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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ㅣ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평점 :
가볍고 날렵한 소녀가 줄넘기를 한다. 경쾌하고 기분 좋다. 줄넘기를 하면서 소녀는 유쾌함과 웃음을 준다. 폴짝폴짝 뛰면서 뒤돌기 묘기를 하다가 넘어져서 웃음을 주기도 하고, 더 어려운 기술을 멋지게 해내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평범하고 가볍고 경쾌하지만 소녀의 모습은 그것이 다는 아니다. 자신이 배추였으며 언젠가 추워지면 김치가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삶의 무게에 멋지게 욕을 내뱉는 미션에 성공하기도 한다. 첫잔을 따를 때의 그 쫄쫄쫄과 똘똘똘 사이의 소리를 좋아하며, 선을 넘지 않고 기다릴 줄 알며 자유로운 술자리를 애정한다. 가볍고 경쾌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옆집의 소녀는 줄넘기만 하는 건 아니니까. 성장하고 커가고 힘들어하고 좌절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가치관과 삶에 대한 안목을 키우며 자란다. 내게 김혼비작가님의 에세이는 그런 느낌이다. 경쾌한 문체에서 가끔 눈물을 훔치고 공감하고 같이 소리내서 웃는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의 시작은 비슷한 거같다. 대입을 앞둔 시기라는 것. 꽤 많은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신 시작이 백일주라는 걸 보면 말이다. 아, 요즘은 좀 더 빨라졌을까. 중학교 수학여행이라는 친구들도 있으니 말이다.
나 또한 엄밀히 따지면 술심부름 (우리때는 동네 수퍼에 가면 아무개집 딸하면서 당연히 술과 담배를 팔았다. )하면서 홀짝 한 모금 마신 적도 있다.
그땐 씁기만 한 이걸 돈까지 주고 왜 마시나 했는데,
술과 욕은 인생이 고달플때 그 맛을 발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생이 더 쓰디 쓰다는 걸 알게 되면, 술은 인생의 초콜릿처럼 달콤함이 된다. 찰진 욕 한마디 내뱉고 마시는 술은 달다.
여기서 고백하는 내 술의 시작은 ,
아마 대입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친구들의 꼬드김이라고 쓰지만, 사실 그 꼬드김을 반기며 은근히 기다린 내면의 호기심도 한몫했다.
제삿날이면 남자어른들이 돌려 마시던 청주냄새, 가볍고 날아갈 듯 날개가 긴 소리없이 나는 새가 생각나는 냄새였다. 막걸리는 묵직하고 찐했다. 심부름으로 가게에서 막걸리를 사고 달려서 집에 오면, 손에서 시큼한 냄새와 톡 쏘는 탄산이 느껴졌다. 몰래 핥아 보면 혀끝이 텁텁해 졌다. 소주는 무색과 달리 냄새마저 취기를 느끼게 했다. 취기가 무엇인지 알 순 없지만 막연하게 머리가 아파오는 냄새였고 그것이 어른들이 말하는 숙취라 생각했다.
대학교 다니는 큰언니가 온갖 폼을 잡으며 가져온 와인, 아마 만원 미만의 달콤한 와인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마개를 따는 순간부터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큰 선심 쓴다는 듯 큰언니가 밥그릇덮개에 따라준 붉은 빛의 와인은 색깔과 냄새와 달리 쓰기만 했다.
백일주, 팔십일주, 삼십일주, 십팔일주 이름도 많았다. 사실 고3들에겐 어느 날인들 특별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떤 땐 나는 그냥 재수를 해야겠다, 어떤 날엔 같이 강에 가자, 어떤 날엔 미팅을 할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 설레발을 치기도 하던 날들.
슈퍼를 하는 친구가 빼내온 맥주 네 병과 우리들이 주섬주섬 사온 젤리와 새우깡이 다얐다
여기 저기를 어슬렁 거리다가 동네 놀이터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 안주는 해산물이라며 너스레도 떨었다
술을 마셔본 척 했지만, 맥주캔을 따는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보리냄새와 알코올 냄새, 그리고 우엑, 정말 묘한 맛이었다. 그렇지만 허세를 버릴 순 없었다.
“아, 역쉬 맥주는 oo이지.” 이러면서 아는 척을 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타임머신을 경험했다.
눈을 떠 보니, 우리 집 내 방의 익숙한 꽃무늬 이불 밑이었다.
죽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방을 나섰지만, 익숙한 일요일 아침의 풍경이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언니들은 거실에 널부러져 아침 프로를 보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란 생각을 하며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아침은 뜨끈한 콩나물국이었다.
속으로 콩나물국으로 해장하면 되겠다며 천금같은 손을 들어올려 수저를 들었다. 콩나물국을 한 국자 뜨는 순간 참았다는 듯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언니들과 오빠는 배를 잡고 웃었고, 엄마도 아빠도 웃고 계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체 그들을 쳐다봤다.
그 전날 밤, 나는 신발 한 짝을 가슴에 품고 들어왔단다. 언니가 뭐냐니까 울면서
“길에서 불쌍한 강아지를 주웠어, 추워서 벌벌 떨고 있었어.” 목 놓아 울면서 신발 한 짝을 곱게 소파위에 올려놓더란다.
“이름은 해피로 할래, 불쌍하니까 앞으로 행복하게 살라고, 아이고 해피야.. 언니도 슬퍼. 언니는 고3이야. 너는 해피?”
식구들은 다들 황당해 하며 나를 봤고, 벌겋게 달아오른 볼과, 입에서 풍기는 새우깡을 품은 맥주 냄새에 사태를 파악했다.
그 후 한동안 나는 해피엄마로 불렸다. 월요일에 친구들을 만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들 별일없이 멀쩡한 얼굴로 집에 돌아갔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내 신발 한 짝이 아무리 찾아도 없어.”
나는 차마 그 친구에게, 네 신발 한 짝이 내게로 와서 해피가 되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아무튼, 술! 그래서 오늘은 알라딘에서 받은 맥주잔과 해산물안주( 고래밥) 으로 주말을 즐길까 한다. 느긋하고 편안하게 해피를 추억하며 *^^*
뽁뽁이를 터뜨릴 때마다 정처 없는 생각들이머릿속을 지나갔다. 뽁뽁이 하나에 술과의 추억과뽁뽁이 하나에 술을 향한 사랑과 뽁뽁이 하나에 숙취의 쓸쓸함과 뽁뽁이 하나에 그럼에도 다음 술에대한 동경과 뽁뽁이 하나에 에세이와 뽁뽁이 하나에어머니, 어머…니…. 어우, 그래, 술책을 쓰자. 술에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술과 얽힌 나만의 이야기를. 술과 함께 익어간 인생의 어느 부분에 관해서. 써보자. 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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