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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들의 호기심


                           김신식


올해가 벌써인 사람들과 올해는 아직인 사람들이 만나 벌이는 유일한 위안은
결국 세상사와 주변일이었다
할머니의 손주름이 아니더라도
달력이 된 손가락은 시절과 세월을 
탓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오늘은 김씨, 이씨, 박씨, 최씨들의 시시콜콜함에
끼어들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뾰족한 한 녀석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성자 타령이냐며 그 선한 음흉함을 벗어던지게
라고 십자가를 보이면
자네 이 성경구절을 아는가 하며 들킨 마음을
숨겼다

누군가의 아이고, 만 들어도 또 누가 떠나는가보다 싶어 대신 말을 이어주면 탄식한 친구는 

그런 게 있다네로 날 아이 취급하지만 이내 소주로 입을 이리저리 헹군 뒤 

그게 말일세로 운을 띄운다
나는 본디 청개구리라 막상 말이 시작되니
이미 딸딸이를 친 기분이네 농을 던지니
어허 사람 참 하는 삿대질이 싫지 않았다

탄 마늘만 씹어먹던 윤씨가 고백의 제왕인 줄
진즉 알았더라면 젓가락 짝이라도 맞춰줄걸
속으로 곱씹었다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문양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입담에 아직 반 이상 남은 술잔을 보는 

계획맨 임씨는 마음을 놓은 채 여기가 명당일세라며 엉뚱한 추임새를 넣었다

작별들의 호기심이 새어나올라 치면 윤씨가 고맙게도 땡초를 먹어주니 

풋고추라 속인 아주머니의 분주함에 박수를 보탰건만
윤씨의 뚝심은 분발에 분발을 더하거늘
오이를 먹던 성씨가 아이 매워를 깡마르게
외치니 그 시끄럽던 고깃집의 말들이 
물구나무를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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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조퇴할게요


                            김신식



새벽 두세 시 울퉁불퉁한 표정으로 자기 매장

우육탕사발면을 드시던 패밀리마트 아저씨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미스테리다


출근길 개그맨 장두석을 닮은, 늘 후드 점퍼를

두툼하게 입고 안 어울리는 색감의 루이뷔통 숄더백을

맨 청년은 또 이유 없이 나를 뻔하니 쳐다본다

미스테리다


버스정류장에 뒤섞인 비누향, 샴푸향은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않은 채 누군가는 자고도 있을 시간에 헐레벌떡

출근하는 그 혹은 그녀들의 행진이다

하지만 그들의 축축함은 미스테리다


근데 나 왜 이곳에 있는거지 미스테리다


사장님, 저 오늘은 조퇴할게요

(씩씩하게 누워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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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거리는 어려움


                        김신식 


지젝 할배는 자기를 문제삼는 게

자신에 대한 특권이라는데

난 스스로에 대한 바닥일 뿐이야

그래서 매일 가슴이 뛰지 그것뿐이니까


가슴이 뛰니 문제는 문제야

뛰는 건 좋은데 사는 건진 모르겠어

그래서 살려고 뭐라도 보는데

밑줄을 긋고 접을수록 눈이 가렵고

마음은 화생방이야


그래서 결국 실소만 남았는데

웃으면 웃는다고 뭐라 그래

찡그리면 찡그린다고 뭐라 그래


그래 이렇게 가슴이 쿵쾅거리는 건

뭐라 그럴까봐 두려워서 그런가봐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인데

웃음이 멈추지 않아

가슴은 더 뛰고

...

쿵쾅거리는 것도 어렵대

웃기지? 무서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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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 2013-05-11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 좋음요!!!
 

                        살점 


                                            김신식


청각 손상의 위험이 있으니 너무 높은 

소리로 듣지 마세요란 말을 무시한 채

그 빠른 랩 가사를 꼭꼭 씹어먹는다


듣고만 있으면 돋아날 줄 알았던 살점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오징어 눈알이

되어버렸다


끄덕일 줄만 알면 맨드리 있게 짜일 줄

알았던 쥐난 발가락은 발악 끝에

차라리 겨울잠을 자자며 스스로를

포기한다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라고 묻기가

무섭게 눈꺼풀이 무겁다

오늘도 불면이다

살점이 떠나 방황하는 걸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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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 2013-05-11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식 시의 독자임요!!
 

마음이 맵다 


                    김신식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기사의 선의가 

나의 괜한 심술을 찌푸린다

그런 거 있잖나 술에 취해 졸다가

다시 깨어나보니 모두 망가져버린

그래서 이런 선의가 가시는 정작 아닌데

객쩍은 방어의 주문


눈이 감기고 졸리는 시간 기사는 날 위해

볼륨을 줄여주고 난 거기에 맞춰

이어폰을 낀 채 심술을 또 부리고


아무 이유 없는데 엄마에게 왜 이리

맛없냐며 찬거리까지 따지던 심술은

주머니 속은 돈을 가득 구기고 구겨

기사 당신이 또 선의를 베풀면 이 돈을 더 구기겠다고


눈을 떠보니 세상은 그대로

어디서도 연탄 기운은 남아 있질 않아 그치만 매워

어디서부터 언제 어떻게 그런 거 다 망가뜨린

연탄 기운은 어디에 어디에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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