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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희생하는 어머니, 믿음직스러운 아버지, 귀여운 아이들, 그리고 자애로운 조부모들...모두가 아름다운 가족 신화의 일부분들이라면,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가족은 다들 뭔가가 부족하고 삐걱거린다. 사랑의 가족, 따위는 없고, 피를 나눈 가 족이 남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고 생각하게 된다. 또, 그들이 살아가는 집도 마찬가지다. 다들 너무 높거나, 크거나, 비싸거나, 낡고 삐걱거려서 허물려고 했더니 돈이 너무 들어서 방치해 놓았다. 어쩌면 가족이나 집이나, '돈'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버블 경제의 상징인 고층 맨션을 무리하게 구입한 가족, 경매로 그 집을 사려는 소시민, 그 사이에 버티기로 끼어드는 가짜 가족들. 살인 사건을 둘러싼 진짜 가족들의 남보다 못한 가족 이야기들이 거푸 거푸 600쪽 넘게 이어진다. 사람이 죽고, 살인자에게 '사회적 현상' 쯤 되는 변명거리를 안기는 게 싫었는데, 역시 작가는 그런 어정쩡한 감동 코드는 쓰지 않았다. 후반부로 갈 수록 연속해서 나오는 가족 드라마에 질리는 느낌도 들지만, 역시 글"심" 있는 작가기에 맺음도 깔끔하다. 다들 그 빈 아파트에 괴물 원혼을 세우고 싶었을텐데, 작가는 그 마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죽이고 왜 죽였는가, 그 이유를 굳이 알아야 겠는가? 그것도 초호화 20층 맨션에서 네 명의 목숨이 사라진 사건이라면 더 흥미가 동하는가? 그럼 책을 읽어야겠지. 그리고 계속 나오는 비정상적인 가족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서 당황스럽더라도 책 중간에 읽기를 멈출 수는 없겠지.