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 넘치는 생각 때문에 삶이 피곤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 처방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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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몇 년간 '내향성의 장field of introvert'으로 불릴 만한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내향성 전문가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가 나와 큰 주목을 받은 것도 있지만, 그전에 나온 '내향성 연구의 선조' 일레인 아론이 쓴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 갖는 의의를 지나칠 순 없을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이라고 하는, 타인과 부대끼고 살아가는 사회 현실 속에서 내가 하는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과하게 두려워하는 증상을 되짚어보는 책들 또한 눈에 띄고 있다. 그 대표주자로 우리는 심리학자 크리스토프 앙드레의 여러 책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태어나서 누구나 겪게 되는('-하게 되는'보다 더 심리적인 부분이 들어간다고 보는 표현이기에) 대인 활동 가운데 생성되는 자존감 대 모멸감이란 구도를 조망하면서 심리학자들은 관계에 억눌려 있는 이들을 위무하는 해결책들을 꾸준히 내놓는다. 


그 누구보다 섬세한 성격을 갖고 신중한 사교성을 발휘하며, 번잡한 환경 속에서 정서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경계하며, 자기 삶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내향성 인간은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의 견해에 따르면 현대형 개인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심리치료사이자 본 책의 저자 크리스텔 프리콜랭은 '지나치게 섬세한 인간'에 주목하면서, 특히 마음속에 생각의 다발을 늘 형성하는 이들에 주목한다. 프리콜랭은 지나치게 섬세한 탓에 생각의 주머니를 제어하지 못하는 이들을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고 명명한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감각 과민에 처한 사람들이다. 평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세상물정에 대해 그들은 관심이 많고 에너지를 쓴다. 물론 이들은 자신의 성향에 대한 괴로움을 알지만 자기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늘 속상하다.


사실 이러한 감각 과민이라는 개념이 프리콜랭의 독창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일찍이 사회를 상호작용의 과정이라고 본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대도시와 정신적 삶」 같은 글 등을 통해 대도시가 쏟아내는 감각과민, 신경과민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과민을 감지하고 있기에 되도록 타인을 건드리지 않으려 하며 이는 둔감함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둔감함은 타인과의 접촉과 만남에서 필요로 하는 센스의 결핍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자극에서 예상 외의 정서적 에너지를 소모할 것을 두려워하는 예방의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짐멜은 이러한 감각과민 혹은 둔감함의 상태가 시민사회의 한 형태라 보았다.


무엇보다 내향성의 장에서 내향적 인간을 규정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감수성의 과잉이다. 이는 곧 타인의 고민에 대해 감정을 이입하는 강도가 세다는 것과 연결된다. 프리콜랭의 견해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타인의 말에 집중하려는 태도, 즉 '경청'이 과하면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프리콜랭은 "감정이입은 공감이나 연민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침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힌다. 사실 프리콜랭뿐만 아니라 내향성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경청의 태도를 지닌 내향적 인간이 타인에게 귀 기울이며 쏟은 에너지가 제대로 회수되지 못했을 때의 상처였다. 프리콜랭 또한 정신적과잉활동인의 "자신이 남들에게 기울이는 관심과 이해를 언젠가 자기도 받게 될 거라는 기대는 무참히 박살 난다"라고 언급한다.


자, 이런 책에 자주 빠져 사는 이라면 연구자들이 '꿍꿍이'라는 것에 연구상 애착을 보인다는 것을 익히 알 것이다. 내 안에는 진실된 자아와 거짓된 자아가 함께 살고 있지.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내가 만난 사람들을 VIP로 모시기 위한 '접대용 자아'가 발동이 된다고. 그리곤 집에 들어와서 녹초가 되지. 사회는 곧 연극이란 무대임을 역설했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충실한 후예들은 디테일한 심리학적 서사를 통해 개인 안에 깃든 꿍꿍이 읽기에 집중한다. 좀 젊잖게 표현하자면 의중 읽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프리콜랭의 분석을 따라가보면 이런 의중 읽기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매우 즐겨하는 행동이다. 이 완벽주의의 그물망에 복속된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타인의 의중 읽기에 재미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의중 읽기에 대한 결과를 발표할 때 매우 예민하다. 그런 예민함이 간혹 우연히도 타인을 향한 배려 없음으로 나타날 때 그들은 그것을 미리 감지하고 사과를 한다. 허나 대부분 사과를 받는 입장에선 '이런 걸 가지고 사과 씩이나'라는 말풍선을 그릴지도 모른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늘 마음속에 갖고 다니는 평가안 중 하나인 "창피해서 죽을 것 같은 당신"(이는 실제로 사회공포증을 연구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을 연상하면서 오늘도 그들은 당신의 마음을 읽으려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 있다.


혹 이러한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 생각되는 사람이 당신은 별로 힘들지도 않고 무덤덤한 일상을 보내는데, "요즘 힘든 것 없니?"라며 카톡으로 물어보는가? 그렇다면 실제로 별일이 있으면서도 "그럭저럭 지내"라든지 "응 좋아 요즘"이라고 보내보라. 그리고 상대방이 "응 다행이다:)"라는 답변이 온다면, 그는 당신의 일상이 왜 이렇게 평평한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당신과 같은 사람이 정신적 과잉 활동인에게는 가장 까다로운 상대임엔 분명하다.


나는  그들은/우리는-으로 시작되는 치료의 단계까진 부러 읽지 않았다. 저자가 밝히듯 "정신적 과잉 활동의 소유자들이 책을 건성으로 빨리 읽어버리기 좋아한다는 것은 나도 익히 안다. 이들 대부분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금세 포착하기 때문에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라는 견해에 수긍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면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란 말이냐"라는 입장을 존중한다. 살면서 누구나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고, 그러한 폐 끼침이 상대방에겐 기억나지도 않는 일일 수도 있기에. 정 괴로우면 불면의 밤 가운데 이불 속 하이킥이라도 시도하자. 그러고 내일을 맞으면 된다. 


'꿍꿍이의 중독자들'(이 중독자들은 정신적과잉활동인일 수 있고 이들만큼이나 섬세한 연구자-저자 일수도)에 대한 치유책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한 치유책을 쓰기까지 저자들, 이를 잘 받아들이는 연구 대상자가 들인 디테일과 이들의 의중을 간파하려고 쏟은 내 디테일까지 진하게 생각한다면, 인생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다가가려 하되, 지나치게 다가가진 말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이 구린 말도 가끔은 써먹을 때가 있다. 






 
 
알리샤 2014-06-06 18:49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관심가는데요. 콰이어트란 책은 전에 읽은 적 있는데 정작 그 책을 읽어야 될 외향성 사람들이 그걸 읽을지 강한 의문이 들었어요. 이 책도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내향성 사람들에게는 자기 이해의 기회를 주겠지만 저는 이제 자기에 대해 생각할 시간에 몸을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얼그레이효과 2014-06-06 20:21   URL
익히 아시겠지만 한 개인 내 내향성/외향성의 비율 문제인 듯한데, 외향적 인간에 대해 좀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논리적 전개상 불가피한 시도이긴 한데, 외향적 경향 사람들을 위한 설득력 있는 균형점은 이 책도 그렇지만 아직 인상적인 책은 못 본 듯하네요. 네 저도 밤에 이불 속 하이킥 대신 초등학교 운동장 도는 재미를 택하려고요.헤..

루쉰P 2014-07-10 19:04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ㅎ
이달의 당선작으로 되셨길 래 이렇게 반가운 맘에 들어와 봅니다.
이 책은 그리 유쾌한 책은 아닌 것 같아요. 뭐랄까? 경청이라든지 그런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인 거 같은 데 너무 차갑게 생각한다고 할까요?
너무 분석을 할려다 보니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없어진 듯 싶어요.
사실 저도 내향적 경향의 인간이라 타인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다가 보상 받지 못해서 이불 속에서 하이킥 한 적은 있죠 후후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 보고서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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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에 깨문 희망`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평범성의 인간들에게 보내는 존 버거의 찬사.


 
 
 
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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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사회과학적 명제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는 저자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살아 있다. 다만 이번 작품은 세상의 짐을 다 지고 가려는 저자의 부담감 같은 게 느껴져 옆집 형님이 소주 한잔해 하며 툭 던지는 특유의 섬세함/진솔함/담백함이 약간 희석된 느낌이다.


 
 
 
[세트] 선생님의 가방 1,2 (완결, 묶음)
다니구치 지로 글.그림, 오주원 옮김, 가와카미 히로미 원작 / 세미콜론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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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면 두 가지 경계심이 든다. 하나는 노인을 현자로 만들어 무성성에 가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생기는 덜 자극스러움과 어떤 거리감을 사랑의 이상적 형태로 제시하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도 욕망이 있다"라고 하는 시선으로 노인을 그리는 것이다. 특히 노쇄한 노인의 육체적 이미지와 상반된 뜨거운 성적 감정을 강조하여 그들도 인간이다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가와카미 히로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이 두 측면을 '의식'한 작품이다. 지로 특유의 일상을 향한 온기 그리고 아포리즘과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삶을 '감내하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그만의 매력적인 아포리즘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은 아까 말한 경계심의 전형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에서 도망가려 애를 쓴다.

익히 알다시피  '거리distance'를 유지하는 구도의 연인 관계를 그린 작품들은 '일분일초의 사랑'과 이를 뒷받침하는 고백의 범람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친 마음을 회복해줄 대안 공간으로 제시되곤 했다. 허나 일분일초의 사랑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린 행복할 줄 알았던 사랑에 왜 아파할까. 그리고 그 아픔을 자초했던 후회스러운 기억이 문득 찾아올 때 뜨끔함을 은근슬쩍 누군가와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작품의 두 주인공 선생님과 그의 제자 쓰키코는 '후회했던 순간'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택한 것은 '혼자 하다'이다. 허나 그들은 사람과의 관계를 칼같이 단절하진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되 문을 조금만 열어두었다. 조금만 열린 문을 확 열어 제끼는 이들을 그리워하는지 혹은 그 조금만 열린 상태를 예민하게 신경 쓰면서 제가 조금 들어가도 될까요?란 질문을 여러 번 하는 이들에 호감을 품고 있는지. 작품은 그런 이유를 뚜렷하게 말하려곤 하지 않는다.

단촐하고 소소한 만남. 그 만남의 분위기를 돋우는 술과 안주. 그리고 풍경을 벗삼은 여행 가운데 선생님과 쓰키코의 사랑은 정말 '그려질' 뿐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노곤함'이란 감정의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보고 나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집밥을 만들어 먹고 노곤한 기운에 취해 낮잠을 자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되게 많이 잔 줄 알았는데, 일어나 시계를 보니 그리 얼마 되지 않은 기분 좋은 낮잠 같은 분위기가 선생님과 쓰키코의 애정을 감싸고 있다.

다만 욕심을 좀 더 부리자면 노선생과 제자의 사랑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과 반응을 표현하는 부분은 그렇게 비중 있게 나오진 않지만, 그 짧은 몇 씬이라도 차라리 과감하게 생략하고 가면 더 인상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허나 다시 작품을 뒤돌아보건데 이 작품은 사랑의 이상적인 풍경을 그리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진 않는다. 누구나 겪고 이겨내가는 삶의 기운 속에서 '누구나'라는 거리만큼은 가까이 두려 한다. 

나 같은 평범한 독자들이 진부함을 두려워하고 삶 속 새로움을 늘 동경하면서도, 다시 그 평범성을 찾아 돌아가고 있는 이유를
이 작품은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 동아시아의 사상은 가능한가? 아이아 총서 1
쑨거 지음, 윤여일 옮김 / 그린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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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동아시아 사상의 흐름 읽기`가 아닌,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 읽기 그리고 이에 관심 많은 편집자들이 참고했으면 하는 책. `잡감`이란 것에 대해 중요한 문제의식을 심어주기도 하는 책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