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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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파트 원


세계문학 고전 <나귀 가죽>으로 처음 발자크를 만났다. 그리고 발자크의 찐팬으로 거듭나는데에는 많은 시간과 발자크의 작품에 대한 밀도 높은 이해가 필요했다. 발자크를 읽으면서 나는 19세기 프랑스/파리 사회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발자크에 버금갈 만한 또다른 천재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완성 유작 <발자크 평전>은 위대한 소설공장장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길라잡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계의 나폴레옹 같은 존재였던 발자크는 왕정과 혁명, 제정 그리고 다시 왕정복고라는 격변의 시기를 그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기록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를 위대하게 만든 건, 발자크의 천재성이 아니라 어쩌면 그가 살았던 시대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발자크와 같이 위대한 작가가 되는 건 아니었으리라. 오노레 드 발자크는 “19세기 풍속화가였고,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시대와 영합한 문학 천재에 대한 일대기다.

 

유년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지 못했던 오노레 발자크는 평생을 어머니의 그늘에서 살아야 했다. 그가 빚쟁이에게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는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역시 혈육인 어머니였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어머니에게 냉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마냥 어머니를 욕할 순 없지 않았을까. 이 시절 그가 학교에서 당한 체벌과 어머니의 잔소리타령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루이 랑베르>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지금 이 평전과 <루이 랑베르>를 병행해서 읽고 있는데, 다시 한 번 츠바이크가 얼마나 대단한 전기 작가인지 여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법학 공부를 하던 발자크는 자신이 미래에 서기나 공증인 같은 평범한 삶을 살기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그리고 대학을 마치고 나서, 농부의 아들 출신으로 나폴레옹 제정 시절에 한몫 잡은 아버지와 거래에 나선다. 이십세의 나이에 2년 동안, 작가의 길을 걷는 동안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약관의 나이에 세상살이를 알면 얼마나 안단 말인가. 가족 앞에서 처음으로 쓴 희곡 <크롬웰>을 발표했지만 그의 첫 창작 시도는 재앙으로 귀결됐다. 그렇다고 선천적 낙관주의와 성공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남자가 포기할 리가 만무했다.

 

어떤 장애도 없이 계속해서 글을 생산하기 위해 발자크는 돈 많은 과부과의 결혼을 갈구했다. 평소 계산에는 서툴렀지만, 이런 방면에서는 빠삭한 남자가 바로 발자크였다. 그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실천에 이루기 위해 발자크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은 글로 쓰지 않는다는 어떤 작가처럼,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삼았던 건 아닐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결국 그의 첫사랑은 드 베르니 부인이라는 자신의 어머니 뻘의 여성이었다. 위대한 시인이 되길 원하는 이 남자는 성공의 사다리를 타기 위해 뻔뻔함으로 무장한 그야말로 속물 그 자체였다. 발자크는 평생 동안, 자신을 보살필 수 있는 재력과 넉넉한 여유를 지닌 귀부인들과의 결혼을 꿈꾸었다. 미래의 배우자가 지닌 재력이 자신의 멈추지 않는 창작의 바탕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게 아니었을까.

 

청춘 시절의 발자크는 돈이 필요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종류의 글쓰기 의뢰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초반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지 않고, 표절과 짜깁기 등 그야말로 글쓰기에 있어 가능한 모든 글들을 그야말로 초인적 정력으로 완수해냈다.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담지 않은 글들의 퀄리티가 보장될 수가 있었을까. 아마 나중에 대가가 된 다음에 자신의 글을 보게 되면 너무 쪽팔리지 않았을까. 물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글은 지울 수가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는 걸 미래의 위대한 작가가 모르진 않았겠지.

 

제법 글쓰기로 돈을 만지기 시작한 발자크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출판사와 인쇄업에 손을 댔다가 크게 한 탕 해먹는 대신, 상상을 초월하는 빚을 지게 된다. 아니 젊은 친구, 너무 세상을 만만하게 본 건 아니구? 발자크는 손절이라는 걸 모르는 남자가 아니었나 싶다. 망한 사업을 뒤집기 위해 또다른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시원하게 들어먹기를 반복한다.

 

낙관주의와 무지막지한 성공에 대한 의지로 똘똘 뭉친 결점투성이 작가에게 투기는 도락 중의 하나였다. 돈을 벌기 위해 그는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불멸의 글쓰기를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시시포스의 숙명 같은 ㅇ숙명에 처했다. 인쇄소 사업의 실패로 그는 자그마치 10만 프랑에 달하는 거금의 빚을 지게 됐다. 빚쟁이를 피해야 했던 발자크는 파리 외곽의 조용한 은신처를 마련했다.

 

그의 작품들이 세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천박한 발자크의 품성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지독한 왕당파였던 그는 귀족 칭호를 받기 위해서라면 양심을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독한 속물근성의 소유자가 바로 발자크였다. 이십대에 구축된 저질문학을 남발하면서 몸에 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런 똥구덩이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이 정도면 정신을 좀 차리고 겸손하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발자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삶이었던 모양이다. 빚쟁이 주제에 남에게 꿀리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는지 버는 족족 사치스러운 물건을 사들이고, 사륜마차를 타고 다니면서(요즘으로 치면 고급 승용차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하인들을 부렸다. 이 정도면 구제불능의 인사가 아닐까 싶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나락으로 떨어졌을 텐데, 우리의 위대한 작가 발자크는 확실히 남다른 멘탈의 소유자였다. 연애에서도, 창작에서도 발자크는 계속되는 실패에도 도무지 포기할 줄 몰랐다. 까마귀 깃털 펜과 소탈한 잉크 병 그리고 두툼한 종이 뭉치를 무장한 발자크는 오밤중에 깨어나 동이 틀 때까지 글쓰기를 전념했다. 일단 발자크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가 체험한 숱한 연애의 실패(그는 추한 얼굴의 뚱보였다고 한다), 가족들의 냉대 그리고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는 간난신고는 발자크 글쓰기의 원천이었다. 쇠는 두들겨 맞을수록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보통의 유리 멘탈이었다면 벌써 가루가 되었겠지만 발자크는 이런 고통의 시간 동안, 자신의 대표작들을 다수 창조해냈다. 놀랍지 않은가.

 

혁명과 전쟁, 왕정복고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펼쳐지는 인간 드라마는 발자크의 위대한 업적인 <인간희극>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아니 인간 그 자체가 발자크에게는 마르지 않는 무궁무진한 그런 소재였다. 청년 시절, 숱한 저질문학 글쓰기로 강철처럼 단련된 발자크는 이제 드디어 진정한 시대정신을 담은 걸작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날림으로 공장처럼 글을 찍어내던 이가, 극적 탈바꿈을 통해 그 누구보다 완벽한 작품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보여주었다.

 

발자크는 자전적 소설 <루이 랑베르>로 드디어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괴테가 <파우스트>는 쓰는데 60년이 걸렸다면, 발자크는 이 걸작을 단 6주 만에 쓰는 괴력을 과시했다. 물론 <루이 랑베르> 역시 출판업자들의 등쌀에 못이겨 후반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이다. 드디어 작가로서 완숙기에 접어든 발자크는 <샤베르 대령><외제니 그랑데>에서 절정의 기량을 펼친다.

 

바로 이 때, 발자크에게 모르는 여인이 등장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팬레터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사는 공작부인이 등장한 것이다. 훗날 에벨리나 폰 한스카 부인으로 알려진 이 인물은 속물덩어리 인간 발자크의 욕망, 그러니까 백만장자 귀족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고작 서너번의 서신으로 망상가이자 금사빠인 발자크는 한스카 부인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사조와 역사소설이 판을 치던 19세기, 독자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작가가 소설의 주인공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길 바랐던 모양이다. 이런 마당에 발자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어떤 면에서 발자크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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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절반을 읽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일단 절반의 리뷰를 작성해봤다.

순전히 나의 망각에 대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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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22-11-11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었는데 아직 엄두를 못내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요약해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잘 읽었어요~ 나머지 절반의 리뷰도 기대할게요 ~~^^

레삭매냐 2022-11-11 11:47   좋아요 1 | URL
발자크 입문하시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루이 랑
베르>를 읽고 있는데 아주 술술~
이랍니다.

열심으로 읽고 나서 절반도 써보
겠습니다.

stella.K 2022-11-11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메삭님 서재에서 제가 읽은 책을 발견하는군요. ㅎ 하도 오래전에 읽어 기억은 안 나지만 그가 커피중독자라는건 유명하죠.

레삭매냐 2022-11-11 11:4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발자쿠 선생은 지독한
커피마니아였다고 하네요.

그의 수명을 빼앗아 간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수면부족과 커피
라고 츠바이크는 쓰고 있습니다.

저도 끝까지 읽고 나서 리뷰쓰기
에 들어가면 다 이자 뿌릴 것 같
아서 일단 반절 리뷰만 작성해
보았습니다.

coolcat329 2022-11-11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크 정말 멘탈 갑이죠.
그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레삭매냐 2022-11-11 20:26   좋아요 0 | URL
읽을 수록 뭐 이런 닝겡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멘탈갑
이더라구요.

아니 어쩌면 그런 결점 때문
에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문제적 작가가 아닐까 싶습
니다.

서니데이 2022-11-11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1998년에 출간된 책이네요. 요즘에는 몇 년 되지 않아도 절판되거나 품절되는 책이 많은데, 오래 지속되는 책을 보니 좋네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푸른숲 출판사에서는 인문서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날씨가 따뜻해서 좋은데, 공기가 나쁜 편이예요.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11-12 08:58   좋아요 1 | URL
그렇죠, 20년도 전에 출간된
책이 아직도 살아 있는 걸
보면 츠바이크 <발자크 평전>
의 위력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날이 좋았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22-11-11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셔가며 돈을 벌기 위해 죽으라고 원고를 썼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 책이랑 루이 랑베르 끌리네요. 위장이 괜찮았을까요. 통장에 돈 꽂히면 무슨 연기라도 열심히 하게 돼있다던 어느 여배우 말이 생각납니다. 절반의 리뷰이지만 구미가 당깁니다. ^^

레삭매냐 2022-11-12 09:00   좋아요 1 | URL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
가량 글을 썼다고 하더라구요.

평균 하루에 16페이지 정도를
쓰곤 했다고 하는데, 가히 소설
공장이라는 별명이 정말 어울
릴 정도의 초인적인 생산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른 나이에 별이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