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2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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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천여 명에 가까운 여인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쉬자 않고 달려오느라 머리가 헝클어지고 산발이 된 여자들은 해질 대로 해진 누더기 사이로 굶주림으로 죽어갈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내느라 지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품에 안고 있던 어린 자식을 초상과 복수의 깃발인양 번쩍 추켜들고 흔들어댔다. (93)

"빵을 달라고!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 있는 줄 아나보지,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는 빵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101)

그의 입에 쑤셔넣은 흙은 그가 내주기를 거절했던 빵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 빵만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는 것은 그에게도 전혀 득 될 게 없었던 것이다. (122)

그는 지금까지 자기 마음속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째서 갱들을 가로지르며 광란의 질주를 벌인 이튿날 그토록 역겨움이 느껴졌는지를 자문해 보았다. 하지만 차마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차례로 떠오르는 기억들은 그에게 혐오감만을 안겨주었다. 동료들을 지배하는 천박한 탐욕과 상스러운 본능, 바람에 실려 전해지는 처절한 빈곤의 냄새, 그는어둠이 안겨주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탄광촌으로 되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 그들의 지도자라는 자부심과 끊임없이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자 했던 마음이 서서히 떠나가면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부르주아의 정신을 스스로에게 불어넣고 있었다. (137-138)

에티엔은 자신들의 불행이 저들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거대 자본의 무소불의의 힘 앞에 또다시 절망감을 느꼈다. 저들은 약한 이들의 패배를 이용해, 지쳐 쓰러진 이들의 주검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려나갔다. (144)

"그렇게 길게 얘기할 필요 없소이다." 참다못한 마외가 불쑥 퉁명스럽게 말했다. "백 마디 말보다 우리한테 빵 한 조각이라도 가져와보란 말입니다." (162)

부자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죽여야 하다니, 이렇게 비극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197)

그는 그녀와 결혼해 깔끔하고 아담한 집에서 함께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빵만 먹고 살아도 충반할 터였다. 빵이 한 쪽 밖에 없다면 그건 그녀 몫으로 내줄 것이다.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사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는가? (265)

한 남자의 마음 속에 여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끝난 것이다. (268)

공포와 싸우는 동안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동안 잠들어 있던 믿음이 다시 깨어났다. 그들은 대지의 신에게 기도했다. 이것은 대지가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이 대지의 동맥을 잘라냈기에 대지가 피를 흘리는 것이었다. (320)

"오, 맙소사! 꿈이 아니었어! ... 다시 시작되고 있어, 맙소사!"
또다시 악몽을 떠올린 카트린은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327)

"그럼 어쩌겠나? 그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따르는 수밖에... 다들 탄광에서 차례로 죽어간 것처럼 그 아이들도 결국 그렇게 되겠지." (359)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다. 그들을 벌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들은 자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노동자들에게 총을 쏘았던 것처럼 언젠가는 주인들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될 터였다. (360-361)

그의 발밑, 깊은 땅속에서는 고집스레 리블렌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의 동료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에티엔은 그의 걸음마다 그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에티엔은 밀밭 아래, 산울타리 아래 그리고 어린나무 아래에서까지 도처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369)

여전히, 땅과 가까워지는 것처럼 동료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더 또렷이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햇살이 비치는 젊은 아침에 전원이 잉태한 것은 바로 그 소리였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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