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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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모은 것들

살다보면 어쩌다 보니 모은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큰 맘 먹고 혹은 집념과 열정을 가지고 모은 것들도 있겠지만, 우연찮게 하나 둘 사 모으다 보니 어느덧 꽤 괜찮은 것들이 쌓이는 경우다.

내게 어쩌다 보니 모은 것들은?

, 알라딘 사은품, 현란한 조명아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거기다 책과 관련된 용품들이 손짓을 하면, 결국 애지중지 모은 포인트를 털어 버리고 만다. 받고 보면 아, 예쁘다 멋지다 등 미사어구를 가슴에 품지만 정작 딱히 쓸 데는 없다는 게 또 문제다.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책문구나 작가의 그림이 그려진 에코백과 텀블러를 사양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고지고 갈 것들이 되었다.

두 번째는 색연필? 필기도구? 악필들이 유난히 도구탓을 한다.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굵고 진한 색감에 부드러운 필기감을 선호한다. 그래서 온갖 색연필들의 홍수 속을 헤메다가 다행히 스테들러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책들. 이건 뭐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가끔 모아서 아동보호소나 청소년 등을 위한 단체에 가득 실어 보내주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이건 청소년이나 아이들이 봐도 되겠다 싶으면 밑줄을 긋지 않는다. 아이들에게까지 비웃음을 사고 싶진 않다.

우리 대부분이 아주 무계획적인 듯 계획적이며, 즉흥적인 듯하나 치밀한 책수집

아주 어울리는 그림이 있어서 퍼옴.

 

하루키옹이야 원래 책들은 넘쳐날테고, 레코드는 말해 뭐하며, 거기다 티셔츠? 그러고 보면 하루키옹의 사진들을 보면 다 편안한 차림새다. 가끔은 난해한 티셔츠? 차림일 때도 있다.

식성빼곤 영락없이 미국작가님같은 하루키옹은 서핑이며 재즈며 취미도 많고, 그런 취미들을 책으로 써서 돈도 버시니 성공한 덕후가 아닐까.

이 책은 말그대로 하루키옹의 티셔츠 소개책이다. 어디서 이 티셔츠를 사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이나 혹은 샀지만 입기엔 좀 그렇다는 내용. 정말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로 가득차있지만. 그게 또 하루키옹 에세이의 매력 아닌가. 두부이야기로도 몇 십장을, 혹은 연필공장 가셔서 세일러복 입은 연필을 상상하며 몇 장을 써내는 필력, 소소함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잠시 쉬어가기에 알맞은 코너가 아닐까. 햇빛 잘 드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으면, 약간 거북이처럼 생긴 티셔츠에 청바지차림의 중년 아저씨가 옆에 와선 속닥거린다. 내게 거는 듯 혼잣말인 듯.... 제가 요번에 티셔츠를 하나 샀는데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 이건 우리집 강아지가 모으는 것.

 

아 그리고 흰티가 너무 잘 어울린다며 이 책에서 극찬을 했던 트루먼 카포티 

(남편은 음반을 모으는데, 제게 매번 은퇴 후 음반 하나씩 팔아서 점심 사먹자고 회유합니다. 그러면서 이 음반은 칼국수, 음 이 음반은 소고기......그 덕에 음반의 노래들은 모르고 저 빨간 표지가 삼겹살이었는지 소고기였는지만 아리송합니다.)

 

사실 이 책은 뭐라고 별점 주기가 애매하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같이 해 온 정으로 무작정 하루키 책만 나오면 사게 된다. 의리와 추억에 대한 별점인셈이다. 물론 잘 읽히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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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12 14: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카포티 젊을때 디카프리오 느낌나네요ㅋㅋ본인이 미소년임을 아는 자태ㅋ 저는 만년필을 노리고 있는데 고민만 몇 개월째입니다. 하..ㅋㅋㅋ

mini74 2021-05-12 15:42   좋아요 3 | URL
완전 꽃미남이죠 ㅎㅎ 만년필 ! 아 만년필도 모으고 싶어요 ㅎㅎ

잠자냥 2021-05-12 15: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강아지가 모으는 것 완전 귀여운데요. ㅋㅋㅋ

mini74 2021-05-12 16:17   좋아요 4 | URL
제가 매번 몰래 버립니다. 아직은 눈치 못챈듯 합니다

미미 2021-05-12 16:32   좋아요 4 | URL
미니님 그 사이 애견용 육포 살짝 끼워주심 건네주다 손가락 물릴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ㅋㅋ(쓰고보니 추천인지 경고인지ㅋ)

레삭매냐 2021-05-12 15: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고기 음반, 재밌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알라딘 굿즈에서
레전드는 아마도 라면 냄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맨 끝 사진이 커포티? 전 뭔 놈의
아이돌 스타인 줄 알았습니다.

mini74 2021-05-12 16:17   좋아요 5 | URL
라면냄비는 놓치고 냄비받침대만 몇 개 있습니다 ㅠㅠ

새파랑 2021-05-12 17: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아지 완전 귀염ㅋ 저는 이 책 읽고 리뷰를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중이에요 ㅋ 저도 하루키책은 습관적으로 사기 ^^

mini74 2021-05-12 17:22   좋아요 3 | URL
나도 모르게 손이 장바구니로 막 가지요 ㅎㅎ

scott 2021-05-12 17: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미니님집 강쥐!!🥓뽀너스로 껌도 놓고가여 ㅎㅎㅎ
의리에 별점 셋 동감 합니다
70 넘어서도 글써줘서 용서함 🐶

mini74 2021-05-12 17:23   좋아요 3 | URL
그 연세에도 글이 젊어서 ? 그닥 변화가 없어서 더 좋은 거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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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모드
랜스 울러버 지음, 모드 루이스 그림, 박상현 옮김, 밥 브룩스 사진 / 남해의봄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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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날 때도 작았다고 해, 아주 작고 연약한 몸으로 태어나, 마지막 순간에도 아이의 관에 담겨 묻힌 캐나다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 이야기다.

 

 

작가는 모드 루이스와 같은 장소에서 살았고, 아버지는 모드의 작품을 좋아했고 꽤 많은 그림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그림의 매력이 뭘까 하던 작가는 어느 날 미술관에서 고흐의 작품을 접하면서, 모드의 그림이 가진 매력에 빠졌고, 그래서 여러 자료들을 모아 책을 써냈다.

선명하고 밝은 빛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 소박하고 정겨운 동물들과 아름다운 자연이 장난치듯 환하게 밝히는 모드의 그림들.

어그러지고 낡은 보드 위에, 버리고 간 페이트통의 남은 물감으로 자신의 추억과 자신만의 기법으로 아이처럼 그린 화가다.

내가 모드 루이스를 알게 된 건 한 편의 영화덕이다. 네이버에서 무료로 해줬던 영화

<내 사랑>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체, 내가 좋아하는 에단호크가 나온다길래 보게 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학생역을 했던 에단 호크는, 여기서 모드의 남편인 무뚝뚝하고 거친 남편 에버릿으로 나온다.

그리고 모드로 나오는 샐리 호킨스, 작고 감성적이며 수줍음 많지만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채워가던 모습은 감동이었다.

모드의 어린시절은 행복했다. 비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나름 넉넉한 가정에서 부모와 그리고 오빠와도 사이좋은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부모가 돌아가시고 오빠가 모드를 거의 버리다시피 하면서 유산 한 푼 받지 못하고 이모집에 얹혀 살게 된다. 그 시기 모드는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입양을 보내게 된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후 모드는 가정부를 구하는 에버릿의 광고를 보고 그를 찾아가게 된다. 둘은 결혼을 하고 에버릿의 그 작은 오두막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모드는 오두막 가득 꽃과 나비를 그린다. 그런 모드의 그림들이 팔리면서 인기를 얻게 된다. 그렇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지독한 구두쇠였던 에버릿, 밖으론 나가지 못하는 모드. 모드는 그리고 에버릿은 그림을 팔아 번 돈을 바닥에 묻었다.

 

영화 속 캐나다 오지의 노바스코샤는 황량했다. 바닷바람과 외따로이 서 있는 작은 오두막, 인적 드문 동네, 그렇지만 그 오두막에 모드는 봄을 그리고, 따스함을 불어넣었다. 모드를 위해 판자와 페인트를 주워오고, 살림과 요리를 했던 에버릿.

비록 모드 사후에, 모드의 유품들을 몽땅 팔려했고, 결국 돈을 훔치러 온 젊은이에게 살해당하는 어쩌면 매정해 보이는 에버릿이지만, 모드는 에버릿을 의지하고 믿었고 에버릿 또한 모드에게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그저 어린시절 너무나 가난해 구빈농장에서 일하며 끼니를 걱정했기에, 에버릿에게 돈은 쓰기보다 모으는 것, 오로지 검소하게 사는 것만이 생존방법이었을 거다.

그래서 모드는 불평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남은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도, 싸구려 붓 때문에 그림에 털이 묻어도, 전기대신 킨 촛불 때문에 그림에 촛농이 묻어도. 그런데 지금에 와선 모드의 진품과 가품을 가리는데 이 요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그림을 그렸고, 엉뚱하게 소 다리를 세 개로 혹은 너무 긴 속눈썹의 소들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자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모드가 가진 위트였다. 바닷가재처럼 곱아지는 류마티즘 걸린 손으로 모드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한 번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카드를 팔기 위해, 어머니에게 그림을 배운 게 다다. 나머진 그저 모드는 스스로 터득한 것들, 그녀의 내면, 의지와 인내가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림에 담겨있다.

귀여운 고양이들과 아름다운 꽃들, 바닷가와 일하는 소들의 순박함, 말과 망아지의 즐거운 한때가 그려진 그림들을 보며 미소짓게 되는 것, 편안하고 행복한 유년과 그 시절의 즐거움이 느껴진다. 모드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우리에게 나눠준 것은 아닐까. 오랜 병마와 힘듦 속에서도 마음속에 담고 있던 행복한 기억들을 선물한 것. 그래서 오히려 밀려드는 주문에 급급해 비슷한 그림들을 연달아 그렸던 시기보다, 초창기의 그림을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책도 좋았고, 영화도 좋았다. 척박한 배경과, 실제처럼 그림들로 가득 채워진 모드의 오두막, 그리고 빨간 귀마개 모자와 낡은 체크무늬 옷을 입은 키 크고 마른 성난 얼굴의 에버릿. 바람과 눈, 바닷가의 쓸쓸함이 가득했던 화면 사이로, 환하게 웃는 모드를 태우고 달린 에버릿의 장면이 자꾸만 생각난다.

힘들고 우울했을지도 모를 삶이지만, 그 속에서 위트와 밝음을 찾아내 주변을 그린 모드, 그림 속에서 반전을 보여준 화가가 아닐까. 아니면 우리 잣대로 보는 그녀의 삶이, 그녀에겐 그리 나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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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11 14: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고싶었는데 책 표지의 그림도 그렇고 이런 느낌의 그림들이군요!! 으앗~♡ 너무 사랑스럽네요~특히 저 고양이와 모자쓴 듯한 새들ㅋㅋㅋㅋ

mini74 2021-05-11 14:22   좋아요 5 | URL
영화 분위기도 연기도 좋아요 *^^*

scott 2021-05-11 14: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부담없이 보다가 마지막엔 행복에 미소를 그리게되는 ㅎ미니님 보석같은 책 요렇게 깜찍하게 리뷰를^ㅅ^

mini74 2021-05-11 14:25   좋아요 5 | URL
맞아요 행복한 미소 *^^*

잠자냥 2021-05-11 14: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고 싶어서 찜만 해놓고 여태 못 봤네요. 이번주엔 봐야지... 그림 참 좋네요. _

mini74 2021-05-11 17:42   좋아요 3 | URL
영화도 참 좋았어요 ~

새파랑 2021-05-11 17: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눈에 들어와요^^ 미니님은 그림책 전문~!!

mini74 2021-05-11 17:43   좋아요 4 | URL
흰고양이 검은고양이 그리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

희선 2021-05-12 0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나다 노바스코샤 하니 빨강머리 앤이 생각납니다 앤이 어릴 때 살았던 곳이 그곳인데... 부모가 오래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아주 안 좋았던 건 아니겠지요 그랬기를 바랍니다


희선
 

문과생, 과알못인 저도 즐겁게 읽은 과학만화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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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모자 2021-05-10 1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 야공만 재밌게 봤었죠ㅋㅋ

mini74 2021-05-10 17:09   좋아요 2 | URL
저도요 *^^*

붕붕툐툐 2021-05-10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잼나겠다!!ㅎㅎ

han22598 2021-05-12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갈로아님 팟캐스트에 나와서 설명 조곤조곤 잘하시던데..책도 당연히 좋을 것 같아요. ^^

mini74 2021-05-12 14:05   좋아요 0 | URL
갈로아님이 팟캐스트에 나온 적이 있나요? 아 저 팬인데 ㅎㅎ 아이랑 저랑 웃으면서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

땅강아지 2021-05-18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겠어요 ^^
 
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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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스타 도슨트란 수식어가 붙는 정우철님의 책이다. 화가의 생애나 그 그림을 그리던 시기의 삶을 알게 되면,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느낌이다. 워낙 유명한 화가들 11명에 대한 글이라서,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은 이는 뭐야 할 수도 있지만, 같은 이야기라도 어떻게 들려주느냐에 따라 다르기 마련, 조금 더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필체가 있다. 작가님의 조곤조곤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화가의 삶과 작품에 좀 더 애정을 갖게 한다. 고갱의 문제적 삶까지 아, 어찌보면 고갱도 참 힘들었구나 하며 너그럽게 품어주게 된다.

 

첫 번째로 소개되는 작가는 모이셰 샤갈,

삶이 언제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비테포스크 고향을 그리워하며, 벨라와 충만한 사랑 속에서, 전쟁의 정점에서도 사랑을 그린 화가이다. 물론 그의 그림엔 두려움도 있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 옆엔 언제나 사랑과 그림움이 함께 한다. 샤갈의 그림에선, 두려움에 맞선 사랑과 그리움의 색채가 승리하는 느낌이다. 프랑스 삼색기 색깔의 하늘과 에펠탑, 그리고 비테포스크의 암소들과 벨라의 사랑이 샤갈의 그림에 담겨 있다.

 

앙리 마티스,

물감 상자를 받는 순간 이것이 내 삶임을 알았다.”

색을 가두지 않는 화가, 색의 혁명가란 수식어 속의 마티스, 그렇지만 내게 마티스는 마비가 오는 손으로도 컷 아웃기법을 통해 아이처럼 순수하게 잘라 만든 색종이 작품들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로사리오 성당의 그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 마티스의 작품들이 순수함과 경건함을 더 해줄 로사리오 성당에 죽기 전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다.

 

그리고 아메테오 모딜리아니

행복은 우울한 얼굴의 천사다

그의 연인 잔 에뷔테른. 처음 잔을 그릴 땐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리겠다면서. 그래서 그 후 모딜리아니가 잔의 눈동자를 그린 초상화를 완성했을 때, 잔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에 이것은 유럽식 화룡점정인가 따위의 생각이 났다. 아주 잠시.

 

프리다 칼로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에 수박 그림이 있다. 프리다 칼로가 죽기 전 마지막에 그린 그림, 수박들 그리고 비바라비다.

그 엄청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비바라비다를 외친 그녀, 고통 자체가 현실이었던 그녀의 삶이 기록된 그림앞에서 조금은 숙연해 지는 이유가 아닐까.

 

로트레크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삶을 호기심이 아닌, 진정한 마음으로 보아주고 존중해 준 화가다. 자신을 괴물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괴물은 그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그림들이 보여주고 있다.

 

케테 콜비츠

반전하면 떠오르는 판화, 바로 케테 콜비츠의 작품들이다. 어머니들이 아이를 보호하려 팔로 감싸는 모습, 굶주린 아이들, 절규하는 부모. 그것은 콜비츠 또한 자식과 손자를 전쟁에서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부터 노동자와 약자의 편이었던 그녀는 작품을 통해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노력했다.

 

폴 고갱

고흐 이야기때문일까 언제나 악역담당 폴 고갱. 그렇지만 그도 어찌보면 사연 많은 사나이다. 아버지를 보지도 못했고, 어린 나이에 어머니도 잃었다. 하고자 하는 그림을 시작하면서, 처가에선 아내와 같은 방도 못 쓰게 했다. 타히티에서 만나 결혼 한 여인 안나를 불량배에게서 구하다 다리를 다쳤고, 안나는 모든 세간을 들고 도망가 버렸다. 야심에 차서 발표한 작품은 쇠라의 놀라운 점묘법앞에서 주목 한 번 못받았고, 결국 죽기 위해 마지막 작품을 그린 후 마신 독약은 과다복용으로 결국 토하고 말았다. 하지만 전화위복? 마지막 작품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가 대박이 나지만, 신비로운 화가로 남아야 한다는 화상의 말에 결국 고향엔 가지 못하고,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런 그의 삶은 <달과 6펜스>로 그리고 엘튼 존의 노래로도 남아있다.

 

베르나르 뷔페

프랑스가 질투한 화가. 앙상하고 말라 있으며 비어 있고 건조한 정물들과 사람들은 전쟁후 본모습을 보여준다. 전쟁이 휩쓸고 간 후, 모두 지쳐 버린 그리고 공허한 사람들, 상실과 아픔에 말라버린 사람들과 쓸쓸함을 보여주는 그의 그림이 공감대를 형성하며 엄청난 인기를 몰고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작가의 삶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같다. 그러면서 작가의 삶에 안타까워하고 그의 작품들에 녹아 있는 애환과 슬픔, 그리고 남아 있는 귀퉁이의 희망을 본다.

작가들의 눈은 따뜻하다. 에곤 실레의 어지러운 핏줄같은 데생에서도 뷔페의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서도 고갱의 원색의 더 빨갛고 더 파란 그림들 속에서도 콜비츠의 지치고 슬픈 눈의 어머니에게도 진실된 위안이 담겨 있다. 그림 앞에서만은 위선도 거짓도 그릴 수 없는게 진정한 화가가 아닐까. 그렇기에 이리도 오래 사랑받는게 아닐까.

 

(아래 그림은 로트레크의 <침대>와 뷔페의 광대그림이다. 피곤한 하루를 마친 두 명의 매춘부들이 더할 나위없이 평온하게 잠을 청하는 그 순간, 그리고 고단한 삶에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애환이 담긴 광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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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0 16: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그림 초보여서 잘 모르지만 그림 예쁘네요^^‘달과 6펜스‘ 때문에 고갱만 익숙하다는 ㅜㅜ

mini74 2021-05-10 17:13   좋아요 4 | URL
그러고 보니 고갱의 삶도 파란만장하면서도 매력이 있나봐요 책도 노래도 있는걸 보면 *^^*

scott 2021-05-10 16: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물랑루즈의 화가 로트렉이 이토록 몽환적인 작품을 그렸다니 ㅎㅎ
특히 뷔페의 광대의 주름진 (피곤에 쩔은 ㅎㅎ) 모습이
피카소가 그린 광대 보다 현실감이 100퍼센트!
미니님은 어찌 이리 좋은 미술 에세이를 발견 하시나요!
모딜리아니-고갱-칼로-로트렉-뷔페 는 인생 자체가 파란만장 병약 가난, 생활고 여자문제 등등으로 인생 불행하게 살다 갔지만
마티스가 가장 성공하고 부유한 ㅎㅎ
그래서인지 그림이 밝은것 같습니다. ^.^

mini74 2021-05-10 17:11   좋아요 5 | URL
마티스가 성격도 좋은 거 같아요.~ 뷔페는 잘생김 돈 사랑 그리고 프랑스의 질투까지 모두 가진 화가 ㅎㅎ 정말 잘 생겼더라고요. 광대그림 참 묘한데 끌리지요 *^^*

붕붕툐툐 2021-05-10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왕 저는 로트레크 <침대> 너무 좋아요. 아, 정말 자는 시간은 너무 평화롭고 좋아요. 바라만 봐도 행복~♡
작가님 이야기 들려주시는 솜씨가 장난 아닌가봐요~ 읽어보고 싶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