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분명히 그 사람들은 진실에 가까운 말을 하고서도 맞아 죽지도 않고 미치광이가 되지도 않고 살아남을지도 모르지. 그 작자들은 픽션의 틀로 사람들을 온통 기만하지. 그러나 픽션의 틀을 덮어씌우면 아무리 끔찍한 일도, 위험한 일도, 파렴치한 일도, 자신의 신변은 안전한 채로 말해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작가의 직업을 본질적으로 취약하게 만들고 있어. 작가 자신이 아무리 절실한 진실을 말할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는 픽션의 형태로 무슨 일이건 말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말하는 모든 진실의 독성에 대해 미리 면역이 되어 있는 거야. 그건 결국 독자한테도 전달되어서 픽션의 틀 속에서 얘기되는 내용에는 벌거벗겨진 영혼에 직접 적나라하게 파고드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깔보이게 되는 거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문장이 되어서 인쇄된 것 중에는 내가 상상하고 있는 종류의 사실 얘기란 존재하지 않지. 기껏해야 진실을 말할까, 하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포즈를 취하는 소설을 만나는 정도야.
(294)

나는 뒤뜰의 구덩이에 숨어서 아침을 맞이했을 때 똑같이 불타오르는 빨간 산딸나무의 잎을 보고, 이 분지의 지옥도의 인상을 떠올리고 신호를 받아들인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그때는 불확실했던 신호의 의미를 나는 지금 쉽사리 해석한다. 지옥도에 정착된 이 빨강의 '위무'는 가장 단적으로는, 그들 자신의 지옥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무서운 사람들의 위협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면서, 좀 더 어두컴컴하고 불안정하며 애매한 현실 생활을 얌전하게 살아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자기 위안을 위한 빛깔이다. (50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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