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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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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책들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프랑스 근세사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아울러 아트인문학이라는 너튜브 채널에서 만난 르세상스와 종교개혁 시대에 대한 콘텐츠도 도움이 되었다. 역사라 그렇게 상호 연관되지 않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사에는 정말 많은 우연이 개입되어야 비로소 그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에리크 뷔야르의 <7월 14일>, 그러니까 프랑스대혁명의 전주곡이 된 바스티유 탈환 과정의 전야에서 벌어진 레베용 사건을 필두로 해서, 그야말로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1789년의 여름이 불러온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도 숱한 우연들로 이루어졌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우선 대혁명 전야의 프랑스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상태였다. 7년전쟁과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개입한 미국독립전쟁에 막대한 전쟁자금이 소모되었다. 프랑스 국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금을 걷어서 전쟁에 나선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세금 대신 빚을 내서 전쟁을 치렀다. 당연히 국가재정이 파탄 위기로 치달았다. 청년 독재자 루이 16세의 국가 통치는 방향성을 잃고 난파 중이었다. 재무장관 교체로 해결될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1788년과 1789년으로 이어지는 겨울 추위는 혹심했고, 대기근으로 기아 때문에 굶어죽는 이들이 발생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1789년 파리의 빵값은 역사상 최고였다고 한다. 2,500만 프랑스 인구 중에서 실업자 수는 300만 정도에 달했다. 세계도시 파리 인구 30만 가운데 25,000명 정도의 매춘부가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각지 아니 전세계에서 몰려든 인구로 파리 시의 경계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파리 지도를 만든다는 게 넌센스였다.
그렇다고 해서 파리에 먹을 게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진귀한 음식과 특상품들은 모두 베르사유 궁에서 사치를 일삼는 왕과 귀족들에게 진상되었다. 절대 다수 농민과 노동자들의 안위에는 1도 관심 없는 통치자들을 피지배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긴 이상한 선동에 넘어가 여전히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신들을 옥죄는 위정자들을 걱정하는 집단이 있긴 하지만.
당장 먹을 것과 일자리가 없어서 굶주려 가는 마당에 트리클다운 효과를 선전하는 모습이 어쩌면 오늘의 현실과 꼭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마이카와 아파트의 19세기 버전은 회중시계였다. 산 자들은 죽은 이들의 호주머니를 부지런히 뒤져 보지만, 그들의 주머니에는 텅 비어 있을 따름이었다. 21세기에도 19세기에나 통하던 선전과 선동이 먹히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자본가들은 쥐꼬리만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공간이 흔들리고 시간이 죽을 법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루이 16세는 귀족들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175년만에 삼부회를 소집했다. 본래 기득권층은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특권을 빼앗는다면 하고 그 누구보다 격렬하게 저항하기 마련이다. 프랑스 국왕마저도 자신들의 특권에 해가 된다면 능히 그 국왕을 단두대에 보낼 용의가 있는 게 바로 그 기회주의적인 귀족들이었다.
대혁명의 전초전으로 레베용 사건에서 300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폭도로 몰려 희생되었다. 자, 이제 본격적인 대혁명의 막이 오를 시간이다. 에리크 뷔야르는 아마 공인된 기록들을 뒤져 뜨거운 혁명의 열기 속에 스러져간 혁명 영웅들의 전적을 캐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발굴한 무명의 용사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233년 뒤, 멀리 타국에 있는 무명의 독자에게는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이름들이 나열된다. 거리에서 행동에 나선 소년 메신저가 왕당파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파리의 장삼이사들이 계속해서 그렇게 희생된다. 그들이 훗날 공화정의 상징이 되는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을 위해 투쟁에 나섰을까? 아니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훗날 대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몰랐으리라. 그들은 그저 당장 먹을 빵과 일자리를 위해 분연히 거리에 나선 것이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해결되지 않을 작금의 상황에 분노한 민중들이 드디어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무력이 우선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상 기득권층이 압도적 무력 앞에 패배라는 방식을 통하지 않고 순순히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았던 적이 있었던가. 교활한 파리 시장은 시민군에게 배급된 12,000정의 소총을 바로 지급하지 않아, 바스티유 탈환전에서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양산하는데 일조했다.
혁명과 봉기 당시에 지금처럼 기록을 위한 동영상 카메라나 휴대폰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이 틈을 상상력으로 무장한 에리크 뷔야르는 기가 막히게 파고든다. 이런 역사의 빈 공간이야말로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물론 그런 상상력의 전개를 위해서는 자료의 고증과 숱한 고뇌의 시간들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독재와 억압의 상징 바스티유를 사수하는 한줌 안되는 왕당파들이 쏘는 총탄에 시민들이 속절 없이 쓰러져 세상을 떠나는 장면을 작가는 그야말로 카메라로 잡아내는 듯한 그런 묘사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과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재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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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군중의 쇄도 앞에 결국 바스티유 수비대장 드 로네는 항복한다. 그 어느 것도 성난 민심을 막을 수 없다는 인류 역사의 빛나는 순간이 도래했다. 혁명의 완성이었던가? 아니다, 이제 혁명은 비로소 시작됐다.
<7월 14일>은 지금까지 만난 세 권의 에리크 뷔야르 책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역동적인 독서였다. 뷔야르의 다른 작품인 레콩키스타, 콩고, 인도차이나 전쟁 그리고 독일 농민전쟁에 대한 이야기들도 어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