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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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아이, 결혼 스무해가 넘도록 애가타던 아이가, 그럭저럭 정 붙이려고 노력하던 덩치 좋고 뚝심 좋은 마나님의 뱃속의 생명이, 자기 씨가 아니라면!!! 이책이 극소심 생원 나으리의 탐정 수사록....이라면 조금 과장이겠고, 뒷 표지의 당찬 발언 "당신 자식이 아닙니다" 가 이 책의 중심 내용이라면, 것도 조금 설명이 더 필요하겠다.  

모르는 말, 낯선 단어들이 있다고 해도 책장 넘기는 속도는 늦춰지지 않는다. 불륜을 깔고 시작하는 소설인데도, 우리의 꽁생원은 꽁한 심사로 "끄응"하는 소리만 낼 뿐 뭐라 댓거리도 못하고, 다른 인물들도 그리 불량스럽지 않다. 공생원에 비해 품도 크고 친구도 많고 두루두루 사람들을 챙기는 우리의 마나님은,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니 이 책은 마나님 넷트워크 위에 짜여진 그 시대의 여러 삶이다. 280일 (임신기간이렸다?) 동안 타는 속으로 버텼을 마나님을 대신해서 그 놈의 꽁생원을 꼬집어 주고는 싶지만, 워낙 콤플렉스가 많은 인간이라 용서하기로 했다. 

위화의 허삼관도 생각나고, 익숙한 전래동화 (특히 박씨부인) 도 떠오르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결말도 작가의 입심 덕에 "재미지게"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 마따나, 나도 "노는 마음으로" 끝 장까지 따라갔다. 꽁생원에겐 안 된 마음이지만, 그의 노심초사야 내 상관할 바가 아니고 책장을 넘기면서 "허 허" 하면서 나도 모르게 옛스런 웃음소리로 박자도 맞췄다. 첫 번은 노랫자락 처럼 읽어 냈으니, 두 번 째는 그 맛난 말들을 찾아 가며 읽어야겠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이런 저런 조선시대 모습들을....어디까지 역사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금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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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니, 이디시
명지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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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한 느낌마저 주는 제목에 끌렸다. 장편 1Q84의 2권이 나오지 않아서 쉽게 1권을 다 읽어버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단편을 중간에 읽어줘야 내 흐름을 늦추겠다 싶어 단편 <이로니, 이디시>를 시작했다.

잘 모르겠다. 극중 두 아씨들이 저마다의 '이론' 으로 설명을 하지만 화자인 몸종 여자애처럼, 난 잘 모르겠다. 얼핏 이 두 아씨들의 농이나 별난 처지가 불쌍하기도 하고, 이 아씨들은 바로 명작가의 문학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렵기만하다. 책 말미에 실린 복도훈 문학 평론가의 설명 대로, 명작가의 소설은 그냥 읽기에는 뭔가가 계속 걸린다. 책을 읽고나서 의미를 혼자 가만가만 곱씹는다. 씹을 수록 맛이 다르다. 씁쓸한 그 맛이 그윽하다. 어쩌면 내가 잘못 아는게 아닐까, 하지만, 정답도 없는 듯하니 마음이 놓인다. 

낯선 소재, 샴 쌍둥이, 인육 조리, 내 몸 속의 벌레, 변신 (벌레가 아니라 물고기), 동성애, 배신남에 대한 육탄 복수, 리얼돌(이런 단어는 이번 기회에 배웠다. 헉), 그리고 장기 이식,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낯선 이야기, 엽기 설정에 온다 리쿠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명 작가는 이런 설정 으로, 물질적인 우리들 몸을 통과하면서, 다른 이야기를-내 생각에는 문학론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단편들은 판타지로 읽히지 않고, 비유적 (어쩌면 시적이기 까지 한) 이야기로 읽혔다. 짧디 짧은 내 혓조각으로, 내 무딘 손가락으로는 풀어 쓰질 못하겠으니, 명 작가 표현을 빌자면 칼로 썰어 내야할 판이다. (흐미....) 

표지 처럼 하얀 상태로, 아무 것도 미리 듣거나 읽지 말고, 명 작가의 단편들을 만나길 바란다. 모든 평이, 리뷰가 스포일러다. 그리고 다 읽은 후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오래 오래 곱씹기를 바란다. 문장은 메마르고 이야기들은 불친절하다. 하지만 역겹지는 않고 소설 속 불쌍한 인간들, 그들의 몸뚱이가 내 몸뚱이 같아서 덩달아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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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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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라는 작가의 글로는 두 번 째, 소설의 형태로는 첫 만남이다. 다섯 단편 소설의 묶음과 저자의 말, <나의 문학의 길>이 실려 있다. 전에 읽은 수필집도 작가가 편집에 공을 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 그는 각 나라의 번역서 마다 새로운 저자의 말을 쓴다 - 이번 <나의 문학의 길>도 그런 배려가 보인다. 

각기 다른 단편들이 (배경이 항상 여름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의미의 원제 <炎熱的 夏天>의 오늘날 중국을 사는, 또 한국을 살아 내는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 마다 메마른 일상 속, 범부들이 두려워하는 (하지만 동경도 하는) 흔들림이 찾아온다. 소심한 속물들을 비꼬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다행히 그 시선이 잔인하거나 매섭지 않다.

 

간결한 문장은 독자의 시선과 상상력을 편안하게 다그치지도 않고 마냥 늘어지지도 않는다. 구질구질하게 감정에 호소하거나 끈적거리는 미사여구가 없다. 이 무더운 여름 날, 읽고 나니 내 마음 속 시원한 바람이 분다. 당연히 아직 못 만났던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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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무렵
정양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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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의 시간, 책 읽는 짬짬이, 살림하는 짬짬이, 아이들 커가는 속도에 놀라고, 내 늙은 몸에 놀란다. 그리고 한결같은 세월과 계절에 놀란다. 겨우 마흔에, 허, 하고 시인 정양 선생님은 웃으실지도 모르겠다.

첫 부분에는 세시풍속을, 뒷 부분에는 잘 여문 인생의 시간에 대한 명상을 담았다. 무거운 인생의 시인데도 수월하게 소리내어 읽을 수 있고 여러번 읽을 적 마다, 그때 그때 다른 감동으로 남는다. 한 동안 내 가방 속, 잠드는 배게 속에 품어야겠다. 내년 복날 때 까지 일년 동안 두고 읽으면서 세월 속에 나를, 아직 철이 덜 들어 나잇값 못하는 나를 다독이고 싶다. '입추'에서 시인이 말했듯 나도 '한평생 헛것에 매달려 산다는 걸 나는 영영 깨닫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뭐 어떠랴, 곧 단풍으로 온 산이 물들고, 온몸이 성감대 였다는 그 불타는 산을 바라보면서 '상강2'를 읊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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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문학동네 동시집 7
김륭 지음, 홍성지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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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집 읽기가 당황스럽고 내 속을 들킨 것 마냥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시치미 뚝 떼고 읽어야지. 이건 시집이거든. 이미 세상에 찌든 아줌마의 딱딱한 머리를 들켜서는 안 돼. 이번 기회에, 초등학생 아이와 통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자, 마음을 비워보리라.

시집 제일 첫 머리에 시인은 어려운 시라고 했다. 여러 싯구에서 힘이 빠지기도 또 긴장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없는 딸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다 되어 주었다는 시인 김륭 선생님의 설명 탓인지, 아니면 팥쥐 어멈 저리가라고 고약을 떠는 (특히 방학 때면 그 정도가 울트라 캡숑 특급이다) 내 양심이 찔리는 건지, 이번 시집에선 유독 생활에 또 삶에 쩔어 있는 엄마, 어머니들의 얼굴이 많이 보인다. 본디 동화나 동시에서는 자상하고 너그러운 엄마나 어머니만 있는 법 아니었나? 하지만 김륭 시인의 세상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곳이다. 나무도 풀도 과일이랑 개구리, 고양이, 개 ...모두 있지만, 다들 우리 식구가 사는 작은 집을 둘러싸고 있다. 자연도 인간이 사는 곳의 연장이고,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말로 장난질을 친다. 억지로 예쁜 척을 안하는데도, 예쁘다. 시를 쓰는 눈과 입도, 아이의 눈일까, 아니면 아이와 함께 읽는 부모의 눈일까, 삶과 생활을 함께 담고 있다. 정겹고 친근하다. 완벽한 추억과 깨끗한 자연이 아니라서 좋다.  

시집 속의 엄마들은 잔소리가 많다. 그래서 ‘잎이 많은 풀’이 된다. (밥풀의 상상력) 엄마는 집안일로 종종거리다 강아지가 마당에 똥을 싸는 꼴을 보자면 ‘누렇게 신문지처럼’ 얼굴을 구기고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맛있는 동화) 나른한 오후, 엄마는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사내라고 졸라도 대꾸도 없이 누워있다. 엄마 뱃속에서 나는 꾸루룩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그 ‘산 만한 배를’ 베고 논다. 엄마는 아침부터 돼지고기, 점심에는 고등어를 챙겨 먹고, (아니, 아이들에게 챙겨 먹이고) 잠시 누웠겠지. 그덕에 아이들은 원기충천해서 엄마 배를 타넘고 장난도 친다. (게임기) 엄마가 벌떡 일어나 혼이나 내지 않을까 웃음이 났다. 사이좋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외출한 날,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자면 무당벌레 푸르르 거리듯 발랑 뒤집어 지면서 떼를 쓰는 아이들이다. (무당벌레)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손잡고 다니면서 매일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둘은 ‘따로국밥’ 이고 ‘심심하면 티격태격’ 싸운다. (부부 안경점) 아빠의 퇴근이 늦는 날이면 엄마는 ‘엄청 열 받’아서 칼등으로 동생 머리통을 쥐어박을 지도 모른다. (수박이 앉았다 가는 자리) 늘 방 한 가운데 앉는 아빠 앞에서 엄마는 부엌칼을 들고 과일 앞에 선다. (수박 대통령)  왜, 엄마는 ‘아빠가 지겹다’고 할까. (3학년 8반) ‘하루빨리 전셋집 벗어나고 싶은 엄마 가난한 마음’ 탓인가 보다. 아빠가 술에 취해 늦은 밤, 아빠의 신발은 뒤집어져 있는데 엄마는 그냥 놔 둔다. 그리고 양말도 못 신고 나서는 아빠의 발가락은 애벌레 마냥 처량하다. 힘은 세겠지만 말이다.(애벌레 열 마리) 얼핏,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런데, 그 노래를 아이들 옆에서 같이 부르는 엄마의 눈초리가 매섭다. 아빠가 외박이라도 하면 엄마는 밤새 눈에 불을 켠다. (낮달)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날이면 아이는 ‘엄마 아빠 눈빛 마주칠 때마다 털이 빠지는 미운 오리 새끼’ 가 되 버리고 만다. (미운 오리 새끼). 이 오리가 백조가 되어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미운 오리 새끼는 아직 어린 아이일 뿐이고, ‘꽁지 빠지도록 새끼들 찾아’ 가는 어미새를 기다려야 한다. 자식들 먹이려 벌레 잡는 어미새는 훌쩍 떠나버린 엄마 대신 그려보고 싶은 모습이었을까. (달려라! 공중전화) 601호 코흘리개 새봄이는 6층에서 1층으로, 또 6층으로 엄마만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린다. 코도 닦지 않고 엄마만 기다리는 꼬마는 잔소리 하는 엄마라도 그립겠지. (코끼리가 사는 아파트) 월말이면 이런 저런 세금 고지서를 안고 은행으로 향하는 엄마, ‘노란 잎사귀 무성할수록 걱정도 많겠지만 몸은 무겁고 머리 복잡하겠지만 씩씩한 우리 엄마’ , 두 아이를 은행알 처럼 품고 찬바람에 맞서는 엄마의 든든한 품 속을 그리고 있겠지.(은행나무) 그래서, 툭하면 잔소리에 무서운 눈을 뜬 엄마지만 ‘수진아’ 하고 부르면 발이 보이지 않게 데굴데굴 구르며 뛰며 달려온다. (소리로 만든 운동화) 

재미있는 시,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시, 아름다운 시, 귀여운 시, 중에서 요즈음 내 생활을 가장 잘 그려내 주는 시는 단연 <여름방학>이다. 시인의 모기와 매미에 해당하는 꿀벌 두 마리가 우리 집에서 붕붕 날아다닌다. ... 오늘 하루만이라도 소리지르지 말아야지, 저 어린 꿀벌들에게 못된 대마녀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 그리고 커다란 부엌칼을 집어 든다. 냉장고에 든 수박을 쩍 갈라서 두 아이들에게 먹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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