜 싱그러운 연인. 팔랑거리는 꽃무늬 원피스에 짧은 커트머리의 아가씨는 
배시시 웃으며 연인과의 사진촬영을 부탁했다.
두 장을 각기 다른 구도로 찍어주며 한숨이 나왔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요즘은 과거가 마치 전생 같다. 아니면 거짓말 같은 이야기.

그리고 우사인 볼트
나는 그 청년이 좋다.
장난스럽고 좀 우악스럽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 청년 앞에서는 세상이 쉬워 보인다.
자신을 찾으려면 자메이카의 나이트 클럽을 찾으라던 너스레도 귀여웠다. 

그런데 그 모든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 것 같았던 우사인 볼트가 
부정출발로 실격 당했다. 출발선에서 뛰어 나오며 스스로도 바로 깨달은 듯
바로 윗옷을 벗어던지고 포효한다. 

음. 세상은 누구에게나 쉬운 게 아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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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2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세상은 쉬운게 아니예요. ㅠㅠ

blanca 2011-08-29 22:36   좋아요 0 | URL
아, 시국도 그렇네요--

페크pek0501 2011-08-2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몇 번 들어온 곳인데, 댓글은 처음 남겨요. 오늘은 순오기님의 방에서 뵙고 오게 됐어요.

제목이 맘에 들어 댓글 남깁니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쉬운 게 아닌거야.'

누구에게나 쉽지 않지요. 어젯밤 오세훈 시장은 잠을 푹 자지 못 했을 것이고,
오늘 시합이 있는 운동선수 역시 그랬을 것이고,
오늘 무슨 시험이 있는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고,
지금쯤 어느 장례식장에선 울음바다가 됐을 것이고,
화장터에서도 그랬을 것이고,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초등학생 저학년들도 자기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 것이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그럴 것이고...
부부싸움 또는 연인싸움을 한 사람들은 속이 좋지 않았을 것이고

다 그렇지요. 그래서 이렇게 불러 주고 싶군요. '가엾은 사람들이여!'라고. ㅋ

blanca 2011-08-29 22:3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예, 남들 문제보다 자신의 문제가 더 절실하고 크게 보일 뿐 다들 고만고만한 문제들로 고민하고 고통받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건 비슷할 것 같아요. 그런데 댓글이 마치 시 같아요^^

블루데이지 2011-08-29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사인 볼트 결승전보려고 tv틀었다가 실격되는 거 보고 주저 앉았네요^^
아~ 아까운 기회!!
인생이든 스포츠경기든 지나간 것에 후회하며 살지는 말아야할텐데...그 게 잘 안되요!!ㅋㅋ

blanca 2011-08-29 22:39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본인은 또 얼마나 허탈했을까요. 담대한 척 모션을 취해 봤지만 결국 우사인 볼트도 긴장하고 부담 느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기록갱신을 보고 싶었는데 참 아쉬워요.

pjy 2011-08-2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시간대에 따라서 변화무쌍하더라구요~ 타이밍은 중요한거죠^^;

blanca 2011-08-29 22:39   좋아요 0 | URL
아, 요새 날씨는 다시 한여름으로 가고 있더라고요. 타이밍을 완전 잘못 맞추었어요. 정말 푹푹 찌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11-08-2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아직 블랑카 님은 연인들을 보며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하고 한숨쉴 나이는 아닌데...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요...

blanca 2011-08-29 22:40   좋아요 0 | URL
노자님, 그럴 나이 맞아요 ㅋㅋㅋ 저보다 한 십 년은 어려 보이던걸요.

2011-08-29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9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1-08-29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어린 분홍공주 데리고 나들이 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토닥토닥^^
그래도 피톤치드는 좀 마신거죠?

blanca 2011-08-29 22:42   좋아요 0 | URL
너무 조금 마셨어요. 또 마시러 가야 하는데 자기는 거기 안 갈 거라고 오늘도 두 번이나 다짐받듯 얘기하네요--;; 화장실도 무섭고 벌도 많대요. 에혀. 피톤치드는 또 집 근처 영휘원에 할머니처럼 혼자 마시러 가야 겠습니다. ㅋㅋㅋ

2011-08-29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0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8-3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막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 수목원은 재래식 화장실인가 봅니다.
어릴적에 꽤 오래 재래식 화장실을 썼어도 지금 다시 그렇게 쓰라면 전 좀 .. 이상하고 막 그럴듯 싶습니다
또 급해서 들어가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설명해주신 다양한 장면 생각하며 혼자 웃어봅니다. 씨익하고욥!!

blanca 2011-08-30 22:55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초절정 적나라한 재래식이었어요. 저도 사실 처음 보고는 놀랐답니다. 그래놓고 꼬맹이보고 해 보라고 했으니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려없는 마음인가요. 이래저래 제 컨디션 안 좋다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 주지 못해 참 미안합니다.

2011-08-3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누구에게도 세상은 쉬운 게 아니라는 게, 못됐게도 위안이 되네요.

과거가 전생같다니... 실감나는 표현!
모든 과거는 그런가 봐요.
그곳에서, 세월에 휩쓸려 너무 멀리 떠내려온 느낌이에요. 과거에 비하면 이 현재가..

blanca 2011-09-01 12:2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걸로 위로 받아요, 섬님! 섬님, <신화의 힘> 정말 너무 좋아요. 정말 고마워요....이런 좋은 책을 만나게 해 주셔서...

yamoo 2011-08-3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사인 볼트가 좀 아깝습니다. 조금 늦게 출발해도...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일터인데...
뭐, 순간적인 실수였겠죠...
200미터에서는 충분히 기량 발휘를 하겠죠?^^

blanca 2011-09-01 12:23   좋아요 0 | URL
야무님, 저는 한번 더 기회를 줬음 하는데 그게 논란거리더라고요. 상습적인 부정 출발로 경쟁자들 집중력을 흩뜨려 놓는 경우가 있다면서요. 그래도 너무 가혹해요. 그런데 200미터는 언제 하는지 모르겠네요.

비로그인 2011-09-0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저도 제목이 와닿아서 이렇게 덧글 남겨요. 정말이지 한 순간 한 순간은 사는 게 더럽게 힘들다 싶을 때도 있어요. 사소한 사건 하나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 졸이기도 하고요. 그러다가도 또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마음이 금세 행복나라로 급변하고...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오늘은 거리를 걷는데 문득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무서운 거에요. 그래서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는데, 혼자 공원 가서 산책하니까 자연의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또 상쾌하더라구요. 진짜 인간 마음이 간사하죠? ㅎㅎ 아참 그런데 프로필 사진은 사강인가요?

ps. 육상 200m 결승 경기는 토요일 밤 9시 20분에 한답니다 :)

blanca 2011-09-02 22:42   좋아요 0 | URL
말없는수다쟁이님 반갑습니다.^^ 아, 예 저 맞아요 ㅋㅋㅋ 사강 맞아요. 한창 이쁘고 사랑스러울 때 모습이더라고요. 맞아요. 사소한 일 하나로. 기분이 나빠졌다가 좋아졌다가 해요. 특히나 인간 관계에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아. 완전 유용한 정보입니다. 정말 고마워요.

순오기 2011-09-0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세상은 쉽지 않지만, 꼬맹이에게 재래식 화장실의 공포만 하겠습니까?^^
더운 날에 고생하셨네요~ 원래 가을볕이 더 따갑습니다. 그래야 나락도 익고 가을 과실도 단맛이 들거든요.

blanca 2011-09-02 22:44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의 따가운 가을볕에 대한 이야기는 또다른 깨달음을 줍니다. 그럼 좀 잘 견디어 볼까요? 그죠. 여학생들도 무서워하는 곳인데. 지금도 거기는 절대 안 간다고 몇 번이나 그러네요. 너무 이쁜 수목원인데. 아쉬워요.--;;

소하아녜스 2011-09-04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우리 아이이야기 같아요^^

우리 아이는 결국 나무에 oooo했거든요..

ㅋ.ㅋ 새로운것을 쉽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다른 환경과 사회에서 커 버린걸요...

아마도 다음엔 용기를 낼 수 있을거예요.

그래도 한번 보기라도 했던 경험이니까요...

저도 어리적 시골에가면 너무 무서웠답니다.

blanca 2011-09-05 11:37   좋아요 0 | URL
혹시 소하아녜스님 세례명이세요? 그렇죠. 저는 커서도 재래식 변소에서 일 보라고 하면 망설였을 것 같은데 꼬맹이보고 새로운 것 운운하며 참,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입으로는 잘도 떠들면서 반대로 가고 있었어요. 소하아녜스님, 반갑습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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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안온하다. 자잘한 문제들이 출몰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한편 단조롭기도 하다.
저기는 위험하다. 어려운 과제들이 출몰한다. 그 과제들은 미처 통제하지 못하고 파멸할 수도 있을 만큼 도전적이고 위험하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더 쉽다.
그런데 인간들은 저기에 간다.  

무엇을 위해? 영웅심, 호기, 주목받고자 하는 욕구, 경제적 이익, 모험심?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설명할 수 없고 포착할 수 없는 그 여백을 응시하며
해발고도 8.848미터,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전진하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가지 말아야 할 타당한 이유들은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하는 건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행위다. 
현명한 분별에 대한 욕구의 승리.
-머리말 

살아서 남은 자의 증언이다. 저자 존 크라카우어는 이 증언이 무자비할 정도로 정직하기를 원했다. 평지의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희박한 산소량에 허덕이며 보고 들었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었기에 다른 생존자들과 접촉하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채집하기 위하여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1996년 5월 내가 무자비할 정도로 날것인 청춘에 허덕이고 있을 때 존 크라카우어는 잡지사의 의뢰로 로브 홀이라는 유명한 가이드가 인솔하는 등반대의 여덟 고객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에베레스트에 오르게 된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려는 그의 발걸음이 전적으로 타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소년시절 간직했던 미완의 꿈이기도 했다. 마흔일곱 살의 일본 여인, 댈러스 출신의 병리학자, 지천명을 넘긴 홍콩의 출판업자, 야근과 건설현장 인부 부업으로 등반비용을 마련한 우체국 직원, 브리즈번의 마취 전문의.  

1996년 봄의 에베레스트 산비탈에는 적지 않은 몽상가들이 모여 있었다. <중략>
 에베레스트는 항시 괴짜, 명성을 추구하는 사람, 구제불능의 로맨티스트, 비현실적인 사람들을 유혹해 왔으니까.
-p.135 

기나긴 행군과 적응 훈련 끝에 세계의 지붕을 밟은 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비극의 복선이었다. 참사는 하산 과정에서 벌어진다.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으로 조난당한 그들은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저자는 적절한 열정과 무모한 정상 정복열의 경계선이 아주 모호해져 버리고 그리하여 에베레스트 산비탈에는 시체들이 즐비하게 된다고 얘기한다. 적절함과 무모함. 배테랑 가이드 로브 홀과 스콧 피셔도 그 경계에서 발을 헛디뎌 목숨을 잃게 된다. 산소도 없이 8.748  미터 지점에서 계속 버티며 가족들의 호소에도 결국 그곳을 떠나지 않은 로브 홀. 그는 끊임없이 자기 팀원들의 안위를 묻고 의심하고 기다렸다. 맥락이 닿지 않는 강박적인 확인, 의심. 희박한 공기 속에서 거의 정신 착란을 일으킨 것마냥 자신의 역할을 챙기며 정작 자신은 방기했던 그의 최후가 애잔하다.  

에베레스트 등반도 대단히 상업화된 일면이 있다고 한다. 주변국에 허가를 받고 등반대에 들어가 등정을 하는 데에는 고가의 비용이 들고 그 등반대의 가이드, 셰르파 들에게는 경제적인 이득, 공명심에 대한 욕망이 체력, 능력이 안 되는 고객들을 무리하게 정상에 올려 놓으려는 역작용을 낳기도 한다. 에베레스트의 자연 경관을 해치는 각종 쓰레기 투척 문제도 있다고 한다. 존 크라카우어는 애초 이 부분에 대한 기사 의뢰를 받았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조난 사고를 당한 비극적인 등반대의 일원으로서 악전고투를 벌이며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특히 영리적인 목적으로 조직된 등반대가 조난당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즉각 정상 등반 계획을 연기하는 모습, 고행에 가까운 등반 과정을 묵묵히 감내하고 동료들을 챙기는 모습 등은 희박한 공기 속에서도 살아남고 마는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응시를 가능케 한다. 

도덕적인 교훈을 얻자는 것이 아니다. 등떠밀지 않았는데 파멸을 각오하고 덤비는 무모한 열정을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다. 영하 70도까지 떨어지는 체감 온도, 희박한 산소로 호흡 곤란을 일으키면서도 거대하고 냉혹한 자연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마지막 인간의 존엄. 실패한 영광의 전례를 보고 듣고도 또 오늘도 에레베스트를 오르고 있을 사람들.  

인간은 속절없는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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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yours 2011-08-2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를 듣고 구입해놓았는데 아직 읽지를 못했어요. 블랑카 님 리뷰 보니, 여름의 끝을 이 책으로 마무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blanca 2011-08-25 22:30   좋아요 0 | URL
자노아님, 지금 딱 어울리는 책이에요. 특별한 이유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입까지 하셨다니 이제 시작만 하시면 되겠네요^^

oren 2011-08-2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와 제목만 봐도 숨이 차오르고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blanca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1895년 낭가파르밧 원정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했던 머메리가 쓴 책 속의 구절들이 새삼 떠오릅니다.
* * *
"참된 등산가는 하나의 방랑자이다. 내가 말하는 방랑자는 일찌기 인류가 도달하지 않은 곳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 일찌기 인간의 손가락이 닿지 않은 바위를 붙잡거나, 대지가 혼돈에서 일어난 이래 안개와 눈사태에 그 음산한 그림자를 비쳐온 얼음으로 가득 찬 걸리를 깎아 올라가는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등산가는 새로운 등반을 시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마찬가지로 그 투쟁의 재미와 즐거움에 기쁨을 느낀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강력한 감정이다. 그것은 온 혈관에 욱신거리는 피를 흐르게 하여 모든 냉소의 자국을 파괴하고 비관적인 철학의 뿌리 그 자체를 강타한다."

"인생의 근심걱정은 금권주의 및 사회의 본질적 속악함과 함께 아득히 저 아래쪽에 남는다. 위쪽에서 우리는 맑은 공기와 날카로운 햇빛 속에서 신들과 함께 걷고, 인간은 서로를 알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안다."

-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Albert Frederick Mummery, 1855~1895)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中에서

blanca 2011-08-25 22:34   좋아요 0 | URL
아, 안 그래도 oren님이 언급하신 '비박'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정확히 알게 되었답니다. 지리산 등반과 겹쳐져서 oren님 생각도 났답니다. 머메리도 혹시 등반 과정에서 죽게 되었나요? 이 책에 유명한 산악인들의 얘기가 많이 인용되어 있는데 참 감동적이더라고요. 인생을 더 강렬하게 느끼고 절감하며 사는 것 같았어요. 죽음 앞에서도 더 담대하게 대처하고요. 인용해 주신 머메리의 얘기는 흡사 철학자의 말 같아요.

oren 2011-08-26 09:33   좋아요 0 | URL
머메리는 지독한 독서광이었고 <산업생리학>(1891)이라는 경제학 저서까지 출판한 지식인이었죠(존 메이나드 케인즈 명저『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도 머메리의 저서와 사상에 대해 꽤나 자세하고 길게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머메리는 19세기 말에는 아무도 넘보지 않았던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 낭가파르밧에 도전한 위대한 등반가였습니다. 그는 두번의 등정시도가 좌절된 이후 다른 루트를 찾아보기 위하여 친구들과 헤어져 능선 저편으로 사라졌고, 그것이 그가 지상에서 보인 마지막 모습이었답니다. 머메리는 그렇게 낭가파르밧 최초의 희생자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던 것이죠(낭가파르밧 초등은 1953년 7월3일 헤르만불(H. Buhl)에 의해 성공).

19세기의 반항아가 남긴 한 마디는 알피니즘의 개념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고, 알피니스트들은 그 누구도 머메리의 영향권으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없게 됩니다. "길이면 가지 말아라."

* * *

위험에는 다른 학업에서 발견되지 않는 교육과 정화(淨化)의 힘이 있으며, 사람이 자기가 '완전히 사치와 유약에 흐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다. 산은 이따금 일을 좀 지나치게 밀어부쳐서 교수대, 교수틀, 낙하 발판 등의 시설을 다 갖춘 사형 집행인조차 도저히 더 훌륭하기를 바랄 수 없는 절박한 사멸(死滅)의 환영(幻影)을 산의 신봉자들 앞에 펼쳐 보인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그라지는 저녁 노을이 절규하는 바람과 눈에 쫓겨 발걸음을 재촉하고 복수의 여신들이 능선을 따라 미친 듯이 대상을 사냥할 때, 절벽은 흔히 냉혹하고 절망적으로 보일는지 모르나 용감한 동료들과 불굴의 정신은 몰려드는 위난의 거미줄을 잘라 내고, "세월이 지나 옛 일을 회상하는 것도 즐겁노라"는 느낌 또한 언제나 있는 것이다.
- 머메리,『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中에서

2011-08-25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참 복잡한 존재예요. 구제불능의 이기심과 허영의 화신인가 하는 순간, 또 달리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이 책에 흥미가 가네요...

blanca 2011-08-25 22:35   좋아요 0 | URL
예, 섬님, 저는 특히 요새 인간이란 알다가도 모를 존재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그렇고요. 무어라 쉽게 단언할 수는 없는 것 같아서요. 제가 죽을 때까지 배워가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2011-08-25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5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5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5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5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5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8-26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누군가가 이 책에 대해 언급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나요.
그때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새 잊고 있었네요.
그런데 블랑카님의 글을 읽고 나니, 마치 저도 이 책을 읽은 듯 한 기분이 들어요! ^^


blanca 2011-08-26 21:30   좋아요 0 | URL
은희경님의 서재에도 있더라고요. 아주 독특하고도 인상적인 책이었답니다. 르포식인데 또 정작 저자가 그 사활을 건 체험의 중심에 있어서 단순히 관찰자도 아니고 생생하고 정직하게 묘사하고 싶었지만 각종 상황상 자신이 착각하고 실수로 서술한 부분도 고백하는 대목도 있어요.

마녀고양이 2011-08-26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절대 에베레스트 등정은 하지 않을랍니다...... ㅋㅋㅋㅋ

blanca 2011-08-26 21:30   좋아요 0 | URL
마고님 ㅋㅋㅋ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저한테 어마어마한 돈을 준다고 해도 차마 하지 못할 것 같답니다. ㅋㅋㅋ

블루데이지 2011-08-26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지에 사는 지금의 제 모습도 어쩔땐 참~ 봐주기가 힘든데...ㅋㅋ
고통을 자처하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blanca 2011-08-26 21:33   좋아요 0 | URL
이 책 앞에서 제 고민들이 무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백만장자 여성 등반자도 나오는데 거의 실신하다시피 하면서도 정상에 오르는 모습은 과연 인간이란 정말 다채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답니다. 파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매혹적이라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비로그인 2011-08-2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에베레스트 등반 관련해서 상업적인 면을 폭로하는 책 소개를 본 기억이 납니다.
인간의 허영을 부추켜 그곳에 이르게 하고, 그 곳에서 온갖 추악한 면들이 벌어지는.. 찾아보니 <에베레스트의 진실> 이네요.

누가 보는가에 따라 다른 장면들이 존재할거라 생각합니다. 극과 극의 책들이 나와도 에베레스트는 그저 조용히 거기에 있는 것이겠지요..?

blanca 2011-08-26 21:36   좋아요 0 | URL
저도 놀랐어요. 어떻게 에베레스트에까지 상업성이 침투했을까요? 목숨을 담보로 하는 모험이잖아요. 산소통 같은 쓰레기도 산에 마구 버려져 있는 게 조금씩 정화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책에서의 조난 사고도 두 유명 가이드의 경쟁심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다고 얘기되는 걸 보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동기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요.
 
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는 어른들이 앉아 저마다 지금 가장 자신에게 절실한 것들에 해답이나 위안을 줄 것 같은 책들에 고개를 박고 있는 곳으로 가서 냉큼 앉아 열심히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몇 번씩 주변을 둘러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나온지 3년이 지나면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것에 열중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마나 보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책 대신 핸드폰으로 의미없는 검색질을 하다 베스트셀러 수위에 있는 책을 한 권 뽑아 들고 건성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단 몇 분이라도 혼자 있고 싶었다. 누군가 차를 한잔 갖다 줬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찻잔에서 문득 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그를 만나 차 한 잔 앞에 놓고 얘기를 나누던 바로 그 날, 우리는 눈부시게 젊었다.
-p.22 

우. 리. 는. 눈부시게 젊. 었. 다. 

이 한 문장으로 이 책은 나를 사로잡았다. 플래쉬백의 휘장에 박아 넣기에 가장 찬란하고도 눈물겨운 문장. 그 누구의 삶인들 안 그랬겠는가. 더군다나 '우리'가 노무현과 문재인이었다면.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나는 여전히 힘들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던 날 노란풍선에 둘러싸여 활짝 웃던 모습과 젊은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울뚝불뚝 성을 내던 모습,  퇴임 후 봉화에 내려가 찍은 다큐에서 참 행복하다며 하회탈 같은 미소를 짓던 모습은 어이없는 마침표 속에 스러지고 말았다. 내가 힘들어서 울었고 그의 치열했던 삶의 허망한 종착점이 서러워서 아이를 업고 울었다. 때로 저돌적이고 때로 충동적으로 국민들 앞에 자신의 권위를 내려 놓으려 했던 그의 시도들이 언론의 조롱거리가 되고 차차 나도 역시 기대 만큼은 아니었다,며 그를 응원하기를 그만두었을 때. 그가 추구했던 가치들, 어떻게든 그 가치에 가 닿으려 분투했던 모습을 알지 못했고 때로 그 과정에서 불거졌던 각종 해프닝, 또는 세간에서 악의적으로 조작된 정황 들에 눈감았다.  나는 비겁하고 무지했다.

 

문재인의 고백은 눈부시게 젊었던 시절, 노변호사와의 첫만남에서 시작된 인권변호사 활동, 민주화 운동, 청와대 입성, 그리고 귀향, 슬픈 최후의 목격자로 석별하기까지 노무현과 함께 한 역정에 대한 것이었다.

문재인은 학생 시절 유신 반대 시위 전력으로 연수원 차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 임용이 못 되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좌절이 노무현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향하는 길목이 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부산에서 노변호사와 동업하게 되어 차츰 노동, 인권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의욕적이고 치열하게 소외된 이들을 위해 변론 현장을 누비고 그들의 권익을 지켜 주기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았던 두 젊은 변호사의 모습의 복기가 참 생생하고 아름다웠다.  

결국 두 변호사가 대통령과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나란히 청와대에 입성하게 되고 현실의 강고한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그럼에도 불고하고 끝내 놓지 않으려 했던 가치들, 대의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라크 파병, 한미 FTA에 대한 솔직한 입장, 정황 들에 대한 얘기도 인상깊다. 참모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 노대통령의 재신임 발표와 대연정 제안에 대한 아쉬운 심정에 대한 토로도 있다.  

힘이 모자라거나 시운이 안 돼면 패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더라도 우리의 가치를 부둥켜 안고 있어야 다음의 희망이 있는 법이다.
-p.366

지금도 당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성공한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다. 아마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모두 당신을 비난하고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너머의 대의를 응시하는 당신의 눈빛. 그것은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실패한 대통령, 실패한 정부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청와대를 떠났다. 진보진영으로부터 진보를 망친 장본인인 것처럼 비난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가 우리를 정당하게 평가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중략>
대통령은 모든 걸 혼자 안고 떠났다. 인간의 법정을 거부하고 역사의 법정을 선택했다.
-p.433 

한때 함께 그를 비난했던 진보 진영의 시사 주간지의 표지에서 그는 홀로 외롭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표지의 그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공범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유서의 첫 문구는 마지막에 추가로 입력된 것이라고 한다. 문재인은 그답다고 표현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자신이 쓴 유서를 손보고 찬찬히 문구를 수정하고 추가하는 모습. 문재인은 대통령이 마지막 얼마동안 유서를 머릿속에 담고 지낸 시간들을 떠올리면 견딜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유서는 아직도 청춘을 함께 했던 후배이자 친구의 수첩에 간직되어 있다.

남기고 간 숙제. 남은 자들의 부책감. 때로 실패한 것들, 미완의 것들, 반발을 일으키고 숙어져 버린 것들. 그런 것들이 그의 실패, 진보 진영의 실패로 뭉뚱그려져 그 가치와 지향마저 부정되는 현실이 서럽다. 정략적인 술수 속에서 희생되는 정작 중요하고 시급한 것들. '사람 사는 세상'은 분명 통치자 한 명이 근사하게 완성하여 내밀 수 있는 하나의 선물 같은 것이 아닐 거다. 모두의 염원, 역량의 에너지가 하나가 되어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 오는 그 날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을 때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지점. 그 때쯤이면 장구한 역사 속에서 숱한 실패와 좌절, 세상의 냉대를 맛보고 미완의 과제를 남기고 떠난 수많은 그들의 해원의 굿 한 마당을 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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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블랑카님. 노대통령님을 대통령으로 뽑을 때 저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는데, 어쨌거나 어리고 철없던 제 마음도 블랑카님과 꼭 같았었어요. 좋아하고, 응원하고, 실망하고, 의중을 알지 못하고, 돌아가신 걸 보며 울다가 중간에 배신한 것을 후회했죠. 봉하에 세 번이나 갔었는데 정토원에는 못 올라가서 가을이 오면 가자고 약속했어요. 책은 엄마가 먼저 읽기로 해서 반쯤 보고는 드렸거든요. 눈이 안 좋으신 엄마가 천천히 읽고 계셔서 나중에야 보겠지만 꼭 읽지 않아도 감동과 생생함이 전해지는 페이퍼예요. 실패와 좌절을 겁내지 않을래요. 그분처럼 대단하게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내려놓고 살고 싶어요.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blanca 2011-08-22 11:29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봉하에 세 번이나 가셨어요? 어머니가 이 책을 읽고 계시다니 참 반갑네요. 그 떤 색채를 떠나 그냥 이 책에서 그려지는 한 사람의 삶, 소망, 좌절이 너무 눈물나더라고요. 다 읽고 나니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아무 지향 없이 그냥 하루 하루 살아가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요. 아이리시스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예, 가을 냄새가 나네요. 아이리시스님도 힘찬 한 주 시작하세요!

stella.K 2011-08-2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읽어 볼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한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힘있는 사람이 대세인 나라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물론 당연하고 새삼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노 대통령 재임시 재신임을 물어야 했을 때
모든 걸 내려놓고 청와대에 갇힌채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시간들.
사람의 시간으로 별로 긴 시간은 아니었을텐데 그 분으로선 억겁의 시간이었겠죠.
얼마나 치욕의 시간이었을까요?
그래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나왔을 땐 정의는 역시 마지막에 승리한다고 외쳤던 그 함성을
끝내 봉인한채 세상에 대해 등을 돌렸으니...
인간의 법정을 거부하고 역사의 법정을 선택한 그분의 선택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그분의 죽음이 역사의 시간안에 속해있는 것이라면...

blanca 2011-08-22 22:2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며칠 전 지인이 스텔라님과 같은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우리나라는 힘있는 사람들의 나라라고. 힘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도 배려하고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평화롭겠지만 인간이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은가 봐요. 특히나 태어날 때부터 힘이 있었던 이들이 정권을 쥐락펴락하다 보면 아예 다른 사람들 처지는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하려 하지 않으니까요. 예, 저도 스텔라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어조가 담담해서 참 좋지 않아요?
그렇게 담백한 말투로 '우리는 참 젊었다' 라고 하니, 더욱 잎사귀에 빛나는 햇살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잊지 못 하는 것은, 그분이 잘 하셨든 못 하셨든 간에
그분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게 때문인 듯 합니다. 그분께 사심이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요.

blanca 2011-08-22 22:30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아, 맞아요. 담담한 말투! 그거였어요. 이 책의 매력이. 저도 결론적으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들이 아닌 그 분의 선의, 열정을 사람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2011-08-22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2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8-22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고 서러운 리뷰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그건 순전히 블랑카님의 공로일 거예요. 한 글자도 못 읽었는데 벌써 울컥이는 기분이에요.

blanca 2011-08-23 10:31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사실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우연히 읽게 된 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사실 회고록이라는 게 일종의 변명이나 자화자찬이 될 경우가 많은데 문재인님의 경우는 마고님 말씀처럼 담담하고 참 담백하고 솔직하게 가감없이 참여정부를 회고했더라고요. 솔직히 노대통령에 대한 아쉬운 점도 얘기하고요. 군데군데 실려 있는 사진들을 나중에는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안타깝고 슬펐답니다.

2011-08-2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3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8-2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신문에서 봤는데 이 책이 야당 정계 인사들도 읽고 있는 책이래요. 아무래도 야당 진영에서
가장 부각되고 있는 대선주자이다보니 전략적으로(?) 읽는 의도로 읽고 있는거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독서를 통해서 문재인 씨의 진정한 존재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


blanca 2011-08-23 10:3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문재인님이 우수한 참모 분위기를 많이 풍기셔서 과연 대선 주자로 적합한가, 또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가? 에 대한 약간의 의문이 들더라고요. 정치에 대한 피곤함이 행간에 많이 묻어 나서요. 어떤 행보를 갈 것인가 많이 궁금하고 기대도 됩니다.

꿈꾸는섬 2011-08-2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글 읽다보면 이 책도 읽고 싶단 생각이 간절해져요. 쌓인 책도 처분 못하면서 말이죠.ㅜㅜ

blanca 2011-08-23 22:11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가을 바람 선선해지면 한번 읽어 보세요. 추천드려요.

순오기 2011-08-24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내려온 큰딸이 오자마자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기에 함께 이야기했어요.
아직은 가슴이 울컥거리게 하는 사람....
세상의 휘둘림보다 어떤 결정이든 문재인 본인의 신중한 선택을 존중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blanca 2011-08-24 10:1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도 딸이 빨랑 커서 같이 책 읽고 얘기하고 그러고 싶어요. 아, 맞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결정이자 의중일 것 같습니다.
 
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서재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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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이런 식으로 쓰니까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다. 가족 이야기를 글로 써서 그 원고를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비참한 운명의 남자는 신으로부터 고향을 몰수당한다.
-p.127 

신으로부터 고향을 몰수당한 비참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내 성격을 창조하고 숙명을 규정 지은 이 고장들을 이야기하는 데 나는 결코 적임자가 아니었다고.   

 

<쓰가루> 

쓰. 가. 루. 

'패자의 문학'을 했던 다자이 오사무가 태어나 20년간 자란 곳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혼슈의 북단. 다자이 오사무는 한 서점의 의뢰로 쓰가루 반도를 여행하고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쓰가루>의 풍경, 역사, 추억을 펼쳐 놓는다. 옛친구들과 재회하고 군데군데 유년의 기억들을 들추어 내면서 서투르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가장 다자이 오사무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인간실격>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연약하고 투명한 속내를 들여다 보게 되면 그 속에서 묘한 공감의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루저이니까.  

나에게는 또 다른 전문 과목이 있다. 속인들은 그 과목을 사랑이라 부른다.
-p.35 

 

어른이라는 것은 외로운 것이다. 어른이란 배반당한 청년이다.
-p.43  

배반당한 청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만과 환각의 시절들을 끊임없이 회고하고 사랑한다. 그건 비극이기도 하고 희극이기도 하다. <쓰가루>의 절정은 결말이다. 어머니의 젖을 한 방울도 못 먹고 자란 그는 제2의 어머니와도 같았던 보모 다케를 만나는 것을 쓰가루의 마지막 여정으로 아껴둔다. 세 살에서 여덟 살. 어머니는 하나의 인간과 하나의 삶을 조각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마침내 비로소 자신의 성장 과정의 본질을 확인하게 된다. 재회는 너무나 담담하고 너무나 건조해서 외려 더 뭉클하다. 언어가 비껴 가는 지점. 작가와 독자는 손을 맞잡는다.  

세상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모든 자식들에게 이와 같은 달콤한 방심 상태의 휴식을 주는 것일까? <중략> 효도는 자연의 섭리이다. 윤리가 아니다.
-p.181 

격렬한 포옹도 눈물도 극도의 흥분도 없이 그저 잘 왔다! 그 한 마디. 다자이 오사무의 귀향의 가장 안온한 종착점이었다. 

 

<석별> 


도호쿠 지방의 나이 든 의사의 회고록 형식을 띤, 같이 의학 전문학교를 다녔던 루쉰에 대한 추억담이다. 아무래도 집필 계기가 국책 홍보를 위한 조직의 의뢰였다 보니 군국주의적 색채가 짙어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다. 특히나 러일전쟁을 마치 중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대리전, 성전으로 미화한 대목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처럼 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에 대한 불법적 침략, 지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는 모순에 아연했다. 문학은 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슬픈 자각. 결국 자신의 소속, 처지를 뛰어넘을 수 없는 그 한계.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언어는 진실 한 점을 딛고 피안을 응시할 수 있지 않을까. 

 

<옛날 이야기> 


공습경보를 피해 방공호로 대피한 다섯 살 딸에게 아버지가 일본의 옛이야기들을 각색해서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혹부리 영감', '우라시마', '부싯돌 산', '혀 잘린 참새' 는 다자이 오사무를 통해 형식적인 패러디를 뛰어 넘어 성공적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거북이를 타고 용궁 체험을 가고 토끼 소녀가 너구리 아저씨를 골려 먹고 혀 잘린 참새 소녀를 할아버지가 사랑하고. 이런 전혀 그럴 듯하지 않은 얘기들을 읽으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책을 읽다 혼자 미친듯이 웃게 하고 때로 튀어 나오는 경구들을 메모하게 하고. <석별> 같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다자이 오사무를 위대한 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계곡 저 건너편에 아름다운 꽃이 분명히 피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아무런 주저 없이 등나무 줄기에 매달려 건너편으로 건너갑니다.<중략> 당신에게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당신에게 믿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p.359 

용궁 기행을 저어하는 우라시마에게 거북이가 내려준 모험의 정의. 피안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차안에 발이 묶이고 만다. 우라시마가 용궁을 떠나면서 받은 조개껍데기를 열어보자 곧바로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그것이 일종의 형벌이라고 반응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세월과 망각은 인간의 구원이라고. 삼백 살의 할아버지가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등진다는 것도 돈이 조금이라도 있어야만 가능하지, 돈 한 푼 없는 하루살이 신세라면 세상을 등지려고 해도 세상이 쫓아와서 도저히 등질 수가 없다.
-p.425 

쓰가루 유수의 대지주 가문에서 태어나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해설 참조)라는 유서를 남기고 연인과 동반자살한 그가 이러한 얘기들을 남겼고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라고 여겨도 되는 것일까?  '생명의 불안이 언어를 발효시킨다'고 했던 그의 얘기처럼 창조의 동력이 없는 우리들은 생명의 불안 때문에 읽는다고 자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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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찜해뒀어요. 다자이 오사무를 읽어본 적은 없는데 단편이 무지 좋을 것 같아요. 블랑카님 글 보니까 할아버지께 이야기 듣는 기분이에요. 일본의 고전들은 약간 그런 분위기가 있는 듯 해요. 저는 [설국] 무지 좋아하는데 이 분이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라고 했다니 읽고나면 순위가 바뀌겠어요! (몹쓸 줄타기--;;)

blanca 2011-08-19 10:18   좋아요 0 | URL
<설국>은 그 시리도록 흰 느낌이 오래도록 남았어요.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분위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는 좀 다르지만 그 적나라한 솔직함에 반하게 되는 작가랍니다. 일단 글을 재미있게 쓰는 재주가 있어 책장이 잘 넘어간답니다. <인간실격>도 좋아요. 아이리시스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마녀고양이 2011-08-1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 라니,,,
무엇인가에 그렇게 몸 받칠 수 있는 것은 정녕 커다란 행운이라 해야 할까요 불운이라 해야 할까요?

거기다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믿는 능력이 없다 라니,,,
그렇네요. 바라는 것이 없다면 행동하지 않을 것이며, 이상과 목표가 없다면 노력하지 않을테니 말이죠.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엉엉. 읽고 싶은 책, 너무 많아요. 대청소 시작했는데, 집 다 뒤집어 놓고.

blanca 2011-08-19 10:20   좋아요 0 | URL
마고님, 저는 모험심 제로잖아요-..- 겁쟁이예요. 저는 무언가를 잘 못 믿겠어요. 그래서 저한테 기억하라고 적어 놓았어요. 대청소요!! 아, 저도 오늘 물걸레질해야 하는데 걸레 빠는 게 너무 싫어요. 책은 저번에 이사오면서 그래도 처분하고 정리해서 좀 낫긴 한데. 요새는 읽고 소장 가치 없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바로 바로 정리하려고 해요. 반짝반짝 대청소하시고 시원한 커피도 한 잔 하세요. 저는 또 위염이 재발하여 커피를 끊어야 하는 시기가 왔어요. 넘 슬퍼요.

블루데이지 2011-08-1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그냥 모른척, 못 본척 지나치려고 했는데...한번 애정있게 돌아보도록 blanca님이 만드셨어요~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말에 분명 공감할것같아요~

blanca 2011-08-19 10:21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ㅋㅋㅋ 저는 제목이 끌려서 기억해 두었다 결국 읽게 되었어요. 특히 일본의 옛이야기들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혼자서 여러번 웃었어요.

비로그인 2011-08-19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혀 잘린 참새! 유치원에 다닐 적, 추운 날 이불 속에서 아빠가 읽어주었던 동화.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아빠, 라고 적고 나니 눈물이 핑 돌아요. 블랑카 님이 여기서, 옛 기억을 불러내 준 탓입니다.

blanca 2011-08-19 10:22   좋아요 0 | URL
쥬드님은 벌써 이 얘기를 알고 계셨군요. 자상한 아빠 덕분에. 저는 처음 들었거든요. 저도 아빠를 생각하니 뭉클하네요.

2011-08-24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믿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돈이 없다면 세상을 등지더라도 세상이 쫓아온다.'! 완전 공감돼요. ... 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지 못해 죽을 수도 있군요. 창조의 희열이라는 강한 단맛을 맛본 탓일까요. 블랑카님의 마지막 구절에도 공감합니다.

blanca 2011-08-25 10:10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이 두 문장이 정말 와닿더라고요. 굉장히 독특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더라고요. 그걸 예리하게 포착해서 언어로 표현하는 재주가 탁월한 것 같아요. 참, 섬님의 추천으로 그 책을 당장 구입했답니다.^^

2011-08-25 18:41   좋아요 0 | URL
앗, 바로 구입하셨군요. 블랑카님에게도 좋은 경험을 주는 책이길 바랍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