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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운동을 하러 가면, 중,고딩 친구들이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는 모습을 종종 본다. 늘 궁금한 건, 그들은 왜 멋지게 침을 뱉으려 하는가다. 내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같은 대열에서 조깅하는 여자들이 지나가면, 그들의 '껄렁한'모습은 더 커진다. 어깨를 더 터프하게 움직이면서, 눈은 여자들은 안 본 척, 힐끗힐끗. 그러면서 그들은 카악,하는 소리는 절제한 채, 하얀 침 덩어리 하나를 바닥에 하나, 둘 떨어뜨린다. 입에서 조용히 떨어지는 것 보다는, 멀리 나가기 대회를 하듯, 자신의 침을 '과시형'으로 뱉는 모습. 사실 그리 나도 '유경험자'로서 낯설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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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면, 코에 난 왕여드름을 거울 앞에서 꼭 터뜨려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 옆에 있는 여중생 무리들이 지나가면, 나는 친구들을 따라 침을 뱉곤 했었다. 계획을 세우고 침을 뱉어서, 마음에 들어야겠다는 것보다는, 친구들이 침을 뱉길래, 따라 뱉은 것이 시작이었고, 정확히 그 친구들이 침을 뱉는 이유를 몰랐다. 묻지도 않았다. '본능의 연대'라고 믿었다. 정확히 이유도 모른 채 나가는 침. 그리고 꼭 정자세보다는 어딘가 '껄렁해야'한다는 강박 아래, 뱉어냈던 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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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생각해보면, '침'은 인간에겐 '정복과 소유'의 도구로 쓰인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도시락에 맛있는 계란옷 입은 소세지가 있으면, 침을 뱉어 '내꺼"하던, 악동 짝꿍이 생각난다. 연인의 키스는 서로가 각자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침의 교환'이 아닌가. 정복과 소유의 도구 속에서, 침이 갖는 최종 상징은 '약속'이다. 침을 뱉어, 이건 "내가 먹을 반찬"이란 약속을 하고, 연인은 깊은 키스를 통해, 서로의 타액을 나누며, "넌 내꺼"라는 약속을 교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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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아직 '침을 멋지게 뱉는 남자'에게 끌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대부분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침'을 뱉는다는 것 자체는 내 앞을 지나가는 그녀들에 대해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현실감'안에서 이뤄진 무의식적 행동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침이 적어도 상당한 성적 지향성을 띠고 있음 또한 생각해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운동하면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나 원 참. 이러다 저 친구들 침에 맞으면 어쩌나. 우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