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신
아이린 카일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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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빠는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 "네 머릿속에 뭐가 들어쓴지 아무도 몰랐지." 햇빛이 내 얼굴 위로 쏟아졌다.눈물이 마르고 살갗이 뻣뻣해졌다. "네가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부터 그랬어. 우리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안으려고 하면 너는 등을 잔뜩 구부리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어." 아빠는 고개를 돌리고 나를 마주 보았다. 진지함으로 부드러워진 눈빛, 완벽한 진실의 순간이었다. "너는 나를 닮았어."

우리는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 사이로 서로를 보았다. 이것은 아빠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 중에서 '내가 잘못했다'와 가장 가까운 말이었다. 내가 들을 수 있는 말 중에서 사과와 가장 가까운 말이었다. 나는 눈물이 허옇게 말라붙은 입술로 아빠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애썼다. 이제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222쪽

"아이가 생기면," 올트먼 부인이 대답했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열리는데, 그건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느낌이랑 비슷하거든. 내가 완전히 열리니까 그럴 때는 무엇이든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 나는 그것으로 가득차게 되고. 어떤 여자들은 슬픔으로 가득 차는 거지."

"아줌마도 그랬어요?" 내가 묻자 올트먼 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설명하기 어렵구나." 올트먼 부인은 말했다. "뭔가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일인데......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고. 너무 큰 사랑, 너무 오래된 사랑, 너무 동물같은 사랑. 무섭지." 올트먼 부인은 주먹을 가슴에 올리고 무서움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무서워서 미쳐 버릴 것 같은 때도 있어."

-240쪽

우리는 망아지들을 어미들에게서 떼어놓은 다음, 망아지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망아지들은 비명을 지르고, 울타리를 가슴으로 들이받고, 좁은 우리 안을 빙빙 돌다 서로 부딪쳤다.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고개를 치켜든 망아지들은 괴로움에 지쳐 약한 울음소리를 냈다. 신음이 하늘을 갈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실라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실라는 가로대 너머로 손을 뻗어 달래주려고 했지만, 고통과 공포에 휩싸인 망아지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실라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엄마 말들이랑 같이 있게 하면 안 되나요?" 실라가 물었다.
"훈련시켜야지."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엄마 옆에 붙어 있는 말은 훈련을 못 시켜. 어른이 돼야지."
실라는 망아지들을 지켜보면서 몸을 떨었고, 아빠는 실라의 등 뒤로 다가가 실라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지금은 심한 것 같지만, 금방 괜찮아져." 아빠가 말했다. "두어 달 지나면 어미들과 섞어놔도 서로 알아보지도 못해." -225쪽

전부 거짓말이었어요. 처음부터 거짓말이었어요. 하지만 이미 진실은 차고 넘쳤다. 진실이 사방에서 소용돌이치며 내 머릿속에까지 차올랐다. 진실이 더 흘러나왔다면 나는 진실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

날이 추워졌다. 땅은 온통 서리로 덮였고, 하늘은 거대한 회색 석판으로 변했다. 선생님은 떠났고, 나는 붙잡을 수도 따라갈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픔이 내 안 구석구석에서 비명을 질렀다. 아픔이 이빨과 발톱을 세우고 나를 안에서부터 찢어발겼다. 하지만 내 몸은 찢어지지도 피를 흘리지도 않았다. 멍든 곳도, 저는 곳도, 흉터가 남은 곳도 없었다. 하루하루, 아침 점심 저녁, 나는 꾸역꾸역 살아갔다. 상처 입고 찢겨나간 속을 안고.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몸을 안고. 그런데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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