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역사판 - 어느 까칠한 역사교수의 일지선 놀이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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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엔 추상같은 분이셨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유머가 넘치셨죠. 삶에서는 앎과 실천의 합일을 강조하셨고, 항상 솔선수범하셨습니다. 몸이 운동해야 건강하듯 세상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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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를 위한 변명, 군주론 나의 고전 읽기 23
조한욱 지음, 니콜로 마키아벨리 원작 / 미래엔아이세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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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문턱에도 가지 못했지만, 인생이라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 대학에서는 죽을 때까지 졸업이란 없다.” 덩샤오핑은 1997219,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오늘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쳤다. 그는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지만 가난 = 사회주의라는 등식을 거부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이런 생각은 그가 집권한 후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으로 상징되는 실용주의적 개혁·개방 노선으로 구체화되었다. 덩샤오핑은 바로 그 이념적 유연성 때문에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강요받았지만 굳은 의지로 끊임없이 분투한 결과 마침내 대권을 차지했고, 마오쩌둥이 창업한 신()중국을 수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 작은 거인으로 우뚝 섰다.
   15~16세기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한 인문주의자도 사분오열된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실용주의적 성격이 강한 정치 지침서를 썼다. 그 책의 제목은 <군주론>이며, 저자는 우리가 익히 들어본 니콜로 마키아벨리이다. 공화정 시기의 피렌체에서 공직자로 복무했고, 공화정을 이상적인 정치 체제로 여겨왔던 그가 당시 저술하고 있던 <로마사 논고>를 잠시 뒤로 하고 <군주론>을 집필해 피렌체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은 메디치 가문에 헌정한 것은 철저한 현실적 입장에서 비롯된 일종의 예외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군주론>은 소위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출판 당시에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16세기 로마 교황청은 <군주론>을 포함한 그의 저서들을 금서 목록에 올리는 등 혹독하게 탄압하였다. 왜냐하면 <군주론>에서는 극심한 경쟁 속에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 군주는 필요에 따라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적 가르침에 전적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로마와 적대관계였던 북유럽 개신교 국가들은 그가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배척했다. 자신의 바람과는 별개로 마키아벨리는 대표적 학술서 <로마사 논고>보다 소책자 <군주론>이 훨씬 유명해지는 바람에 냉혈한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형화된 믿음으로 굳어졌다. 프로이센의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2세는 <() 마키아벨리론>에서 군주는 국가 제일의 공복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18세기 유럽에서 마키아벨리가 사악함과 부도덕함의 옹호자로 인식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교활하고 냉혹한 통치자를 언급할 때 으레 마키아벨리를 인용한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혼란스러운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군주가 필요함을 역설한 인물로만 다뤄진다. 심지어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극우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대놓고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책을 썼다. 아마 그녀는 자신이 절친이라 생각하는 마키아벨리를 내세워 일본이 자행했던 제국주의적 침략과 최근 아베 정권이 추구하는 군사 대국화를 효용성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고 싶었나보다.

   앞에서 열거한 사례들은 모두 마키아벨리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현실주의 정치 이론의 신봉자였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현재 서평을 쓰고 있는 나도 마키아벨리와 권모술수를 조건 반사적으로 묶곤 했다. 조한욱 교수가 쓴 <마키아벨리를 위한 변명 군주론>(이하 변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변명에 담겨있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이미지는 모두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파생된 산물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가 남긴 저작들을 그가 처했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다양한 층위의 맥락에 비추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맥락을 염두에 두고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만 해박한 인문주의자, 피렌체의 공직자, 공화주의자, 이탈리아의 통일을 염원하던 애국자였던 마키아벨리의 맨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논점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유려한 필체와 서양사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무기로 마키아벨리의 생애, <군주론>의 집필 동기와 주요 내용, 시사점을 제시하고 이를 총합해 마키아벨리의 실체를 복원해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문득 스무 살에 받았던 지적 충격이 새삼 떠오른다. 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이란 고정불변한 것이며, 다른 해석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그저 여러 사실들의 순서만 잘 기억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랬던 나는 대학교 1학년 2학기에 수강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자의 수업에서 역사적 사실은 고정불변하지 않으며, 사료 또한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지 않기 때문에 행간에 담긴 맥락을 고려하면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배웠다.

   텍스트에 대한 맥락적 읽기. 역사를 공부하면서 배운 내용의 정수라 할 수 있겠다. 졸업 후 역사 교사가 된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력을 신장시켜주고자 했지만, 이러한 의무감(?)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뇌릿속에서 사라져갔다. 고등학교 세계사를 3년 연속으로 가르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은 했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변명을 읽었다. 사실, 우리가 마키아벨리를 오해하고 있다는 점은 래리 고닉이 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세계사를 통해 접한 바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마키아벨리에 대한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다는 점을 변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 정말 공부에는 끝이 없다. 그동안 나태하게 살아왔던 나에게 변명은 어깨를 내리쳐 잠에서 깨워주는 죽비와 같은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한편, ‘마키아벨리를 위한 변명이란 제목은 책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변명이라는 단어는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그 까닭을 밝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변명에는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이라는 의미도 담겨있지만, 만약 제목을 변론으로 했다면 독자들에게 책이 풍기는 뉘앙스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내비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세계사를 가르치다보면 바뀐 지 오래된 개념들이 아직도 인습의 권위에 기대어 통용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비단 한국사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고정 관념이 쌓은 철옹성을 비판적 사고에 기초한 맥락적 읽기로 허물어버릴 수 있다면, 우리의 역사적 지평은 한 층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격동의 이탈리아 반도에서 공공선의 원리에 입각한 이상적 공화정을 지향했던 애국주의자 마키아벨리의 참 모습을 마주하고 싶거나, 우리가 무심코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들을 깨버리는 과정에서 지적 희열을 경험하고픈 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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