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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세계와의 대결에 실패해서 생긴 먹먹한 감정이 아니다. 오늘날 우울은 세계와의 대결에 왜 자신을 낄 수 없는가에서 비롯된 좌절감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는 듯하다. 고로 우울은 세계를 향한 부정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부정의 부정으로 나아간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아니다. 사회학자 워너 본펠드의 말을 떠올려보면, 부정의 부정을 긍정으로 생각하는 사고는 세계를 향한 긍정을 미리 규정해버린 이들의 영역일 뿐이다. 허나 우리의 비판적 기획은 긍정을 미리 규정해버렸을 때 많은 걸 놓치고 만다. 고로 부정의 부정에 대한 생각은 세계와의 대결을 벌이는 주체 자신을 강조하듯 소묘하고 그 비극적 결말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부정), 그 부정의 방식을 감안한 채, 자신이 기대고 있는 세계의 잔혹함 자체에 방점을 찍고 생생히 그려냄으로써 주체의 필연적 실패를 이야기한다(부정의 부정). 


주체의 필연적 실패는 앞에서 말했듯, 세계와의 대결 자격을 둘러싼 박탈감, 초조함, 무력감이 혼재된 우울의 상태다. 그러했을 때 부정의 부정이란 사고를 받아들이는 우울의 주체들은 이 세계를 향해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왜 세계는 나를 혼내지도 않는가(김소진이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보여주듯, 이 세계가 괴물 같은 이유는 세계가 더 이상 나를 혼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울의 주체는 우울의 기예에 등급이 있다는 것을 과거에 비해 더 기민하게 신경쓰게 되며, 선망할 수 있는 '우울가'를 분석하면서 동경한다. 분석되는 우울가는 자신이 분석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을 따라할 이가 생긴다는 걸 안다. 고로 모방할 수 없으면서도 슬며시 모방을 할 수 있게끔 틈을 벌려준 채, 도망쳐 새로운 우울의 구역을 만든다. 

그러했을 때 앞서 나간 우울가는 우울과 가까이하는 세계를 향한 냉소와 그 냉소에 반하는 지극히 평범한 감정을 능숙히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우울로부터 '당황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타격한다. 우울가의 우울에 당황함으로써 만족감을 얻던 이들은 이제 우울가의 우울이 실은 평범성에 기초해 있다는, 누구나 누리고픈 행복의 상태에 귀속되었다는 반전에 당황함으로써 우울가를 동경한다. 

최근 우울과 세계를 문제의식으로 삼은 여러 젊은 해외 뮤지션의 앨범 리뷰와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면서 나는 어떤 공통점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들은 내향성에 기초한 사운드 속에서 굉장한 문화자본을 가지고 그 내향성의 사운드를 실생활에 관한 선망의 영역으로 구성해낼 줄 아는 기예를 가졌다. 나는 이들을 '포스트 멜랑콜리'의 주체들이라 명명해보려 하는데, 이들의 '문화적 우울'은 가장 전략적이지 않으면서 그렇기에 전략적인 감정의 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6개월의 공백이다. 하지만 이 기획을 완수하기 위해 쉬진 않았다. 다만 어떤 망설임과 초조함 그리고 비판받음의 여지 가운데 예민한 각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고민했다. 

먼저 감정사회학을 '고요의 사회학'으로 비판하는 이들을 향한 내 나름의 반론을 다져나가면서 비판가들은 감정사회학을 '팔자 좋은 사회학'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학의 연성화를 우려하는 그들의 의도는 짐작이 가지만, 그들만이 비판이론의 정수인 것처럼 (마르크스는 그들에게 좋은 보호막이 된다) 행세하는 건 불편하다. 
감정사회학은 비판이론의 기획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관련 학자들은 지금도 활동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분과학문은 이제 시작이다. 비판가들의 재판은 이르며 부당하다.

지난 18회까지 정리하면서 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서의 이론과 그 맥락으로 내향성이란 성격문화를 고찰했다. 근래 국내 출판에서도 형성된 내향성에 관한 문헌을 참조하면서 '내향성의 장'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일리언 아론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지만,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가 가져온 열풍은 '내향성 담론'을 촉발시켰다. 어빙 고프먼의 자기계발 담론적 전유인 본 책은 우리 시대의 성공 모델에 내향성이라는 성격문화를 잘 절합한 성과임이 분명하다. 
다만, '사회적 상호작용'을 인간 대 인간의 심리적 갈등으로 축소시키는 가운데 나타나는 기존 질서의 안정화라는 한계는 가장 손쉬운 비판이면서 이 기획이 갖는 비판의 출발점임은 부인할 수 없다.

*내향성의 사회학 2라운드로서 나는 내향성의 사회학이 의식해야 할 비판이론으로서의 보충물을 수집하고, 더 나아가 이 비판의 대상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윤곽을 계속 드러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기획은 부르디외와 에바 일루즈의 개념 작업을 참조해 '내향성의 리더십'과 이를 문화기획으로 전유하면서 생기는 전략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음악웹진 웨이브를 통해 선보인 <라나 델 레이: 우울의 리더십과 명성문화>란 글은 한 예다. 
특히 '우울의 리더십'이란 틀은 내향성의 사회학이 견지하는 비판적 기획으로서 그 모델들을 하나둘 선보일 것이다.원고를 끝냈고, 곧 웨이브를 통해 두 번째 모델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우울의 리더십은 김홍중의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그리고 랜들 콜린스의 <내향성의 작은 역사> 그리고 부르디외의 장이론이 결합된 개념화 작업이다. 내향성과 문화권력이란 테마 속에서 이 개념화 작업은 진행된다. 
무엇보다 우울의 리더십은 예술가의 감정, 고독의 숭배자라는 18~19세기 사회의 감정문화적 산물이 오늘날 문화기획/문화기획자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만들어지고있는지 집중한다. 그러면서 생기는 우열의 관계는 단지 인물에 대한 애호가 아닌, 그 애호에 동원되는 사회적 행위에 주목케 한다. 우울이 '문화적 우울'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각 사회 주체들의 절합은 불안한 봉합으로서 우리는 이 불안함을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한나는 <한 희망 없는 내향성 인간의 고백>이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이다. 그녀는 기독교 대학에 재학 중이며, 영문학과 비교문화 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한나는 자신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걸 싫어한다. 허나 자신이 인디락에 심취해 있다는 문화적 표시에는 마음이 열려 있다. 자신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긴 싫지만, 그래도 이 부분만큼은 밤을 새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영역, 그것은 그녀가 남이 잘 듣지 않는 음악을 선호하고 있단 사실이다. 

 

그녀가 2013년 8월 26일에 남긴 일기의 제목은 <나는 지금 영문학 수업의 힙스터야, 야호?>다. 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한나는 개강 첫 주, 수강신청한 두 수업은 아무런 정서적 에너지 소비 없이 무난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세 번째 수업이 문제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초중반부는 한나가 보기엔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수가 실라부스를 주며 수업이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 말하며, 교재를 사세요 라는 말을 했다. 분위기가 어색할까봐 나오는 잡담까지도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헌데 '이제, 5분 남았나? 집에 가자..'는 기대감을 깨뜨렸던 교수의 제안이 있었으니 '자기 소개 시간 갖기'였다.

 

한나는 블로그에서도 밝혔지만 남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 취미가 뭔지, 내 가족은 어떤지를 떠벌리는 게 무척 싫다. 학생들이 이런 시간을 싫어한다는 것을 안다는 둥 교수가 먼저 모범을 보였다. 다른 소개야 한나의 예상대로 였던 듯한데,  교수가 인디락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어 이 사람 보게?'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나가 생각하기엔 교수들이란 느끼한 클래식 음악을 들을 것 같은 부류라 생각하는 게 여전히 좀 남아 있었기에. 암튼 이어 학생들이 하나둘 나와 자기 소개를 했다. 물론 소개 시간은 갈수록 짧아졌다. 드디어, 한나의 차례. 이 시간에 그리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녀가 이 일기를 쓰게 된 원인이 나왔다. 자신의 문화적 선호를 밝히고 만 것. "저는 인디락을 좋아하구요.." 마침 교수가 이 질문을 놓치지 않고 잡아챘다. 한나는 이 말이 나오자마자 실수란 걸 알았다. 그러면서 자신을 한번 비웃어준다. '그래 나는 이 수업에서 교수의 좋은 편에 서고 싶어하는 여자지. 어느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교수는 한나에게 좋아하는 인디락 밴드 이름을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과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한나는 지금처럼 뜨기 전, 인디 씬에 있던 이매진 드래곤스의 음악을 좋아하구요로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밴드들의 이름을 말했다. 누군가의 반응에 민감한 한나는 자신이 그 말을 하고 나자 몇 명이 킥킥 웃어대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교수도 뭥미?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 같다.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반응을 비웃는다. 자신이 이 수업에서 힙스터가 된 것 같다고.

 

힙스터는 '반反의 정서'로 버텨온 '실체 없는 문화적 부류'라고 할 수 있다. 힙스터는 자신이 힙스터라고 지목당하면 정작 당사자는 난 힙스터 아닌데, 라고 말하는 '부인 전략'으로 존재를 유지한다. 힙스터들은 세상과 타인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나는 이 시대 사람들이 다 우루루 몰려 가서 하는 걸 경멸하지? 하는 입장에 있는 문화 부족인 듯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관심 있는 비세상인을 선망하는 사람들'인 역설적 상태의 '문화 석학'이다(이 표현을 쓰는 일부 논자들은 조소라는 의미를 넣어놓는다).

 

자, 이제 내향성과 힙스터의 끈을 고민해볼 때다. '내향성의 장'이란 연구 분야에서는 내향성과 문화 그리고 미디어의 연관성을 미약하게나마 분석해왔다. 소피아 뎀블링 같은 심리학자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문자 문화와 친숙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전화의 구술성이 내향적인 사람에겐 큰 정서적 에너지 소비로 느껴지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말보다는 글로 자신의 영역을 표현하고 지켜나가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견해에 따르면 메일과 페이스북, 트위터는 내향적인 사람에겐 안성맞춤인 매체다. 누군가와의 접촉을 통해 드는 정서적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고, 그 보존된 양으로 매체 활용에 신경 쓰는 게 내향적인 사람들에겐 중요한 요소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힙스터들은 구술을 통해 자신의 '까칠까칠한' 스타일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나, 인터넷은 그들의 까칠까칠함을 극대화시키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힙스터는 이제 '쟤는 뭔데, 별루 한 것 도 없는 놈이 저렇게 인기가 많지?' '쟤 봐, 스키니 진에, 저 의미도 모르고 쓰는 모자 봐, 선글라스 하며?' 같은 어디에도 갖다 쓸 수 있는 펑퍼짐한 용어가 되었으나, 사람들은 외려 이 펑퍼짐한 상태로 인해 힙스터를 언어 게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랬을 때 내향성과 힙스터를 치면, 힙스터는 '까칠까칠한'이란 성격 유형으로 일반화되는 것 같다. 우리 인터넷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쿨내 나는 인간들'로 수렴되는 것이다. 

내향성의 연구 역사에서 내향적인 것이란 초기에 '차갑고, 무뚝뚝하고, 줏대 없고, 따분하고, 까다롭고'라는 성격 유형으로 정의되었다. 1960년대 성격 이론가들의 이러한 결과물은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내향성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쪽으로 보완되었다. 내향적인 사람들이란 '깊이 있는, 창의적인, 융통성 있는, 책임감 있는' 성격을 가진 이라는 것이다.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는 내향성의 유형을 분석하면서, '스스로 소외되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이런 소외는 자신에겐 자부심인데, 콜린스는 이런 '반항적 개인주의자'와 '고독 숭배자'들이 현대적 개인주의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정의한다(사실 이러한 진술에 대해선 우린 얼마나 많은 하위문화에 대한 문화연구적 시선을 익혀왔던가). 콜린스는 이런 정의의 과정 속에서 '테크놀로지에 집착하는 이들' 특유의 개인성에 주목한다. 이들은 모임에서 대개 활기도 없고, 자신과 맞지 않는 농담이나 뜬소문을 나누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수줍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그러다가도 자신과 비슷한 '기술적 지식'을 갖고 이를 보여주려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을 연다.

힙스터는 자신이 지닌 문화자본에 애착을 보이기 때문에, 세상에 나온 사물에 관심이 많긴 하다. 단 그 관심 많음의 영역을 희소성으로 규정하고, 친한 사람 외에는 남이 따라올 수 없는 장벽을 쳐 '무관심'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전략을 쓴다. 힙스터는 자기 주변의 '싱거움과 진부함'을 활용해 존재를 유지하기 때문에 타인의 취향 관찰에도 민감하며, 그래서 그들은  '만남과 모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을 오글거림으로 규정하고 이러면 차라리 집에 가서 웨스 앤더슨의 영화나 볼 걸 하는 말풍선을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런 점에서 힙스터는 자신과의 문화적-정서적 공동체를 만들어줄 가능성 있는 이와 에너지를 쓰고 싶어하는 만남의 효율성을 따지는 내향적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은 집 안에서 힙스터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정서적 에너지 줄이기의 매체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문화적 구별짓기가 내향적인 사람일 수록 더 민감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유니크한' 문화를 소유하고 있다는 그 '차이 확증의 심리'를 더 강하게 품고 싶어할까? 아니면 절망적인 대답 '케바케'를 택해야 할까?

 

'내향성의 장' 연구자들은 내향성-외향성이라는 성격 유형을 설명하는 단계에서 그들이 왜 이런 문화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외부 요인' 분석과 그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적어도 그런 점에서 랜들 콜린스가 고려하는 내향성 연구는 '종교적 속성의 기원을 가졌던 내향성' '시장에 토대를 둔 지식인과 주류 사회를 적으로 삼는 반항적 유랑아, 급진적 사회운동의 결탁 관계 그리고 내향성' '창조적 인성과 예술 장 그리고 내향성' 등을 내향성의 미시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챙겨보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검색해보면 내향성과 힙스터의 관계를 궁금해하며 나름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흔적이 온라인엔 많다. 물론 그들이 펼쳐나가는 심도 있는 고민만큼 상대의 반응이 안 올때가 많지만. 힙스터들? ESFJ도 있고 ISFJ도 있고 그러지 뭐, 라는 시큰둥한 반응들 그 자체를 보고 혹자는 힙스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1. 외국엔 내향적인 사람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자료가 꽤 많다. 그중 '내향적인 사람도 사회학을 전공해도 될까요?'란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를 내향적인 사회학자라고 지칭한 랜들 콜린스(실제로 내향성을 연구하기도 했던)는 전문가 냄새를 풍기며 명쾌한 사회학적 지식으로 그 질문에 답을 해줄지도 모른다(그는 내향성의 미시사를 실제로 정리해본 사람이며, 자신이 주창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연쇄론으로 내향성이라는 현대형 개인주의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한 사람이다).

 

2. 그러나 이럴 땐 학문의 때가 덜 묻은 이들의 답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찾을 수도 있다. 답을 쭉 읽어보니 예 내향적이어도 충분히 사회학을 전공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한 쪽은 먼저 자신을 수줍음을 타는 사람 (shy person)이라고 소개하며 사회학을 전공 중이라 밝혔다.  자신은 곧 사교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사교성에 대한 이런 부인은 답변자가 충분히 사회학의 신조(?)를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게오르그 짐멜은 시민사회를 분석하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친교'였으니 말이다. 랜들 콜린스 또한 내향성을 설명할 때 사교적/비사교적이라는 대비를 자주 애용한다. 콜린스는 내향적인 사람이 비사교적이다라는 시선에 더 가깝다. 허나 심리학자 소피아 뎀블링은 내향적인 사람들 보고 제발 사교적이지 않다는 편견 좀 던지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3. 이보다 더 흥미로운 건 답변자 중 몇몇이 자신들이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내용이다. "수줍음이 많아서 강의실에 가면 자리 뒤에 앉아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즐기죠" 혹은 인터뷰 등의 작업이 흥미롭다는 답변도 있었다. 사람들을 조사하는 만남이 좋다는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을 다룬 여러 책을 보면 '관찰자observer'로서의 내향성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띌 정도로 많다. 그러면서 연구자들은 내향적인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강조해 편견을 깨려는 논지를 택한다. 간단한 관심 수준이 아니라 특유의 섬세함과 감수성을 동원하는 관찰자로서의 내향적 인간은 '내향성의 장'에서 자주 다뤄지는 테마다. 

 

4. 아무래도 사회학적 진술에서 내향성이란 곧 '비사교성'으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허나 이는 좀 재고해볼 문제다. 랜들 콜린스는 나름 섬세하게 내향성을 설명하지만, 군데군데 내향적인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고 교제하는 것에 대해 에너지를 너무 안 쓰는 경향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내향성에 대한 연구는 아무래도 심리학 쪽이 강세이긴 하지만, 심리학계에서는 '내향성의 장'이라고 하는 영역을 하나의 사회로 보려는 데는 별로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면 대 면(face to face)의 측면에서 나타나는 진실된 자아-거짓된 자아라는 축에서 정서적 에너지를 생산, 소비하는 데 디테일을 동원하기 때문에 상호작용이라는 형식 안에서 개입되는 개인 간의 불균등(사회적 현실에 속한 개인의 상태, 계급-자본-젠더-정치 의식 등등)에는 문제의식이 약하다. 

 

5. 그러나 역시 이런 질문에서 가장 심적 우위에 있는 사람은 "사람마다 다 다양한 성향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다. 참고로 내향적인 사람들은 이런 답변을 하는 사람에게 약하다. 자신이 섬세하고 꼼꼼하게 준비한 표현에 대해 가장 성의 없고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타인을 향해 투여한 정서적 에너지가 그만큼 회수되지 않기 때문에. 





 
 
 














*치병일기_ 발터 벤야민의 '신열'
발터 벤야민,「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읽고서 

1
치병일기는 자신에게 다가온 병을 함부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병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예전에 사둔 약을 찾거나 병원에 가 진료를 받는다. '에이 좀 자면 낫겠지'라며 긴 잠을 약으로 생각하는 이조차도 사실은 병의 존재를 가벼이 보지 않는다. 허나 병에 걸렸다고 해서 누구나 그 아픈 순간을 깊은 혹은 색다른 사유로 돌아보는 기록으로 일일이 남기진 않는다. 다행히도 저자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를 공유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어떻게든 공유하기 위해 생을 시작한 사람들이자, 그것을 밥벌이의 숙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 공유 대상에 병도 포함될 수 있다.

2
서재를 뒤져보다 우연히 실제로 병을 앓았던 작가, 철학자, 사회학자 등 세상을 조금 범상치 않게 살았던 이들이 병을 겪으면서 남긴 기록이 꽤 있구나 생각했다. 살면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든 그냥 범인凡人의 생을 사는 사람이든 아프면 사람들은 기록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왜 아픈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병의 심각성이 더해지면 이를 어떻게든 감추고 살려는 이도 있지만, 가족과 친지부터 시작해 연인과 친구에게까지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털어놓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위안을 얻는다. 때론 자신에게 찾아온 이 병이 신이 주신 벌이 아닐까 하여 과거를 돌아보고 잘못된 기억을 곱씹으며 자책한다. 그러면서 그 침잠된 우울함에 자기 자신을 맡겨보기도 한다. 치병일기는 이러한 상태를 거치면서도 병을 자기 내면과의 폐쇄적인 싸움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모은 작업이다. 자신이 고통받고 있는 순간, 그 누구도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없는 자기만의 아픔을 기록의 힘을 빌어 뱉어냈을 때 외려 그 이해와 공감의 폭이 커지는 서사와 사유의 시간. 병의 완쾌라는 귀결이 꼭 아닐지라도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혼란을 주는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써내려갔던 이들의 서사가 기록되는 시간. 그것이 내겐 치병일기였다. 

3
익히 알다시피 발터 벤야민은 어린 시절 자주 아팠다. 하지만 그는 아픈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외려 느긋하게 병을 즐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교육에 별 매력을 못 느꼈던 유년기, 그는 베개로 산등성이를 만들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어두운 갱도의 정적을 즐겼다. 그 정적 가운데 혼잣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그림자놀이를 하기도 했다. 침대에 가깝게 붙은 벽은 그림자놀이를 위한 극장이었다. "명랑한 어린이들은 저녁의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법 없이 그림자를 이용해서 재미있는 놀이를 합니다"라는 놀이 책의 구절을 간직하던 벤야민은 손가락으로 늑대 아가리를 만들며 놀았다. 그는 소아병에 걸린 자신을 향해 "내 방에서 나는 세계의 파괴자로 늑대 상을 등장시켰던 것이다"라고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회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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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병에 걸려 신열이 심했던 벤야민이 가장 그리워했던 건 이야기였다. 
"내 몸은 이야기를 탐하고 있었다. 이야기로 가득 찬 강한 물길이 내 몸을 통과해 흐르면서 몸 안의 병의 징후들을 부유물처럼 씻어내렸다. 통증은 이야기의 진행을 막고 있는 댐이었지만 나중에 이야기의 힘이 커지면 통증의 바닥이 파이면서 망각의 심연으로 씻겨내려갔다."
이야기의 결핍을 채워준 이는 벤야민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벤야민을 쓰다듬으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주었다. 어느 선조의 인생 행로, 할아버지의 좌우명 등을 벤야민에게 이야기함과 동시에 하루에 두 번씩 체온계를 직접 관리하며 일찍 죽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것이며, 삶에서 잃는 게 많은 것인지를 납득시키려는 양 행동했다(이런 추측은 벤야민이 직접 느끼고 기록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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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그리워했던 벤야민은 자연스레 책 없이는 못 살았던 사람이었다. 의사의 진찰 뒤 당분간 침대에 누워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들은 벤야민은 독서를 금지당했다. 좀 괜찮겠지 싶을 때 매일 밤마다 의사의 소견을 어기며 책을 읽은 뒤 베개 밑으로 책을 밀어넣어 감추기도 했지만 병이 심해지면서 책을 읽지 못할 정도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6
어느 날 그의 몸에서 병이 물러난 것을 깨닫자, 가장 먼저 귀 기울인 것은 그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들의 양탄자 터는 소리였다. 그는 그 소리가 인상 깊었는지 남자의 가슴에 새겨진 애인의 목소리보다 더 깊숙이 새겨졌다고 표현한다. 병과의 인연을 잊으려고 할 즈음 그가 정말 아팠구나 확인해준 것은 결석한 시간의 합계가 적힌 학교 성적표였다. 그러나 벤야민은 그 결석의 시간들이 우중충하거나 단조롭게 보이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결석의 173시간을 일련의 명예훈장이라고 생각했다. 
피부에 약간 반점이 생기고 구역질이 나는 정도였다고 생각했던 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자신이 아팠던 순간을 이렇게 정리한다.

"매번 병이 날 때마다 그것은 항상 다음과 같은 점을 가르쳐주었다. 불운이 얼마나 정확한 박자에 따라, 그리고 얼마나 조심스러우면서도 재빠르게 내게 일어나는지를. 그것은 남의 주목을 끄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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