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는 끊임없이 내게 성당을 다닐 것을 요구했지만,


내 소원은 “빨리 엄마보다 힘이 세져서 성당에 끌려가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난 초등학교 4학년쯤 됐을 때 잃었던 일요일을 찾을 수 있었다 


(힘은 좀 약했지만, 달리기를 엄마보다 잘했다).


그렇게까지 성당이 싫었던 이유는 물론 ‘귀찮아서’였지만,


하느님에 대해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바로 노아의 방주로, 도대체 하느님은 왜 노아 가족만 남긴 채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엾은 동물들까지 모두 없애 버렸느냐는 점이었다.


스스로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나 관대함 같은 건 없었던 것일까,라는 회의는


철이 들면서 점점 커져만 갔다.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은 바로 이런 회의를 다루고 있다.


명 소설가답게 저자는 카인이 아벨을 죽인 후 정처없이 떠도는 와중에 


만나는 사건들을 토대로 자신의 회의감을 독자에게 전달했는데,


회의론자인 나로선 이 책이 흥미롭게 읽혔지만,


신실한 종교인이라면 읽기 거북한 순간이 꽤 자주 있을 것 같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이때 아브라함에게 논리적이고,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인간적인 반응이라면 


여호와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것이었을 테지만” (94쪽)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했지요. 


여호와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데 왜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신뢰해야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163쪽)


-여호와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 유일하게 그 말을 믿은 롯은 도시를 


떠나라는 명을 받는다. 그런데 롯은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을 어겨 소금기둥이 된다.


누구도 왜 그녀가 그런 벌을 받아야 했는지 그 이후로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호기심을 치명적인 죄로서 벌하고 싶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지능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117쪽)


-어릴 적 들은 노아의 방주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욥의 이야기였다. 

욥은 하느님께 늘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은 악마와 내기를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욥이 하느님을 믿을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돈과 소유를 모두 잃는 벌을 받을 참이라니, 


다른 사람들은 여호와가 의롭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163쪽)



마지막으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해보자. 방주를 보면서 카인은 묻는다. 


정말로 지금 인류를 멸하고 나면, 그 다음에 나오는 인류는 똑같은 오류, 


똑같은 유혹, 똑같은 어리석음과 범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189쪽)


이 대목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이, 그 당시 세상이 지금 우리사회보다 더 타락했을 것 같지 않아서다. 


하느님이 불편부당이신 분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신다면 이럴 수 있을까.


그래서 난 카인의 다음 선언에 격하게 공감한다.


한마디로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163쪽)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6-02-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지요? 저도 열다섯살 때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그래서 아마도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더 교회를 싫어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제겐 못볼 꼴 많이 보여준 데가 교회거든요. 그런참에 이 책은 진짜 재미있게 읽히더라고요. 물론 리뷰에 언급하셨듯이, 종교인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한 소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게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마태우스 2016-02-16 19:25   좋아요 0 | URL
오 님도 갔다오셨군요. 아무래도 경험해보면 더 싫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엄마가 강제로 끌고 성당에 가지 않았다면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저도 참 재미있게 봤어요. 요즘 유행하는 시간여행도 나오고요.

로자 2016-02-1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저희 아이들이 위의 마태우스님 댓글같은 말을 한답니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연대에 대해 몸에 배이게 해 줄 수 있는건 종교가 가장 쉽지 않나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저의 그런 마음이 아이들에게는 강요와 협박으로만 느껴졌던 것도 같아요. 강요는 딱 초등학생때까지만 통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때는 복사도 하고 그랬는데...마태우스님도 복사하셨지요?

궁금한 소설이었는데 마태우스님 리뷰를 보니 꼭 보고싶네요.

마태우스 2016-02-16 22: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젠 안헷갈리는 로자님^^ 사실 강요를 안했다고 해도 제가 성당에 갔을까 그것도 의문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릴 적부터 독실한 신자가 되는 경우도 많은 걸 보면 제가 그냥 고집이 센 것도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복사가 뭐지요?? 혹시 유아영세를 말씀하신 거라면, 당연히 했지요. 제가 네살 때 성당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면서 힘들어했던 기억, 아직도 난답니다 글구 소설은 재밌습니다

로자 2016-02-16 23:44   좋아요 0 | URL
복사는 미사때 사제 옆에서 사제를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해요.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흰옷 입고 꾸벅꾸벅 졸다가 종치는 타이밍 놓치고 그러잖아요 ㅎㅎ

마태우스 2016-02-18 09:22   좋아요 0 | URL
아 그거요. 제가 종교는 안믿어도 그건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복사하는 애들 보면 다들 귀엽게 생겼더라고요. 전 그래서 안된 게 아닐까요...^^

별족 2016-02-17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를 읽었는데, 기독교의 신은 `편애하는 신`이죠.
`편애하는 신`그러니까, 차별하는 신께 차별적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이 기독교도,라고 생각해요.ㅋㅋ

마태우스 2016-02-18 09:21   좋아요 0 | URL
멋진 말이네요 차별적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니, 모든 게 다 이해됩니다

transient-guest 2016-02-23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당시엔 성당에 마태우스님의 눈을 확 뜨게 해줄 어여쁜 여자동무가 없었나봅니다.ㅎㅎ 신앙은 믿음의 영역이니 하나씩 따지면 사실 답이 없더라구요. 의심이 별로 없는 저는 잘 듣는대로 믿어왔는데, 새삼 교회가 아닌 성당을 다녔다는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그래도 배우고 의심하고 따질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막히지 않았으니까요. 지인들 중 교회다니는 분들을 보면, 네, 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6-02-23 09:34   좋아요 0 | URL
네 제가 그때 절두산성당에 다녔는데요, 다 어른이었고 저만 어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또 제가 이성에 눈을 안뜰 때라-초등 전이었거든요-이끌어줄 여자동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글구 전 나름대로 신을 믿고 기도도 합니다. 단지 종교기관을 다니지 않을 뿐이죠. 신자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위안을 얻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