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400. 면도날 (서머싯 몸)

처음 접하는 '몸'의 작품이다. 1920년대에서 시작해서 40년대까지 이어지는 소설은 미국 출신의 유럽에서 활약한 '사교계의 거물'인 엘리엇과 그의 조카 이사벨, 그녀의 남편 그레이, 그리고 이사벨의 첫사랑인 래리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눈걸 옮기고 있다. 개츠비의 시대, 그리고 헤밍웨이가 파리의 카페에서 글을 쓰던 시대다. 장편인지라 이야기는 엘리엇의 과거사와 그의 매끄러운 처세를 그리는 듯하다가 어느새 '청춘의 빛'을 찍는 이사벨과 래리로 넘어간다. 그리고 모든 청춘의 질문을 안고 떠나는 래리. 그는 순수한 청춘의 얼굴, 아니면 세상 모르는 어린이 같지만 모두의 데미안이 아닐까. 거구의 사람 좋은 그레이와 우아한 이사벨, 수잔과 소피, 모두들 적잖은 분량의 출연 동안 톡톡히 자기만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래리의 인도 여행기 (혹은 참선기)를 읽은 후라 마음을 놓았을 때 벌어지는 사건은 작가의 솜씨인지 그저 인생의 whim인지. 모두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해피엔딩, 아니겠냐고 담담히 적는 '몸'의 소설은 책을 덮은 나에게 이런 저런 생각을 남긴다. 이 소설은 심심한듯 지루하지 않고, 또 의뭉스럽게 이런저런 철학적 이야기를 상투적으로 보이기 딱 좋을 위치에 두면서, 어때? 하고 묻기도 한다. 아, 이러면 내가 웃을 수도, 그렇다고 각잡고 인상쓸 수도 없잖아요. 소설 속에서 자주 보이는 여자를 깔보는 태도는 마음에 안들었지만 이 소설은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이미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이라 래리의 인생탐구생활에 응원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내가 이사벨의 그 속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난 그녀보다는 덜 속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진 것도 없고. 소설이 인생이라면, 인생이 소설이라면, 그럼 나의 해피엔딩은 무엇일까. 인생의 관뚜껑을 닫을 때 엘리엇 처럼 기괴한 치장을 할 수 있다면 나의 최후의 멋부림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생각의 끝은 오래전 지나버린 내 청춘의 시절로 달려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