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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침 이야기에 모티브를 얻어, 아침부터 잡은 책이 진화심리학을 다룬 전중환 선생의 <오래된 연장통>이었다. 책에 다뤄진 에피소드 대부분이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트라우마'로 다가오는 대목이, 남자와 여자가 웃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내게 트라우마로 다가온 내용인즉슨, 남자는 자신이 던지는 개그에 크게 웃어주는 여자를 선호하는 편이며, 여자는 자신의 개그에 남자가 웃어주는 쪽보다는, 자신을 잘 웃기는 남자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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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창 시절, 여자를 재미있게 해주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오늘도 인터넷에 여자문제로 고민하는 남자들이 덧글로 듣는 조언 중 많은 부분은 "여자는 개그 센스가 있는 남자 좋아하더라구요"가 차지한다(물론 잘생긴 남자는 어떤 썰렁한 개그를 해도, 다 용서가 되겠지만) 학부생 때 소개팅을 나간 적이 있었다. 처음 해 본 소개팅이라 부담이 컸는데, 가장 걸리는 대목이 '개그'였다. 그래서 우연히 네이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찾아보다가, '쥬니어 네이버'를 발견했다. 이상하게 거기에 있는 유머 시리즈 모음들이 내 코드에 맞았다. (중요한 건 내일 나를 기대할 여성의 코드일텐데 쩝)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좀 어색해지는 타임, 스트로우만 쪽쪽 빨다가, 이상한 소리가 날 때에 써먹을려고 갖고 온 유머 이야기를 던졌다. 잘 던지면, 그녀를 위한 '선물'일 것이고, 잘못 던지면, 그녀를 위한 '폭탄'일 상황. 그 분은 다행히 내 준비용 유머에 제법 크게 웃어 주었다. 분위기는 좋고,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밝아보이던 그 때. 그녀가 말했다.
"그 이야기 나도 사실 기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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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 "여자들은 왜 자신을 흠집내는 개그'에 자지러질까?라는 것이었다.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친구들 중에서, 대부분 유머 능력은 a급 이었는데, 그들의 개그 종류는 늘 여자들의 외모를 흉보거나, 그녀들에게 말을 함부로 툭툭 던지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만나는 그녀들의 얼굴부터 억양까지 조목조목 놀려대며, 개그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것을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케바케'(case by case)라고 하기엔, 그런 사례들이 너무 많이 누적되어 있어서, 나는 이상하게 그런 개그의 유혹에 빠져들곤 했다(하지만, 차마 입밖에선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