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400. 갈매기 (안톤 체호프)
처음 읽는 체호프의 희곡. 얽히고 설킨 남녀관계가 뻔해 보이지만 인물들의 대사는 (특히 조연들) 한마디 한마디 정확하게 자기 자리로 날아가는... 화살같다. 뭔가 일을 저지를듯하던 마샤의 체념이 생생하고 극히 현실적인 도린은 지금 이시대 사람 같다. 꿈꾸던 젊은이, 그리고 순수하던 갈매기만 사라지는 구나. 

 

니나: 나는 이제 알아요, 그리고 이해해요, 코스챠,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건 소설을 쓰건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명예가 아니라, 내가 동경하던 그 눈부신 명성이 아니라, 참는 능력이라는 걸 이젠 알아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믿음을 갖는 거야. (갈매기, 제4막)

 

73/400. 전화 (염상섭)

황석영 한국 명단편 전집 배송을 인증샷 까지 남기며 흥분했지만, 정작 책장을 열고 읽기 시작한 건 어제, 친구와 하루 한 편씩 같이 읽자고 약속하고 나서였다. 혼자선 이런저런 독계획은 흐지부지 되버리기도 하니까. 작년의 <모비딕>을 끝까지 읽지 못한 것이 그 증거. ㅠ ㅠ

염상섭은 고등학생 때 알던 그 작가가 아니다. <삼대>를 읽으면서 그의 역량에 감탄했는데, 단편에서도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거침없다. 그리고 작품에 더한 황작가의 해설은 그 예리함과 깊이를 더한다. 연재때 놓치고 이제 책으로 만나 읽게 되는 염상섭의 단편과 황석영의 해설은 나의 한 해를 더 가치있게 만들어 주겠지.

 

염상섭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돈'에 대한 구구한 설명과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는데, 소설이란 결국은 세속의 산물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전화'는 개발독재시대였던 1970년대까지도 특권의 상징이었는데, 1920년대의 식민지 조선에서라면 더욱 그러했을 터였다. (47)

 

74/400. 쥐불 (이기영)

돌쇠나 이쁜이가 김원준에게 화를 당할까봐 조마조마했다. 쥐불놓기가 배경이라 추운 겨울의 빈 논과 들판을 떠올리며 읽었는데, 궁핍한 시대상을 그렸지만 그 속의 인물들이 의외로 씩씩하게 살고 있었다. 아직 현진건의 인물들 보다는 덜 찌들은 느낌. 당차게(?) 바람피우는 이쁜이가 귀여웠다. 돌쇠의 앞날이 팍팍하겠지만 이기영 작가의 세계에서는 주눅들지 않고 살아나가겠지. 황석영 작가의 해설에는 작가 이기영의 의외의 계보, 랄까 인맥이 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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