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세크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인경 옮김 / 꿈꾼문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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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202211월은 발자크를 읽는 달이다. 지금 사서 쟁여둔 책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수두룩하다. 에리크 뷔야르의 <714> 후속타자는 바로 16세기 셰익스피어의 샤일록에 버금가는 19세기 모델 곱세크다.

 

1830년에 발표된 <곱세크>의 화자는 어음 할인전문가, 보석감정가 혹은 고리대금업자가 아닌 양심적인 법률가이자 소송대리인인 데르빌이다. , 이 남자 내가 바로 전에 읽은 <샤베르 대령>에서도 전처 페로 부인에게 과거와 재산을 털린 샤베르 대령/백작을 변호해 준 이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곱세크의 이름도 아마 언급이 되었더랬지.

 

왕정복고로 해외 망명지에서 프랑스로 돌아온 드 그랑리외 자작부인의 재산 반환 소송을 승리를 이끈 데르빌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동업자이자 파트너인 네덜란드계 유대인 장에스테르 반 곱세크와 얽힌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발단은 드 그랑리외 자작부인의 딸 카미유가 젊은 백작 에르네스트 드 레스토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청년 에르네스트의 어머니가 누구인가? 그녀는 바로 <고리오 영감>의 장녀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다. 고리오 영감에게 그의 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불후의 명작에 잘 나와 있으니 참조해 주시길. 카미유와 그의 어머니가 걱정하는 건 바로 드 레스토 집안의 재산과 아나스타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지만, <곱세크>에서 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요주의 인물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곱세크가 아니라 바로 이 아나스타지다.

 

데르빌이 들려주는 과거사를 통해 알게 되겠지만, 곱세크는 나름 금전에 대한 철학을 가진 어음할인 전문가다. 발자크는 짓궂게 곱세크 영감을 찾는 이들을 희생자로 표현하지만, 곱세크는 당대 파리 제2금융권의 실력자였다. 급전이 필요하지만, 은행에서 대출이 막힌 이들에게 곱세크는 구세주가 아니었을까? 물론 우리의 곱세크가 그냥 돈을 빌려주는 건 아니었다. 무지막지한 폭리를 취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였다. 그러니 그의 집 문턱을 넘는 이들이 염통이 쫄아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궁한 사람이 언제나 약자가 되는 법이니 말이다.

 

곱세크가 담당하는 분야는 바로 귀족들이다. 혁명과 제정을 거쳐 부르봉 왕가가 복귀해서 다시 제 세상을 만난 것 같은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사치품을 사들이고, 도박이나 사교댄스, 끝없는 파티 같은 유흥과 향락을 즐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들이 자산과 영지에서 거둬들이는 금전은 유한했다.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의 극한은 자신의 가진 것을 훨씬 넘는 그 무엇이었다. 사업이나 생산에 쓰는 돈도 아니고, 놀고먹기 위해 쓰는 돈을 은행에서 대출해 줄 리가 만무했다. 그러니 곱세크 같은 고리대금업자들이 번성하기 좋은 시절이었다.

 

견유학파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의 곱세크의 금전에 대한 철학은 간단했다. 권력과 돈이 바로 시대의 정신이었다.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넘어가던 사회의 면모를 발자크는 곱세크라는 문제적 인물의 사고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해적이라고 불릴 정도의 담이 큰 곱세크 영감은 자신의 금전적 이익을 위협하는 이들에게는 총과 칼쓰기도 무다하지 않을 정도로 배포가 큰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약관의 데르빌을 좋게 본 모양이다. 법학과를 졸업하고 법률사무소에서 서기 생활을 하던 데르빌은 법률사무소장이 시장에 내놓은 법률사무소를 인수하길 원한다. 문제는 그에게 가진 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신출내기 서기에게 누가 15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내준단 말인가. 데르빌은 결국 곱세크를 찾게 된다. 곱세크는 데르빌을 도와줄 법도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샤일록을 능가하는 고리대금업자가 아니었던가. 결국 10년 상환에 15% 이자라는 곱세크로서는 관대한 조건으로 데르빌에게 무담보 대출을 해준다. 대신 자신의 고리대금 삼인방(팔마, 베르브뤼스트, 지고네) 써클을 동원해서 산더미 같은 소송을 가져다 줄 거라고 데르빌을 안심시킨다. 물론 자신의 사건은 무료로 처리해 준다는 특약도 빼놓지 않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파니 말보 아가씨와 결혼한 데르빌은 5년도 되지 않아 곱세크에게 진 채무를 모두 청산한다. 자신이 열심히 일한 탓도 있겠지만, 파니의 유산 상속도 채무의 조기 상환에 한몫했다고 한다. 훗날 곱세크는 청년 데르빌에게 좀 가혹한 조건의 이자를 붙인 것에 대해 자신에게 아무 것도 빚진 게 없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 않을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처음에 등장한 문제적 인간 아나스타지가 다시 등장한다. 그녀에게 빈대 붙은 댄디보이 막심 드 트라유 대리보증을 서주려고 했다가 곱세크 영감에게 아주 톡톡히 당하는 아나스타지. 어쩌면 모든 건 불쌍한 자신의 아버지 고리오 영감을 홀대한 후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심지어 장남 에르네스트 말고 다른 두 아이는 드 레스토 백작의 자식들이 아닌 드 트라유의 애들이었다고. 자기 몰래 귀금속류를 곱세크에게 저당 잡히고, 무일품 건달 애인에게 돈을 융통해주려는 아나스타지의 태도에 집안 거덜낼 여자라는 걸 직감하는 드 레스토 백작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고 장남 에르네스트에게 정당한 유산을 상속하기 위해 곱세크-데르빌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하기에 이른다.

 

백작의 죽음을 앞두고 반대증서를 찾기 위해 아나스타지가 보이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눈먼 욕정 때문이었을까? 양심적 법률가 데르빌은 정당한 상속을 위해 아나스타지와의 위험한 대결도 마다하지 않는다. 데 레스토 백작의 임종 뒤, 아나스타지가 벌인 소동극은 막장 드라마의 절정이었다.

 

소설의 엔딩은 죽는 순간까지 재산을 움켜쥔 곱세크의 처절한 모습이다. 사방에서 모여든 금과 은, 골동품 뿐 아니라 공물같이 그에게 진상(혹은 담보로 잡힌)된 각종 물건들이 썩어 들어가는 가운데 우리의 어음할인 전문가는 마지막 숨을 내쉰다. 그전에 자신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데르빌에게 유언장을 남긴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죽기 마련이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까지 돈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 곱세크의 마지막은 처절하기만 했다.

 

<샤베르 대령>에서 언급된 데르빌의 15만 프랑 대출 건에 대한 궁금증이 <곱세크>에서 시원하게 해결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양심적 법률가 데르빌의 연이은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인물들의 재등장기법이라는 맛에 <인간희극>을 계속해서 읽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해적 고리대금업자로 불러도 무방할 곱세크가 마냥 악당 노릇만 하는 건 아니라는 점도 인간이 지난 다층적 모습을 보여 주려는 발자크의 의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곱세크에게 축재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아먹는 장면에서는 확실히 이 악당에 대한 선입견이 제대로 작동하기도 했다.

 

발자크는 과연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맛이 있다. 발자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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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1-16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발자크 몰아읽으면 안 질려요??!!

레삭매냐 2022-11-16 08:56   좋아요 1 | URL
전혀 질리지 않습니다 !!!

오히려 당시 세계관의 확장
이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1789, 1830, 1832, 1834,
1848 혁명에 대해서도 맛을
살짝 보았습니다.

게다가 역사/사회적 배경이
궁금해서 심지어 르네상스
시절까지 올라가는 공부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어제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
의 시조인 앙리 4세(엔리케)
앙리 드 나바르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국내에 나온 모든 발자크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입니다.

새파랑 2022-11-16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 발자크 찐팬

입니다 ㅋ 12월도 발자크를 읽는 달이 될수도 있겠네요 ~!! 읽을수록 빠져드는 맛이 어떨지 궁금하긴 합니다~!@

레삭매냐 2022-11-16 10:58   좋아요 1 | URL
11월에 내내 읽다 보면
좀 질리지 않을까요?

아마 내년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

어제부터 <인생의 첫 출
발> 읽기 시작했는데 넘나
재밌네요. 역시 발자쿠 !!!

프레이야 2022-11-16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쿠와 역사적 이야기 제대로 파고 계시군요. 대단하십니다 역쉬! 이 작품은 처음 들어봐요. 다음에 메냐님 따라 읽어야겠어요.
발자쿠 ㅎㅎ

레삭매냐 2022-11-16 13:38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인간희극> 캐릭
인 데르빌(Derville)이 잇달아 등장
하니 아주 마음에 드네요.

<샤베르 대령> <곱세크>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인생의 첫 출발>
까지요.

프레이야님의 발자쿠 읽기를 응원
하는 바입니다.

stella.K 2022-11-16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쿠가 문장은 그닥 안 좋다는 말이 있던데...
제가 나름 고것이 예민해서 말이죠.ㅋ

레삭매냐 2022-11-16 13:49   좋아요 1 | URL
원문을 읽을 수 없으니...
문장은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역자도 제각각이라 -

그러셨군요!!!

오만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
을 수집하는 재미가 있답니
다 ^^

페넬로페 2022-11-16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다고 결심하면 해내고야마는 매냐님!
인간희극 넘 궁금한데요.
에밀 졸라와 어떻게 다른지도 흥미로워요^^

레삭매냐 2022-11-16 17:50   좋아요 1 | URL
졸라는 아직 읽어 보지 않아서리
아마 발자쿠가 졸라보다 선배이
니, 좀 결이 다르지 않을까 싶습
니다.

어쩜 발자쿠를 읽고 난 다음에는
졸라로 -

12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발자쿠
넘나 재밌지 뭡니까 그래.

바람돌이 2022-11-16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전작주의 너무 좋아요. 아 저도 버지니아 울프 전작주의 하자 해놓고 딱 4권읽고 휴업중입니다. 울프는 책을 들기전에 심호흡이 많이 필요해요. ㅎㅎ 레삭매냐님 본받아 저도 시동을 걸어봐야겟어요. ^^

레삭매냐 2022-11-17 09:15   좋아요 0 | URL
버지니아 울프는 원어민들도
읽기 어렵다고 제 미쿡인 친구
브랜던이가 그러더라구요 ^^

바람돌이님의 울프 전작 도전
응원하는 바입니다 !!!

전 발자쿠에게 돌아오기까지
12년이 걸렸답니다 :> 이 책
저 책 모으는 재미가 있네요.
 
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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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책들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프랑스 근세사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아울러 아트인문학이라는 너튜브 채널에서 만난 르세상스와 종교개혁 시대에 대한 콘텐츠도 도움이 되었다. 역사라 그렇게 상호 연관되지 않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사에는 정말 많은 우연이 개입되어야 비로소 그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에리크 뷔야르의 <714>, 그러니까 프랑스대혁명의 전주곡이 된 바스티유 탈환 과정의 전야에서 벌어진 레베용 사건을 필두로 해서, 그야말로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1789년의 여름이 불러온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도 숱한 우연들로 이루어졌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우선 대혁명 전야의 프랑스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상태였다. 7년전쟁과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개입한 미국독립전쟁에 막대한 전쟁자금이 소모되었다. 프랑스 국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금을 걷어서 전쟁에 나선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세금 대신 빚을 내서 전쟁을 치렀다. 당연히 국가재정이 파탄 위기로 치달았다. 청년 독재자 루이 16세의 국가 통치는 방향성을 잃고 난파 중이었다. 재무장관 교체로 해결될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1788년과 1789년으로 이어지는 겨울 추위는 혹심했고, 대기근으로 기아 때문에 굶어죽는 이들이 발생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1789년 파리의 빵값은 역사상 최고였다고 한다. 2,500만 프랑스 인구 중에서 실업자 수는 300만 정도에 달했다. 세계도시 파리 인구 30만 가운데 25,000명 정도의 매춘부가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각지 아니 전세계에서 몰려든 인구로 파리 시의 경계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파리 지도를 만든다는 게 넌센스였다.

 

그렇다고 해서 파리에 먹을 게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진귀한 음식과 특상품들은 모두 베르사유 궁에서 사치를 일삼는 왕과 귀족들에게 진상되었다. 절대 다수 농민과 노동자들의 안위에는 1도 관심 없는 통치자들을 피지배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긴 이상한 선동에 넘어가 여전히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신들을 옥죄는 위정자들을 걱정하는 집단이 있긴 하지만.


당장 먹을 것과 일자리가 없어서 굶주려 가는 마당에 트리클다운 효과를 선전하는 모습이 어쩌면 오늘의 현실과 꼭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마이카와 아파트의 19세기 버전은 회중시계였다. 산 자들은 죽은 이들의 호주머니를 부지런히 뒤져 보지만, 그들의 주머니에는 텅 비어 있을 따름이었다. 21세기에도 19세기에나 통하던 선전과 선동이 먹히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자본가들은 쥐꼬리만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공간이 흔들리고 시간이 죽을 법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루이 16세는 귀족들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175년만에 삼부회를 소집했다. 본래 기득권층은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특권을 빼앗는다면 하고 그 누구보다 격렬하게 저항하기 마련이다. 프랑스 국왕마저도 자신들의 특권에 해가 된다면 능히 그 국왕을 단두대에 보낼 용의가 있는 게 바로 그 기회주의적인 귀족들이었다.

 

대혁명의 전초전으로 레베용 사건에서 300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폭도로 몰려 희생되었다. , 이제 본격적인 대혁명의 막이 오를 시간이다. 에리크 뷔야르는 아마 공인된 기록들을 뒤져 뜨거운 혁명의 열기 속에 스러져간 혁명 영웅들의 전적을 캐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발굴한 무명의 용사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233년 뒤, 멀리 타국에 있는 무명의 독자에게는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이름들이 나열된다. 거리에서 행동에 나선 소년 메신저가 왕당파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파리의 장삼이사들이 계속해서 그렇게 희생된다. 그들이 훗날 공화정의 상징이 되는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을 위해 투쟁에 나섰을까? 아니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훗날 대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몰랐으리라. 그들은 그저 당장 먹을 빵과 일자리를 위해 분연히 거리에 나선 것이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해결되지 않을 작금의 상황에 분노한 민중들이 드디어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무력이 우선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상 기득권층이 압도적 무력 앞에 패배라는 방식을 통하지 않고 순순히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았던 적이 있었던가. 교활한 파리 시장은 시민군에게 배급된 12,000정의 소총을 바로 지급하지 않아, 바스티유 탈환전에서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양산하는데 일조했다.

 

혁명과 봉기 당시에 지금처럼 기록을 위한 동영상 카메라나 휴대폰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이 틈을 상상력으로 무장한 에리크 뷔야르는 기가 막히게 파고든다. 이런 역사의 빈 공간이야말로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물론 그런 상상력의 전개를 위해서는 자료의 고증과 숱한 고뇌의 시간들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독재와 억압의 상징 바스티유를 사수하는 한줌 안되는 왕당파들이 쏘는 총탄에 시민들이 속절 없이 쓰러져 세상을 떠나는 장면을 작가는 그야말로 카메라로 잡아내는 듯한 그런 묘사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과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재현이 아닐 수 없다.


엄청난 군중의 쇄도 앞에 결국 바스티유 수비대장 드 로네는 항복한다. 그 어느 것도 성난 민심을 막을 수 없다는 인류 역사의 빛나는 순간이 도래했다. 혁명의 완성이었던가? 아니다, 이제 혁명은 비로소 시작됐다.

 

<714>은 지금까지 만난 세 권의 에리크 뷔야르 책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역동적인 독서였다. 뷔야르의 다른 작품인 레콩키스타, 콩고, 인도차이나 전쟁 그리고 독일 농민전쟁에 대한 이야기들도 어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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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15 10: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리뷰 보고도 그랬지만 이 책 꼭 읽어야겠어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민중들의 힘!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 에리크 뷔야르가 있기에 오늘날에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레삭매냐 2022-11-15 11:39   좋아요 4 | URL
짧지만 강렬했습니다 !

저는 이 책도 흥미로웠지만
에리크 뷔야르의 미출간 책들
도 못지 않게 궁금합니다.

빨랑 출간되었으면 합니다.

바람돌이 2022-11-15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강렬하더니 내용도 강렬한가보군요. 저도 일단 보관함에...

레삭매냐 2022-11-16 07:56   좋아요 2 | URL
이름 없는 민중들이 자발적
으로 참가한 위대한 혁명에
대한 작가의 추도사라고나
할까요.

그레이스 2022-11-16 0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장바구니에서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레삭매냐 2022-11-16 07:57   좋아요 2 | URL
저는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답니다.

사들이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요...

그레이스 2022-11-16 07:58   좋아요 2 | URL
마음이 흔들리는데요?!^^
 
[큰글자책] 샤베르 대령 [큰글씨책]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인경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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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떤 행위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다가 알게 된 <샤베르 대령><외제니 그랑데>를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샤베르 대령>은 큰글씨 버전 밖에 없어서 그걸로 빌렸는데 중편 분량이어서 금방 읽을 수가 있었다. 숱하게 달린 주석 읽다가 더 시간이 간 것 같다. 발자크 최대 걸작이라는 <외제니 그랑데>는 지만지 천줄 축약본이라 일단 빌리기는 했는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 또 정본 번역이 나올지 모르니.

 

<샤베르 대령>은 소설 공장장 시절에 발자크가 쓴 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일라우 전투(180727~8)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진 제정 시절의 용사 샤베르 대령/백작이 시체더미에서 살아나 귀환한 것이다. <오딧세이>의 페넬로페와 달리 샤베르 대령의 와이프 로진(로즈 샤포텔)은 이미 페로 백작과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중이다. 딱 봐도 앞으로 전개가 어떻게 될지 보이지 않는가.

 

, 그전에 어제 책을 보고 나서 오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튜브로 검색해 보니 예전에 프랑스의 국민배우로 불리던 제라르 드파르듀 주연의 영화로 1994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아일라우 전투에서 프로이센-러시아 연합군에게 돌진하는 프랑스 중기병대의 영상은 압권이었다. 이런 전투에서 샤베르 대령은 무시무시한 러시아군에게 칼을 맞아 두개골이 쪼개지는 부상을 입고 죽은 것으로 보고됐다.

 

예나 지금이나 죽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살아 나려면 법적 복원이 필요했다. 그리고 주석에 따르면 당시까지만 해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증인의 증언이 필수적이었다. 샤베르 대령을 죽음에서 구원해 줄 유일한 사람이 딱 한 명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자신의 전처, 페로 백작부인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샤베르의 연금과 모든 재산을 쥔 당사자라는 점이다. 게다가 그녀는 미남 귀족 페로와 재혼해서 두 명의 아이까지 가지고 있었다. 12년 만에 초라한 몰골로 돌아온 전 남편에 대한 애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니 그녀가 자신의 신원을 되살려 달라는 부탁은 들어줄 가망성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샤베르 대령을 사기꾼으로 몰아야만 했다. 바로 이 지점을 발자크는 예리하게 공략한다. 인간사가 그런 것이다라는 걸. 게다가 다른 시절도 아니고, 제정 시대의 영웅들이 상갓집 개 취급을 당하던 왕정복고 시절이 아니었던가.

 

페로 부인에게 여러 차례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는 서신을 보냈지만, 거절당한 샤베르 대령은 결국 법률사무소에 찾아가 자신의 신분과 재산을 복귀하려는 시도에 나선다. 물론 자신의 철지난 입성 때문에 법률사무소 서기들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니 발자크는 옷차림에 대해서도 상당히 신경을 쓴 모양이다. <사촌 퐁스>에서도 철지난 옷차림을 한 퐁스 아재의 풍채에 대해 한참 설교하지 않았던가.

 

우여곡절 끝에 샤베르 대령은 데르빌에게 자신의 사건을 의뢰하게 되고, 사람 좋은 데르빌은 자신의 소송의뢰인에게 돈도 빌려 주고 기꺼이 사건을 수임하기로 결정한다. 우선 그전에 샤베르 대령이 어떻게 해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아일라우 전투에서 생존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들은 데르빌이 과연 합리적 판단을 내렸는지 의문이다. 물론 법정에서 쉽지 않은 심리가 전개될 것이고, 이미 두 명의 아이를 가지고 있는 페로 부인이 좀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상황도 유능한 변호사 데르빌은 간과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에서 페로 부인을 곤경을 몰아넣을 수 있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수집에 열을 올린다. 자신이 독일 농부들에게 도움을 얻은 하일스베르크에서 온 서신과 2년간 구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들이 샤베르 대령의 신무기로 등장한다. 데르빌이 복잡한 재판 준비를 하는 동안, 샤베르 대령은 이집트 시절부터 전우였던 베르니오의 집에서 그 집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소일한다.

 

모든 준비를 마친 데르빌은 페로 부인과 담판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페로 부인은 샤베르 대령이 오래 전에 픽업한 매춘부 출신이라는 점이 들어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어지러웠던 시절, 고아 샤베르 대령은 자수성가해서 나폴레옹의 휘하가 되어 아일라우에서 기 원수, 다부 원수와 싸운 역전의 용사였지만 1819년 봄, 그의 모습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보잘 것 없는 노인에 불과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파렴치하게 빼앗은 전처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길 원한다. 이 파란만장한 이야기의 결말이 순탄치 않을 것을 발자크는 예고한다.

 

임시적이긴 했지만, 대혁명과 제 1제정시대의 계속된 전쟁이 마무리되고 평화를 찾아 가기 시작한 왕정복고 시대에 대한 발자크식 스케치가 <샤베르 대령>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발표된 1832년에는 이미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가의 반동정치에 조종이 울린 뒤였다. 대혁명의 맛을 본 프랑스 민중들은 더 이상 특권계급의 통치를 용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페로 부인으로 대표되는 왕정복고 시대에 앙시앵 레짐의 부활을 꿈꾸던 이들에 대한 발자크식 조롱이 <샤베르 대령>에 담겨 있지 않나 싶다. 그래봐야 너희들의 꿈은 모두 일장춘몽에 불과했다고.

 

지금도 그렇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법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 법의 도움에는 많은 재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재력과 시간으로 잘못된 것들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결국 현재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샤베르 대령의 모습에 너무나 공감이 갔다. 19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시절과 다를 게 없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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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1-14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네요. 12년만에 집에 왔는데 죽어 있는걸로 처리된데다 부인은 재혼을 했다니 ㅋ 웃프네요 ~!!

레삭매냐 2022-11-14 17:02   좋아요 2 | URL
비슷한 이야기로 마르탱 게르
의 귀향이 있는데 -

어쩌면 발자크도 이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는 지도 모르겠네
요.


바람돌이 2022-11-14 1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인의 입장에서는 전남편이 죽어서 모든 것을 처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그걸 뿌리채 뒤집어 엎어버리는 귀향이네요. 전부인의 황당함과 당황스러움도 그리고 어떻든 지금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안간힘도 다 이해가 가네요. 이렇게 모두가 이해가 가는 상황을 발자크가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증이 막 솟는 리뷰입니다. ^^

레삭매냐 2022-11-14 17:36   좋아요 1 | URL
소설 공장장 발자크가 마구 써
제끼던 시절의 나온 책이라고
하더라구요.

판본도 세 개나 되구요 -
아마 계속해서 증감을 했던 모양
입니다. 날림으로 유명했던 이가
완벽주의자로 변신?

감사합니다.
 
미친 장난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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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에서 나오는 세계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영미권 혹은 프랑스에 집중된 세계문학 대신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제3세계 작가들의 출간되면 주목을 하게 된다. 오래 전에 펭귄에서 나온 로베르토 아를트의 책을 수배해 둔 기억이 나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더라. 하긴 나한테 어디 그런 책들이 한두권이던가.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어제 도서관에 들렀다가 빌릴 생각도 잠시 했었다. 대여권수가 7권이 넘어서 빌리진 못했다. 집에서 찾는 게 더 빠를까.

 

소설의 무대는 지난 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어디가 되더라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프롤레타리아 청년(아니 소년이던가) 실비오 아스티에르는 어려서 도적문학에 심취되었던 모양이다. 어릴 적부터 싹수가 노랬던 엔리케 이르수베타, 루시오와 도둑 클럽을 결성해서 주변을 터는 데 열중한다. 아니 그런데 문학에 등장하는 도둑들은 보통 의적이 아니던가?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도적질에 나선다.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돈을 벌겠다는 발칙한 생각이 참.

 

, 한 가지 이들이 리볼버로 무장했다는 점을 볼 때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무기 소지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권총 강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의적 흉내에 열중하던 차에, 오늘도 한탕 털러 집에서 책을 보고 환호하는 실비오와 친구들. 책을 쓸어담는 그들의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웠는지 모르겠다. 다른 것도 아니고 책을 훔쳐서 돈을 벌 생각을 하다니. 문득 어느 나라에선가 폭동이 일어나서 거의 모든 상점들이 약탈을 당했는데 유일하게 폭도들이 손을 안댄 상점이 바로 책방이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절판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대한 언급이 등장할 때는 나도 등반에 도전했지만 결국 오르지 못한 마의 산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좀 괴롭기도 했다.

 

그렇게 도둑클럽의 활동은 무기한 연기되고, 언제까지 도둑질로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실비오(15)는 취업전선으로 내몰린다. 사랑하는 동생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라도 실비오는 돈벌이에 나서야했다. 물론 아무런 기술도, 사회 경험도 없는 실비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환이나 심부름꾼 정도가 전부라는 냉혹한 현실이 그 앞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결국 가에타노 씨의 책방에 취업하게 된 실비오. 악질 고용주 가에타노 씨의 집에서 중고책방의 점원인지 집안의 하인인지 모르게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 소년. 그래도 책을 사랑한 나머지 다른 곳이 아닌 책방에서 새출발을 하게 된 걸 고맙게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실비오와 같이 장보기에 나선 가에타노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아를트식 블랙유머의 압권이었다. 주인공의 고용주는 전형적 쁘띠부르주아로서 수치심이라고는 1도 없이 물건 값을 후려치고, 사지도 않을 물건을 주물럭거리질 않나 진상손님이 되어 시장 상인들과 악다구니도 마다하지 않는 리얼한 모습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이미 가에타노 집안의 노예 같은 존재가 된 미겔 씨와 함께 기숙하는 장면은 암담한 그 자체였다. 피고용인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는 하지 않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뽑아 먹을 궁리만 하는 모습을 작가는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이건 설마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서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책배달을 나갔다가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나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그녀가 제공하는 팁을 거부하는 패기를 보여 주기도 하는 실비오. 한 푼이라도 아쉬운 마당에 그녀가 주는 돈을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가에타노의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일자리 면접을 보러 갔다가 수치스러운 냉대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지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어린 친구! 주인공은 심지어 소 방울을 달고 책 판매에 나서는 역할을 부여받기도 했다. 노동자의 존엄성 따위는 일절 고려하지 않는 고용주의 모욕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첫 번째 직업의 엔딩은 서점 방화라는 비극적 방식으로 결말이 지어진다. 결국 모든 건, 소멸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일까.

 

실비오의 다음 도전은 바로 항공 정비사 실습생이었다. 책을 통해 배운 기술들을 밑천으로 삼아 전문직 일자리를 얻기 위한 첫 번째 스텝에 나선다. 이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도전하는 것마다 족족 실패한다. 지난 세기 초, 아르헨티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거나 아니면 든든한 빽이 있어야 했다. 아니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돈이 없다면 전문직 기술을 익힐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는 무산계급에 속한 이들에게 생존을 위한 투쟁은 고단한 미션이었다. 일용한 양식 혹은 통장을 스쳐가는 알량한 금전으로 치환되는 노동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영혼을 갈아 넣는다. 때로는 실비오/가룟 유다가 그랬던 것 같은 파렴치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적응이라는 틀에 우리 자신을 구겨 넣고, 대신 하루의 평안을 구가한다. 그래도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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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1-12 1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책표지가 강렬하네요~ 재밌어보이는 내용인데 별은 3개 주셨군요!

레삭매냐 2022-11-14 09:00   좋아요 1 | URL
아마 제가 읽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나 봅니다.

매운맛을 기대했는데...

바람돌이 2022-11-12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실비오의 생존도전기인가요?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육체든 영혼이든 다 갈아넣고 하루하루의 삶을 사는게 우리 삶이죠 뭐.... 좀 슬프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2-11-14 09:01   좋아요 0 | URL
한 줄 요약으로 아주 제격입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삶은 예나 지금이
나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coolcat329 2022-11-14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작가 책 <7인의 미치광이> 갖고 있어요. 당시 모르는 작가였는데 그냥 제목이 좋아 샀네요. 근데 이렇게 또 나오니 반가워요.
이 작가는 제목이 다 강렬하네요.

레삭매냐 2022-11-14 10:39   좋아요 0 | URL
오래 전, 펭귄 독서 모임에서
아마 이 책으로 시작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중에 사서 쟁여 두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못찾
겠더라구요 ㅠㅠ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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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파트 원


세계문학 고전 <나귀 가죽>으로 처음 발자크를 만났다. 그리고 발자크의 찐팬으로 거듭나는데에는 많은 시간과 발자크의 작품에 대한 밀도 높은 이해가 필요했다. 발자크를 읽으면서 나는 19세기 프랑스/파리 사회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발자크에 버금갈 만한 또다른 천재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완성 유작 <발자크 평전>은 위대한 소설공장장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길라잡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계의 나폴레옹 같은 존재였던 발자크는 왕정과 혁명, 제정 그리고 다시 왕정복고라는 격변의 시기를 그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기록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를 위대하게 만든 건, 발자크의 천재성이 아니라 어쩌면 그가 살았던 시대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발자크와 같이 위대한 작가가 되는 건 아니었으리라. 오노레 드 발자크는 “19세기 풍속화가였고,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시대와 영합한 문학 천재에 대한 일대기다.

 

유년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지 못했던 오노레 발자크는 평생을 어머니의 그늘에서 살아야 했다. 그가 빚쟁이에게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는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역시 혈육인 어머니였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어머니에게 냉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마냥 어머니를 욕할 순 없지 않았을까. 이 시절 그가 학교에서 당한 체벌과 어머니의 잔소리타령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루이 랑베르>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지금 이 평전과 <루이 랑베르>를 병행해서 읽고 있는데, 다시 한 번 츠바이크가 얼마나 대단한 전기 작가인지 여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법학 공부를 하던 발자크는 자신이 미래에 서기나 공증인 같은 평범한 삶을 살기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그리고 대학을 마치고 나서, 농부의 아들 출신으로 나폴레옹 제정 시절에 한몫 잡은 아버지와 거래에 나선다. 이십세의 나이에 2년 동안, 작가의 길을 걷는 동안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약관의 나이에 세상살이를 알면 얼마나 안단 말인가. 가족 앞에서 처음으로 쓴 희곡 <크롬웰>을 발표했지만 그의 첫 창작 시도는 재앙으로 귀결됐다. 그렇다고 선천적 낙관주의와 성공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남자가 포기할 리가 만무했다.

 

어떤 장애도 없이 계속해서 글을 생산하기 위해 발자크는 돈 많은 과부과의 결혼을 갈구했다. 평소 계산에는 서툴렀지만, 이런 방면에서는 빠삭한 남자가 바로 발자크였다. 그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실천에 이루기 위해 발자크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은 글로 쓰지 않는다는 어떤 작가처럼,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삼았던 건 아닐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결국 그의 첫사랑은 드 베르니 부인이라는 자신의 어머니 뻘의 여성이었다. 위대한 시인이 되길 원하는 이 남자는 성공의 사다리를 타기 위해 뻔뻔함으로 무장한 그야말로 속물 그 자체였다. 발자크는 평생 동안, 자신을 보살필 수 있는 재력과 넉넉한 여유를 지닌 귀부인들과의 결혼을 꿈꾸었다. 미래의 배우자가 지닌 재력이 자신의 멈추지 않는 창작의 바탕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게 아니었을까.

 

청춘 시절의 발자크는 돈이 필요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종류의 글쓰기 의뢰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초반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지 않고, 표절과 짜깁기 등 그야말로 글쓰기에 있어 가능한 모든 글들을 그야말로 초인적 정력으로 완수해냈다.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담지 않은 글들의 퀄리티가 보장될 수가 있었을까. 아마 나중에 대가가 된 다음에 자신의 글을 보게 되면 너무 쪽팔리지 않았을까. 물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글은 지울 수가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는 걸 미래의 위대한 작가가 모르진 않았겠지.

 

제법 글쓰기로 돈을 만지기 시작한 발자크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출판사와 인쇄업에 손을 댔다가 크게 한 탕 해먹는 대신, 상상을 초월하는 빚을 지게 된다. 아니 젊은 친구, 너무 세상을 만만하게 본 건 아니구? 발자크는 손절이라는 걸 모르는 남자가 아니었나 싶다. 망한 사업을 뒤집기 위해 또다른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시원하게 들어먹기를 반복한다.

 

낙관주의와 무지막지한 성공에 대한 의지로 똘똘 뭉친 결점투성이 작가에게 투기는 도락 중의 하나였다. 돈을 벌기 위해 그는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불멸의 글쓰기를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시시포스의 숙명 같은 ㅇ숙명에 처했다. 인쇄소 사업의 실패로 그는 자그마치 10만 프랑에 달하는 거금의 빚을 지게 됐다. 빚쟁이를 피해야 했던 발자크는 파리 외곽의 조용한 은신처를 마련했다.

 

그의 작품들이 세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천박한 발자크의 품성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지독한 왕당파였던 그는 귀족 칭호를 받기 위해서라면 양심을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독한 속물근성의 소유자가 바로 발자크였다. 이십대에 구축된 저질문학을 남발하면서 몸에 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런 똥구덩이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이 정도면 정신을 좀 차리고 겸손하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발자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삶이었던 모양이다. 빚쟁이 주제에 남에게 꿀리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는지 버는 족족 사치스러운 물건을 사들이고, 사륜마차를 타고 다니면서(요즘으로 치면 고급 승용차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하인들을 부렸다. 이 정도면 구제불능의 인사가 아닐까 싶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나락으로 떨어졌을 텐데, 우리의 위대한 작가 발자크는 확실히 남다른 멘탈의 소유자였다. 연애에서도, 창작에서도 발자크는 계속되는 실패에도 도무지 포기할 줄 몰랐다. 까마귀 깃털 펜과 소탈한 잉크 병 그리고 두툼한 종이 뭉치를 무장한 발자크는 오밤중에 깨어나 동이 틀 때까지 글쓰기를 전념했다. 일단 발자크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가 체험한 숱한 연애의 실패(그는 추한 얼굴의 뚱보였다고 한다), 가족들의 냉대 그리고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는 간난신고는 발자크 글쓰기의 원천이었다. 쇠는 두들겨 맞을수록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보통의 유리 멘탈이었다면 벌써 가루가 되었겠지만 발자크는 이런 고통의 시간 동안, 자신의 대표작들을 다수 창조해냈다. 놀랍지 않은가.

 

혁명과 전쟁, 왕정복고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펼쳐지는 인간 드라마는 발자크의 위대한 업적인 <인간희극>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아니 인간 그 자체가 발자크에게는 마르지 않는 무궁무진한 그런 소재였다. 청년 시절, 숱한 저질문학 글쓰기로 강철처럼 단련된 발자크는 이제 드디어 진정한 시대정신을 담은 걸작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날림으로 공장처럼 글을 찍어내던 이가, 극적 탈바꿈을 통해 그 누구보다 완벽한 작품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보여주었다.

 

발자크는 자전적 소설 <루이 랑베르>로 드디어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괴테가 <파우스트>는 쓰는데 60년이 걸렸다면, 발자크는 이 걸작을 단 6주 만에 쓰는 괴력을 과시했다. 물론 <루이 랑베르> 역시 출판업자들의 등쌀에 못이겨 후반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이다. 드디어 작가로서 완숙기에 접어든 발자크는 <샤베르 대령><외제니 그랑데>에서 절정의 기량을 펼친다.

 

바로 이 때, 발자크에게 모르는 여인이 등장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팬레터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사는 공작부인이 등장한 것이다. 훗날 에벨리나 폰 한스카 부인으로 알려진 이 인물은 속물덩어리 인간 발자크의 욕망, 그러니까 백만장자 귀족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고작 서너번의 서신으로 망상가이자 금사빠인 발자크는 한스카 부인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사조와 역사소설이 판을 치던 19세기, 독자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작가가 소설의 주인공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길 바랐던 모양이다. 이런 마당에 발자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어떤 면에서 발자크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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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절반을 읽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일단 절반의 리뷰를 작성해봤다.

순전히 나의 망각에 대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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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22-11-11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었는데 아직 엄두를 못내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요약해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잘 읽었어요~ 나머지 절반의 리뷰도 기대할게요 ~~^^

레삭매냐 2022-11-11 11:47   좋아요 1 | URL
발자크 입문하시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루이 랑
베르>를 읽고 있는데 아주 술술~
이랍니다.

열심으로 읽고 나서 절반도 써보
겠습니다.

stella.K 2022-11-11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메삭님 서재에서 제가 읽은 책을 발견하는군요. ㅎ 하도 오래전에 읽어 기억은 안 나지만 그가 커피중독자라는건 유명하죠.

레삭매냐 2022-11-11 11:4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발자쿠 선생은 지독한
커피마니아였다고 하네요.

그의 수명을 빼앗아 간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수면부족과 커피
라고 츠바이크는 쓰고 있습니다.

저도 끝까지 읽고 나서 리뷰쓰기
에 들어가면 다 이자 뿌릴 것 같
아서 일단 반절 리뷰만 작성해
보았습니다.

coolcat329 2022-11-11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크 정말 멘탈 갑이죠.
그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레삭매냐 2022-11-11 20:26   좋아요 0 | URL
읽을 수록 뭐 이런 닝겡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멘탈갑
이더라구요.

아니 어쩌면 그런 결점 때문
에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문제적 작가가 아닐까 싶습
니다.

서니데이 2022-11-11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1998년에 출간된 책이네요. 요즘에는 몇 년 되지 않아도 절판되거나 품절되는 책이 많은데, 오래 지속되는 책을 보니 좋네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푸른숲 출판사에서는 인문서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날씨가 따뜻해서 좋은데, 공기가 나쁜 편이예요.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11-12 08:58   좋아요 1 | URL
그렇죠, 20년도 전에 출간된
책이 아직도 살아 있는 걸
보면 츠바이크 <발자크 평전>
의 위력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날이 좋았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22-11-11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셔가며 돈을 벌기 위해 죽으라고 원고를 썼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 책이랑 루이 랑베르 끌리네요. 위장이 괜찮았을까요. 통장에 돈 꽂히면 무슨 연기라도 열심히 하게 돼있다던 어느 여배우 말이 생각납니다. 절반의 리뷰이지만 구미가 당깁니다. ^^

레삭매냐 2022-11-12 09:00   좋아요 1 | URL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
가량 글을 썼다고 하더라구요.

평균 하루에 16페이지 정도를
쓰곤 했다고 하는데, 가히 소설
공장이라는 별명이 정말 어울
릴 정도의 초인적인 생산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른 나이에 별이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