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장난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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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에서 나오는 세계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영미권 혹은 프랑스에 집중된 세계문학 대신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제3세계 작가들의 출간되면 주목을 하게 된다. 오래 전에 펭귄에서 나온 로베르토 아를트의 책을 수배해 둔 기억이 나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더라. 하긴 나한테 어디 그런 책들이 한두권이던가.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어제 도서관에 들렀다가 빌릴 생각도 잠시 했었다. 대여권수가 7권이 넘어서 빌리진 못했다. 집에서 찾는 게 더 빠를까.

 

소설의 무대는 지난 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어디가 되더라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프롤레타리아 청년(아니 소년이던가) 실비오 아스티에르는 어려서 도적문학에 심취되었던 모양이다. 어릴 적부터 싹수가 노랬던 엔리케 이르수베타, 루시오와 도둑 클럽을 결성해서 주변을 터는 데 열중한다. 아니 그런데 문학에 등장하는 도둑들은 보통 의적이 아니던가?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도적질에 나선다.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돈을 벌겠다는 발칙한 생각이 참.

 

, 한 가지 이들이 리볼버로 무장했다는 점을 볼 때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무기 소지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권총 강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의적 흉내에 열중하던 차에, 오늘도 한탕 털러 집에서 책을 보고 환호하는 실비오와 친구들. 책을 쓸어담는 그들의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웠는지 모르겠다. 다른 것도 아니고 책을 훔쳐서 돈을 벌 생각을 하다니. 문득 어느 나라에선가 폭동이 일어나서 거의 모든 상점들이 약탈을 당했는데 유일하게 폭도들이 손을 안댄 상점이 바로 책방이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절판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대한 언급이 등장할 때는 나도 등반에 도전했지만 결국 오르지 못한 마의 산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좀 괴롭기도 했다.

 

그렇게 도둑클럽의 활동은 무기한 연기되고, 언제까지 도둑질로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실비오(15)는 취업전선으로 내몰린다. 사랑하는 동생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라도 실비오는 돈벌이에 나서야했다. 물론 아무런 기술도, 사회 경험도 없는 실비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환이나 심부름꾼 정도가 전부라는 냉혹한 현실이 그 앞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결국 가에타노 씨의 책방에 취업하게 된 실비오. 악질 고용주 가에타노 씨의 집에서 중고책방의 점원인지 집안의 하인인지 모르게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 소년. 그래도 책을 사랑한 나머지 다른 곳이 아닌 책방에서 새출발을 하게 된 걸 고맙게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실비오와 같이 장보기에 나선 가에타노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아를트식 블랙유머의 압권이었다. 주인공의 고용주는 전형적 쁘띠부르주아로서 수치심이라고는 1도 없이 물건 값을 후려치고, 사지도 않을 물건을 주물럭거리질 않나 진상손님이 되어 시장 상인들과 악다구니도 마다하지 않는 리얼한 모습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이미 가에타노 집안의 노예 같은 존재가 된 미겔 씨와 함께 기숙하는 장면은 암담한 그 자체였다. 피고용인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는 하지 않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뽑아 먹을 궁리만 하는 모습을 작가는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이건 설마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서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책배달을 나갔다가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나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그녀가 제공하는 팁을 거부하는 패기를 보여 주기도 하는 실비오. 한 푼이라도 아쉬운 마당에 그녀가 주는 돈을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가에타노의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일자리 면접을 보러 갔다가 수치스러운 냉대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지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어린 친구! 주인공은 심지어 소 방울을 달고 책 판매에 나서는 역할을 부여받기도 했다. 노동자의 존엄성 따위는 일절 고려하지 않는 고용주의 모욕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첫 번째 직업의 엔딩은 서점 방화라는 비극적 방식으로 결말이 지어진다. 결국 모든 건, 소멸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일까.

 

실비오의 다음 도전은 바로 항공 정비사 실습생이었다. 책을 통해 배운 기술들을 밑천으로 삼아 전문직 일자리를 얻기 위한 첫 번째 스텝에 나선다. 이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도전하는 것마다 족족 실패한다. 지난 세기 초, 아르헨티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거나 아니면 든든한 빽이 있어야 했다. 아니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돈이 없다면 전문직 기술을 익힐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는 무산계급에 속한 이들에게 생존을 위한 투쟁은 고단한 미션이었다. 일용한 양식 혹은 통장을 스쳐가는 알량한 금전으로 치환되는 노동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영혼을 갈아 넣는다. 때로는 실비오/가룟 유다가 그랬던 것 같은 파렴치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적응이라는 틀에 우리 자신을 구겨 넣고, 대신 하루의 평안을 구가한다. 그래도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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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1-12 1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책표지가 강렬하네요~ 재밌어보이는 내용인데 별은 3개 주셨군요!

레삭매냐 2022-11-14 09:00   좋아요 1 | URL
아마 제가 읽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나 봅니다.

매운맛을 기대했는데...

바람돌이 2022-11-12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실비오의 생존도전기인가요?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육체든 영혼이든 다 갈아넣고 하루하루의 삶을 사는게 우리 삶이죠 뭐.... 좀 슬프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2-11-14 09:01   좋아요 0 | URL
한 줄 요약으로 아주 제격입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삶은 예나 지금이
나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coolcat329 2022-11-14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작가 책 <7인의 미치광이> 갖고 있어요. 당시 모르는 작가였는데 그냥 제목이 좋아 샀네요. 근데 이렇게 또 나오니 반가워요.
이 작가는 제목이 다 강렬하네요.

레삭매냐 2022-11-14 10:39   좋아요 0 | URL
오래 전, 펭귄 독서 모임에서
아마 이 책으로 시작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중에 사서 쟁여 두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못찾
겠더라구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