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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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신자인 어머니는 끊임없이 내게 성당을 다닐 것을 요구했지만,


내 소원은 “빨리 엄마보다 힘이 세져서 성당에 끌려가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난 초등학교 4학년쯤 됐을 때 잃었던 일요일을 찾을 수 있었다 


(힘은 좀 약했지만, 달리기를 엄마보다 잘했다).


그렇게까지 성당이 싫었던 이유는 물론 ‘귀찮아서’였지만,


하느님에 대해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바로 노아의 방주로, 도대체 하느님은 왜 노아 가족만 남긴 채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엾은 동물들까지 모두 없애 버렸느냐는 점이었다.


스스로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나 관대함 같은 건 없었던 것일까,라는 회의는


철이 들면서 점점 커져만 갔다.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은 바로 이런 회의를 다루고 있다.


명 소설가답게 저자는 카인이 아벨을 죽인 후 정처없이 떠도는 와중에 


만나는 사건들을 토대로 자신의 회의감을 독자에게 전달했는데,


회의론자인 나로선 이 책이 흥미롭게 읽혔지만,


신실한 종교인이라면 읽기 거북한 순간이 꽤 자주 있을 것 같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이때 아브라함에게 논리적이고,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인간적인 반응이라면 


여호와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것이었을 테지만” (94쪽)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했지요. 


여호와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데 왜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신뢰해야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163쪽)


-여호와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 유일하게 그 말을 믿은 롯은 도시를 


떠나라는 명을 받는다. 그런데 롯은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을 어겨 소금기둥이 된다.


누구도 왜 그녀가 그런 벌을 받아야 했는지 그 이후로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호기심을 치명적인 죄로서 벌하고 싶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지능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117쪽)


-어릴 적 들은 노아의 방주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욥의 이야기였다. 

욥은 하느님께 늘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은 악마와 내기를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욥이 하느님을 믿을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돈과 소유를 모두 잃는 벌을 받을 참이라니, 


다른 사람들은 여호와가 의롭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163쪽)



마지막으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해보자. 방주를 보면서 카인은 묻는다. 


정말로 지금 인류를 멸하고 나면, 그 다음에 나오는 인류는 똑같은 오류, 


똑같은 유혹, 똑같은 어리석음과 범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189쪽)


이 대목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이, 그 당시 세상이 지금 우리사회보다 더 타락했을 것 같지 않아서다. 


하느님이 불편부당이신 분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신다면 이럴 수 있을까.


그래서 난 카인의 다음 선언에 격하게 공감한다.


한마디로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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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2-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지요? 저도 열다섯살 때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그래서 아마도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더 교회를 싫어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제겐 못볼 꼴 많이 보여준 데가 교회거든요. 그런참에 이 책은 진짜 재미있게 읽히더라고요. 물론 리뷰에 언급하셨듯이, 종교인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한 소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게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마태우스 2016-02-16 19:25   좋아요 0 | URL
오 님도 갔다오셨군요. 아무래도 경험해보면 더 싫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엄마가 강제로 끌고 성당에 가지 않았다면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저도 참 재미있게 봤어요. 요즘 유행하는 시간여행도 나오고요.

로자 2016-02-1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저희 아이들이 위의 마태우스님 댓글같은 말을 한답니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연대에 대해 몸에 배이게 해 줄 수 있는건 종교가 가장 쉽지 않나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저의 그런 마음이 아이들에게는 강요와 협박으로만 느껴졌던 것도 같아요. 강요는 딱 초등학생때까지만 통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때는 복사도 하고 그랬는데...마태우스님도 복사하셨지요?

궁금한 소설이었는데 마태우스님 리뷰를 보니 꼭 보고싶네요.

마태우스 2016-02-16 22: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젠 안헷갈리는 로자님^^ 사실 강요를 안했다고 해도 제가 성당에 갔을까 그것도 의문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릴 적부터 독실한 신자가 되는 경우도 많은 걸 보면 제가 그냥 고집이 센 것도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복사가 뭐지요?? 혹시 유아영세를 말씀하신 거라면, 당연히 했지요. 제가 네살 때 성당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면서 힘들어했던 기억, 아직도 난답니다 글구 소설은 재밌습니다

로자 2016-02-16 23:44   좋아요 0 | URL
복사는 미사때 사제 옆에서 사제를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해요.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흰옷 입고 꾸벅꾸벅 졸다가 종치는 타이밍 놓치고 그러잖아요 ㅎㅎ

마태우스 2016-02-18 09:22   좋아요 0 | URL
아 그거요. 제가 종교는 안믿어도 그건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복사하는 애들 보면 다들 귀엽게 생겼더라고요. 전 그래서 안된 게 아닐까요...^^

별족 2016-02-17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를 읽었는데, 기독교의 신은 `편애하는 신`이죠.
`편애하는 신`그러니까, 차별하는 신께 차별적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이 기독교도,라고 생각해요.ㅋㅋ

마태우스 2016-02-18 09:21   좋아요 0 | URL
멋진 말이네요 차별적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니, 모든 게 다 이해됩니다

transient-guest 2016-02-23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당시엔 성당에 마태우스님의 눈을 확 뜨게 해줄 어여쁜 여자동무가 없었나봅니다.ㅎㅎ 신앙은 믿음의 영역이니 하나씩 따지면 사실 답이 없더라구요. 의심이 별로 없는 저는 잘 듣는대로 믿어왔는데, 새삼 교회가 아닌 성당을 다녔다는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그래도 배우고 의심하고 따질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막히지 않았으니까요. 지인들 중 교회다니는 분들을 보면, 네, 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6-02-23 09:34   좋아요 0 | URL
네 제가 그때 절두산성당에 다녔는데요, 다 어른이었고 저만 어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또 제가 이성에 눈을 안뜰 때라-초등 전이었거든요-이끌어줄 여자동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글구 전 나름대로 신을 믿고 기도도 합니다. 단지 종교기관을 다니지 않을 뿐이죠. 신자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위안을 얻곤 합니다.
 
고백 그리고 고발 -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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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리고 고발> (이하 고발)이란 책의 부제목은 ‘대한민국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이다.


책을 읽기 전엔 ‘고발’이 국가권력 등에 의해 희생된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잔뜩 담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기대와 달리 ‘고발’은 H건설과 그에 의해 토지를 수용당한 기을호 씨,

그리고 기을호 씨를 대신해 H건설과 싸운 안천식 변호사의 얘기가 전부다.

“H건설은 시가 40억이 넘는 토지를 9억4천만원만 공탁하고 빼앗아갔고,

손해배상과 소송비용 명목으로 공탁금에서 3억8천만원을 회수해 갔습니다.” (387쪽)

몇 백억, 심지어 몇 조에 이르는 돈이 몇몇 이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는 현실에서

이깟 40억이 뭐 대수일까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10년에 걸친 이 소송은 법이 힘있는 자들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 줬는데,

억울한 사연이 여럿 나오는 대신 한 사건만 적나라하게 기술된 탓에

내가 마치 기을호 씨가 된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1) 문제의 요지는 H건설이 땅주인 모르게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점.

도장도 막도장이고 계좌번호도 이전에 해지된 것인만큼 계약서는 위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A라는 증인이 “땅주인이 직접 계약하는 걸 봤다. 막도장도 그가 직접 건네줬고, 계좌번호도 불러줬다.”라고 증언했다.

이는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H건설은 승리했다.

 

(A는 H건설의 업무를 대행하는 이해관계인이었지만,

 

재판부는 그 점에 관대했다).

 

 

2)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다른 이에 의해 A의 증언이 위증이었고, A는 전혀 그 광경을 본 적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A는 결국 위증죄로 처벌까지 받았지만, 재판 결과는 다시 H건설 승리였다.

‘증인 A가 거짓증언한 사실이 있더라도, 이 사건 계약서가 위조되었다는 증거로 부족하다.” (155쪽)는 게 재판부가 H건설의 승리를 선언한 이유였다.

 

3) 안천식 변호사는 더더욱 이 사건에 매달리고,

결국 계약을 위조하는 데 가담한 증인 C를 찾아낸다.

계약서에 쓰인 필체가 바로 증인 C의 것으로, 그는 땅주인을 만난 적도 없고

그냥 자기 사무실에서 시키는대로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이쯤되면 재판결과가 바뀔 만도 하지만, 상대측은 증인 C의 정보를 알아내 그에게 연락을 취했고,

결국 C는 자신이 안천식 변호사 앞에서 말한 것과 정반대의 진술을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안변호사가 증거로 내민 녹취록과도 완전히 배치되는 말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증언C의 번복된 진술을 단서로 계약서가 진짜라며 다시 H건설의 손을 들어줬다.

 

읽는 나도 분통이 터지는데, 당사자인 기을호 씨와 안변호사는 어땠을까 싶다.

심지어 안변호사는 담당검사에게 불려가 “왜 이 사건에 이렇게 집착하느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핀잔까지 들었다는데,

변호사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뛰는 게 야단맞을 일인지 잘 모르겠다.

 

거듭된 패배에도 안변호사는 포기하지 않고 이 사건에 매달렸고,

결국 18번의 재판을 모두 졌다.

이게 H건설이라는 강한 상대를 만난 탓인지,

안변호사가 공고 출신에 SKY가 아닌 대학을 나온 그의 경력 탓인지는 모르겠다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재판은 절대로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힘이 없다면, 되도록 법정에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사는 게 진리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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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6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6-02-16 15:56   좋아요 0 | URL
글게 말입니다 자본이 최고인 시대가 왔지요. 대표적인 게 바로 S그룹이고, 법조인들은 S에게는 까빡 죽지요. 안그런 법조인이 30%만 되면 좋을텐데, 과연 얼마나 될까요.

뷰리풀말미잘 2016-02-1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승률은 이순신인데 하는짓은 원균이로군요!

마태우스 2016-02-16 15:56   좋아요 0 | URL
멋진 비유입니다^^

2016-02-16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lummii 2016-02-16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변호사님이 얼마나 분통터지셨으면 책까지 내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화이트칼라 범죄나 다름없죠

마태우스 2016-02-16 20:50   좋아요 0 | URL
책으로 내지 않았으면 절대 모를 뻔했으니, 이런 책은 자주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님도 읽으셨다니 반갑습니다
 















내가 나왔던 <어쩌다 어른>을 보던 아내가 말한다.


"너 강의 많이 늘었다?"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벌써 몇년짼데."



강의 하면 우선 떠오르는 날이 2008년이다.


광명에 있는 하얀중학교에서 듣보잡이던-칼럼도 쓰지 않던 때였으니-날 부른 것.


당시 난 학교 강의도 제대로 못하는 어설픈 교수였고,


땅바닥만 보고 강의를 해 강의평가에서 "학생들하고 눈 좀 맞춰 주세요"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강의준비 땜시 다음날 바쁘다고 했을 때 어떤 학생은 날더러 이런 말도 했다.


"선생님도 강의준비 하세요?"


그런데 하얀중학교에선 왜 날 불렀을까.


잘 모르겠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거길 간 뒤


교문에 걸린, 내 이름이 박힌 플래카드를 사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강연은 제법 성공이었다. 


강의준비도 열심히 했고, 기생충 샘플까지 챙겨간 정성에 학생들은 감동했다.


평소 듣기 힘든 기생충이란 소재도 흥미를 유발했으리라.



이듬해엔 KBS의 '스타과학자 특강'에서 강의를 한다.


기생충에 대한 저서를 검색했더니 내가 나와서 섭외를 했다는데,


같이 강의한 정재승. 이소연 (하나는 또 누구지?)에 비해 내 이름값은 너무도 처졌지만,


최소한 재미 면에서는 다른 분들보다 나았던 것 같다. 


날 기분 좋게 했던 학부모의 말, 


"보통 이런 강의는 학부모나 아이들 중 한명만 만족하는데,


선생님 강의는 둘 다 만족시켰어요."


그러고보면 그때부터 난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재미라고 생각하고


그것만을 추구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800명의 관객 앞에서 긴장을 하는 바람에


작가가 "너무 빨라요"라며 연방 스케치북을 드는 걸 보지 못했고,


그 바람에 내게 주어진 50분 중 겨우 30분만 쓴 채 강의를 마치는 대형사고를 쳤다.


(결국 모자란 20분은 내 실험실에서 추가로 촬영을 해야 했다).


그 강의가 방영되던 날엔 제법 흥분했지만, 


평일 낮이라 시청률은 0.5%도 안됐고,


강의가 TV로 나가면 내가 스타가 될 거라는 기대는 무산됐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날은 2012년 8월의 어느 날이다.


모 컨설팅회사에서 내게 삼성전자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달라고 했다.


위에서 언급한 강의 이후 몇 번의 강의를 하긴 했지만


기생충 이외의 주제로 강의를 하긴 내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저서를 갖자'는 주제의 내 강의는 몇번의 웃음을 주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부끄러웠고,


강연섭외를 한 컨설팅회사 직원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는 다시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도 외부강연을 하면서 살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좀 미안하긴 했지만 그리 아쉽진 않았는데,


그 이듬해 갑자기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강의가 쇄도하기 시작한다.


강의수준은 들쭉날쭉 그 자체였지만, 


강의도 하면 할수록 늘기 마련이고,


강의가 끝날 때마다 처절한 반성을 통해 문제점을 분석하는 노력도 더해져서


2014년에는 그래도 제법 알려진 강사가 된다.


한번 부른 곳에서 다시 날 부르고,


다른 곳에 추천해줘서 다시 날 부르는 걸 보면서 


"아 내가 이제 강의로 자리를 잡았구나"는 생각을 했는데,


내 삶이 내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도 대충 그때부터다.


특히 작년 한해, 특히 10월부터 막판 3개월은


"이건 사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강연만 다녔다.


강의 횟수가 많아지면 질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늘 불안해했고,


그게 나로 하여금 매번 강의록을 고치게 만든 이유였다.


그 시절엔 거의 매일, 강의록을 손보다 새벽 3시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를 회한의 눈으로 바라보지만,


오늘 경희대에서 있었던 '그랜드마스터 클래스 빅 퀘스쳔 2016'에서 강연을 하는 기회를 얻은 걸 보면


지난 시절이 헛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외수, 이어령, 더글라스 케네디 등 기라성같은 분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진 않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이제 난 2012년에 그랬던 것처럼 섭외자의 얼굴을 굳게 만드는 강의는 하지 않으며,


수많은 관객 앞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내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 


이거 하나는 뿌듯한 일이지만, 슬픈 것도 있다.


2008년 하얀중 교사가 "강사료는 10만원이다"라고 말했을 때,


난 "그 돈으로 아이들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라. 난 안받아도 된다"라고 답했다.


규정상 안된다고 하기에 난 강의 중간에 퀴즈를 내서 내 돈으로 산 도서상품권을 상품으로 나눠줬다.


지금보다 돈은 없었지만 돈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던 그때의 난, 안타깝게도 죽었다.


지금의 난 강의가 들어올 때마다 "강사료가 얼마일까?"를 궁금해 하는 인간이 됐고,


심지어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담당자: 여기는 xx도 xx인데요, 강의 좀 부탁드리려고요.


나: 거기 너무 멀잖아요. 안하면 안될...


담당자: 그 대신 저희가 강사료를 많이 드려요.


나: 아유, 제가 당연히 가야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 스스로를 위안해 보지만,


가끔은 타락한 내가 싫다.


변한 건 어쩔 수 없으니 최소한 이건 지키려고 한다.


날 불러준 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강의를 하자는 것.


이것만 지키면, 그래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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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2-0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마태우스님!
오랜 경험과 진심어린 노력 덕분이예요. 박수 보냅니다. 강의 꼭 듣고 싶은데 부산에 올 기회는 아직인지요?

마태우스 2016-02-01 10:02   좋아요 0 | URL
앗 프레이아님... 부산이요. 글고보니 부산의 도서관에서 불러주신 적이 없는 것 같네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stella.K 2016-02-01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솔직담백한 글입니다. 사람의 성공은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마태님께 배웁니다. 훌륭하십니다.^^

마태우스 2016-02-01 10:03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경우엔 운이 결정적으로 따랐어요. 방송이 아니었다면 이런 인지도는 얻지 못했을 거니깐요.

살리미 2016-02-01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님 책 리뷰인 줄 알았는데... ㅎㅎ
어쩌다 어른에서 하신 강의 잘 봤습니다. 시간 알림까지 해놓고 챙겨봤어요^^
그랜드마스터 클래스 빅 퀘스쳔 2016은 라인업이 정말 어마어마 하네요^^ 당당히 한자리 차지하신 것 축하드려요^^ 이젠 프로의 마인드로 당당히 강사료를 요구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보여지는데요?? ㅎㅎ

마태우스 2016-02-01 10:04   좋아요 0 | URL
오로라님 늘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빅퀘스천 강사진 정말 끝내주죠? 강연섭외 때 명단 얘기하는데, 제가 거기 왜 껴야 하는지 의아했답니다. 작년엔 알랭 드 보통이 왔다니깐요 글쎄. 글구...강사료 부분은, 제가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책읽는나무 2016-02-01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어쩌다 어른`에서 강의하시는 모습 며칠 전에 보았어요^^
신랑이랑 함께 보고 있어서 마태우스님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기생충 박사님이라고 책 내신 분이라고 일러주니 알더라구요
이젠 정말 서서히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갑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고지가 눈 앞이에요^^
강사료 이야기에 빵 터졌지만 그래도 먼 곳 마다않고 아이들이 불러주는 곳을 쌩~ 알라디너들의 이야기에서 접한 모습들을 알고 있어 괜한 너스레를 떠시는 것으로 보여 더욱 인간적으로 와 닿아요!
부자가 되셔서 좋은 일 더 많이 하셨음 좋겠어요^^

마태우스 2016-02-01 10: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책나무님. 고지가 눈앞이란 말에 웃음짓게 되네요. 근데 제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자꾸 생각해보게 됩니다. 책 빨랑 써야 하는데 강의땜시 한줄도 못쓰고 있거든요. 강의를 줄이고 글쓰기를 열심히 하는 게 올해의 목표예요! 마지막 줄, 명심할게요

moonnight 2016-02-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점점 더 범접하기 어려운 분이 되어가시는군요. +_+;;; 애쓰시는 만큼 대가를 받는 건데 타락했다고 자책하시다니. 역시 마태우스님 답습니다. ^^ 저렇게 어마무시한 분들 사이에 당당히 자리하시니 괜히 제가 막 자랑스러워요. 건강 유의하시고 올해도 홧팅입니다. ^^

마태우스 2016-02-04 06:43   좋아요 0 | URL
그럴 리가요 달밤님을 알던 그때랑 별로 달라진 건 없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산다는 것 정도요....? 암튼 달밤님도 올해 홧팅.

samadhi(眞我) 2016-02-0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향신문 칼럼, 서민과사회를 즐겨봤어요. 어느 날 알라딘 서평을 쓰신 걸 알고 얼마나 반갑던지요. 어린 시절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 눈물겨운 노력을 했었다는 칼럼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강연자가 되는 과정에서 다시 그때 그 글을 읽는 기분이 드네요. 축하합니다.

마태우스 2016-02-04 06: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처음은 뭐든지 다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남보다 기회를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해요. 감사드릴 일이고, 제가 봉사도 열심히 해야 할 이유지요.

Mephistopheles 2016-02-0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 어른 덕분에 유년시절의 마태님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마태우스 2016-02-04 06:40   좋아요 0 | URL
유년 때 메피님 만났으면 좋았을 뻔했어요 그때 제게 좋은 친구가 돼주셧을 거라서요.

강가 2016-02-03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이 빅 퀘스천 강의에 다녀온 얘기를 해 줬는데, 정말 고급지단 느낌과ㅎ 못간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강의자 명단에 작가님이 있는것을 보니 제가 더 기뻤답니다.^^ 지난해 정말 감사드렸구요. 이젠 정말 모시기 어려운 저 높은 곳으로....^^. 하지만 교수님은 여전히 따듯한 마음과 초심을 간직하시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

마태우스 2016-02-04 06:39   좋아요 0 | URL
호홋 작가님이라뇨 제가 아직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암튼...초심을 잃지 않을게요 모시기 어렵다, 이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ㅠㅠ

인선영 2016-02-09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배드립니다.. 꾸벅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어른이라서요
앞으로도 많이 배울게요 멋지게 살아주세요
강의료 경험에서 `타락` 이란 말을 쓰는 이 민감함과 순수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책 덕분인가요? 독서의 중요성 다시 깨닫습니다 ^^ 명강의도 역시 성실함의 산물이었군요 올해 교수님 본받아서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마태우스 2016-02-13 14:06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 죄송해요 전에 인선생님을 강의 후 만난 감격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글구 타락이란 단어에서 순수함을 느끼셨다니, 선생님이야말로 순수의 결정체세요! 암튼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꾸벅

순수상자 2016-02-09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서민적 글쓰기`를 읽은 후, 알라딘 블로그의 문을 새로 연 1인입니다. 선생님의 글쓰기 분투기를 밑줄 긋고 직접 써가며 읽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나오는 `사랑을 무기로, 유머를 방패로`라는 구절이 실생활에서 이렇게 표현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발판 삼아 열심히 글 쓰는 시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태우스 2016-02-13 14:06   좋아요 0 | URL
네 순수상자님도 조만간 꼭 저서 내시길 응원하겠습니다. 베르베르가 아주 멋진 말을 했네요. 한때 좋아했던 작가인데 지금은..ㅜㅜ

2016-02-11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3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4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스타벅스보다 작은 카페가 좋다 - 130평 스타벅스보다 수익률 높은 13평 작은 카페 운영 노하우
조성민 지음 / 라온북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1월 초, 대전의 한 카페에서 강의가 있었다.


카페허밍이란 이름의 그 카페에선 매주 토요일마다 독서모임을 하는데,

가끔씩 저자를 불러 강연을 시킨단다.


들어가자마자 놀란 건 카페가 생각보다 좁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13).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좁은 카페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강의를 듣는 장면이었다.


공간이란 정말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구나,는 걸 새삼 느꼈다.

 



무료강연이라 뭔가를 받으리란 기대는 안했지만,


주최측에선 내게 푸짐한 선물을 한아름 안겨줬고,


선물 중 하나인 성심당튀김소보로는 그 후 일주일간 내 간식을 책임져 줬다.


하지만 인상적인 선물은 카페 허밍의 주인이 선물한 책이었다.


그 자신이 쓴 <나는 스타벅스보다 작은 카페가 좋다>라는 책으로,


여기엔 자신이 카페를 창업해 자리를 잡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그의 철학이었다.


당신이 카페 주인이라면, 손님 세 명이 들어와 음료를 한 잔만 시키는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나 같으면 안된다며 냉랭한 표정을 지었겠지만,


저자는 그럴 때 빈 컵 두 개를 함께 가지고 간 뒤 고객이 보는 앞에서 


가득 든 커피를 빈 잔에 나눠서 세 잔으로 만들어드린다” (149)고 한다.


아니 왜? 가뜩이나 테이블도 적은데,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만약 한 명의 손님만 왔다고 해도 어차피 테이블 한 개는 사용할 것입니다.


즉 세 명이 와서 커피 한 잔을 시키나, 혼자 와서 커피 한 잔을 시키나


테이블 단가는 동일합니다.“ (150)


이와 비슷한 경우가 또 있다.


외부음식을 가져와서 먹는 건 대개 눈치가 보이는 일,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또 다르다.


빵과 커피를 같이 먹고 싶은 고객이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이 고객은 


맛있는 빵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아마 빵집에 가서 먹고싶은 빵을 사면서 커피도 같이 살 것입니다


작은 카페 입장에선 외부음식 반입금지 제도로 인해 커피 고객을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189)


쿠폰을 카페에서 관리해 주고 독서모임을 여는 등 카페를 동네의 문화공간으로 만든 것도 카페가 자리잡는 데 도움이 됐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저자의 철학이야말로 카페 성공의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다.

 


글도 잘 쓰고 설명도 자세하다보니 내가 직접 카페를 만드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는데,


카페에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나처럼 그런 꿈이 없는 사람까지 카페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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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meLove 2016-01-27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를 운영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낭만적인 소리이겠지만
솔직히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겐
카페 본연의 업무보다는
동호회와 같은 부수적인 일을 더 열심히 해야만
살아남는것 같은 인상을 주는 책이라서
좀 비현실적인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마태우스 2016-01-27 22:06   좋아요 0 | URL
아 네..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 카페의 성공비결은 한번 온 사람은 평생회원으로 관리하는 철저한 프로의식이라고 생각됩니다. 독서모임을 하게 된 건 자리잡고 난 뒤인 것 같아요 글구 지금 바리스타 네명이서 교대로 일해서 그리 오랜 시간 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강가 2016-01-2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와 문화...철학이 있는 작은 카페! 멋있네요. 저도 커피에 관심 많은데,,,꼭 읽어 보겠습니다. ^^

마태우스 2016-01-27 22:06   좋아요 0 | URL
커피와 책, 이렇게 놓고보니 잘 어울리더라고요. 암튼 멋진 카페입다

stella.K 2016-01-2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심당을 성상담으로 잘못 봤다능...ㅠㅋㅋ

어느 까펜지 정말 영업을 잘 하는군요.
정말 까페에서 외부음식 반입 금지 같은 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자기네 커피 팔아주는데...
이책 좀 관심이 가네요. 카페할 건 아니지만.^^

마태우스 2016-01-27 22:07   좋아요 0 | URL
오오 성상담...^^ 저도 잘 몰랐는데 이 책 읽으니 당장의 이익보단 멀리 보는 게 중요하단 걸 깨닫게 되더군요.

Mephistopheles 2016-01-2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스타벅스에서 족발을 시켜먹는 어떤 손님을 봐버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카노와 족발의 궁합.....먹어봐야 알겠군요....

마태우스 2016-01-27 22:08   좋아요 0 | URL
으아...메피님은 어떻게 그런 장면을 보셨나요^^ 족발은 좀 아니네요 진짜.

책한엄마 2016-01-2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후에 꼭 성공담으로 후속 책이 나오길-각박한 현실 생활에 아직 따뜻함이 남아있다는 증거가 됐음 좋겠어요.

마태우스 2016-01-27 22:09   좋아요 1 | URL
문화사업도 하고 그게 또 사업이 잘되는 촉진제가 되고, 이런 거 멋지다고 생각해요. 글도 잘 쓰더라고요 후속책도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세실 2016-01-2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능기부도 하시는 참 멋진 마태우스님^^
카페에서 마태우스님을 공짜로 초청하시다니 그 사장님 포스가 흐음!

마태우스 2016-01-27 22:09   좋아요 0 | URL
어마나 알아주시니 감사요. 재능기부한다, 이런 거 자랑하려는 마음도 있었는데 하하하.

Conan 2016-01-3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심당 튀김 소보로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2월부터 대전에 있는 대학 조리학과에 입학하게된 아들녀석이 면접보러 다니면서 사와서 먹어봤거든요~ 아주 맛있더라구요^^

마태우스 2016-02-01 00:15   좋아요 0 | URL
네 그 빵 진짜 맛있어요. 아침 원래 안먹는데 그거 먹고 출근하면 오전이 아주뿌듯하더라고요.유명하다고 다 맛난 건 아니지만 그건 이름값을 하더라고요.

moonnight 2016-02-0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바쁜 와중에 무료강연까지 하시고. +_+; 존경존경합니다. ^^
 
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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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을 할 때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언급한다.


읽으면서 내내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 그 책이야말로 소설에 재미를 붙이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 책의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하지만 모든 작품이 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담보하는 미야베 미유키와 달리

히가시노의 작품들은 다소 편차가 있는데, 


<라플라스의 마녀>는 아쉽게도 범작이었다.



이 책엔 내가 좋아하는 소재인 초능력자가 나온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없었던 건, 그 능력을 쓰는 장면장면들이 그다지 공감가지 않아서였다.


초능력 소녀 마도카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계산을 엄청나게 잘해, 비가 언제쯤 올 것인지, 볼링공이 핀 몇 개를 쓰러뜨릴 것인지도 다 예측할 수 있고,


인형뽑기 같은 건 그야말로 도사다.


이거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다음은 좀 너무하다.


사망사건 조사차 나온 아오에 교수가 여관 로비에 앉아 있는 마도카를 관찰하는 장면인데,


마도카는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앉아 있는 중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아이가 페트병을 넘어뜨렸고, 그 액체가 스마트폰 쪽으로 흐른다. 


아오에는 그 여학생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테이블에 내려놓은 


스마트폰을 20센티미터 쯤 옆으로 옮겼다. 딱히 다급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액체가 테이블에 퍼지고 있었다....저러다가 자칫 스마트폰이 젖어버릴 것 같아 


아오에가 도리어 속이 탔다. 하지만 그 여학생의 스마트폰은 무사했다. 


닿기 바로 직전에 액체의 흐름이 멈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학생이 미리 조금 옮겨두지 않았다면 분명 젖었을 터였다.” (81-82쪽)


그러니까 그 여학생은 페트병의 액체가 어느 위치까지 도달할 것인지를 미리 예측했고, 


딱 젖지 않을 만큼만 스마트폰을 옮긴 거였다. 


이 장면은 내게 큰 거부감을 줬다.


이왕 옮길 것, 좀 여유 있게 옮기면 덧나나?


꼭 이런 식으로 자신의 초능력을 과시해야 할까?


하지만 마도카는 시종일관 이런 식이고, 이에 호기심이 동한 아오에가 꼬치꼬치 물어도


쌀쌀맞게 군다. 


이런 인성의 소유자가 초능력을 가져서 뭐할 것인가, 하는 한탄이 나왔다.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못하니 소설의 재미가 떨어지기 마련,


“가슴이 철렁할 만큼 미인” (283쪽)이라는 여인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소설에 애정을 가져보려 했지만,


그 여자는 거의 활약이 없다시피하다.


마도카와 또 다른 남자 초능력자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뒤늦게 밝혀진 온천 살인사건의 비결이 감탄을 자아내는 것도 아닌 바,


<라플라스의 마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인 내게 깊은 실망만을 안겨줬다.


히가시노님, 다음 작품에서 명성을 만회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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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16-01-27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정말 공감안가는 초능력자네요

마태우스 2016-01-27 22:10   좋아요 0 | URL
그죠? 그 능력을 인형뽑기 같은 데 쓰고 말입니다^^ 스파이더맨을 봐서 그런지 초능력자는 뭔가 좀 공헌해야 한다, 이런 고리타분한 마인드가 있어요 제가.

stella.K 2016-01-2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작가죠. 내놓은 작품도 많고.
유명한 작가라도 항상 대단한 작품은 내놓을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진짜 그 작가가 초능력자 아니겠습니까?
김수현 작가도 유명하긴 하지만 항상 성공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성실하게 쓴다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태우스 2016-01-27 22:10   좋아요 0 | URL
하긴 그래요. 그간 이 작가님 덕분에 즐거웠던 걸 생각하며 아쉬움을 날려버리려고요. 저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Conan 2016-01-3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놓고 아직 안읽었습니다만 말씀 하신대로 글마다 편차가 있는것 같습니다~ 최근에 패러독스 13을 읽었는데요 조금 작위적이긴 했지만 제겐 좋았거든요 이 책도 곧 읽어봐야겠습니다~

마태우스 2016-02-01 00: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패러독스13은 제가 모르던 책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moonnight 2016-02-0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 (작가는 신경도 안 쓰겠지만;;;) 팬이 아닌 사람도 홀딱 반할 작품이 나오면 고지 부탁드려요. 호호 ^^

마태우스 2016-02-16 23:30   좋아요 0 | URL
앗 님의 주옥같은 댓글에 답을 안드렸네요ㅠ 죄송합니다. 홀딱 반할 작품 나오면 말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