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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사 - 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평점 :
최근에 <한국인의 맛>이란 근대사의 음식문화를 다룬 책을 읽었다. 작가님의 기존 책의 주인공격인 기자의 눈으로 경성의 맛탐방식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백년 식사> 또한 그 시대를 다루지만 최근의 K-푸드까지 그 영역을 좀 더 넓힌 책이다.
초딩이 시절, 소풍을 싫어했다. 먼지도 폴폴 날리고, 김밥 싸서 어디론가 간다는 거 자체가 피곤한 일이라 생각됐다. 그럼에도 이 소풍이 좋았던 이유는 순전히 엄마덕분이다. 오남매의 소풍이 모두 같은 날이길 3월부터 비셨다는 엄마, 그렇지만 매번 소풍날은 달랐던 것 같다. 그때마다 궁시렁 궁시렁 하시면서도 김밥을 싸고(우리들은 엄마속도 모른체 다 같이 소풍날이 다르기만 빌었다.) 나는 엄마가 주신 용돈으로 동네 슈퍼에서 과자 몇 개, 음료 두어개 (이땐 맥콜이며 밀키스가 인기였다. 보리음료와 우유탄산음료.) 그리고 소풍을 너무나 행복한 날로 만들어줬던 바나나! 엄마는 소풍날이면 꼭 시장에서 바나나를 사와서 가방에 넣어주셨다. 엄청 귀했던 그 바나나덕에 나는 소풍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바나나가 특별히 맛이 있었나? 엄청나게 달았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 이국적이고 값비싼 (물론 그 시절에도 부유한 집에선 특별하진 않았겠지만.)바나나가 가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만화인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주인공 소녀가 바나나를 너무나 쉽게 먹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는데, 일본에선 저런 바나나가 흔한 과일? 바나나나 먹자니?!!
일본은 2차대전 당시 대만을 강제 점령하면서, 바나나를 수확해서 공급했고, 그 바나나는 일본을 거쳐 조선에도 선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다 <추억은 방울방울>은 일제가 6.25전쟁을 발판으로 고속성장한 1970~80년대가 배경이니 바나나쯤이야 싶다.
이런 바나나가 90년대 들면서 가격이 내려갔고, 지금의 익숙한 과일이 된 것. 그러고 보면 남미에서 했던 몬산토의 악행들이 바나나와 겹치기도 한다. 치키타로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그들이 피로 물들인 역사가 어찌 이름 하나 바뀐다고 없던 일이 될까.
고종이 좋아했다는 간장비빔국수인 골동면,
일본인들이 종을 울리며 팔았다는, 일본식 두부,
수질이 나빠 배앓이가 심하자, 아예 유행병예방약을 넣어 팔았다는 국영당 빙수집.
일본식 간장 된장을 팔던 다카미 장유 양조장과, 얼떨결에 고향의 맛이 되어버린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
일본으로 넘어간 숯불고기와 명란젓.
국가시책에 따라 밥대신 밀가루를, 거기다 밀가루 막걸리까지 (유통과정에서 발효되면서 탄산이 생겨났다고 한다. 오히려 밀가루 막걸리의 톡 쏘는 맛이 인기비결이 되었다.) 음식문화 또한 정치와 사회 경제 등에 민감하다.
우리나라 굴지의 종묘회사가 IMF에 외국으로 넘어가면서, 청양고추에도 로얄티가 붙는다는 것, 강남에 땅을 산 이들이 세금을 적게 내려 차린 갈빗집들.
80년대 일본에서 휴대용가스버너와 부탄가스가 수입되면서 야외에서 삼겹살굽기 열풍이 시작된 일 등 다양한 음식문화의 시작과 그 번영성쇄가 담겨져 있다.
요즘 음식의 첫 시작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음식은 그저 문화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치와 그때의 사회적 배경과 어쩌면 그 나라의 정체성 또한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국주의는 음식에도 다양한 왜곡을 심고, 식민지 음식문화를 빼앗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현대에 와선 자본과 결부되니 더욱 음식과 관련된 논란이 잦아진다.
예전엔 김치가 결례의 음식처럼 치부된 적이 있었다. 외국인들이 싫어한다, 냄새가 심하다 등으로 미개한 음식취급을 받았고, 어느 외국매체에선 썩은 배추 따위의 수식어를 붙이곤 했다. 지금은 ? 오히려 김치가 각광받으면서, 말도 안 되는 김치 원조 논쟁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김치맛 소스에 김치 후레이크까지 인기를 끈다니 참 신기하고 뿌듯한 세상이다.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스테키 정도는 썰어야 우와 했던 시절이 지나고, 삼겹살 구우며 그 옆에 김치 올려 지글지글, 밥 정도는 볶아야 우와 하는 시절이 왔다.
그나저나 이 책을 읽고나니 맥콜이 급 땡긴다. 편의점에 가 볼까싶지만 내겐 비장의 무기가 있다. 20년 밥 멕여 키운 ㅎㅎㅎ 맥콜 하나에 아이가 마시겠다는 맥주에 남편이 가세해서 맥주 한 병 더! 안주까지 ㅠㅠ ㅎㅎ 그 돈이면 맥콜 한 박스는 사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