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좌절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_ 열정과 좌절의 거리가 가깝다는 걸 요즘 다시 한번 느낀다. "뭘 어쩌겠어요"라는 말이 이야기의 귀결이 아니라 아예 처음이 된 사람들. 이어 나오는,

2.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내 글을 쓰고 싶었지만"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서울을 떠나 살고 싶었지만"이란 옛 소망들. 이 소망들을 마치 헐리우드 영화 속 어린 소년이 다락방으로 올라가 먼지 가득 낀 상자를 열어 챙겨보는 야구카드처럼 아련하게 대할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잔이 허전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3. 사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선한 얼굴 속을 어슬렁거리는 위태위태한 울분을 마주할 때면 인상을 찌푸리며 경청하는 태도를 취하지만 사실 마음 한 구석은 저 울분의 기운에 행여나 스스로에게 안타까운 짓은 하지 않으려나 싶어 주변에 있는 뾰족한 것들의 유무를 눈짓으로 쳐다본다. 

4. "기술이라두 배워놓을 걸" "장사나 해볼까나"가 어느새 삶의 클리셰로 인식되는 순간, '아 또 이 이야기야'란 징그러운 깐깐함을 마음에 품을 때도 있지만, 선함과 울분이 섞인 저 고요한 얼굴들이 겪었을 마음감기에 이내 필요한 침잠함을 안으로 받아들인다.

5. 아주 예전에 책이 나왔다며 만나자고 한 편집자 A가 기억난다. 책은 사실 뒷전이었고 울분데이였다. 엉엉엉 우는 와중에 미안했는지 책을 바삐 만들어 오자가 많아 미안하다고 화제를 돌린다.
그땐 건방지게 그 사람의 엉엉엉을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 믿어서 억지로 그 친구의 통곡을 다시 끌고 나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훈계를 했던 것 같다.

6. A에게 내가 우선 해줘야 했던 말은 "오자여도 괜찮아"였다는 걸 이제서야 뒤돌아본다..



 
 
 

프리울리friuli. 일산에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을 소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 유명한 역사학자와 예술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인류학자를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1 역사학자 카를로 진즈부르그가 바라본 프리울리




카를로 진즈부르그를 알린 두 권의 책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치즈와 구더기』는 익히 알 것이다(두 권 다 국내에 출간되어 있다).  두 권 모두 이태리 북동쪽에 위치한 프리울리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다.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는 157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프리울리 지방에 살고 있는 수백 명의 주민이 마법을 행한 혐의로 피소된 이단 재판 기록에 근거한 미시사 연구다. '베난단티Ben-andanti ' 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농촌 지역인 프리울리에서만 통용되던 방언이었다. 베난단티로 여겨지던 이를 심문하던 펠리체 신부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어떤 마법적 제의를 겪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내용인즉슨, 

베난단티는 한 해 네 번, 목요일 밤마다 실신 상태가 되고 이 순간 영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걸 경험한다. 그리고 이때 들고양이나 들토끼와 같은 모습으로 변신하여 그들의 회합 장소로 날아가 마녀들과 전투를 치른다. 베난단티는 마녀에 대적하고자 회향풀이나 가막살나무 줄기를 무기로, 마녀는 사탕수수 줄기 혹은 화덕을 청소하는 나무막대기를 무기로 삼았다. 전투의 결과 베난단티가 이기면 풍년을, 마녀가 이기면 흉년을 맞이해야 한다. 



진즈부르그가 파고든 것은 베난단테의 이 신비스러운 행위라기보다는, 행위를 둘러싼 주변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그들이 어떤 위치로 해석될 수 있는가였다.  합리와 이성을 내세운다고 하는 엘리트 계층의 '의 눈에서는 이 행위가 도통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에게 베난단티는 곧 악마적인 행위를 하는 무리였을 뿐이다. 악마라는 규정은 곧 종교 질서 안에서 '이단의 확정'으로 이어진다. 설득하거나, (혹은 처형하거나)


베난단티와 이단 심문관 간의 '밀당'이 시작된다. 그리고 심문관의 압력 속에 베난단티의 진술은 심문관이 원하는 바와 일치되어간다. 진즈부르그는 베난단티가 기독교의 도래 이전 존재해온 고대의 다산 신앙 혹은 풍농제의 흔적이라 보았다. 역사학자 곽차섭의 주장에 따르면,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는 마녀 신앙의 민중적 기원을 새롭게 보여준 연구서이자, 이단 심문관과 분명 주장하는 바가 달랐던 피의자 신분의 베난단티가 낸 목소리를 처음으로 규명한 책이다. 물론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보물은 '민중 문화'다.



『치즈와 구더기』는 익히 알다시피 긴 설명이 필요없는 미시사의 고전이다. 우리는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메노키오'가 겪은 황당무게한 일을 어디선가 들어봤다. 16세기 프리울리 지방, 한 방앗간 주인인 메노키오는 그 마을에서 보기 드물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문명인이었다. 메노키오가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이 담대한 세계관은 놀랍기 그지없다. 세계관의 때깔이 좋다고 할까. 16세기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맹신에 대한 저항 속에서 '다른 종교' '다른 세계'에 대한 고백을 시도한 그는 소위 구리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다. 메노키오를 '시대를 깨운 인간'으로 보이게 한 요소에는 진즈부르그의 해석에 따르면 책도 무시할 수 없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파와 접촉을 했던 적은 있으나 메노키오는 이 모든 세계관은 자신의 머릿속에 나온 것이라 외친다. 물론 책 읽기가 모두 메노키오를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바로 진즈부르그가 주창한 '창조적 오독'이란 개념이 나온다. '구어'로 된 이탈리아의 민중 문화가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영향을 받은 문헌 문화와 섞이면서 메노키오는 어쨌든 '제대로 된 해석'은 아닐지라도, 그 해석을 시도한 결과 자체가 자신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2 예술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바라본 프리울리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우리에겐 소설보다도 〈살롬, 소돔의 120일〉이란 영화 연출로 더 유명한 인물.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잔혹성과 선정성이 그를 다 보여주는 건 아니다. 1950년대 이탈리아 지식인을 각성시킨 문학 잡지 《오피치나officina》의 편집자였던 그는, 이 잡지를 통해 세계를 도식화하려는 모든 움직임을 거부했다. 





늘 이탈리아의 주변부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파졸리니에게 '소수의 언어'였던 프리울리 방언은 눈에 띄었다. 그는 1942년 프리울리 지방 농민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첫 시집 『카사르사의 노래』를 발표해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당시 이 시는 프리울리 방언이 구사되었다.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민중의 언어 사용에도 횡포를 가하던 파시즘 정권하에서 프리울리 방언은 '야만어'의 범주에 속했다. 파졸리니는 해독 불가능한 프리울리 방언의 감성적이면서도 열성적인 순간을 표현하기 용이한 형태를 좋아했다. 물론 프리울리 방언을 선택한 것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파졸리니에게 프리울리 방언은 정부가 획일화시킨 언어 정책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언어이자 예술적 언어였다. 


3 프리울리를 다시 찾은 인류학자 더글러스 홈즈






뉴욕주립대 빙햄턴 인류학과 교수인 더글러스 홈즈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유명하게 만든 저서 중 

『Cultural Disenchantments: Worker Peasantries in Northeast Italy』(1989)란 책이 있다. 이 책의 학술적 의의를 정리하자면, 진즈부르그의 연구 이후 인류학 연구로는 처음으로 프리울리 지방을 다루었다. 홈즈는 프리울리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숙지한 채, 마을로 들어가 이태리 시민과 농민이라는 정체성이 교차된 '역사적 순간'을 목도한다. 

베버의 '세계의 탈주술화Disenchantments of world'라는 이론에 착안한 홈즈는 프리울리 지방이 역사적으로 지켜온 관습과 체계적인 변화의 바람 속에서 이 지방민들이 자기 나름의 생활방식과 정치 의식, 경제적 가치를 긴장 상태에 두고 있음에 주목한다.


1980년대 초반에 연구를 수행했던 홈즈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프리울리 지방민의 감정을 살핀다. 이들은 희망을 노래하며, 자신들의 낙천성을 표출한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제2차 대전 이후 나타난 정립된 '이태리 시민' 자본주의체제의 발현 속에서 혜택으로 다가온 듯한 현대적인 삶의 모델들. 프리울리 지방민들도 이를 모르던 것은 아니었다.


프리울리 지방의 인류학 연구를 통해 홈즈가 보고 싶었던 것은  소작농 노동자Worker Peasantries가  맞이한 변화와 이런 변화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그들 고유의 문화와 감정 또 변화를 받아들이는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와 감정이었다. peasantry가 소작농을 뜻한다면, peasanty는 그 어떤 제도의 압박을 받지 않고 단순하게 전통적 삶을 고수하는 사람을 뜻한다.  두 단어의 의미가 언뜻 겹쳐 보인다. 


이러한 내용을 알았다는 기분을 들고 프리울리 레스토랑에 가보는 게 좀 더 나은 시도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앎 자체'를

더 알고 싶을 뿐이다..


* 각 책들, 곽차섭 교수의 「까를로 진즈부르그와 미시사의 도전」, 한성철 교수의 「파솔리니의 빈민-지방문학 연구」

위키피디아, 아마존, 프린스턴대출판부 홈페이지, 뉴욕주립대 빙힘턴 더글러스 홈즈 교수 소개란 등을 참고했다.



 
 
 

 

 

1

 

송호근 교수의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송호근 교수의 이 책은 젠틀하다. 하지만 그 속에 저자의 야심이 가득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쉽게 정리하자면 송 교수는 '50대의 김난도'가 되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어떤 조언 위주의 글보다는 자신을 포함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타인과의 땀냄새/침냄새가 섞인 젠틀한 필드워크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저자가 나름 요즘 텍스트들을 챙겨보고는 있구나라는 점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50대의 엄기호'가 되고 싶어하는 듯도 보였다.

 

2

 

그러나 나 스스로 착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필드워크적 글쓰기'란 것이 비단 젊은 연구자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땅과 사람 그리고 접촉의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했던 많은 연구자가 있어왔다는 점에서 그의 필드워크적 글쓰기에 기반한 50대 베이비부머를 향한 그만의 인류학은 사실 그리 신선한 접근 방식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외려 필드워크가 지향하는 경험의 지향성은 소위 "~해봐서 아는데"라는 한국 중년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매우 가깝다는 점에서, 이 책의 필드워크적 글쓰기에 담긴 어떤 태도는 한국 중년 남성들이 흔히 갖는 약간 불쾌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교묘하게 만나는 지점이 있다.

다만 태도의 젠틀함에 섞여 그 교묘함이 약간 순하게 보여진다는 느낌일 뿐이다.

 

3

 

이 책은 참 순진한(?) 것이 왜 세대론을 통한 아픔의 위치와 그 중요성이 비단 베이비부머에겐 가면 안 되냐고 아우성치는 것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내가 교묘하다고 쓴 이 표현이 미안할 정도로 저자는 우직하게 베이비부머의 가치 좀 한국 사회가 알아야 한다고 점잖게 그리고 자신이 '사회과학자'라는 그 전문성을 지긋이 내세우면서 책의 결말을 보여줄 때까지 그 태도를 멈추지 않는다.

 

4

 

이 책은 대학원생들이 자리잡은 교수들 가운데 술자리를 같이하거나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어떤 학자형 대화의 연구 대상으로도 삼을 만하다. 저자는 호구조사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조상이 누구이냐면서부터 시작되어 그 조상과 관련된 역사적 정보를 꺼내어 공유해주고, 나름 젊은 친구들과도 그 호흡이 끊기지 않을 만큼의 유연함을 선보이면서, 묘한 온기를 내비친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연약한 아버지이자 평범한 아버지이지만, 지적으로 화려하되 경제적으로는 (이 책에서 많이 쓰이는 '운좋다' 등으로 살짝 자신이 이루어놓은 어떤 태도가 자만으로 보일까봐, 그 수위를 낮추고자 겸양된 표현의 전략을 쓰는) 못 미친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위로 대상과 수평적이지만, 그 나름의 차별성도 있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에서 정말 못마땅하다. 수평과 수직의 위치를 교묘하게 겹쳐놓으면서, 내가 이들을 위로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뭔가 관찰자/연구자적 위치에서, 라는 그 객관성으로  그 의중을 숨기면서,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얻은 성과들을 인정해달라고 하는 듯한 묘한 뉘앙스가 이 책에 대한 기분 나쁜 내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이유다.

 

5

 

그래서인지 그가 계속 '사회학자'라는 학문적 전문성을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도 매우 불편하다. 가교세대부터 시작해서 나름의 개념 설정/선정을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공유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전문성에 대한 강조가 자신이 위무하려는 세대적 비극-베이비부머의 비극을 온전히 잘 전달하기보단 저자의 나르시시즘 그 이상으론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필드워크적 글쓰기를 통해 최대한 타인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그리고 그것을 젠틀하게 담으려 했지만, 문제는 그 태도의 기본적 설정이다. 구리다/구리지 않다를 떠나서 왜 저자는 '피해의식'과  '알아주지 못함'이라는 정서를 통해 베이비부머를 위로하려는 시도를 시작했을까. 그러한 정서가 지배적이라서 이 젠틀한 필드워크가 내세우는 베이비부머의 특성 '그들의 소리내지 못함'과 '울지 않음'의 결합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라는 세대적 고통의 특수성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젠틀한 필드워크는 구리다 이상의 느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6

 

베이비부머가 사회 속에서 정녕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느냐/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이 책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메시지를 잘 읽지 못하는 것이리라. 문제는 다시 돌아와서 더 이상 그런 고통의 감수를 보여주면서 사회를 위한 헌신과 희생으로 소리내지 못함이란 상태를 연관시키는 건, 필드워크적 글쓰기가 지향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라는 가치와 전혀 만나지 못함이라는 것. 고로 송호근 교수의 필드워크적 글쓰기는 이미 자신이 내려놓은 사회적 법칙과 개념 틀 그리고 마음의 습관 속에서 자신의 말을 누군가의 입을 대신 빌려 전하는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이미 정해진 풍경과 그 언어 속에서 그만의 세계관이 정해진 사람인 것 같다. 그 안에서 자신이 만난 사람은 그를 깨우쳐주기보단 그의 꼭두각시라는 느낌일 뿐이다.



 
 
커피우유 2013-04-15 10:35   댓글달기 | URL
좋은리뷰 잘봤습니다. 저도 사실 이 분의 포지션을 잘 모르겠어요.
이념상 보수이고 자의식도 무척 풍부하신 분 같은데...객관과 관조라는 가면은 쓰셨지만 (원래 그게 학자들의 특성이고, 사회학이란 학문의 특성이긴 하지만 ㅋ) 결국은 본인이 겪고 경험하고 생각하는 틀 안에서 노실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시는 모습이 역력.
학교때 존경하던 K교수님께서 과연 학자들이 본인의 사회 경제 문화적 기반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는게 과연 가능할까에 대해 얘기해주셔서 한참 토론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참 어렵겠다 싶긴 해요. ^^;;
차라리 걍 솔직하게 까놓고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게 더 진솔해보일것 같은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자들이 본인의 당파성을 드러내는거랑 학문의 객관성을 침해하는게 같은 걸로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이분도 그런 케이스 아닐까 싶어요.

2013-04-15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작년에 나온 계간지 기획 중 가장 주목할 기획을 개인적으로 꼽는다면 『F』5호(2012)일 것이다. 부르디외 타계 1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부르디외를 읽자' 는 작은 몸집에서 우리가 고민할 수 있는 큰 이야깃거리를 잘 생산해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 기획의 각 꼭지 가운데 부르디외의 제자이자 우리에겐 『가난을 엄벌하다』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로익 바캉의 회상 「부르디외를 기억하며」도 좋지만 재미있는 꼭지는 부르디외가 『문화재화의 경제』(가제)라는 제목으로 출간하려 했던 한 장의 초고인 「아노미의 제도화: 19세기 프랑스 미술계에서의 상징혁명」이었다고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일단 이 짧은 초고에서 우리는 '예술사회학'이라는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술사회학도가 무엇을 연구하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꽤 다양한 범주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1-주

한국에는 아직 예술사회학이 많이 확산되진 않았다. 국내에는 부르디외 일급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이상길 교수가 가장 '예술사회학다운' 연구와 학술적 실천을 하는 가운데, 한준과 최샛별 교수 등등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경제자본, 사회자본이라는 주요 개념을 통한 한국 사회의 문화적 취향도를 그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 이상길 교수가 보다 이론적 토대를 닦으려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 두 학자는 실증 연구에 주력하는 편이다. 





2

그간 내가 예술사회학에서 받은 인상을 쉽게 풀어보면 '뒷담화의 전환술'이라고 이름붙여볼 수 있을 듯하다. 다들 알다시피 미학은 작품-텍스트의 가치 판별/판단에 주목한다. 그 작품이 왜 뛰어나며,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를 동원한다. 그리고 그 사유와 연관된 역사 또한 검토한다. 이 역사에는 우리가 감탄해마지않는 작가에 대한 천재성도 꼭 들어가곤 한다. '천재성'이라는 키워드를 연결고리로 삼아 예술사회학으로 돌아오자면, 예술사회학은 그 천재성이란 것에 대한 '사회학적 의혹'을 제기하는 학문이다. 작가의 천재성을 둘러싼 사회학적 요인, 더 쉽게 말해서 관련성과 관계성을 꼼꼼히 파헤쳐보려는 학문이다.가령 이 작가가 '명성'을 얻는 데 드는 경제적 비용은 어떻게 따져볼 수 있을까? 경제적 후원을 해주는 스폰서의 위치와 역할은? 이 작가가 지금의 위치에 있는데 유지되는 인간 관계적 특성은 무엇일까? 그를 둘러싼 예술가들의 커뮤니티 유형과 그 성격은? 이 작가의 천재성 혹은 그 작품 세계에 스며든 인문적 메시지를 휘감는 맥락은 무엇일까? 그의 전공은? 학교는? 지도교수는? 그리고 아카데미가 부과하는 예술적 규범이란 것도 있겠지?


예술사회학은 당신이 갤러리에 가서 "야야 이 작가 이야기 들었어?"로 시작하는 뒷담화를 어쩌면 조금 더 체계적인 학술적 체계에 담은 연구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 학문의 운명은 '정말 신선한 학문'이거나 때론 '좀더 괜찮은 뒷담화' 수준일 수도 있는 가녀림을 지녔다.


3

암튼, 다시 본문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노미의 제도화」는 당신이 예술사회학이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인지 감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아티클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부르디외가 다루는 것은 결국 대중이 '무형의 그 틀 없는 상태'라고 여기는 예술이 결국 '무형의 틀' 속에 있다는 주장의 경험적, 역사적 진술이다. 

3-주

나는 부르디외의 이론을 '무형의 틀'이라고 부르기 좋아한다. 그가 늘 강조하는 하비투스, 장 이론에 스며든 비구조적 속성 가운데 나타나는 구조성. 즉 자율적인 무엇으로 보이는 무엇을 통제하는 하나의 구조적 작동, 하지만 그 구조 또한 자율적인 무엇에 의존해야 유지될 수 있는 관계를 설명하기엔 '무형의 틀'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예술가, 더 나아가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자율성을 만들어가는가. 결국 이 예술가들이 줄다리기하는 경제자본(돈)과의 관계, 무엇보다 작가 자신의 예술적 세계관을 보이는 데 큰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는(적어도 부르디외에겐) 아카데미, 학문 사회와 예술가들의 존재를 직간접적으로 책임지는 국가 소유의 예술기관들이 부과하는 일종의 학문적 양식과 규범들(문화자본)에 대한 수용과 저항 등은 결국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예술 작품의 액자 속 틀이 말해주는 것과는 다른 틀에서 논의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더 나아가 작품의 액자 속 틀과 지금껏 말해온 부르디외의 논의 틀은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4

다만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늘 그렇듯이 한 개인의 행위에 대한 사회학 특유의 의혹은 '전략과 의도'라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작품을 '순수하게'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 학문이 그리 맞진 않을 것이다. 이 학문은 제법 우아한 '뒷담화'이지만, 한편으론 '뒷담화' 특유의 차가움도 가지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작가들의 가치관을 그런 식으로 의심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대해 예술사회학자들은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변론으로 그 어떤 학술적 주장과 수사들이 동원될 수 있겠지만 다만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진부한 결론은 지금 이 세계를 더 깊고 색다르며 유의미하게 바라볼 수 있는 도구를 준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날 자본에 잠식되어버린 예술 혹은 예술가들의 세계를 우리가 더 구조적으로 접근하면서 '학술적 실천'이 가져다주는 앎으로서 대상의 비극에 더 다가가려는 제스쳐가 될 수 있겠다.


5

다만 예술사회학의 운명이 더 기대되는 대목은 바로 이 아티클에서 강조하는 '상징혁명'이다. 국가와 아카데미에 예속되어 있던 예술가들의 양식과 그 가치관들에 저항하며 나타난 신진세력들의 행위와 그것을 떠받드는 사회학적 요인들의 매혹은 예술사회학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오르가슴이다. 무엇보다 이런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매개자의 역할로 예술사회학은 비평가를 주목하며, 예술사회학은 또한 '비평가의 사회학'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데서 흥미로운 학문이기도 하다. 예술계의 구세력과 신진세력의 충돌 속에서 비평가들은 구세력의 옹호자이기도 하며, 신진세력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 스스로가 비평가가 되며, 혹은 '친구'로서의 비평가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우리는  부르디외가 다른 글에서 꺼낸 미켈란젤로의 한 일화를 확인한 채 이런 상징혁명의 쾌감을 유지해보려는 연습을 시도하면 될 것이다. 그것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새 시선도 다음과 같이 더불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주 그렇게 하듯이, (상업권력, 경제권력 쪽에 놓이거나 혹은 진보와 혁신 쪽에 놓이는) '전지구화'와 문화주권의 보존이라는 고루한 형식과 결부된 민족주의를 대립시킨다면 문제를 잘못 제기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실상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들은 전 세계에 '비즈니스'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상업권력과 그것들을 통치하는 사람들 간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창작자들의 국적 없는 인터내셔널이 생산한 문화작품의 보편성 옹호에 바탕을 둔 문화의 저항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대단한 후원자였던 교황 율리우스 2세와의 관계에서 의전상의 형식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앞서 가기 위해서 언제나 최대한 서둘러야만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미켈란젤로가 제시한 이 전통을 지속시켜야만 한다. - 피에르 부르디외, 「문화의 생존 가능성」중 (이상길 옮김) 


덧붙임) 그리고 예술사회학이 숨겨놓은 또다른 반전은 그 신진세력이 저항하는 새로운 가치관 또한 언제든 예술사회학이 쳐놓은 '무형의 틀'에 예속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모순적인 내 해석과 표현이지만, 그들은 새로워지자마자 그들은 곧 옛사람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술사회학은 그 지점 또한 놓치지 않고 해석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테리 이글턴의 《이론 이후》를 읽다가 의미를 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을 발견했다. 그 대목은 아래와 같다.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주장해온 인본주의자들은 양자를 비교할라치면 질색하곤 했다. 오늘날에는 문화주의자들이 이런 비교에 불쾌해한다. 인간의 본성이나 본질 같은 개념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문화주의자들은 인본주의자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한편에는 언어와 문화를, 다른 한편에는 잔인하고 말 못하는 자연을 놓은 채 양자를 날카롭게 구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인본주의자들과 같다. 혹은 그렇지 않다면 문화주의자들은 시종일관 문화를 통해서 자연을 개척해야 한다고, 자연의 물질성을 분해해 의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본주의자들과문화주의자들의 반대편에는 이른바 자연주의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인간성의 자연적 측면을 강조하며 인간과 다른 동물의 연속성을 보려고 한다.  

사실상 도덕은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의미 있는 것을 이어준다. 요컨대 우리의 물질적 자연[본성]은 우리의 도덕적 육체속에서 의미나 가치와 융합된다. 문화주의자들과 자연주의자들은 서로 상반된 목적 때문에 이 수렴 과정을 간과한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연속성을 무시시하거나 과대평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문화주의자들이 옳다. 그들의 주장처럼,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감각 세계를 포함해 우리의 세계 전체를 변모시키는 비약적인 발전이다

인용한 구절이 길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테리 이글턴은 《이론 이후》를 통해 '문화 이론'의 형성과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그는 특히 문화연구의 오류 몇 가지를 책 속에서 지적한다.  인용한 구절은 그 중 문화연구가 취약하다고 주장한 '도덕'의 문제를 논하는  6장 도덕에 나온다. 내가 여기서 읽고 갸우뚱한 대목은 '문화주의자'라고 번역된 대목이다. 원문에 어떻게 표기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문화연구에서 '문화주의'라는 개념이 꽤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글턴이 설명하는 '문화주의자'와 '자연주의자'의 대립 관계는 좀 엄밀하게 설명될 필요가 있다. 

더 뚜렷하게 말해보자면, 이글턴의 216쪽 내용은 '문화주의'와 '문화주의자'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줘야 한다이 대목이 정확하게 전달되려면 가령 이런 식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글턴이 여기서 말한 '문화주의자'는 첫째, '문화주의'를 따르는 자인가? 둘째, 아니면 '문화'의 엘리트적인 개념을 신봉했던 리비스나 매튜 아놀드 같은 사람들을 따르는 '문화'+ '주의자'인가?  

첫째, '문화주의'Culturalism를 따르는 자,라면 이 책은 '문화주의'의 개념을 설명해주고, 이글턴은 여기서 이런 의미로 '기존의 '문화주의' 개념과는 다른 무엇을 설명하는 것 같다,고 해주는 것이 좋은 역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럼 과연 '문화주의'가 무엇이길래? 문화주의는 쉽게 말해서 '문화연구'의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일종의 '정치적 기획'이라고 줄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삶의 총체적 방식'이라고 정의내렸던 '문화'. 문화는 더 이상 우리 세계의 주변부가 아니며, 무엇보다 경제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지향점이었다. 이 지향점은 나중에 '구조주의'를 받아들이는 스튜어트 홀 같은 사람을 통해 두 개로 분리된다.  

무엇보다 '문화주의'는 계급적 권력에 관심이 많았다. 고로 권력을 가진 계급과 국가의 관계를 탐구하며, 이 관계로 인해 억압 당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 그리고 그 위치 속에서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내는 삶 속 저항의 목소리[일종의 저항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맥락 아래, 문화주의는 '그들의' 삶에 직접 들어가서 삶을 기록하고 관찰하는 '연구방법론'의 의미도 포괄한다.  

(나의 설명은 크리스 바커나, 요시미 순야, 프랜시스 뮬런 같은 문화연구자의 시선을 따랐다)

자, 이렇게 본다면 테리 이글턴이 주장하는 '문화주의자'와 '자연주의자'의 대립 속에서 '문화주의'+'자'란 도식이 있을 때, 뭔가 어색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주의'의 개념을 따른다면 이는 '문화주의'의 한계를 인식했던 문화연구자들이 내놓은 대안이었던 '구조주의'와 대립 혹은 상보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이제 두번째 문제. 내가 보기에 이글턴이 말하고 싶었던 '문화주의자'란, '문화'의 의미 변화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기 좋아했던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방식과 유사하다고 본다. 즉, 오늘날 우리의 삶 자체를 문화로 긍정할 수 있기 이전의 시대, 그 당시 '문화'가 갖는 어떤 우월성을 자신의 우월적 존재로 일치시키려 했던 사회. 그랬을 때, 이 사회를 주도했던 권력자 혹은 지식인들에게 '문화'는 일종의 질 높은 교양이자, 자신을 다른 존재와 구별짓는 '문명인'으로서의 징표였을 것이다. 고로 내가 보기에 물론 원어라는 것이 있지만, 한국어로 더 다가오는 이글턴의 구도는 '문화주의자' 대 '자연주의자'이기보다 '문명주의자' 대 '자연주의자'로 보인다. 그랬을 때 인간 본위의 사고로 인해 자연을 '구분'하려는 태도가 낳은 오류를 더 쉽게 독자들에게 인식시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이재원 2012-05-27 04:46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역자입니다 ^^;; 본의 아니게 이해를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네요. 일단 원래 표현은 "문화주의자"(culturalist[s]), "인문주의자"(humanist[s])입니다. 제가 번역할 때 사용한 하드커버판(Allen Lane, 2003) 156~157쪽의 내용이 문제네요. 제가 이해하기로 얼그레이효과님은 "문화주의자"와 "문화연구자"를 구분하고, 이글턴이 해당 부분에서 비판하는 "문화주의자"는 사실상 "문화+주의자"(리비스, 아놀드 등)=문명주의자 아니냐, 이렇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역자로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이글턴이 말하는 "문화주의자"는 "오늘날에는"(원어로는 these days)이라는 수식어가 함축하듯이 리비스나 아놀드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얼그레이효과님이 구분하는 바로 그 문화주의자가 맞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책의 논의 구도에서 이글턴이 말하는 문화주의자는 곧 문화연구자입니다. 더 간단히 말해서 윌리엄스나 홀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게 이글턴의 논의구도입니다. 그러니 보기에 따라서는 "싸잡아" 비판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 일단 이글턴의 논의구도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럼 이런 이글턴의 논의구도(더불어 표현법)가 정당하느냐......하는 문제가 남는데, 저도 문화이론을 전공하고 있지만, 이글턴이 좀 과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사실 저도 뭐라 딱히 잘라 말하기가 좀...... 제가 해당 부분에 "좋은 역자"로서의 개입을 못/안 했던 건 제 자신이 이렇게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어서입니다. 긴 해제로 퉁칠려고 했는데 좀 부족했나 봅니다 ^^;;

그런데 바커, 순야, 뮬런 등이 "문화주의자"와 "문화연구자"(혹은 문화이론가)를 딱 구분하는 법을 제시했던가요? "문화주의[자]"라는 표현이 "문화" 만큼이나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지라 저는 그 방법이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